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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 서평 * 대니얼 샤모비츠의 <식물은 알고 있다>

by 숲길로 2013. 5. 18.

 

 

▲ <식물은 알고 있다>(대니얼 샤모비츠 지음, 이지윤 옮김, 류충민 감수, 다른 펴냄). ⓒ다른

 

 

 

포화탄의 추장은 딸 포카혼타스에게 자신이 신뢰하는 전사 코코움과 결혼하라고 한다. 하지만 포카혼타스는 그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포카혼타스는 버드나무 할머니에게 간다. 버드나무 할머니는 자신의 나무 그늘에서 쉬었던 사람들의 역사를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이 꾼 꿈이 포카혼타스가 가야 할 길이라고 알려준다. 그 길이란 그녀의 마음으로 들리는 소리로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알란 멘켄과 스테판 슈왈츠의 주옥같은 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포카혼타스>(1995년)에 나오는 이 장면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름답다. 하지만 나무들이 이야기 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만약에 나무들에게 이야기할 혀가 있다면 지구는 정말 시끄러울 테니까. 그런데 나무는 기억을 할 수 있을까?

 

덩굴

 

심리학자 엔델 털빙은 인간 기억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높은 단계는 '일화 기억'이다. 어린 시절에 별난 옷을 입었던 기억, 좋아하는 강아지가 죽었던 때의 기억처럼 자서전적인 기억을 말한다. 중간 단계는 '의미 기억'이다. 학교의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것과 같은 개념을 기억하는 것이다. 식물에게는 일화 기억이나 의미 기억이 없는 것이 분명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기억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다. 하지만 가장 낮은 단계인 '절차 기억'은 식물에게도 있다. 식물이 외부 자극을 감지하고 그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1977년 마크 제프는 식물의 '기억'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제프는 콩 식물의 덩굴을 잘라 빛과 습기가 있는 환경에 놔두면 덩굴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덩굴이 감기는 것을 확인했다. 같은 실험을 어둠 속에서 하면 덩굴이 감기지 않는다. 덩굴이 감기려면 빛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만진 덩굴이 한두 시간 후에 빛 속에 들어가자 제프가 다시 만지지 않아도 알아서 꼬였다. 어둠 속에서 만졌던 덩굴이 그 정보를 저장해 두었다가 빛 속에 들어왔을 때 그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이렇게 저장하고 나중에 다시 불러일으키는 정보를 두고 '기억'이라고 하지 않는가?

 

파리지옥

 

우리의 기억에는 뉴런 사이의 전기 신호가 꼭 있어야 한다. 식물에는 뉴런은 없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단기 기억이 있다. 파리지옥 풀을 예로 들어보자. 파리지옥의 덫에는 털이 나 있다. 이 털은 적절한 먹잇감이 덫을 지날 때 재빨리 닫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곤충이 털 한 가닥을 건드리면 덫은 닫히지 않는다. 충분히 큰 곤충이라면 20초 안에 털 두 가닥을 건드릴 것이다. 그때 파리지옥은 덫을 닫는다. 파리지옥은 두 번째 촉감에 반응하기 전까지 첫 번째 촉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파리지옥의 털 가닥을 건드리면 칼슘 채널이 열려서 덫 안의 칼슘 이온 농도가 급격히 상승한다. 하지만 파리지옥이 덫을 닫으려면 칼슘 농도가 한 번 더 높아져야 한다. 그런데 두 번째 접촉이 일어날 때까지 시간이 흐르면 첫 번째 높아진 농도가 다시 낮아져서 단기 기억이 사라져버려 두 번째 접촉이 일어난다고 해도 덫을 닫기에는 부족하다. 이 과정은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의 뉴런 속 전기신호와 유사하다. 인간 뉴런 속의 칼슘 채널을 억제하는 화학물질로 파리지옥을 처리하면 아무리 털을 건드려도 덫은 닫히지 않는다.

 

겨울밀과 진달래

 

전통적인 멘델주의 유전학을 거부하고 금지시켜서 결과적으로는 소비에트 유전학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리센코도 공로가 있으니 '춘화처리'가 바로 그것이다. 가을에 파종하는 겨울밀은 추위를 겪어야 봄이 되어서 싹이 튼다. 겨울이 따뜻하면 농사를 망친다. 리센코는 겨울밀 씨앗을 심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두면 긴 겨울을 겪지 않고도 씨앗이 발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식량 증산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밀 모종이 어떻게 추위를 기억하는지 밝혀진 것은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식물에 들어있는 FLC 유전자는 추위를 겪기 전까지는 꽃이 피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추운 겨울을 겪은 다음에는 FLC 유전자의 단백질이 형성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냉온 처리가 FLC 주변에 있는 히스톤 단백질의 구조를 변화시켜 FLC 유전자가 전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이런 연구를 후생유전학이라고 한다.)

 

매년 한 번씩 꽃이 피는 진달래의 경우, 한 번 개화한 후에는 FLC 유전자를 다시 활성화시켜서 다음 겨울이 지나기 전에 시도 때도 없이 꽃이 피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이런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오늘날 연구의 주안점이다.

 

식물도 행복과 고통을 느낄까?

