코스 : 청림마을 주차장(09:25) - 사두봉 - 새재 - 구시골 - 삼각봉(13:50) - 의상봉 부사의방(15:17) - 원효굴 - 의상암터 - 쇠뿔바위봉 - 출발지점(17:40)
(빨간선이 진행경로)
저번 관음봉과 망포대능선 다녀오고 나니 변산병 다시 도진다.
오래 벼르던 의상봉을 쇠뿔바위와 이어 돌아본다.
확장 개통후 첨 달리는 88선 아니, 광대고속도로. 모처럼 쌀쌀한 날씨라 비교적 깨끗한 시야, 노령산맥 넘으니 그만 흐릿해진다.
눈없는 변산 겨울, 춥지 않은 건 좋으나 내륙과 달리 대기 넘 뿌옇다. 기대했던 바다 조망은 오늘도 아닐 듯...
첫 주요봉우리인 사두봉은 사방 멋드러지게 지능선 발달하여 기대 이상 잼나고 화려한 눈맛이다.
가는 소리와 물빛 정겨운 구시골은 참 호젓하고 아늑한 분위기다. 이른 봄날 꽃시절 상상하니 가히 황홀인데, 타이밍 맞추어 여유로운 걸음으로 함 둘러보아야겠다. 의상봉 한바퀴 돌아내려 부안호 만나는 곳까지 갔다가 사두봉 지릉으로 올라서면 알찬 한코스 될듯.
먼눈에 그럭저럭 오를만하다 싶어 직등으로 치받았던 삼각봉(투구봉?), 슬슬산행 기대하고 왔다가 너나없이 식겁해버렸다. 대부분 구간에서 낙석 조심스럽고 우리 실력으론 직등불가한 두 마디는 결국 우회해야 했다.
군사시설 차지한 의상봉 꼭지는 먼 발치서 레이다돔 일별로 대신하고, 신랏적 고승들 유적 더듬으며 변산 최고봉 산길의 실속 채운다.
허공 면벽한 부사의방과 어둠 등진 원효굴은 얼핏 보아 정반대 분위기, 묘가 차지한 의상암지는 지금도 퍽 아늑해 보인다.
먼 길치곤 출발 늦고 진행 여유로웠던 산행, 쇠뿔바위 둘러보는 사이 저녁빛 밀려든다. 흐린 하늘이 더욱 어두침침.. 동초재쪽으로 가지 않고 미답길따라 청림 주차장 내려서니 어느새 하루해 저문다.
파랗게 돋아난 겨울보리밭 건너 산행 들머리 능선,
오른쪽에 산소 보인다.
청림마을 우로 쇠뿔바우 돌아보다
옛날엔 해창서 든 배가 청림마을까지 올라왔다 하니, 백천 청림나루에서 쇠뿔바위 올려다보는 느낌은 어떠했을까?
산소에서 돌아보다
뚜렷하지만 표지 하나 없는 산길따라 잠시 치오르면 조망암봉.
사방 시야 좋고 전방으로 소잔등같은 암반 보여 빠른걸음으로 간다.
암반 걸으며 지나온 첫봉우리 돌아보다.
가운데 멀리 울금바위 솟고, 오른쪽 가까이 삼예봉이 청림마을 쪽으로 지능선 드리우고 있다.
좀 가파른 바우,
올라서니 삭은 밧줄 하나 나딩굴고 있었다.
조오타~
고래등같은 바우는 사두봉까지 이어져 보인다
점점 흐려지는 하늘 아래 변산 최고 의상봉.
변산에서 유일하게 500m 넘는 508.7m로 알려졌으나, 최근 지형도엔 495.7m로 표기되어 있다. 그 다음이 망포대 494.1m
결국 변산엔 500m 넘는 봉우리가 없는 셈인데, 고도에 비해 이만큼 깊고 화려한 경관을 보이는 곳도 없을 성싶다.
돌아본 쇠뿔바우와 지장봉
당초엔 쇠뿔바우 거쳐 내려서는 길에 지장봉을 올라보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시간에 쫒겨 그러질 못했다.
의상과 쇠뿔
호위하듯 앞으로 펼쳐진 삼각봉과 지장봉.
