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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경상권

청도 육화산 장수골에서 구만 - 억산릉으로(071122)

by 숲길로 2007. 11. 23.

코스 : 청도 매전 장연리 장수골 마을 - 장수골 계곡길 따라 - 주릉에서 서쪽으로 뻗은 지능선을 올라서 - 주릉 - 흰덤봉 갈림길 - 구만산향 - 구만산은 가지 않고 - 능선따라 - 봉의 저수지 갈림길 - 672봉 - 인재(가인계곡 갈림길) - 귀천봉 능선 갈림길 조금 못 미처 오봉리 계곡 하산로 - 오봉리(걸을 때는 부지런히, 살필 때는 게으르게 7시간)

 

출처:산모듬 


단풍이 사라진 세상, 눈은 아직 오지 않았다. 흰 빛의 지평을 응시하는 매섭도록 검푸른 능선 산길. 계절은 가장 드넓은 세상을 열지만 또한 순식간에 지나간다... 11월이다.


인연이란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통일신라시대의 장연리 삼층쌍탑이 아름다운 장연리 장수골과 우연히 모종의 연을 맺고 나서 육화산을 찾은 게 벌써 두 번째다. 보면 볼수록 골골이 궁금해지는 아름다운 산이라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찾게 될는지...

당초 계획은, 장수골 계곡을 따라 주릉에 올라 흰덤봉을 거쳐 516.8봉까지 갔다가 되돌아오지 않고 곧장 가파른 서북쪽 암릉을 더듬어 내려오거나 남양리쪽 능선길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즉 516.8봉 등산로 찾기가 목적이었다.

그런데 길지 않은 그 코스에서 하루해를 보내기엔 날씨가 너무 좋았다. 최고의 조망과 바람조차 거의 없는 서늘한 날씨, 능선산행 하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장연리 장수골. 수확 끝난 너른 감밭들을 지나 계곡 따라 이어지는 오솔길을 걷는다. 한참 편하게 이어지는 계곡길이 끝나면 지능선 하나를 감돌아 오른다. 좌우로는 수직에 가까운  첩첩 암벽이 둘러쳐진 곳이다. 조망이 몹시 궁금해진다. 이방향 저 방향 숲 사이로 감질나는 조망이 트이다가 마침내 정상부와 직벽 암릉이 시야 가득 펼쳐지는 지점이 나타난다. 

육화산(六花山). 늘 이름의 유래가 궁금했지만 장연리 살던 이도 잘 모른다 했다. 국제신문에서는 ‘청도문화원이 발간한 <마을지명 유래지>를 인용하여 큰 산, 작은 산, 청계수, 폭포, 적석, 흑석 등 6가지를 꽃에 비유하여 미화시킨 이름’이라 하며 별 설득력이 없다는 의견을 덧붙이고 있다.

 

계곡길 끝나면 저 바위를 오른쪽으로 보며 옆 능선으로 오른다 

신비로운 빛깔의 암벽 아래를 굽어보니 너덜계곡이다. 아래서 위로 올려다보는 느낌이 궁금하다. 

 

오늘 장수골 지능선 오르며 둘러보는 육화산 암릉들은 이름의 유래에 대해 나름의 암시를 던진다. 얼마전 불교신자가 육화산이란 이름을 듣더니 대뜸 ‘연꽃이네’ 하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여섯잎을 가진 꽃 문양은 불교에서 연꽃의 도상으로 더러 쓰인다(여덟잎이 흔하나 그 이상도 있으며 무한 겹겹 만다라로 표현되기도 한다. 중국의 불교성지로 구화산(九華山)이 있는데 역시 같은 발상의 이름일 것이다).

장수골 계곡은 도보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깊숙한 지점에 이르러 수직 수평 절리를 형성하며 가파르게 쏟아지는 흰 암릉들이 모여있는 곳이 나타난다(등산로에서 그 전경을 일람할 수 있는 장소는 없다). 화심(花心)을 둘러싼 꽃잎들이나 덧대어 둘러친 병풍같은 형세인데 멀리서 보아도 매우 인상적이고 가까이서 보면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장연사지에 큰 절(절터 흔적들로 보아 상당한 거찰이었을 듯)이 있었던 시절의 눈으로 보면 그러한 계곡의 모습에서 연꽃을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었을 터. 이제 절은 사라지고 흩어진 석물들과 두 기의 탑만 남았다. 사라진 것들의 잔광은 늘 신비롭거니와, 그 빛에 물든 육화란 이름마저 우리에게 신비를 넘어 수수께끼로 다가온다. 언젠가 희게 빛나는 저 암릉 자락자락과 골골을 느린 걸음으로 답사하며 그 수수께끼의 갈피들을 더듬어 보았으면 싶다.