 

대니얼 샤모비츠는 자신의 저서 <식물은 알고 있다>(이지윤 옮김, 다른 펴냄)에서 '식물은 인식하는가?'라는 질문에 '실제로 식물은 인식한다'라고 대답한다. 식물은 자기 주변의 빛을 적색광, 청색광, 초적광, 자외선으로 구분하고 그에 따라 반응한다. 식물은 자신을 둘러싼 냄새를 인식하고 거기에 반응한다. 식물은 누군가가 자신을 만지는 것을 알아채고, 중력을 인식하며, 무엇보다도 과거를 인식한다. 과거에 감염되었던 일이나 기후 상태를 기억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현재 자신의 생리를 조절한다. 샤모비츠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과학적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하지만 샤모비츠는 식물이 인식한다고 해서 식물이 만족하고 행복해 한다는 투로 식물을 의인화하지는 않는다. 그는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의 경우에도 통증과 고통은 뇌 속 서로 다른 부위에서 해석되는 별도의 현상이다. 식물이 행복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들에게는 뇌가 없으니까. 식물과 동물이 유전적 과거를 공유한다고 해서 수억 년에 걸쳐 분리된 진화가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

 

내 서가에 있는 세 권의 식물학 교양서

 

이제 내 서가에 꽂힌 식물에 관한 교양도서는 세 권으로 늘었다. <식물의 정신세계>(피터 톰킨스ㆍ크리스토퍼 버드 지음, 황금용ㆍ황정민 옮김, 정신세계사 펴냄, 1998)와 <욕망하는 식물>(마이클 폴란 지음, 이경식 옮김, 황소자리 펴냄, 2007) 그리고 <식물은 알고 있다>가 그것이다.

 

아직도 꽤 잘 팔리고 있는 <식물의 정신세계>를 읽었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생물학자로서는 아마추어에 가까운 저자 톰킨스와 버드는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식물 왕국의 놀라운 비밀을 밝혀냈다. 이런 식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정원에서 범의귀 잎사귀 두 장을 뜯어다 하나는 침대 옆의 탁자에다, 다른 하나는 거실에다 놓아두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저는 아침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옆의 잎사귀를 바라보겠어요. 계속 살아 있으라고 바라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그냥 내버려두도록 하지요. 그러고 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살펴보기로 해요."

 

(…) 그녀가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채 버려둔 잎사귀는 갈색으로 변한 채 썩어 가고 있었는데, 머리맡에 두고 매일같이 관심을 기울여 주던 잎사귀는 여전히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채 잎사귀를 건강하게 지켜 주는 그 어떤 힘의 실체를 본 듯했다."(<식물의 정신세계> 38쪽)

 

이 책은 1972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당시로서는 최신의 연구와 화려한 문체가 결합된 걸작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책은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모토 마사루 지음, 홍성민 옮김, 더난출판사 펴냄) 부류의 신비주의 책이지 과학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과학은 신비가 아니다.

 

이에 비해 미국에서 2001년 출간된 <욕망하는 식물>은 환경운동가 출신의 작가 마이클 폴란이 쓴 식물학 논픽션이다. 그는 사과(달콤함), 튤립(아름다움), 대마초(도취), 감자(지배)라는 네 가지 '길들여진' 식물의 본성을 인간과 식물 양쪽의 시각으로 탐구했다.

 

"식물들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생화학적인 기술을 학습하는 데 전력했다. (…) 인간과 같은 동물은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려고 애를 쓴다. 반면 식물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복잡한 물질을 합성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놀랍고도 섬뜩한 능력을 갖추었다. 이 식물들이 합성하는 것 가운데 가장 경이로운 물질은 동물의 뇌에 작용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욕망하는 식물> 195쪽)

 

폴란은 인간과 식물의 공진화 또는 서로에 대한 길들임을 전제로 한다. 그는 인간이 식물을 선택하기보다는 식물이 인간을 이용하고 있다는 새로운 관점을 전달한다. 이 책에 식물을 의인화하는 장면이 간혹 등장하기는 하지만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올바른 과학적 사실과 역사적 사실을 결합한 훌륭한 인문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식물은 알고 있다>의 원서는 2012년에 출간되었다. 독일의 막스플랑크화학생태학연구소의 최신 연구 결과 등을 과학적인 언어로 간결하게 소개한다.

 

"박테리아 공격을 받은 잎들은 살리실산메틸을 배출했지만 곤충에게 포식당한 잎들은 (…) 메틸재스모네이트라는 가스를 생성했다. (…) 왜 식물은 해열진통제를 생산할까? (…) 식물은 인간의 이익을 위해 살리실산을 만들지 않는다. 식물에게 있어 살리실산은 식물의 면역체계를 강력하게 만드는 '방어 호르몬'이다. (…) 살리실산은 식물 체내에서 녹아 세균에 감염된 부위에서 정확하게 퍼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잎맥을 통해 식물의 나머지 부위에 신호를 퍼뜨려 세균이 아직 공격하지 않은 부위에 위험을 알린다." (<식물은 알고 있다> 62~63쪽)

 

화학식을 사용한 논문의 형태를 띠지 않았을 뿐이지 완벽한 과학이다. 그리고 이 책은 두께가 얇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각 장의 제목도 명확하다.

 

1. 식물은 어떻게 보는가

2. 식물은 어떻게 냄새 맡는가

3. 식물은 어떻게 느끼는가

4. 식물은 어떻게 듣는가

5. 식물은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아는가

6. 식물은 어떻게 기억하는가

 

이 책에는 엄청난 양의 연구 성과가 실려 있지만 화학과 생물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질리지 않을 정도로 간략하면서도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다. 신비주의도 없고 의인화도 없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독자들을 끝까지 안내한다. 재밌다.

 

어떻게 된 게 춘추복 슈트를 단 일주일밖에 입지 않았는데 여름이 된 것 같다. 거기에 맞추어 나무도 울창하다. 식물을 만지고 냄새 맡으며 숲을 거닐어 보자. 특별한 나무가 있다면 기대어 이야기를 해 보자. 비록 나무 할머니는 자기 그늘에서 쉬었던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마음으로 우리 갈 길을 알려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 이정모 /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프레시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