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시장에서 감자를 사면서 냄새를 맡는 사진은 정치적, 미학적 충격이었다. 첫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김치 대신 양배추” 사건의 기시감 때문이다. 나는 대통령들의 야채류에 대한 무지와 무시에 분노한다. 먹을거리는 민생의 기본이다. 만일 그들이 2G와 3G의 차이를 모른다거나 순양함과 구축함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과학과 안보 위험 운운하며 자질을 의심하는 여론이 들끓었을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문제는 아는 사안과 모르는 사안에 대한 위계다. 국민이 매일 먹는 식자재는 사소하고 증권, 무기, 컴퓨터 지식은 중대한가.
둘째, 이 사진이 재현하고 있는 중산층 여성성과 대통령 이미지의 정치학. 여성은 여성다움을 ‘연기’하면서 남성 사회에 적응, 협상하며 이득을 취한다. 남들 앞에서 밥을 조금 먹고, 과일이나 꽃향기를 맡는 포즈를 취한다. 손을 가리고 웃고, 어린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 등이 그것이다.
냄새를 맡고 구입하는 식자재는 거의 없다. 생선조차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데 흙 묻은 감자를 코에 바짝 대고 과일 향기를 맡는 듯 포즈를 취한 여자 대통령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당황한 나머지 적당한 우리말을 찾을 수가 없다). 대통령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성스러운 포즈의 진부함과 오브제의 야릇한 부조화는 비/웃음을 생산했다.
화훼시장에서 꽃향기를 맡는 사진이라도 곤란하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이나 콘돌리자 라이스처럼 남성과 분리되어 독립적 성취를 이룬 여성 지도자가 아니다. ‘공주’ 출신 대통령의 지나친 여성성 재현은 주의를 요한다.
군주가 국민에게 “사랑받는 것과 외경(畏敬)받는 것 중 어느 것이 나은가”. 마키아벨리(1469~1527)는 둘 다 겸비하면 좋겠지만 이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므로, 택일한다면 외경의 대상이 되는 편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제17장, 78쪽). <군주론>의 요약이자 유명한 구절이다.
마르크스주의자나 프로이디언은 사상의 내용과 ‘~주의자’가 일치한다. 마키아벨리스트는 억울한 경우다. 권모술수에 능하고 독선과 전횡을 일삼는 정치가를 마키아벨리스트라고 하지만 실제 그는 조국의 미래에 걱정이 많은 유토피아를 꿈꾸던 청렴한 지식인이었다. <군주론>에 대한 주석은 사족이겠으나, 마키아벨리는 당시 외침과 내란에 시달리던 조국 이탈리아에 대한 구국의 사명감에서 강력한 국가를 열망했다. 그리고 그 실현은 일시적으로 폭군의 전제정치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정치에서 도덕과 종교적 측면을 배제하고 합리성과 힘의 절대적 중요성을 강조한 <군주론>은, 중세의 국가관에서 국가 지상주의라는 근대적 국가관으로 넘어가는 현대정치학의 초석이 되었다. 이 책은 강력한 국가를 위한 군주의 개념과 조건을 다루고 있지만 시대를 초월한 인간관계학이기도 하다. 인간이 찬양받거나 비난받는 이유, 관대함과 인색함, 명성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신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 시대를 초월한 인간의 고민과 이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겁에 질린 절박한 주장-흔히 성악설이라고 알려진-이 담겨 있다(물론 동의하지는 않는다).
‘감자의 향기’는 사랑도 두려움의 대상도 아닌 웃음거리, 트러블 메이커, 국민을 당황케 하는 지도자를 연상케 한다. 클린턴의 섹스 중독이나 부시 2세의 무식, “왜 나만 미워해!”라며 투정부리면서 갑자기 사임한 후쿠다 전 일본 총리… 이들은 바람직한 군주와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군주‘론’에서 논외인 경우다.
<군주론>이 탄생한 국가 형성 초기와 글로벌 시대(후기 국민 국가)의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 역학은 다르다. 지금은 지도자를 사랑하든 무서워하든, 그것도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시대다. 마키아벨리가 강조한 것은 마키아벨리즘이 아니다. 국가는 신의 섭리가 아니라 민중의 목소리에 근거해야 하며, 군주는 이러한 국가 실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폭군 정치는 당연히 저항을 불러온다. 그러니,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는 국민과 다른 세상에 사는, 현실에서 탈구(脫臼)된, 감자의 향기를 연출하는 여성 리더십이 더 두렵다.
- 정희진(여성학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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