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거림(08:20) - 북해도교 - 거림 옛길 - 우천 기도터 - 남부능선(10:40) - 한벗샘 삼거리(12:40) - 삼신봉(13:50) - 외삼신봉(14:25) - 묵계치(15:40) - 고운동치(16:30)
완주 기약없는 낙남길에 발 들여놓는다. 첫발자국부터 엇길이다.
제대로 종주라면 영신봉 찍고 시작해야 마땅하나, 올해만도 그 일대 몇 차례 기웃거린 터라 거림옛길 거쳐 남부릉 허리로 곧장 든다.
산자락까지 내려온 단풍은 평소 지루하던 거림골 길을 또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느리게 느리게만 걷고 싶은 길...
물 건너 오가며 이어지는 거림 옛길에 쏟아지는 햇살이 정겹고 따사롭다. 천하명당인 우천 선생 기도터에서 먼산 바라며 머물다가
남부릉 접어든다. 근래 들어 가장 쾌청한 날씨, 길옆 조망바위 올라본다.
겹겹 원근 산릉들은 허리춤에 박무 두른 채 하늘 높이 마루금 긋고, 무지개의 잔상처럼 마지막 빛깔 뿜어내는 계곡 산빛은 멀리서 곱다.
시야 저리 맑은데 희한하게 바람 없이 고요한 날씨, 조망처 자주 기웃거리는 몸은 땀께나 뽑으며 무지근하다.
한벗샘 삼거리 지나면 한동안 울창숲 능선, 종주모드로 좀 부지런히 걸어보기도 한다.
올 들어서만 세번째 오르는 삼신봉, 눈 맑아지는 조망과 또다른 산빛 있으니 불현듯 낯선 산이다.
아마 그랬던가, 지리산 단풍 맨 첨 접한 게, 십수년전 유난히 가을빛 곱던 해 여기 남부릉에서였지 싶다. 해박한 산지식과 풍부한 감성으로 풍경산행의 진미를 전해 주셨던 그의 찬탄사가 아직 귀에 쟁쟁하다. 느낌을 중시하는 산행스타일을 익힌 건 순전히 그분 덕이다. 매사 속도와 성과에 대한 집착이 더욱 기승하는 시대, 요즘 들어 자주 그가 그리워진다.
외삼신봉부터는 초행길이다. 청학동 갈림길부터 우거지기 시작하는 산죽밭 사잇길로 오른 외삼신봉은 삼신봉 못지 않은 조망처다.
가야할 방향 검푸르게 우거진 남도 산릉들은 전혀 새로운 풍경이고, 금빛으로 타오르는 청학동쪽 산비탈도 눈길 사로잡는다.
돌아보면 반야에서 천왕까지 지리 주릉과, 영신봉에서 출렁이며 이어져오는 남부릉의 전경도 흐뭇하기 그지없다.
내내 이어지는 산죽밭, 길 뚜렷하지만 유난히 키크고 억센 대궁들이 여차하면 볼때기 후려치거나 콧구녕 뚫을 기세고, 기세 한풀 꺽인 가을 댓잎들조차 쉼없이 살갗 스치며 연붉은 칼자국들을 새겨놓는다.
가파르게 내리꽂히는 묵계치 전부터 극심해지는 산죽 밀림은 마지막 봉우리 직전까지 계속이다. 길의 감옥이 있다면 이 비슷할까?
고운저수지 북으로 감싸며 반천으로 이어지는 능선 분기하는 991봉 지나니 캄캄하던 시야 번쩍 트인다. 쏟아져드는 맑은 공기 마시며 산죽숲에 지친 폐부를 씻어본다. 고도 잦아들며 다시 나타나는 단풍숲길, 여유롭게 걸어내리면 저수지 관광차량 쉼없이 드나드는 고운동치.
별 생각없이 편승한 낙남길, 떼어놓은 첫걸음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미지수.
끝구간 두어 자락 걸어보았고 명산릉 구간 대부분 따로이 돌아보았지만, 하늘 맑고 높아지는 시절의 남도 산길
언제 어디서 멈출지 알 수 없지만, 갈 수 있는 만큼은 가보아도 좋을 터.
