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동창들과 거제도로 소풍 다녀오다.
워낙 모임 꺼리는 성격 탓에 몇 년 걸러 한 번쯤 참석케 되니 삼십 수 년만에 만나는 친구들도 있다. 서로 누구냐 묻는데... 이름 듣고는 정말 네가 걔냐고, 그 귀엽던 애 맞냐고, 그 잘나가던 여자애 맞냐고... 추궁하듯 다그치고는 마주보며 실소한다.
산방산 잠시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에 통영 횟집에서 거하게 일배一盃.
오랜만에 나타난 내 쪽이 특히 그러했을까? 푸진 횟감 앞에 놓고 술잔 너머 옛 얘기들 돌고 돈다. 짐짓 성장통 감추며 조숙과 위악 가장하던 시절의 세밀한 풍경들.
허나 풍경이 현실을 먹여살리진 못했으니, 궁극 기억의 간계가 편드는 쪽은 망각과 환멸로 다스려진 조신한 성장 서사들. 멀고 힘든 기억일수록 오가는 말들 자꾸만 서로 엇갈리며 일그러진다. 수십년 묵은 말들 천천히 흩어지며 한 시절 풍경 문득 빛바래간다. 느린 화면 멈추고 나면 끝내 침묵으로 빠져드는 저마다의 화양연화花樣年華들...
가는 길은 고성방가 달리는 노래방이더니, 거나하게 취해 돌아오는 길엔 고막 아프도록 빵빵 터지는 무도의 질주. 흔들리듯 흔들며 허공 중에 떠서 흐르는 풍경.
나날이 무거워지는 몸, 절규하듯 뿌리치듯 흔들어대는 현란한 몸놀림들 보고 있노라니 터질 듯 경쾌하던 그 시절 그 모습 떠올라 오히려 가슴 먹먹해진다. 막걸리 들이키며 개다리춤 추고 여린 손으로 매운 담배 꼬나물던 치기어린 그림...
고향 마을조차 신도시개발로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다함께 만날 기회 몇 번이나 있겠냐고, 저건 어쩌면 쏜살같은 세월 어쩔 줄 모르는 고된 몸들이 말을 넘어 다다른 간절한 위로 같은 게 아니겠냐던 옆자리 친구의 얘기... 오래 귓전을 맴돈다.
가는 길, 가거대교 휴게소에서.
해무에 아랫도리 잠긴 산줄기, 불모산 웅산 능선같다.
첨부터 제법 가파른 길
조망바위에서 굽어보다
흐린 날씨임에도 원경 보기 좋다. 슬쩍 당겨본다.
여기까지 오르고 일부는 되돌아 하산. 산 오르는 놀이가 모두에게 즐거운 노릇은 아니니...
빤히 올려다보이는 정상부.
예전엔 능선따라 곧장 올랐으나 이번엔 우회로 이용한다. 암릉 오르내림 없으니 거저먹기다.
건너보이는 폐왕성. 고려 때 정중부의 무신난으로 쫒겨난 의종이 도망쳐와 지냈다는 곳.
저번 산방산 다녀온 이래 진작 함 가봐야지~ 하면서 아직 미답이다.
부처굴
정상에서 건너보는 계룡산
거제시쪽과 남으로 구름 잠긴 노자 가라산릉
우회해 온 암릉
북쪽. 높이 보이는 게 통영 미륵산일 듯
통영시
벽방 거류산
햇살 없는 정상에서 점심.
다들 오랫만에 초등 친구랑 소풍이라 그런가, 사흘드리 산 댕기는 버릇으로 빵쪼가리 몇 챙겨온 내 도시락이 민망하게 먹을거리 푸짐하다. 까마득한 옛날 얘기 나누며 갖은 주안으로 빵빵하게 배불리고...
먼 산 함 더 돌아보고...
수월한 임도따라 총총 하산
'산과 여행 > 경상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황 재약산 억새산행 2 (0) | 2011.09.28 |
---|---|
천황 재약산 억새산행 110927 (0) | 2011.09.28 |
십이령 보부상길 2 (0) | 2011.06.10 |
울진 십이령 보부상길 110609 (0) | 2011.06.10 |
거제섬 봄놀이 110410 (0) | 2011.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