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 선샤인 (sunshine 2007)
감독 : 대니 보일
도발적으로 참신했던 <트레인스포인팅>과 종말론적 좀비물 <28일 후>를 만든 대니 보일 감독의 독특한 SF 영화다. 아니, 장르 파괴적인 SF 좀비 호러 종교물 쯤이라는 게 더 옳겠다.
‘뭐가 보여요!?’
일 초 후면 태양빛에 불타 흔적 없이 사라질 선장에게 그는 다그친다. 궁극 실재를 감각으로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호기심. 그것은 어쩌면 종교 발생의 동기인 동시에 철학적, 지적 인식의 뿌리이자 한계일지 모른다. 우린 늘 궁금하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자는 무엇을 보았을까... 절명의 순간 인간은 무엇을 볼까... 그 순간이 다름 아닌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낳고 기르는 신과 같은 존재 태양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때라면?
비록 식어가지만 여전히 강렬한 힘으로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며 붉게 타오르는 거대한 태양의 이미지로 영화는 시작한다. 더 많은 빛을 향해 기울어지는 것은 생명체가 갖는 본능적 굴광성 혹은 향일성이다. 인도풍의 사내는 말한다.
‘어둠 속에선 분리를, 빛 속에선 통일을 느낀다.’
그러나 빛의 세례에서 살아남은 또 다른 숨은 목소리는 말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태양 유일신교의 발상지인 이집트 왕묘에서 갓 뛰쳐나온 피칠갑한 미이라의 형상이다.
‘흙에서 흙으로...!’
낡은 태양을 인위적으로 재점화시켜 새로운 태양이 타오르게 할 것인가, 꺼져가는 낡은 태양과 운명을 함께할 것인가? 태양을 새롭게 함으로써 빛을 회복한다는 구상은 다분히 종교적이다. SF의 옷을 입었지만 개종에 관한 케케묵은 은유다.
숨은 인물의 등장으로 영화의 처음에 던져진 ‘무엇이 보이는가?’ 라는 물음은 ‘낡은 것이냐, 새로운 것이냐’의 윤리적/종교적 질문으로 변질된다. 그 변질이 그다지 정직해 보이진 않지만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인간의 호기심은 늘 당대적 윤리를 넘어선 지점까지 낚싯줄을 던져놓고 그 끝을 바라본다. 상상 가능한 기술이라면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란 질문의 끝은 새로운 태양의 선택과 별 고민 없이 맞아떨어진다. 고민은커녕 혈투로 점철된다. 어쩌면 늘 그래왔던 개종의 역사에 대한 신랄한 풍자랄까?
인간 종의 본능적 향일성에는 유일 태양에 대한 충성 따위도, 대지적 인간에 대한 향수도 없다. 그저 빛을, 생명을 추구할 뿐이다.
좀비와의 지루한 유혈극으로 이어지는 신태양교의 창시설화는 허술하지만 나름 정반합의 변증법 구도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의 전반과 후반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전반부는 장엄하고 거대한 태양과 태양을 향해가는 우주선의 이미지 표현에 중점이 두어지고 인물들은 자기 임무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갖지 않는다. 중후반부에서는 임무의 정당성을 전면적으로 의심하고 부정하는 힘이 나타나고 <이벤트 호라이즌> + <28일후>를 연상시키는 SF 좀비 호러물이 된다. 그러나 대단원을 장식하는 건 새로운 태양교의 순교신자들이 펼치는 황홀한 종교적 법열경 한마당이다. 풍성한 눈요기를 제공하는 빛과 색채의 향연이 펼쳐진다. 극장비 생각이 싹 가실만큼 찬란한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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