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투표성향을 비교적 정확히 예측했다는, 선거 전 12.11일 동아일보 여론조사가 화제다.
소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어 원자료를 찾아보았다. 대선 직후 집중 보도된 세대별 지역별 쏠림현상에 가려져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직업별 소득계층별 투표성향 예측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새삼스럴 것도 없는) 내용이 자못 충격적이다.
줄곧 재벌개혁과 서민복지를 강조한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고학력 고소득 계층이 더 지지하고, 경제민주화가 줄푸세와 다르지 않다면서 MB정부와 큰 정책 차이를 두지 않을 듯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저학력 저소득층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걸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궁에 탱크 몰고 쳐들어가자던 극우 돌격대 조갑제가 이걸 보곤, (표현 그대로 옮기진 못하겠으나) 나라 꼴이 우째 될라꼬 배우고 잘사는 사람이 다 종북 좌빨이냐, 고 투털거렸단 얘기. 실감난다.
(아래는 동아일보와 리서치앤리서치가 12. 12.11. 행한 여론조사 15p 분량 중 일부)
학력별 지지율
*중졸 이하: 朴 63.9-文 23.5%
*고졸 이하: 朴 52.8-文 33.1%
*대재(大在) 이상: 朴 37.4-文 49.6%
직업별 지지율
*농림 임업 어민: 朴 55.2-文 37.1%
*자영업: 朴 50.2-文 37.1%
*화이트칼라: 朴 32.7-文 53.5%
*블루칼라: 朴 43.1-文 48.1%
*가정주부: 朴 55.6-文 32.3%
*학생: 朴 27.9%-文 57.7%
*무직: 朴 60.4-文 19.3%
월(月) 소득별 지지율
*200만 원 이하: 朴 56.1-文 27.6%
*201만~300만 원: 朴 40.1%-文 47.6%
*301만~400만 원: 朴 43.5-文 47.3%
*401~500만 원: 朴 39.4-文 50.6%
*501만 원 이상: 朴 40.8-文 46.4%
이미 충분히 알려진 터라 옮겨 적지 않은 지역별 연령별 항목도 있는데, 실제 결과가 여론조사보다 쏠림현상이 더 심했다. 위의 항목들 역시 실제론 여론조사보다 더 높은 격차를 보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어쨌건 위 조사결과와 함께 사후에 음미하는 이번 대선은 퍽 흥미롭다.
변화를 추구하는 민주당과 문재인은 세상이 별로 바뀌길 바라지 않는 계층, 즉 주머니와 머리에 든 게 좀 있는 계층(정확한 의미의 사회보수층)의 지지를 더 받았다. 반면,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새누리당과 박근혜는 팍팍한 세상이 좀 바뀌었으면~ 하고 바랄 성 싶은, 덜 배웠고 덜 가진 계층(잠재적 변화지향 계층)의 지지를 확고히 받았다.
소득별 지지율에서 안정적 중산층이라 할 400~500만원대에서 문재인 지지율이 가장 높고, 직업별 지지율에서 무직의 박근혜 지지율이 가장 높다는 건 시사하는 바 크다. 특히 후자는 200만원 이하 저소득층의 높은 박근혜 지지율과 더불어 박근혜 정부의 포퓰리즘화 경향 가능성마저 예감케 하는 대목이다.
한국사회 정치의식의 실상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이 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의식이 존재를 배반한다'는 진부한 상투어는 여전히 불변의 진실일까...?
대의제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합리적 이해 추구나 이성적 가치판단을 비켜난 지는 오래다. 아니, 애초 그랬던 적이 없었다.
현실의 선거는 주술이나 종교에 더 가깝다. 실현불가능한 소망을 투영하여 기구祈求하듯 투표한다. 위 여론조사가 입증하듯, 주관적 믿음과 객관적 현실은 대개 일치하지 않는다.
환상은 인간의 본능이다. 사는 게 힘들수록 그 힘은 더 강해진다. 고통과 절망에 삶이 꺽이지 않도록 하는 최면제 혹은 방어기제다.
특정 후보에게서 비운의 왕녀를 보며 부채의식에 젖는 할머니의 애틋한 심정에서, '대구경제가 디기 어렵데이~' 라는 말로 지지발언을 대신하는 친구의 초절논리 선문답에서, 떼로 몰려 출마한 '종북 빨갱이'들을 발견하고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열변 토하는 택시기사의 태도에서, 시청자를 아연실색 멘붕시켜버린 한 후보의 몰식견한 아동화법에서도 초지일관 '점잖음'을 읽어내는 놀라운 혜안에서, 속절없이 만개해버린 환상을 본다.
거기엔 어떤 합리도 논리도 없었다. 이성적으로 숙고하고 판단해야 할 정치는 없었다. 판단 아닌 직관이, 정보와 지식 아닌 체험적 감성과 믿음만이 지배한다.
환상은 그러나 환멸이다. 근거없는 희망은 대개 배신감으로 복수한다.
기대할 바 없으니 실망 또한 없을 테지만, 가차없는 역사의 간계 앞에서 또한번 무참해져야 할 이들의 고통과 마음이 안쓰럽다.
벌써부터 도처에 번뜩이는 칼날들 보인다. 저으기 소란스러운 세상 될 듯하다.
두고 볼 일이다.
신앙에 가까운 믿음과 소망들을 오만과 독선으로 짓뭉개는 일만은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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