산길 들어서며 돌아보는 거림, 가을빛이 눈부시다.
단풍이 다 내려왔으리란 예상대로 들머리부터 곱다. 우렁찬 물소리와 짙은 가을숲 내음...
단풍숲이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나 한동안 느린 걸음이다.
어느 새 맨 꼴찌다.
골 쪽으로는 단풍나무가 많아 특히 붉고 곱다.
조금씩 다른 빛깔, 조금씩 다른 세상...
몇 년전 지금보다 좀 이른 때 거림골 오르며 단풍에 홀려, 일찌감치 계곡으로 내려서 골따라 오른 적 있다.
오늘처럼 물 많지 않았지만 집채만한 바위들 오르내리느라 꽤 힘들면서도 좋았던 기억.
나이 때문일까, 요즘은 노란 단풍이 붉은 단풍보다 더 곱게 느껴진다.
오후햇살이 역광으로 들면 저 빛깔의 아름다움은 세 치 혀의 형용을 넘어간다.
고도 오를수록 잎들 점차 메말라가는 게 확연히 보인다.
빛깔을 뿜어내는 단풍은 대충 여기까지인 듯하다.
골 건너 산비탈 건너본다.
능선은 잎 다 졌는데 아랫자락은 제법 곱게 물들어 있다.
단풍도 없는 천팔교 물가에서 쉬고 있는 일행 지나쳐 북해도교에 다다른다.
후딱 건너간다. 건너편 옛길 들머리 찾아 기웃거리는데 누가 부른다. 산악회 대장님이다.
역시 옛길 진행 작정으로 건너오신다. 일행 넷이서 함께 오른다.
옛길의 옛 이정표.
양철판때기에 먹으로 쓴 글씨가 거의 지워져간다. 사라지고 있는 것들의 흔적이 정겹다.
아울러 저기에다 제이름 석자 박아놓고 흐뭇해했을 박순호란 자도 참 웃긴다.
옛길은 내내 물길 따라간다.
며칠전 비 많이 내렸으니 우당탕 퉁탕, 물소리 요란하다.
단풍이 지고 있다. 반은 지고 반은 남은 붉고 노란 잎들이 햇살에 곱다.
물 건넌다.
이대장님은 옛길의 예전 모습 떠올리며 이런저런 설명으로 우리 귀를 즐겁게 해 주시고...
조망좋은 큰 바위 있어 돌아본다
오른쪽 뭉툭한 봉우리는 남부릉 쇠통바위봉 같다.
우천 허만수(1916~1976?) 기도터에서
수많은 지리산길을 개척하고 조난 구조활동을 해오셨다던 지리산인 우천 선생.
죽으면 지리산신령이 되겠다며 안 보여도 찾지 말라셨다는데, 어느날 흔적없이 홀연 사라지셨다고.
과연 그는 지리산신령이 되었을까...?
강한 신념이 무언가를 이룰수 있다고 믿는다면, 아마 그럴 것이다.
짱이 가리키는 곳은...
촛대남릉 시루봉이다.
우천 기도터는 기막힌 곳이다.
남부릉 등지고 숲 가운데 아늑한 자리, 권세 버리고 세월에 가라앉은 고분처럼, 높지 않으나 제법 크고 둥근 바위 위.
좌우로 삼신봉 세 봉우리와 촛대남릉 시루봉까지 아우르며 그 사이로 아득히 남해를 바라본다.
구름 우에 뜬 사천 와룡산과 낙남길 비켜가는 주산 옥산 이명산 등이 한눈에 든다.
필시 앞으로도 자주 들리게 될 것같은 예감...
동행한 임사장님 종용에 오랫만에 둘이서 사진도 한 컷
남부릉 접어들어 첫 전망바위에서
굽어보는 대성골쪽.
욕심많은 광각이라, 반야에서 백운 도솔까지 한번에 우겨든다. 좀 복잡해 뵌다.
능선쪽은 비교적 썰렁한데 하류쪽은 아직 산빛 제법이다.
