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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전라 충청권

문덕봉과 고리봉 - 과유불급(080301)

by 숲길로 2008. 3. 2.

코스 : 비홍재 - 문덕봉 - 고정봉 - 그럭재 - 삿갓봉 - 고리봉 - 약수정사 - 석촌마을(전반은 바쁘게 후반은 여유롭게 7시간)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던가, 바윗길 능선의 솔숲이 아무리 좋다지만 저토록 우거지면 좀 천해진다. 산자락 좌우로는 흥건하게 암릉이 흘러내리는데, 굽이치고 오르내리며 가는 산마루는 빈틈없이 솔숲으로 빼곡하다. 산의 생태를 떠나 이건 어쩌면 풍경의 품격에 관한 문제인데, 마치 털많은 짐승의 모습에서 근거없는 야만스러움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어떤 풍수가가 그랬다던가, 요즘 울나라 산들은 너무 기름지다고, 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남원 소용아릉으로 워낙 이름난 데다 오래 벼르던 곳이었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물론 그리 만만한 곳도 아니었으니, 멋스런 암릉 조망대에서 찬탄하며 바라보는 듬성한 솔숲 날망의 수려한 하늘금이 내내 아쉬웠을 따름이었다.

한편으로는 지금 계절이 이 코스 산행에 가장 낫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산만댕이부터 산자락까지 죄 솔숲이라 봄이나 가을 산빛은 크게 기대할만하지 않고, 그나마 눈발친 고리봉 겨울 혈색이 별스러웠던 것. 그도 아니면, 짙은 솔그늘 오르내리며 숨차게 걷다가 계곡물에 몸 담그는 여름이거나... 

 

비홍재 초입 잘 정비된 솔숲으로 들 때만 해도 참 멋스런 산책로구나... 싶었는데, 가도 가도 조망이 없다. 지루해진다. 높은 곳에서만 굽어보면 산릉의 높낮이와 굴곡이 제대로 살지 않을 때가 많으므로, 높지 않아도 제법 날이 살이 있고 기복도 있는 이런 길을 가며 전후 산릉을 틈틈이 조망할 수만 있다면 높은 봉우리 오르지 않고도 맛깔나는 능선산행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곳은 주변 나무들을 톱질이라도 좀 했으면 싶을 정도다. 무턱댄 보호나 난개발이 아닌 안목있게 가꾸는 게 중요한 것. 개발이냐 보호냐의 근본주의적 이분법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있을 칼끝같은 중용의 미학을 찾아내는 게 문명, 더 나아가 문화의 묘미 아닐까.  

 

문덕봉 다 가서야 첨 조망이 트인다. 가야할 고리봉 쪽과 그 너머 동악산의 검푸른 윤곽까지 시야에 든다.

돌아보는 문덕봉은 시원스레 치솟는 품새가 일품이고, 이어지는 고정봉 전후 암릉길도 짧지만 아기자기 예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안목의 얕음 탓이기도 하겠지만) 솔과 바위의 멋들어진 조화가 빚는 빼어난 그림 한 폭이 못내 아쉽다는 느낌. 이리저리 시선을 옮겨 다니면 또 다른 것이 보일지 모르나 제한된 산행 시간에 그럴 여유까지는 없다.


다가가며 보는 삿갓봉의 동북 지능선이 매우 인상적이다. 지도에는 길표시가 없으나 썩 구미를 당기는 곳인데, 조망 트임도 지릉들 중 가장 나을 듯하다.

고리봉 오르며 숨 가누고 돌아보는 삿갓봉. 고도 높여 갈수록 암릉미가 좋다. 푸른 솔과 어우러지며 너르게 펼쳐지는 누른 빛깔의 바위 군락은 자못 현란하다.   

