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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폭력의 역사 - 기억의 복수 혹은 역사의 간계

by 숲길로 2007. 9. 16.

영화명 : 폭력의 역사 (2005) 
감독 : 데이빗 크로넨버그

출연 :

 

 

 

제목에서 느껴지듯, 참 스산하고 건조한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간헐적으로 총성이 울리고 피가 흐르지만 폭력의 탐미는 없다. 격렬한 정사와 어린아이의 천사같은 웃음조차 영화를 기름지게 하기보다 폭력의 섬뜩함만 고조시킬 뿐이다.

그간 크로넨버그 감독은 인간의 은폐되고 뒤틀린 욕망과 한계를 넘어가는 극단의 심리가 뿜어내는 기이한 광채들을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려내는데 뛰어난 재능을 보여 왔다. 그의 작품들은 늘 궁금한 만큼 놀라웠다.

여태 본 그의 영화의 미덕은 결코 안이한 상상의 틈을 허락치 않는다는 것. 시간이 흐를수록 긴장은 고조되고 끝나는 순간까지 충격과 반전의 기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야기는 때로 기괴하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탄탄하다.

그 미덕은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다만 충격과 긴장을 지탱하는 이야기 선이 조금 더 단순하고 뚜렷해진 대신 현란함이 절제되어 한결 담백함이 느껴진다. 그의 골수마니아라면 예전보다 싱거운 정공법이라 투덜거릴 만하지만, 나이가 느껴지는 새로운 면모라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소재와 관련해 두가지 인상이 겹친다.

하나는 <셰인>류의 옛 서부영화 이야기. 왕년의 일류 총잡이가 평화로운 마을로 흘러들어와 조용히 살고 있다. 어느 날 악당들이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위협한다. 그는 다시 총을 잡고 악당들을 물리치고 마을을 구하지만, 총잡이의 이력이 드러난 그도 마을을 떠나야 한다.

또 하나는 아벨과 카인의 성서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동생을 죽인 카인의 후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절묘하게 뒤틀리며 엉켜 있어 현대적이면서 전혀 감상을 허락치 않는다.   

 

 

 

<폭력의 역사>라...

역사란 단어는 늘 무겁다. 개인이나 가족(또는 소집단)사에 거대 역사를 투영한 영화는 흔하지만 이 영화는 그와는 조금 다르다. 크로넨버그 감독은 한 개인의 역사도 국가의 역사 못지않게 무거울 수 있음을 개성 넘치는 솜씨로 섬뜩하고 날카롭게 보여준다. 냉정한 해부학적 시선으로 통찰한다.

몸에 새긴 폭력의 기억은 되돌아오고 그간의 망각에 대해 잔인하게 복수한다.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더 깊은 폭력을 부른다. 그가 목숨을 건지는 순간 피 묻은 손은 대물림한다. 생과 사를 주고받는다. 역사의 간계이며 폭력의 운명이다.

오래 감추어져 있다가 다시 치켜든 그의 피 묻은 손에서는 유혈의 기억을 숨긴 채 나아가고 싶은 역사 일반에 대한 통렬한 냉소가 겹쳐진다. 영화의 말미, 머뭇거리는 들어서는 그는 온 몸으로 묻는다.

‘내가 누구인가...?

대답은 함께 앉은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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