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탄치(09:20) - 국사봉(10:20) - 상도재(11:00) - 정박산(11:15) - 뱀재 - 잼비산 - 남해고속도 - 천왕산(13:05) - 2번 국도 - 망덕산(14:20) - 외망포구(14:45)
장안산부터 이어온 걸음, 광양만 내다보는 외망포구에 이르러 비로소 내려놓는다.
잔설 희끗하던 작년 3월초에 시작하였으니 어언 1년여.
한(두?) 구간쯤 빠진 듯하나, 굳이 보충할 필요는 느끼지 못하겠고
조망 좋지 못했거나 산빛 단조로웠던 곳들, 또다른 기회에 다른 하늘 다른 산빛으로나 만나보았으면 싶다.
등지고 선 망덕산 너머 구비구비 이어온 호남 산줄기, 유월 섬진강 흐린 물빛으로 서서히 잠겨든다.
언제나 그러하듯 산은 순수한 현재, 산이 쌓아두는 시간이란 없으니
산 너머 산, 출렁이며 다가오거나 일파만파 아득히 사라져가는 산물결들...
비록 그 하나하나 혹은 전체를 아우르며 이름들, 오래오래 머물거나 헛되이 빛난다 해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깊고 푸른 저 산맥들.
진상과 진월, 다압을 잇는 고개 탄치에서.
눅은 공기에 감도는 비릿한 내음, 밤꽃향 진동한다.
바야흐로 유월 초여름, 하릴없이 뜨거워지곤 했던 그때 그시절이 이맘때쯤이었음을 알겠다.
첫봉우리까지 잠시 가파르게 올라선다.
200대 고도 고만고만 오르내리며 가는 능선, 동으로 시야 슬쩍 트인다.
윌길리쪽 굽어본다. 넘 흐려 뭐가 뭔지 잘 분간되지 않는다.
하늘은 낮고 무거운데, 대기는 습하고 바람 한점 없다.
깊지 않은 야산릉이지만 꽤 울창한 맛이 있다. 기대 이상 운치있는 길이다.
밤밭 옆을 지나며 서쪽으로 시야 트인다.
오른쪽 봉우리는 불암산성 있다는 곳(위지도 230.2봉)이고, 2번 국도 지나가는 저 고개 넘으면 진상면 소재지.
일대엔 유난히 밤밭이 많다. 매화밭에도 밤나무가 있고 산비탈이나 야트막한 능선에도 밤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오늘 내내 밤꽃 냄새를 맡으며 간다. 나중엔 머리가 띵~할 지경.
과수원이나 고개 때문에 자주 숲 끊기는 마루금이지만 산길은 전반적으로 예쁘다.
이 계절의 울창함도 좋지만, 하늘 높아지는 때 조망까지 누리며 함 걸어보았으면 싶다.
오늘 최고봉 국사봉(447m) 향해 오른다.
솔과 활엽 고루 섞여 있는 숲길이다. 산세에 비해 나무들 상태가 좋다.
바위들 듬성 박혀 있어 덜 단조롭기도 하고..
국사봉 머잖은 지점에 조망바위 있지만..
섬진강변 송금리쪽 같은데 조망이 꽝이다.
조망없는 국사봉.
돌무더기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 봉수터였을까?
매봉 전망대란 곳은 동능선 어느 지점인 듯.
국사봉 바로 아래, 파묘터인 듯한데 지금은 고사리밭이다.
오늘은 코스도 짧고 날씨도 습하고 무더우니 좀 여유롭게 간다. 모처럼 꽃들이나 똑딱여 가며..
여하튼 맘에 드는 산길이다.
썩 울창하니 고도에 비해 깊은맛 느껴진다.
물론 한여름 저 울창에 치이고 나면 좀 질리기도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느낌좋은 숲길, 줄곧 똑딱이며 간다.
상도재 내려서며
잠시 농로 따르다가..
고개 지나 오르며 동남쪽 건너본다. 봉긋한 저 봉우리가 망덕산.
개망초 지천으로 피어나 초여름 분위기 물씬하다.
천하고 밉쌀스런 이름에다 도처에 지천으로 피어나 꽃대접조차 제대로 못받지만,
무리지어 핀 흰 개망초밭은 강렬한 계절빛 뿜어내며 그 자체로 장관일 수 있다.
올해 첨 보는 큰까치수영.
정박산 오름길에 건너보는 서쪽. 벌판 가운데로 수어천이 흐른다.
바람없이 무더운 날씨에 천지간 진동하는 밤꽃 내음, 숨 턱턱~ 막히며 질식하겠다.