여러 불보살들 중에서도 하필 지장봉인 이유는, 저 봉우리 바라보는 부사의방장 진표스님과 관련된 설화를 뒷받침하기 위함인 듯.
당겨본 의상봉과 아래 삼각봉 일대 암릉
삼각봉 바라보며 잠시 얘기 나눈다.
주로 우회해서 오르는 거 같던데 직등도 가능하지 않을려나?
두군데쯤 어려워 보이는 곳이 보인다. 암릉 너머로 숲이 보이는데 불가능하면 그리 우회하믄 되지 않을려나? 등등...
당장의 부담없는 얘기가 오고간다.
그러나 말이 씨가 되는지라, 이 자리에서의 이 얘기가 결국 살벌한 직등을 감행케 한 단서가 되었음이야...
사두봉 오르기 직전, 중계교근처에서 오르는 주등로 만난다.
그러나 사방 조망좋은 사두봉 정상부를 안 갈수 없으니 잠깐 다녀오기로 한다.
사도봉 오르며 돌아보다
암봉 너머로, 아침에 지나왔던 바드재로 향하는 도로 보인다.
도로 왼쪽 가까이는 삼예봉, 도로 오른쪽으로는 덕성봉, 그 뒤로 펑퍼짐하니 가장 높은 건 변산 환주 코스에 드는 옥녀봉(434m).
사두봉에서 보는 부안호 방향
왼쪽 섬같은 게 두호봉, 오른쪽 더 높은 암봉이 군관봉. 둘다 부안호 조망봉으로 유명한데
언젠가 함 돌아볼 기회 될런지..
맨 뒤로는 역시 환주코스인 흑낭봉 줄기.
왼쪽 멀리 쌍선봉과 월명암도 흐릿..
근데 바로 앞 이 능선, 사두봉 남쪽에서 서향으로 나뉘는 줄기인데 언젠가 구시골 답사후 오름길로 이용해도 될 듯하다.
사진 가운데, 의상봉 서릉 환주코스와 나뉘어져 군관봉쪽으로 솟은 봉우리는 기산봉이라고.
서릉 쪽으로 나가본다. 저 앞 봉우리까지만 다녀오기로 한다.
서릉에선 사두봉 이후 지장봉 방향 능선이 한눈에 든다
서릉에서 돌아보는 사두봉
사두봉 조망이 참으로 일품인듯.
의상 쇠뿔 그리고 부안호까지 요연하게 바라볼 수 있으니...
사두봉 한자를 모르니 내 멋대로, 대가리 넷 가진 뱀쯤으로 헤아려 본다.
사두봉 내려서 새재 가는 길에
바로 앞 소박한 암봉을 투구봉이라 부르기도 하는 듯.
투구봉 오르기 전 뒤돌아본 사두봉
우회로 있으나 바로 올라야 당근 조망 좋다
투구봉에서 보는 구시골
오른쪽 희끗한 공터와 대숲이 보인다. 마을터 같은데 잠시 후 저기까지만 가보게 된다.
각 살짝 달라진 의상봉 암릉
지장과 쇠뿔
새재에서 구시골 내려서는 길, 금줄 걸려 있는데 너머로 길 너무 뚜렷하다.
묵어보이던 몇 년전과는 딴판이다.
나중에 짐작한 바로, 의상봉 등산객들도 늘어났지만 꽃쟁이들 걸음도 적잖게 기여한 듯.
잠시 가니 갈림길,
의상봉 바로 오르려면 오른쪽이겠지만... 구시골 좀 더 살펴보고 싶어 왼쪽으로 간다.
참 예쁜 암반계류다.
사계절 모습 다 궁금해진다.
골따라 내려가다 보니 어느 새 오른쪽으론 저런 돌담 보이고..
적당한 곳에서 멍석펴고 여유로운 점심식사.
식후에 이쁜 계곡길따라 부안호방향으로 더 나가본다.
드디어...
그래, 저 모습이 궁금했었다.
아마 여기가 지도상에 조령이라 적힌 옛마을터 아닌가 싶은데..
예서 보니 거함의 뱃머리같은 삼각봉, 오른쪽 암릉따라 그럭저럭 오를만해 보인다?
