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가천리(10:30) - 아리랑 들머리(11:25) - 암릉 기웃거리며 - 주능선(13:10) - 신불산(14:15) - 북릉 - 와폭 - 홍류폭 - 간월신장(16:40)
간담을 헌신하는 애증으로 목숨줄 매단 채 수많은 이들 엉기며 오르내렸고 때로 꽃처럼 투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위벽은 끝내 세상 바깥만 바라보고 있었다. SF 영화에 나오는, 내부를 알 수 없는 다양한 크기의 모듈화된 부속들로 이루어진 외계와의 교신기계를 연상시키는 잿빛 벽 혹은 탑. 가없는 현기증이 가 닿는 고도에 걸린 하늘빛... 두 빛은 서로를 밀어내는 듯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바위 꼭지로부터 퍼져나간 은밀한 파장이 세상 바깥 먼 우주에서 저 푸른 하늘빛 다시 불러 기꺼이 내통한다 한들...
그러나 어쩌면 가장 헛것이었을까?
굳은 기원인 양 솟아 있지만 오랜 비바람을 기이한 형상으로 새기며 풍화해가는 돌탑 봉우리들...
먼 미래의 낯선 풍경을 가리키는 저 침묵의 면벽, 바람과 시간의 오벨리스크 같다. 완고한 무표정에 그려진 해독 불가능한 기억과 기억의 균열들.
이제야 알겠다. 이국땅 사막 위에 세워진 돌벽의 첨탑, 풍화조차 거부하는 불멸의 가장 단단한 욕망이라 여겼던 오벨리스크가 어쩌면 무너져가는 시간의 잔해였음을... 완고한 아름다움으로 아로새겨진 상형문자, 영생의 신앙 표현으로 알려졌지만 기실 그것은 사막의 푸른 노을빛 속으로 속절없이 흩어져가던 그들 자신의 덧없는 삶에 대한 내밀한 고백이었음을...
탑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생명을 거절하는 광물질만이 누리는 가장 느린 속도로.
저 돌탑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자신의 기원이자 오랜 미래, 먼 바람이 데려올 궁극의 표정. 바람 부는 사막에서 여태도 꿋꿋할 젊은 오벨리스크의 머나먼 후세.
예전에 하산길 삼아 성급히 내려선 적 있던 아리랑 우회로, 한두 군데 기웃거렸지만 별 강한 인상 아니었다.
이번엔 에베로 오르는 산악회 팀 건너보며 천천히 오른다. 우회로 따르며 길게 이어진 바위 지느러미 층층 다 기웃거려 본다. 다행 별 위험 없이 대충 접근할 만하다.
첨 올라선 지점 추모 동판 하나가 눈길 끈다(이후에도 하나 더). 우리 지닌 덧없이 부드러운 몸, 가장 단단한 바위에 부대끼다 훌쩍 져 버린 꽃 소식. 몸 사라진 아쉬운 그 이름, 망각에 맞서는 의연한 기억의 글씨로 굳은 바위벽에 묻었다. 그러나 몸의 기억만큼이나 바위의 기억, 언젠가는 저 바람 속에 허물어지려니, 그것은 다만 신불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또 하나의 상형문자.
들머리 땡볕길 가며
슬쩍 당겨본다. 에베로는 가파르고 아리랑은 이빨마냥 위태로와 보인다.
첨 올라선 곳에서
초원 능선은 제법 희끗하고...
아래 굽어보니 누군가...
머리 위, 균열이 위태롭다.
끝내 둥글어지지 못한 채 머잖아 비명 지르며 떨어져내릴 바윗조각은 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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