로프잡고 당기는 가파른 오름길, 고리봉 북사면은 잔설이 조금 조심스럽다. 너무도 요란하게 자리잡은 무덤은 어이없지만 고리봉 정상은 오늘의 최고봉답게 조망이 대단하다. 봄기운 탓에 가물가물 흐린 시야... 지리 서부릉이 긴가민가 싶다.


하산길은 기대 이상이었다. 돌아보니 삿갓봉과 고리봉 능선 서쪽 자락의 암릉들이 늦은 오후햇살 아래 금빛으로 흘러내린다. 오늘 본 중 가장 시원스런 암릉미다. 굽어보는 섬진강, 시시각각 물빛 바꾸며 곡성땅 가로질러 구비구비 남으로 흐른다. 멀리 하늘빛의 동악산릉은 깊은 부름으로 묵묵한데 검푸른 속살은 역광 햇살 속에서 신비롭기만 하다.  

운치 넘치는 하산길, 기대보다 2% 부족한 듯하던 산행의 아쉬움을 달래준다.

 

되돌아보면, 

멀리서 달려와 두 산을 해치우고 가는 산행의 경제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푹 꺼지는 그럭재를 가운데 두고 문덕 고리를 이어야 할 이유는 없겠다. 앞서 말했듯, 이 구간은 전반적으로 주봉과 몇몇 군데를 제외하곤 능선을 빈틈없이 채우는 솔숲 때문에 조망 갈증이 상당한 편이다. 속도감 즐기는 종주 산행 취향이라면 모르되 풍경산행의 내실을 찾는 이라면, 솔향 그윽한 솔숲 산책과 문덕 고정 암릉의 아기자기한 조망 산행의 여유를 누리거나, 고리봉을 중심으로 여러 지능선들과 계곡을 이어가며 다각도의 조망과 탐승을 노리는 게 더 알찬 산행이 될 거 같다.

 

이름과 관련, 임란시절의 일화가 얽힌 삼국시대 기원의 비홍산성(원래는 할미산성)

 

문덕봉까지, 그리고 그 너머도 자주 이런 솔숲길이다.

솔그늘 속을 느리게 걸으면 참 운치있는 산책로겠으나, ( 나 자신을 포함) 고리봉까지 가려는 이들은 대부분 미친듯이 간다. 등산이 뭔지 부끄러워지고 울창숲에 민망할 지경...   

 

문덕 직전 조망바위에서 온 길 돌아보다. 솔숲은 징그럽도록 울창빽빽하다.

  

문덕봉 서북향의 책여산. 저 역시 한마리 웅크린 털짐승같다.

 

문덕봉에서 보는 삿갓, 고리봉과 그 너머 동악산

 

문덕 아래 살짝 암릉 - 우회와 직진이 모두 가능하다

 

고정봉(위)과 당겨본 고정 암릉(아래)

 

돌아본 문덕봉(위, 아래) 

 

고정 암릉 - 솔이 너무 빽빽해서인가, 뭔가 2% 부족한 풍치... 

암릉에서 돌아본 모습 - 맨 왼쪽이 문덕이다

  

그럭재 내려서며 길 벗어나 돌아본 고정 암릉.

문덕-고리봉 구간은 조망 갈증 때문에 자주 길을 벗어나게 되지만, 빽빽히 우거져 옷을 당기는 솔가지들과 발목까지 적시는 깔비들 때문에 그 역시 수월한 일은 아니다. 애써 조망될 만한 곳을 찾아가면 예상치 못한 장애물(역시 솔!)이 시야를 가리기도 일쑤고...

 

그럭재 지나 돌아본 문덕 고정 능선

 

다가가며 보는 삿갓봉과 고리봉. 멀리 동악산도...

 

삿갓봉 동북릉 - 길이 있을 법 한데 지도에는 표기가 없다. 기회되면 꼭 답사하고 싶은 능선.

 

고리봉 - 북사면은 제법 설경이다.

 

고리봉 가기전 휘어지며 가는 저 말등같은 암릉 역시 보기는 좋으나 전혀 조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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