여전히 두어군데는 직벽같아 보이지만...
여기서 삼각봉 가려면, 저 대숲 가로질러 들어가면 계곡 따라 삼각봉 안부로 오르는 길 있는 모양이다.
삼각봉 능선자락으로 되돌아오며
무슨 나무일까? 신비로운 숲이다.
연두 봄날이 정말 궁금해진다.
우회하는 뚜렷이 좋은 길 바로 만나면 그리 갈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갈림길까지 돌아가지 않은 지점에선 별다른 우회로 보이지 않는다.
까이꺼, 얘기했던 대로 바로 올라보지 머~~
숲 헤치고 들어가 능선에 달라붙는다.
낙석 조심스러워 뒷사람과 대각으로 비스듬히 오른다.
잠깐 오르니 조망 짱이다.
그런데 건너편에 참 편안해 보이는 암릉 보인다.
나중에 알고보니 저 암릉으로 오르는 게 주등로인 듯(아래 지도 파란선).
빨간선이 진행했던 경로. 노랑 파랑은 (다른 기록 참고한) 추정 경로.
파란 능선길이 수월하긴 하겠고, 노란 우회로 중 선택한다면 왼쪽 대숲지나 가는 길이 구시골 경관이 있으니 더 나을 듯.
지장봉과 쇠뿔바우가 겹쳐진다
내내 낙석 조심스런...
이후 구간,
우회하거나 용쓰느라 사진을 담지 못했다.
여하튼 바위꾼이 아니라면 직등은 비추천, 부스러지기 쉬운 암질의 바위에 매달리기도 위험스럽거니와
일행 여럿일 경우 낙석도 퍽 조심스럽다.
뜻밖에 정수리 조망 신통찮은 삼각봉에서,
우회하여 올라온 마지막 구간 굽어보다.
삼각봉 안부에서 보는 암릉 풍광이 압도적이다.
광각렌즈가 아쉽다.
저 건너 바우로는 갈 수 없나...?
정상은 아직 까마득하구먼...
당겨본 구시골.
좀 전에 이쪽 올려다보고 있었던 대숲 아래 지점.
뒤돌아본 삼각봉
건너 능선 참 편안해 보인다.
다른 계절에 저리 함 오를 기회 있겠지?
돌아보니 그 새 더욱 곤두선 삼각봉
돌아본 덕성과 옥녀, 너머 오른쪽 흐릿한 용각봉
사두봉 좌우 너머로 옥녀와 먼 세봉 관음봉 등...
맨 오른쪽 쌍선봉, 너머 흐릿한 망포대향 환주능선
울렁증 불러일으킬 듯한 고래등 암릉, 다시금...
망이라도 보는 듯, 포갠 바위
저 바위로도 함 가보고 싶지만 오늘은 시간상 좀 무리일 듯.
담 기회에...
얼추 올라서니 십자로 갈림길,
왼쪽은 정상 방향이고 가장 뚜렷한 직진은 부사의방 가는 길, 오른쪽은 전망바위.
전망바위에서
묵상중...
십자로 되돌아와 이번엔 정상방향으로 살짝 올라가보니 억새 듬성한 조망처
아무래도 오른쪽 저 바위가 눈에 밟힌다.
마천대라 부르기도 한다는..
철책따라 진행 가능할 듯...
당겨보지만... 넘 흐리다.
관음봉이 단연 뾰족하다. 그 오른쪽 맨 뒷줄로 신선대 망포대,
펑퍼짐한 망포대 바로 앞에 쌍선봉 겹쳐친다.
부사의방 쪽으로 진행하며 삼각봉 돌아본다.
저렇게 올랐네...
상단우회는 편한 숲길이라 수월했는데, 아랫단은 우회하다말고 동사면 암벽 기어올랐기 때문에 꽤 위험했다.
부사의방이 저 소나무 아래
10m쯤 되는 밧줄 잡고 내려오면...
절벽의 테라스가 나타난다.
참, 진표 시님두...
청춘의 피가 펄펄 끓으셨던 듯.
부사의방.
짱은 부사의방보다 저 삼각봉이 더 관심인 듯.
