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거창 휴게소(09:00) - 주능선(10:05) - 비계산(11:05) - 너덜에서 점심 - 산제치(14:05) - 두무산(15:30) - 두산지음재(16:25) - 양지마을(17:15) - 거창 휴게소(17:45)
이십 수년 전쯤 어느 여행길, 가조 지나며 주변 헌걸찬 산세에 이구동성 감탄하다가 그곳이 고향이라는 분 왈,
'거창은 예로부터 역향逆鄕으로 알려졌는데 산세 또한 그 기운 썩 강하게 드러내고 있지요...'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 만연하던 그 시절,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역향이란 단어가 지닌 이중의 뉘앙스가 퍽 절묘한 울림으로 와닿았던 기억이다. 완강한 반역의 땅이자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강렬한 부정과 저항의 터전...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 대간정맥의 관점에서 모든 산줄기는 지맥(기맥) 정맥을 거쳐 백두대간에 그 맥을 닿는다. 스스로의 기원을 거슬러 오르면 크나큰 근본에 닿는다는 정통론적이고 유교적인 세계관이 거기에 있다.
허나 반역은 자립의 기세다. 근본에의 종속을 뿌리치거나 극복하고 새로이 일가一家를 이루겠다는 독립과 창의의 정신이다.
언감생심 비상을 꿈꾸는 닭의 형세 비계산飛鷄山과 잘난 머리 떼버린 용이나 구렁이 몸통 닮은 두무산頭無山. 수도지맥에 속한다지만 지맥따라 순순히 제 줄기를 펼쳐놓지 않는다. 더 큰 줄기의 소속과 권위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듯, 지맥 뿌리치고 남북으로 동서로 저만의 고유한 기세 펼쳐나간다. 워낙 곧고 힘차 좌우 지능선들은 한동안 맥 이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니, 두 산 발치에서 명줄 겨우 부지하던 수도지맥은 7부 능선쯤 이르러 제 구실마저 놓치고 끝내 가파른 산비탈에 묻히고 만다. 이름만 헛되이 지맥일뿐 실상은 그와 직각 이루며 내달리는 거산릉의 거친 옆구리에 머문다.
과연 역향의 산릉들답다. 저것이 반역이라면 참으로 장쾌한 거사일 터이니, 군더더기 없이 펼쳐낸 종속없는 저마다의 일가가 곧고 아름답다.
거창 휴게소에서 올라 지맥따라 내리는 비계산, 흐린 줄기 기어이 놓치고 흩어지는 너덜따라 오르는 두무산이 실속없이 힘겹고 고단하다. 묻힌 맥 찾아 가파른 비탈이나 더듬을 게 아니라, 동서로 남북으로 뻗는 힘찬 줄기를 마냥 여유롭게 걸어보야야 비로소 비계와 두무, 기묘한 그 이름에 값하는 온전한 산행이 되지 않을려나 싶다. 그러므로 미답으로 남은 저 능선들 언젠가 다시 이어 걸어야 마땅한 노릇.
당초엔 오도산까지 이으려 했으나 짧은 해에 비해 걸음 넘 여유로웠다. 오도는 미녀와 다시 묶어 기회 보면 될 일.
두 산 모두 곳곳 이정표 아주 좋다. 이정표만 보고 가면 되는데 괜히 지도 들여다보다 비계산 내림길에선 잠시 알바.
덕분에 예정에 없던 검붉은 바위 너덜 따뜻한 햇살 아래 한동안 좋은 시간이었으니...
휴게소 뒷편 절집 너머로 산릉 함 올려다보고
비계와 두무, 두 산 모두 아랫자락은 이처럼 좁고 날선 능선이다
첫 조망대에서 올려다보다
건너보는 두무와 오도산
가파른 솔숲길, 코박고 오른다.
능선에서 보는 서쪽. 돌탑봉인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저긴 못 가보겠다. 나중에 상수월에서 올라볼 기회 있을 터.
가조분지를 둘러싼 산릉들, 의상봉 장군봉 능선, 보해 금귀...
어저께 눈 조금 온 후 아무도 가지 않은 듯
정상부
또 돌아보고
별유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다 기웃거릴려니 진도 느리다.
매화산 뒤로 가야 상봉은 구름 속
돌아보다
정상부
예전에 왔을 땐 저 다리가 없어 곱은 손 비비며 밧줄 잡고 올랐다
정상
가조분지 굽어보며
정상부 두 봉우리 모두 정상석. 정상석 서로 놓으려 다투는 게 무슨 애들 장난만 같다.
가파른 북사면
동으로 뻗는 주능선.
동서로 이어진 능선을 다 걸어야 비계산 제대로 산행했다 하겠지만, 우린 산제치 건너 두무산으로 가야 한다.
두무산. 골프장이 상처처럼 흉하다.
저 아래 뾰족봉에서 두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다시 나뉘는 셈이지만 주등로는 그리 이어지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산천1교쪽으로 향하는 저 왼쪽 능선따라 한참 가다가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산제치 방향 능선에 붙는다.
궁금하던 암봉
뒤돌아내려온 바위
건너 또 암봉. 밧줄도 보인다.
암봉에서 뒤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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