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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전라 충청권

남덕유산 101227

by 숲길로 2010. 12. 29.

코스 : 영각사 입구(11:15) - 영각사(왕복) - 영각재(12:50) - 남덕유산(13:50) - 월성치(15:10) - 황점(16:30)

 

 

눈 많은 겨울이 될 성 싶다. 중서부 지방 연일 눈소식인데 더불어 오는 추위도 만만치 않다. 

남덕유 설경 본 지 까마득하여 밤 사이 눈 다녀간 아침 산악회 따라 나선다. 평소 눈 거의 내리지 않는 대구 분지의 도로는 적설 2.5cm에 벌벌 기는 거북이들로 넘쳐난다. 나름 별나고 재밌는 풍경이다.

 

차차 개리라던 예보는 맞지 않았다. 도중에 들린 거창 휴게소는 여태도 눈발 날린다. 눈길 탓에 들머리 도착이 예정보다 늦을 터이니 오히려 잘 되었다 싶다.

영각사 입구에 다다르니 여전히 하늘 흐리다. 오르는 동안 혹시 갤려나...? 그간 지나치기만 했던 영각사 기웃거리며 시간 죽인다.

 

간밤 눈 다녀가신 후 아직 아무도 드나든 이 없다. 발 내딛기 망설여진다. 

 내 거친 발길은 필시 저 무시간의 적막을 깨고 말 것이니....

 

 

 

 

 

 

예전에 이 코스, 늘 가파르게 치올리기 바빴던 걸까?

초소 지나 한동안, 저리 소복한 조릿대 숲길 이어진다는 사실을 오늘 첨 알았다. 

산은 늘 거기 있지만 산은 늘 새롭다. 영원의 시간, 어느 한 조각도 똑같을 수 없는 찰나의 풍경들...  

흰 눈 안고 있는 늘푸른 잎들.

 

계곡. 아주 잠깐 햇살마저 났었다. 

 

이 즈음 지나고 나면 길은 가팔라진다. 숨 고르며 돌아본다.

 

영각재 치올리는 마지막 구간, 계단 생기고선 좀 덜하지만 늘 힘들었던 기억인데 오늘도 예외 아니다. 바람은 찬데 땀은 팥죽처럼 쏟아진다.

 

구름 속 눈바람 사나운 능선에 선다. 혹시나 하던 햇살의 기대는 사라진다. 

바람이 읊조리는 수묵경이나 들으며 갈 수밖에...

 

원경 전혀 없으니 애꿎은 나무 붙들고 씨름질이다. 

 

바람이 장난 아니라서 다들 바삐 간다. 금새 발길 지워진다.

 

어느 순간 남덕유는 낯선 세계다. 또다른 의미의 외계다. 몸 닿아 비로소 우리 세상이다.

시간은 공간을 바꾼다. 공간은 시간의 꿈이다. 찬란 혹은 참혹으로 피어나는.     

 

 날려버릴 듯한 바람에 맞서 네 발로 엉비티며 한참동안 계단 굽어본다.

인공물이라 더 현실적이어야 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몽롱한 저것, 더 비현실인 양 여겨진다.

왜 그럴까...?    

 

 

 

 

변화무쌍한 사물의 질감. '덧없는 것'들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의 모습에 얽매이지 않음'이다.

오래 전 첨 저런 것들을 보았을 땐 충격과 함께 완전히 매혹되었었다. 그래서 산에 대해 줄곧 자유를 생각했다. 내게 자유란 '다른 곳'이며, 갓 태어난 또다른 세상이었다.

저건 환각이 아니고 실제다. 산이란 시공간은 남루의 현실 너머 매순간 끝없이 솟아난다.

 

산에 대한 생각과 태도는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산을 끊임없이 사회의 연장공간으로 만든다. 사교와 친화 또는 운동 공간으로 활용하며 인간세상의 틀에 담으려 한다. 그런가 하면 산을 세상 밖으로 밀쳐내는 이들도 있다. 사회가 결핍된 곳이므로 비현실 내지는 무책임한 도피처 쯤으로 치부한다. 젊었을 때 나도 이 비슷한 생각을 잠시 했었다.

또 집요한 성취동기를 발휘하는 관점도 있다. 산 숫자를 세거나 산줄기를 끝없이 이어가며 산행경력을 실적화한다. 경쟁과 성취욕이 체화된 한국인에게 썩 어울리는 산행문화인데, 점차 대세가 되어가는 듯하다.

 

 

어쨌건 여기는 다른 세상이다.

아무리 사교하고 친애하며 발버둥쳐봤자 인간관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다. 그러나 꿈이나 비현실도 아니다. 온전한 경험세계다. 몽롱한 비주얼과 시려오는 손끝은 여기가 그저 또다른 세계임을 입증할 따름이다.

 

오래 뭉기적거린다. 혹시  하늘 개일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 버리지 못하고서...

 

 

 

 

 

평소 사진에 잘 담지 않는 정상석도...

 

지나온 방향 굽어본다.

사진 찍으려 잠시 굽어보는 동안 몸이 날려갈 듯 휘청인다. 순간 풍속이지만 얼마 전 소백산 못지 않다.

 

새로운 모습도 아닌 이런 걸 똑딱거리는 이유는 정상 조망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게다.

 

곧장 내려서려다 끝내 미련 버리지 못하고 정상 아래 바람 피하여 점심상 편다. 오늘은 혼자라 불 피우지 않고 빵쪼가리 몇 개 커피에 적셔 우적인다. 식후에 다시 함 정상 기웃거리지만 여전히 바람만 사납다. 포기...! 

 

월성치 쪽 내려서며 보는 나무들 

 

식후에 정상에서 만났던 젊은 친구들, 미끄럼 탄다.

아직 12월, 눈이 썩 두텁지 않아 조금은 조심스러워 보인다.

 

남은 시간이 넉넉하니 어영부영 똑딱이며 간다.

 

잠깐 사면 쪽이 트이기도 한다.

 

 

 

누군가 보면 얼굴 들이밀고 싶어질...

 

월성치 직전

 

월성치에서 내려서며

 

 

 

넓은 길 만나 돌아보니... 헐!

주릉이 구름 아래 드러난다.

 

개울에서

 

영각재에서 이어지는 남덕유 암봉들도 드러난다.

 

 

주차장 옆 계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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