사실 부사의방을 돋보이게 하는 극적 코스프레라 해도 좋을만치, 여기서 보는 삼각봉은 인상적이다.
이 공간 동쪽에 흙바닥으로 된 좀 더 넓은 공간도 있다.
여기는 의외로 아늑해 보이기도 하다. 벽에 쇠말뚝 박은 흔적도 있다.
미륵도량 금산사 중창주로 알려진 진표스님이
바위벽 등지고 허공을 면벽삼아 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다르고자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그가 행했다는 망신참亡身讖의 법이란, 막말로 부처를 상대로 한 자해공갈이 아니었던가?
마주한 허공의 벽을 열지 못하자 자책과 절망 끝에 차라리 벼랑에 뛰어내려 죽어버리고야 말겠다는 협박에
불보살은 끝내 그를 품고 인증했다. 그의 앞에 나타난 부처는 구세주 미륵이었고, 함께한 이는 대자대비 지장보살이었다.
미륵을 친견하고 인증받은 청년대사 진표는 당대의 아이돌 스타스님으로 전국을 누볐을 것이다. 원효가 그랬고 의상 또한 그러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미륵이었을까? 진표는 누구였을까?
김기덕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에, 개구리 다리에 바늘을 꿰어놓았다가 일년 후 그 개구리를 다시 보고 충격을 받는 소년이 바로 진표의 어린시절이다.
통일된 신라의 땅이었지만 그는 백제의 후예였다. 부사의방에서 건너보이는 쇠뿔바위 너머 울금산성은 오래 완강했던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였다.
백제인의 콤플렉스가, 혹은 신라인으로 사는 백제인들의 고난이 그로 하여금 미륵을 영접케 했을까? 사실 통일신라 때 미륵신앙은 옛백제땅에서 주로 융성했다.
미륵은 도래할 세상에 출현하는 미래불이다. 고난의 현세를 밀고가는 힘이 되어주는 판타지의 주인공이다. 그 판타지가 현실로 스미는 자리에 그려지는...
백제 부활의 꿈?
미륵신앙이 어쩔수 없는 부활의 신앙이듯, 진표의 망신참법 또한 부활의 각인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스스로의 몸을 부수며 현세적인 모든 걸 던짐으로써, 죽음마저 담보함으로써 얻는 무엇, 다다르는 어디.
부활은 현실의 합리적 계기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일상의 계기를 끊는 기적사건이다. 가장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모든 걸 버려야 한다. 그 내려놓음이 천지와 공명하며 열리는 한순간, 기적은 온다. 그러므로 부활은 새로운 시간지평을 열어젖히는 사건이다. 하대 신라, 백제인들의 개벽, 부활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미륵은 아편인 동시에 각성제다. 현세의 고통을 참고 견디게도 하지만, 도래할 그 미래가 문득 눈앞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용기백배의 에너지원이 될 수도 있다.
미륵의 이미지를 품고 지장에 의탁하면서 그시대 진표의 추종자들이 가고자 했던, 닿고자 했던 세상은 어디였을까?
기록에 의하면 진표는 경덕왕과 사이가 좋았고 혜공왕과는 친하지 못했다고 한다. 경덕왕은 그를 팍팍 밀어주기도 했다는데, 드센 백제 기질의 종교적 순치는 신라왕실의 지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열왕 직계 마지막 왕인 혜공왕대에 들어 통일신라는 96각간의 난으로 불리는 내전상태를 겪으며 하대(말기)로 접어든다. 시대를 읽는 예리한 안목의 소유자이기도 했을 진표 역시 더이상 왕실에 고분한 협조자가 아니었을 터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긴 대혼란이 예고되는 그러한 시대에
미륵불의 품으로 데뷔하여 참회를 설파하는 종조로 등극한 진표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회개하라,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고 외치던 그들과 같은 뜻이었을까?
훗날 궁예는 스스로 미륵을 칭했다. 바야흐로 후삼국시대,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거듭하면서 그들이 펼쳐보인 세상의 꿈은 광기의 망상이었을까? 아니면
영원히 유예되는,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인간만의 열정이 가닿는 역사의 끝에 대한 어떤 믿음이었을까?