만발한 밤꽃, 민낯 드러내고 창궐하는 욕망의 방향芳香은 차마 동물의 그것을 넘보는 수준.
식물의 발정조차 저토록 지독하니,
난만 세상 도처에 회오리치며 질펀거리는 음양의 열정들, 어지럽도록 다채로와서
자주 안쓰럽고도 아름답더라... 해야 할까.
바야흐로 칡덩굴들도 잡아먹을 듯 날로 번성하시고..
산길 휴식의 풍경
정박산, 등급있는 삼각점인가?
정박산 내림길에 다시금 밤밭 이어진다. 징그럽다.
또다시 건너보는 망덕산
잘 생긴 솔 마주보며 다정하게 우거져가는 무덤 3기가 인상적이다
전후로 묘원 조성되어 있는 뱀재 내려서며 건너보다
억새마냥 희게 나부끼며 유난히 많이 보이는 이것들,
어릴 적 '삘기'라 부르던 풀인 듯하다. 봄날의 여린 순은 먹을 수 있는데, 고향동네 앞산 뒷산에 올라 어지간히 많이 뽑아먹었다.
보드랍고 달착지근한 그 씹는 맛이 싫지 않아 여태도 흐린 기억 남아 있다.
뱀재 건너서 잼비산 오르며.
뜻모를 잼비산이란 이름이 잼나다. 잼비? 발음나는 대로 와전된 듯한데 원래 이름이 뭐였을까?
잠시나마 뜨끈거리는 포장길.
잼비산 정상부까지 밤밭이며 묘역이라 농로겸 포장된 듯.
지나온 능선(왼쪽) 뒤돌아보다.
오른쪽 산릉은 정맥 상도재 직전에서 동남으로 나뉘어내린 줄기.
찔레꽃 지며 인동꽃 피는 계절인갑다.
이 꽃도 향이 강한 편이지만 밤꽃 땜에 전혀 느낄수 없다.
꽃빛깔이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금은화라 부르기도 한다고.
매원 가로질러 간다.
지금은 매실 수확철이다. 곳곳에 구슬땀 흘리며 일하시는 모습 보인다.
생산없이 사서 땀뽑는 나그네들에게도 인심 후하다. 참으로 가져다논 수박이며 물이라도 좀 들고 가라 권하신다.
천왕산 옆으로 뻘밭 일구고 있는 수어천 하류.
여태 알지 못했던 광양의 또다른 면모다.
점심 먹으며 굽어본 동쪽, 진목마을
다시 남으로 남으로..
곰돌이 허수아비.
너머 희끗하게 보이는 산은 광양 가야산?
우거진 능선 우회하는 예쁜 길
또다시 과수원길
망초와 들풀 우거진...
바닥은 쑥밭이 된 과수원
정맥능선 벗어나 중산리 쪽으로 내려서다
마을 뒷쪽 대숲을 지나 내려서니...
뉘집 마당을 거쳐 마을길로 나오게 된다. 뜨악~
잠시 도로따라 가다가..
호남고속도 통로박스를 지나 밤나무 무성하게 덮인 저 봉우리로 오르게 된다.
도로에서 건너본 망덕산
호남고속도 건너와 배수로따라 오르며 돌아보다.
정맥줄기는 도로 건너 저 능선이지만 제대로 길이 없다. 오른쪽 중산리로 내려서 뉘집 마당을 거쳐 왔다.
밤밭 가로질러 오른다
숨막히는 밤꽃향 너머 돌아보다. 잦아들듯 이어지는 저 줄기가 정맥.
동북쪽
들꽃 피고지는 길, 유월의 야성이 느껴지는 남도산길 정경
바람 한점 들지 않는 천왕산 오름길, 게다가 한낮이니 오늘 코스 중 가장 덥다.
좀 무뎌질 때도 되었건만, 질식할 듯한 밤꽃냄새는 쉼없이 후각세포를 고문한다.
천왕산 직전에서 돌아보다. 흐리디 흐린 조망이지만,
바다 앞두고 너르게 펼쳐지는 수어천 뻘밭, 줄기차게 걸어온 호남분수령이 마침내 대미에 이르렀음을 실감케 한다.
멀리 흐릿한 국사봉에서 이어져 오는 호남 마루금
천왕산정은 사방 조망 트이는 암봉이다. 허나..
시야 넘 흐리다. 남쪽 광양시 방향.
남으로 이어지다 휘어지는 정맥
동남쪽 망덕산, 오른쪽 너머로 흐린 섬진포구와 광양만
동쪽, 남해고속도 진월교차로 일대
북동쪽
금세라도 덥칠 듯하여
아래로 지나오며 쳐다보고
지나와서 돌아보는 바위
이어지는 능선도 엔간히 우거졌다. 계절답게 울창한 맛 일품이다.