주릉에 오르면 바로 왼쪽으로 조망바위가 있다. 길은 살짝 우회하지만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육화산 정상부와 그 너머 달덩이처럼 둥근 남산과 화악산이 선명한 하늘금을 긋는다. 오른쪽으로는 동창천 유역의 벌판과 그저께 오른 용당산, 그 뒤로 오례산에서 대남바위산, 비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육감적으로 꿈틀거린다. 뒤로 돌아보면 잎진 나무 사이로 구만산이 손에 잡힐 듯 뚜렷하고 통수골 상류의 협곡 암릉이 희게 빛난다.

육화산과 동창천 건너 용당산쪽 - 장수골에서 주릉에 올라 왼쪽에 있는 조망대에서  

용당산쪽을 당겨보다 


흰덤봉 가는 길은 고만고만한 봉우리 두어 개 오르내리지만 곳곳에 조망대가 있어 심심치 않다. 오늘처럼 푸른 날, 자꾸 무거워지는 엉덩이 추스르는 일이 가장 어렵다. 함께하는 걸음은 서로를 채근하고 재촉한다.


흰덤봉 삼거리. 정상이 지척이지만 조망이 없으므로 곧장 구만산향 능선으로 접어든다. 여기서부터 구만산 삼거리(구만재?)까지는 초행이다. 부서지지 않은 낙엽도 한결 수북해진다. 소리내며 걷는 맛이 좋다.

이 구간에도 두어군데 조망대가 있는데, 특히 남양리쪽이 한눈에 드는 지점(나무를 쳐서 조망 확보)이 가장 낫다. 멀리 선의산 능선과 통내 학일산릉이 아름답다. 어쩌면 그 이름들 하나같이 산의 생김과 잘 어울리는지... 선녀가 춤추는 듯하다는 선의는 우아하고, 통내는 암릉이 드러나 통뼈처럼 탄탄해 보이고, 학일은 하늘 향해 치켜든 사납지 않은 봉우리가 멋스럽다.

새하얗게 빛나는 등심바위가 눈길을 끌고 슬쩍 자락을 드러낸 운문호 푸른 물빛까지... 오늘처럼 맑은 날 저 물빛을 인접한 까치산이나 서지산에서 굽어보고 있다면... 몸은 하나인데 욕심은 천갈래 만갈래다.

 

남양리쪽 - 왼쪽 멀리 선의산릉, 그 앞으로 통내 학일산. 오른쪽 멀리 까치 방음산릉, 지룡산, 옹강산릉...

 

부드러운 낙엽길을 걸어 U턴하듯 북향에서 남향으로 돌아 구만산을 남으로 보는 봉우리에 오른다. 과연 눈부신 조망... 남산과 화악산 왼쪽 멀리 보이는 건 아마 화왕산릉인 듯하다. 통수골 상류를 굽어본다. 통상 구만산 코스는 폭포 상단에서 능선으로 올라버리기에 언젠가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곳이다. 단풍 익어가는 가을쯤이 좋으리라...

화악산과 남산. 멀리 화왕산릉? 


정상부를 지나 곧 길 왼쪽으로 살짝 벗어난 지점에 기막힌 조망대가 있다. 지룡산과 그 너머 옹강 문복산 능선과 억산향 능선의 암릉, 사자봉에서 북암산까지가 한 눈에 든다. 672봉 암봉은 노송 한 그루를 얹어 고고함 더하고, 사자-북암 능선은 박진감 넘치는 제 산줄기의 하늘금만으로 모자라 산자락 곳곳에 기암을 늘어뜨린다. 무채색에 가까워지는 계절에 더욱 빛나는 한 폭 그림이다.