부사의방 올라와
동쪽 벼랑 우에 서면 부사의방 굽어보이는 곳 있다.
원효굴에서
무애無碍의 거인 원효는 의외로 굴을 참 좋아하셨던 듯?
대충 줏어들은 원효굴만도, 건너 울금산에도 있고, 팔공산 청운대 아래에도 있고, 경기 소요산에도 있다.
물론 후대에 그 이름 갖다 붙인 것도 있을 것이나
어떤 연유로 사람들은 그토록 원효와 굴을 연관짓고 싶어하는 것일까?
부사의방에서 진표는 허공이란 벽을 마주하여 그 벽을 열거나 넘어야 했고,
원효는 끝없이 자신을 감싸 짓누르는 석굴의 어둠과 무게로부터 스스로를 열어내거나 벗어던져야 했다.
진표의 벼랑이 피억압 대중의 두려움을 상징하는 극한 고도라면 원효의 동굴은 우화적으로 물화된 세상의 모든 어둠이다.
둘이 처한 상황과 추구하는 바가 달랐으니 수행방법 또한 달랐을 것이다. 거칠게 단순화하면, 원효는 내면의 어둠과 싸워야 했고
진표는 밖으로 엄습하는 두려움과 싸워야 했던 걸까?
다시 돌아보면, 진표는 망국의 백제인이고 원효는 6두품 출신 신라인이었다.
의상과 함께 당으로 구법여행을 하는 도중 해골물을 마시고 홀연 각성, 신라에 그대로 눌러앉은 이가 원효 아니었던가?
득도 후 총명 원효의 행적은 참으로 거침없었다 하니,
도처에 널린 저 수많은 원효굴들은 그가 가차없이 벗어던져버린 굴레의 흔적이거나 상징물 아닐까?
참 아늑한 의상암 절터. 부처님이 어느 방향을 보고 앉으셨을까...? 짐작해 본다.
바로 앞 멧돼지 파헤쳐놓은 곳엔 기왓장도 몇 굴러있다.
의상암 있었다 하여 여기가 의상봉이 되었다는데, 어쨌거나...
진표 원효 의상, 신라 3대 고승이라 할만한 이름들이 500m 채 되지 않는 산봉우리 하나에 다 모여 있는 곳도 여기 뿐일 듯.
참 대단한 의상봉이다.
메워진 우물터
각자 있다 하여 찾아보니....
오른쪽 바위 뒷면에 있다. 그러니까 정상능선 방향(북쪽)인데, 옛날엔 그쪽으로도 숲이 훤히 트였을 거란 짐작.
북향 바위벽에 새겨진 불일천不日阡.
무슨 뜻인지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허나 바로 그 때문에, 힘찬 필치로 아름답게 새겨진 저 글귀는 해석의 맥락을 차단하고 사물적 신비의 영역으로 든다.
불일천 불일천... 뜻을 헤아리려 하지 않고 몇차례 되뇌어 본다.
시간의 격절로 망각의 신비에 든 언어는 주문呪文이 된다, 언어 또한 그렇게 거듭난다.
그건 더 이상 합리적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가 아니라 신명을 부르는 기호, 말씀이 된다.
의상암터 앞 숲, 다른 계절 모습 궁금해지는..
쇠뿔바위봉으로 건너간다. 구시골 최상류부 지나 의상봉 주능선 등로와 만난다.
한 봉우리 넘기 전 우회로 있길래 잔머리 굴리다가 낭패,
능선 우회로가 아니라 구시골로 빠지는 길이다.
쇠뿔바위 능선 오르기 전 조망처에서 돌아본 의상봉.
왼쪽이 지나온 능선, 바로 앞 계곡은 새만금호로 드는 금광천 상류다.
새만금 앞바다가 흐릿...
늘 느끼지만, 새만금이 머냐, 이름이...
쇠뿔바위 앞둔 지점에서 우슬재 넘아가는 도로가 보인다.
고래등과 동쇠뿔
데크 설치된 서쇠뿔
서쇠뿔에서 보는 모습들
저 너머 울금바우
지장봉 방향,
늦은 시각이라 더욱 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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