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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슬치~경각산~불재 130526

by 숲길로 2013. 5. 27.

 

 

코스 : 완주 상관면 슬치리 슬치(09:10) - 469봉 - 갈미봉(10:53) - 쑥재(11:28) - 옥녀봉 삼거리(12:10 점심) - 한오봉(13:12) - 효간치(13:48) - 경각산(14:45) - 불재(15:23) 

 

차창 밖으로 진안 고원 아침을 건너본다. 진종일 가시지 않을 안개 가득하다.

엷게 덮인 구름 아래 숨막힐 듯 눈부시고 흐린 세상...

 

천천히 숨 고르며 정맥길 잇는다. 

초반부 임도구간, 난반사하는 햇살 거슬리지만 찔레꽃 향기 천지에 가득하다. 어디선가 아카시아향도 날아든다.

신록과 하늘 다투며 여름 재촉하듯 도처에 피어나는 흰꽃들...

큰 기복없이 이어지던 임도 끝나고 숲그늘 접어든다. 완만하게 오르며 짙어져가는 녹음, 서늘한 바람 드니 울창한 육산릉이 축축해진다.

여름숲 꿈꾸는 푸른 오월, 대지를 뒤덮고 하늘 삼키는 식물들의 열망이 길짐승의 탐욕 못지않게 이글거리며 빛난다.

 

울창하게 우거져 고도에 비해 깊은 맛이 좋은 코스다. 도중에 숲길 끊기는 곳 없으니 더욱 그러하다. 전반적으로 큰 기복 없이 걷기 좋지만, 옥녀봉 오름길 잠시 가파르고 최고봉 경각산 꾸준히 치오르며 진땀 좀 뽑는다.

허나 경각산릉은 여기저기 바위 불거져 썩 조망이 좋다. 쾌청 날씨라면, 옥녀봉 부근에선 지나온 북쪽 능선과 만덕산 볼만할 테고, 경각 오름길과 지능선에선 구이 저수지 건너 듬직한 모악산이나 왜목치 건너 고덕산릉의 역동감이 썩 볼만할 성 싶다. 

원근산릉 죄 삼켜버린 흐린 하늘 아래 다만 그려본다. 구이면 쪽에서 경각산 올라 한오봉 거쳐 고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도토리 미어터지는 다람쥐 뽈때기마냥, 기약없는 또 한 코스 찜해두고 온다.      

 

 농로따라 접어들며 삼밭 너머 돌아본다. 지난 구간 날머리 박이뫼산이다.

 

 찔레 만발한 포장 농로 끝나고..

 

담배밭 너머로 지난 구간 걸었던 능선 건너본다. 

 

 저 밭 지나면 숲으로 접어든다

 

 

 

 저 봉우리에서 생태통로 있는 실치재 향해 급우회전이다

 

 440봉 향해 가며 보는 남쪽.

쾌청 날씨라면 묘역 저 끝으로 나가 조망 담아보겠지만... 오늘은 멀찌감치서 대충 똑딱인다.

 

우회하는 440봉 전까지... 한동안 기복없는 임도다.

햇살 좀 거슬리지만 찔레꽃 향기에 취해 기분좋게 걷는다.

 

 

 

 역시 임도지만 숲그늘 짙다.

 

 

 왼쪽 멀리 보이는 게 갈미봉일 듯

 

 조망 볼게 없으니 심심풀이 꽃이나 똑딱

 

 440봉 전후쯤이었던가, 임도 끝나고 꽤 깊은 맛 나는 숲으로 빨려든다.

  

 

 

 469봉 오름은 숫제 정글 분위기다.

길 닳아빠진 명산보다 사오백 고도에서 만나는 뜻밖의 이런 산길이 한결 깊은 맛이다.

 

 

 

 

 장치는 지났는지 어쨌는지 모르겠고...

 

 

 철조망 옆길따라 갈미봉 향해 간다.

썩 튼튼하고 위협적인 표지 걸린 걸로 보아 군부대일까?

 

 조망도 특징도 없는 갈미봉

 

예전엔 완주 상관면과 임실 신덕면을 잇는 주통로였을 테지만 지금은 통행 많지 않은 듯한 쑥재.

전후 한동안 완주와 임실의 경계는 호남정맥을 고스란히 따른다.

 

 내내 기분좋게 이어가는 울창숲길

 

 

 

 

 산소 덕분에 잠시 하늘 트이는 곳에서 보는 옥녀봉

 

 

 옥녀봉 치올리기 직전 공기편백숲 갈림길

정맥산행 아니라면 옥녀봉 빼먹고 편백숲길 거쳐 한오봉 바로 가도 될 듯.

 

 가파르게 치올라... 옥녀봉 삼거리 직전 조망바위에서

 

 한오봉과 너머 고덕산.

한오봉 왼쪽이 정맥, 오른쪽은 왜목치 거쳐 고덕산으로 이어지는 줄기인데 중간에 암릉도 불거지며 꽤 인상적.  