뒤돌아보다
모처럼 조망좋은 날, 저 먼산릉들이 어디일까 당겨보니...
호남정맥길에서 무척 낯익은 윤곽, 조계와 모후가 띈다. 백아와 무등도 가시권이겠으나 오른쪽 왕시리에 가리는 듯.
석문 지나며
바람없이 포근한 가을날치곤 특이할 정도로 맑다.
당겨본 거림골 빛깔
동쪽
가야할 산릉이 한눈에 든다.
참 낯익은 윤곽...
뒤돌아보다.
오늘은 석문 암군 박진하게 돌아보는 곳은 가지 않았다. 날씨 탓에 벌써 좀 지치는 느낌..
서쪽이 동쪽보다 산빛 조금 더 고운 듯?
독바우 까칠한 단천릉과 수곡골
당겨본 수곡골 산빛
지난번 수곡골에서 붙어오른 지능선, 역시 까칠해 뵌다.
가야할 능선
한벗샘 삼거리 지나면 한동안 조망처 없다. 내쳐 걷는다.
단천릉이 돌아보이는 조망바위에서
삼신 세 봉우리
산불 고사목 지대 지나와 뒤돌아보다
단천골
외삼신봉, 세 삼신 중 가장 잘 생긴
삼신과 외삼신
삼신에서 돌아보다
내삼신
가야할 외삼신
청학동 갈림길부터 낙남의 악명높은 산죽숲길 시작한다.
그러나 외삼신까지는 귀여운, 조릿대란 이름에 어울리는 수준이다.
외삼신에서 돌아보다
삼신 우로 반야가 걸리고, 영신봉에서 이어져오는 남부릉이 한눈에 든다.
외삼신에서 보는 천왕
서남쪽 굽어보다.
오른쪽, 독바위가 눈길을 끈다
청학동쪽 산빛, 위도 낮은 남사면이라서인지
오늘 능선에서 본 중 가장 싱싱한 편이다. 낙엽송이 많아 색상도 밝다.
가야할 낙남길, 묵계치와 고운동치가 가늠되고
뾰족한 주산, 그 오른쪽 옥산, 흐릿한 이명산릉과 금오산까지...
회남재 너머 깃대봉에서 칠성 구재봉으로 이어지는 줄기도 반갑다.
지금쯤 저 능선 걸으며 악양벌 굽어보는 눈맛도 일품일 터.
말 나온 김에 조만간 함 들이대 볼까나...?
뒤돌아본 외삼신봉. 직벽 우회하여 가파르게 내려왔다.
볼수록 아늑한 묵계리.
(지금은 아니지만) 왜 일대가 세상 등진 청학들의 고향이 되었는지 알 것 같다.
돌아보다.
여전히 뾰족한 독바우, 날선 외삼신
아직은 산죽이 부드럽다.
모처럼 만나 반가웠던 조망바위에서
굽어보는 산빛
회남재쪽
묵계치와 회남재를 잇는 (준)원점회귀 코스를 그려본 적 있다.
누가? 어떤 간절함으로...?
묵계치에서.
가파르게 묵계치 내려서는 구간부터 산죽이 극성이다. 길 뚜렷하지만 키크고 억세다.
길에 갇혀 길로만 탈출해야 하는 형국이다.
스스로 폐소공포증 있다고 여기는 터라, 호흡조차 불편하고 콧구녕도 얼얼하다.
이후 짙은 산죽길은 마지막 봉우리 직전까지 이어진다.
산죽터널에서.
그나마 길 뚜렷하니 다행이다. 다른 지리산길처럼 길 흐리다면 헤엄치고 가기가 무척 힘들 듯.
마지막 봉우리 내려서니 숨통 트이며 훤한 공터 나타난다.
근 2시간에 걸친 산죽길이 끝났음을 알리는, 아주 상징적인 장소같기도 하다.
고도 잦아드니 다시금 노랗게 물든 단풍들... 잠시나마 꽃길이다.
기분좋게 내려선 고운동치는 바야흐로 단풍숲,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물찾아 적당히 씻고 나니 날아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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