돌아본 천왕산
195봉에서 건너보는 광양시와 가야산
수어천.
젊은 시절 직업상 가끔 드나들었던 광양이지만, 오늘 호남산길 끝자락에서 보는 인상은 그때완 사뭇 다르다.
지금 이 순간의 광양光陽은 (비록 햇살 부시지 않아도) 이름마냥 찬란한 빛과 물의 도시다.
당시에 본 광양은 번성하는 길의 도시, 떠오르는 공업의 도시였다. 그 때도 백운산과 광양만을 알았지만 산이나 물은 보이지 않았다.
빛光과 볕陽, 겹쳐지는 빛의 이미지는 더더욱 느끼지 못했다. 물빛 고운 섬진강과 수어천이 바다를 만나 총총 모래섬들을 토해놓기도 한 곳,
오늘 다시 보니 바로 그곳이 광양만이며 하동포구였다.
섬진강 동쪽땅이란 뜻으로 짐작되는 지명인 하동河東에도 빛은 가득하다. 물비늘 가득 반짝이는 이미지로 충만한 섬진강과 해뜨는 동쪽땅. 하동 역시 물과 빛의 땅이다.
천왕산(좌)과 망덕산(우)
수어천과 섬진강 최하류 사이 반도처럼 돌출한 땅줄기를 지금 걷고 있다. 두 강 사이에서 반달처럼 둥글고 긴 나루, 그래서 진월津月이다.
한때 세상은 길이었다. 길에선 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1년여 호남의 분수령을 걸어온 지금, 산과 물을 통해서 다시금 본다. 산과 물을 본다.
산과 물에 드리워지는 빛과 그늘, 시시각각 농담濃淡 달라지는 숲의 음영, 소리없이 구비구비 흘러가는 오솔산길을 듣고 본다.
그러므로 산길은 그때 그 길, 길만 보이던 그런 길이 아니다.
침묵 속에서 빛바래가는 흑백필름같은 오늘의 안개산하. 밤꽃 향기 진동하고 기이한 열정의 찬송가 메아리치는 천왕산정이지만, 멀고 가까운 풍경은 언제나처럼 고요하다. 안으로 푸르게 불타오르는 유월의 숲, 그 길을 걷는다. 긴긴 마루금 잦아들면 마침내 물길 더불어 끝나야 할 그 바다로 간다.
천왕과 망덕 사이, 반달처럼 분지처럼 아늑해 보이는 땅.
2번 국도 건너간다. 차량 많지 않아 별 위험하진 않다.
망덕산
모처럼 바람좋은 묘원. 앞서가던 일행 만나 그늘에서 한참을 쉬었다.
포개논 바위
바위에서 돌아보다
남쪽, 저 산 있는 곳이 태인도?
쇳소리와 연기 피어오르는 굴뚝 생기기 이전, 물빛 반짝이는 광양의 이미지를 돌이켜 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김 시식지가 저 섬이라고 하니, 광양만도 제철소 들어오기 전엔 이름난 청정해역이었던 셈.
망덕산정, 슬며시 밀려드는 어떤 느낌...
애써 추스리며, 정맥길 대미의 감회를 풀어놓기에 어울릴만한 조망처로 총총 걸음 옮긴다.
가령 저 곳, 신선대.
오늘 내내 인색하던 바람마저 거침없이 불어온다.
굽어보는 풍광에 어울리게 바다바람의 기미가 느껴진다. 비로소 기나긴 산줄기 하나 끝나가고 있음이다.
맨 뒤로 흐린 국사봉에서 이어져 오는 호남 끝줄기
북동쪽, 남해고속도 섬진강 휴게소 방향.
물 위에 뜬 큰 배처럼 보이는 산은 하동 금성면의 두우산(191m).
발 아래는 이제 내려서게 될 외망포구
모래섬은 배알도? 역시 하동 금성면
부석정으로 간다
부석정기.
통상 옛사람들의 정자기문을 보면,
아름다운 문체로 주관적인 개성을 드러내되, 정자를 짓게 된 내력과 연유를 객관적이고 자상하게 기록하여
좋은 글을 읽는다는 느낌과 함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은이를 드러내되 지나치게 두드러지지 않도록 했다.
충분히 좋은 글이 아니라면 자칫 허세로 이름만 더럽힐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겸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부석정에서 굽어보다
하산길에 건너본 배알도와 배암섬?
외망 내려서는 길도 예쁘다.
외망포구 굽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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