 

 한오봉 오른쪽으로 돌려본다

 

 상관면 죽림리. 멀지 않은 만덕산도 저 방향일 텐데...

 

시야 워낙 흐리다.

 

 어쨌든.. 멀리 흐릿한 줄기가 지난번 걸었던 능선일 듯

 

 

서늘한 바람 드는 옥녀봉 삼거리에서 먼저 온 일행들 식사 중이다.

왕복 십분이면 될 옥녀봉 다녀올까 하다가.. 조망 전혀 없다기에 그냥 퍼질러 앉는다. 느긋한 점심식사로 옥녀를 대신한다.

 

종종 그러하듯, 지척에서 포기하는 정상.

맥락 닿는 얘긴지 모르겠으나,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첫머리에 나오는 얘기가 떠오른다. 대충 옮겨보면,

옛날 중국의 어떤 선비가 한 여자를 사랑했다. 어느 날 그녀가 선비에게 말했다.

"선비께서 제 방 창 아래서 일백날을 기다리실 수 있다면 저는 선비님의 여자가 되겠습니다."

선비는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끈기있게 하루하루를 기다렸다.

마침내 백일째 되던 날, 그 선비는 마지막 하루를 채우지 않고 의자를 집어들더니 그 자리를 떠났다.

 

저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고, 그 책 또한 나름의 관점을 내비치지만

난 이 고사를, 사랑은 오로지 과정 그 자체일 뿐 성취해야 하는 어떤 목표가 아니란 의미로도 이해해 본다.

애써 성취하는 목표가 어찌 사랑이겠는가? 그런 건 다만 소득이거나 업적이다.

산행 또한 그와 같을 게다. 

이 나라땅 모든 산줄기 다 밟은들 어디에 쌓아놓을 곳 있을까, 아니, 쌓아놓을 그 무엇이 있을까?

혹은 비로소 다다를 어떤 곳, 어떤 경지나마 있을까?

 

무연히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의 풍경...  

 

 

 한오봉 일대는 모산악회 일행들 접수하여 점심 식사중

 

 한오봉에서 왜목치 방향 능선 건너보다.

썩 멋스러워, 지나가는 마음으로나마 훗날 기약하게 한다.

 

 

 

 잠깐 맛뵈기하는 편백숲

그늘이 참 서늘하여 '삼나무숲에 드는 바람'이란 영화제목이 불현듯 스쳐간다.  

 

 

 효간치 내려서기 전 조망바위에서 건너보는 북쪽

  

 고덕산

 

오늘 코스 최고봉 경각산.

 

 이런 꽃 참 많이 보인다

 

 

 

역시 근래 통행 드문 듯한 효간치.

이제 경각산 향해 꾸준히 치오른다.

  

 

 

 길옆 바위에 용쓰며 올라 굽어보다. 왼쪽에 구이저수지가 조금 보인다.

 

 역시, 고덕산쪽. 오늘 가장 눈길 가는 곳

 

코를 찌르는 향기에 고개 드니, 정향나무꽃 한창이다.

전엔 분꽃나무와 헷깔렸는데 오늘 다시 보니 확연히 다르다.

 

 

 정향꽃 너머 한오봉과 옥녀봉

 

 경각산 전 조망봉 바위벽

 

 조망봉에서 보는 경각산. 왼쪽이 실제 정상.

능선 오른쪽으로 암릉 불거지니 조망 될 듯하여 미리 눈여겨두고...

 

 조망처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지나온 능선 돌아보다. 왼쪽이 고덕산

 

 남쪽

 

경각산 치올리며 땀께나 뽑는다. 공교롭게 바람도 들지 않는다.

능선에 올라 미리 보아둔 조망암릉쪽으로 나가본다. 몇 걸음 나가지 않아서, 과연...!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든다. 조망봉에서 이어지는 줄기의 굴곡과 역감이 좋다.

 

 모악산쪽. 너무 흐려 아쉽다.

조 아래 너른 바위가 보여 살짝 내려서본다.

 

 정상 이후 불재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로 치마산인지 삐죽한 봉우리 보인다.

 

너른 바위에서 한 숨 돌리며 굽어보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정상으로 향한다.

 

 조망없는 공터 경각산 정상부

 

 요런 안내판도 보이고..

 

 

 

 불재 가는 길에

 

더운 날씨였지만 길지 않은 산행, 이렇게 끝나나 했더니...

마지막으로 특급조망대가 기다리고 있다.

 

 

 고덕산릉

 

 불재와 모악산릉. 불재 위 건물은 숯공장

 

 

 

 다음 구간 치마산릉

 

 불재 내려서면서..

 

 

불재

 

 

땀께나 뽑은 산행, 먼저 내려온 분들 덕분에 용케 물 찾아 땀 씻고...

얼음으로 식힌 시원한 막걸리와 구수한 두부로 배 채우다.

빈틈없이 배려하는 산악회 덕분에, 더운 계절 마루금 잇는 능선산행이 예상보다 즐거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