 

 억산 가는 능선과 사자-북암 능선 

672봉에서

돌아본 구만산 

 

구만산 갈림을 지나 672봉을 오른다. 길은 우회하지만 이 능선 최고의 가경을 비켜 갈 순 없다. 왼쪽 바위벼랑을 감돌며 곳곳을 살핀다. 소나무 있는 암봉까지 다녀오고 싶지만 시간을 고려하여 다음 기회로 미룬다.

오륙년전 쯤 통수골에서 구만산을 올라 억산을 거쳐 석골사로 내려선 적이 있는데, 참 좋았다는 기억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남아있는 이미지는 한 장면도 없다. 그래서 오늘 산행은 전혀 새로운 느낌이다. 망각이란 참 좋은 거다.

바야흐로 깊어가는 오후햇살, 잎 지고 성성한 털 사이로 흙빛 속살을 드러내는 가파른 산비탈이 징그럽도록 눈부시고 아름답다. 짧은 오후나절을 길게 늘이며 취한 듯 가쁜 걸음으로 나아가는 조망산행 낙엽산행길... 말로는 밤산행이 되지 않도록 적당한 곳에서 하산해야지 하지만 몸도 마음도 말을 듣지 않는다.

 

 사자봉과 문바위, 북암산릉

봉의 저수지. 그 너머 정각산릉

 

인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진행한다. 까이꺼, 밤산행 하지 뭐. 그러나 산짐승이나 만나지 말아야 할텐데...


인재 지나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바위 능선이 좋아 보인다. 숲 헤치고 들어간다. 가인계곡과 엠마누엘 기도원 쪽 조망이 기막히다. 정상쪽으로 이어지는 바위 따라 오른다. 얼마 전 가인계곡에서 기도원 앞을 지나며 올려다보고 입맛 다셨던 바로 그 암릉이다. 갑자기 기도원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등산객 둘이 지나가는 모습이 점으로 보인다. 유난히 단풍이 곱던 기도원 부근, 카메라를 대 보지만 너무 멀다...

 

엠마누엘 기도원 부근 - 단풍이 매우 아름다웠던 곳

 가인계곡

 

되돌아보다 

거대한 문어처럼 버티고 솟은 사자봉  


남양리와 오봉리를 나누는 능선 분기봉에서 북쪽으로 길이 있나 살펴보지만 없는 듯하다. 게다가 초입엔 잡목이 많아 무턱대고 들이대기도 망설여진다. 억산 아래 오봉리 갈림길까지 가자... 좀 속도를 낸다. 조망대가 나타나면 홀린 듯 또 기어올랐다 내려오고... 고만고만 오르내리는 낙엽능선, 어느 곳엔 멧돼지들이 설치다 간 흔적이 보인다.

결국 억산 오름만 앞둔 봉우리 같잖은 봉우리, 왼쪽으로 낡은 리본 하나가 보이고 흐린 길이 나 있다. 잘 됐네, 오봉리 계곡으로 떨어지는 길이구만! 지도를 보니 귀천봉 능선 직전 아주 약하게 발달한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계곡에 이어지겠다.


목에 덜렁거리던 똑딱이도 배낭에 넣고 랜턴도 점검한다. 길 상태가 염려되지만(자칫하면 정상 길보다 더 늦을 것이다) 일단 들어선다. 잠시 가니 멋진 조망바위가 있다. 저무는 시간, 계곡 멀리 낙엽송 숲과 지룡산쪽 산빛이 저녁햇살에 보기 좋다. 마지막으로 한 컷 때리고 총총 내려선다.

 

하산길에- 귀천봉릉 너머 등심바위릉, 지룡산, 옹강산...  

 

능선자락 흩어지는 계곡 상류 너덜에서 잠시 길이 흐려진다. 무작정 계곡으로 들어서 좌우를 살핀다. 왼쪽, 그리고 다시 오른쪽. 계곡을 건너자 아주 뚜렷한 길이 이어진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단풍 낙엽들... 제 철에는 참 고왔겠다.

귀천봉 능선(억산 북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는 리본도 몇 달려 있다. 어두워져가는 저녁 하늘을 노랗게 물들이는 낙엽송 숲을 지나자 마을불빛이 보인다. 농로가 나타나고 왼쪽 산자락을 따라간다. 시멘트 포장길로 바뀌고 오봉리 초입 마을회관(경로당)에 닿는다.

동곡택시(054-373-7979)를 불러 출발지인 장연리까지 되돌아온다.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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