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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경상권

비슬산, 아! 1034봉(080124)

by 숲길로 2008. 1. 26.

코스 : 소재사 - 휴양림 우회등산로 - 염불암 터 - 1034봉 - 대견사지 - 임도따라 - 휴양림 - 소재사(5시간 반)

 

눈! 정말 덧없는 물질이다. 어제는 빈틈없이 뒤덮여 있더니 오늘은 오전 햇살만으로 드넓은 진달래숲과 나무들이 제 빛깔을 드러낸다.


당초 계획은 소재사 뒤쪽 능선으로 1034봉을 오르고 조화봉과 990봉을 거쳐 관기봉에서 능선따라 휴양림으로 내려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염불암지를 거쳐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뜻밖에(사실은 내 무지와 관찰 소홀 탓) 암릉 코스라 1034봉까지 가는 데만 2시간 반 이상 걸렸으니, 정오에 산행을 시작한 터에 관기봉까지는 도저히 무리였다. 결국, 너무 반듯하기만 한 비슬산 일반 등로 대신 발자국 하나 없는 눈덮인 암릉길, 다른 계절에도 꼭 다시 올라보고 싶은 조망 능선길 하나 얻었음을 위안 삼는다.  


두 번의 오후나절, 짧은 만남만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비슬산은 설경이 그리 뛰어난 산은 아닌 듯하다.

특히 분지형의 정상부 참꽃 군락지는 수려한 설경을 보여주기엔 지형이 단조롭고 수종 또한 다양하지 못하다. 능선의 솔숲 설경은 꽤 그윽하고 신비로운 데가 있었으나 상대적으로 참나무 등의 활엽교목이 부족하여 눈꽃의 화려한 맛은 좀 모자라는 편이다.

구비치며 흐르는 겹겹 지능선들의 설경 또한 아쉬웠다. 그러나 참꽃 조망대로 유명한 1034봉을 제외하면, (어제는 구름 때문에 오늘은 시간 지체 때문에) 주능선이나 높은 봉우리에서 눈덮인 지능선들의 모습을 감상하질 못했으니 이 점에 관해선 훗날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악전고투하며 오른 1034봉은 인상적이었다. 온 산이 붉게 물드는 참꽃철이나, 낙조에 물드는 낙동강 물빛이 고울 쾌청 가을날을 골라 오늘 계획했던 코스를 다시 한 번 걸어야겠다.  

 

들어가는 길에서 본 비슬산. 왼쪽이 정상인 대견봉, 오른쪽 뾰족봉이 1034봉인데 정면으로 뻗은 능선이 오늘 오를 길이다 . 조화봉은 그 오른쪽 뒤로 빠져 펑퍼짐하게 보인다.

 

비슬산 자연 휴양림의 우회등산로에서 만나는 너덜. 비슬산에는 규모 큰 너덜이 많다.

팔공산과 달리 비슬산은 눈산행지로 큰 인기가 없는 듯하다. 오늘도 들머리부터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나 홀로 발자국 찍으며 간다. 

     

염불암지 석탑. 소박한고 아담한 신라풍 삼층탑이다.

흔적만 있는 집터로 추측컨데,  

관기봉을 푸근한 눈높이로 바라보았을 암자 역시 저 탑처럼 아담했으리라...

 

호젓하고 여유로운 산행은 여기서 끝났다. 

염불암지 바로 뒤 고개에 올라서니 바위가 앞을 막으며 기를 죽인다. 암릉코스인줄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텐데...

까이꺼, 이왕 내친 걸음인데 갈데까지 가 보자고...

(2시간에 걸친 악전고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부들거리며 기어오른 눈덮인 조망바위에서 1034봉을 올려다보다.

꼭대기도 바위고 가는 길도 바위다. 다른 계절이라면, 비슬산에도 이런 멋진 능선이 있었나 하며 룰루랄라 조망 즐기며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않는 눈 덮인 겨울 암릉길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암릉을 우회한다. 바위에 붙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린 눈까지 합쳐져 어떤 곳은 장딴지까지 빠진다. 

눈에 빠지고 네 발로 기어오르고... 그렇게 나아간다.  

 

힘들게 나아가지만, 고개 들면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신 눈꽃숲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여기가 1034봉 정상인줄 알았다. 그러나 한 봉우리 더 남아있다.

눈 뒤집어쓴 소나무 아래 멀리 조화봉과 대견사지가 보인다(사진에는 나타나지 않으나 소나무 오른쪽은 벼랑).

정상 직전의 이 봉우리는 바위를 타고 올라 오른쪽으로 살짝 우회하게 되어 있는데 누가 리본 하나를 왼쪽 으로 달아 놓았다. 덕분에 십여분 알바... 

그리 갔다가 길이 아니라 판단했지만 되돌아오기 싫어서 가파른 사면을 잠시 기어올랐다. 그러나 도저히 불가능해 돌아와서 다시 보니 바위 사이로 길이 보인다. 결국 눈 속에서 엄청 헤엄만 치고 온 꼴...

 

바로 저게 정상이다. 여태까지도 힘들어 죽겠는데 저기까지는 또 어떻게 간다냐...

 

조망이 워낙 좋아 소나무 아래서 한참 뭉기적댄다.

관기봉 능선 너머 창녕 화왕산이 보인다.

 

조화봉과 대견사지

 솔숲과 너덜을 당겨보다.

 

올라온 능선을 돌아보니...

머,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는구만...

 

정상부를 당겨보다. 바윗뎅이인데 바로 오를까 우회하게 되어 있을까?

만약 바로 올라야 한다면...?   

 

 개구녕도 지나고...

 

드디어 정상!

 

조화봉과 대견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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