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 오페라의 유령 (2004)
감독 : 조엘 슈마허
원제인 ‘phantom of opera’ 는 구체적인 인물만이 아니라 ‘예술작품의 영(靈)’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예술의 근원에 대한 추궁, 즉 예술이 태어나는 곳이 어디인지를 통속적인 흥밋거리로 삼아 묻는 셈이기도 하다. 물론 새로운 답은 없다. 늘 말해져 왔듯이 예술은 선악을 넘어서는 존재의 심연 - 영화에서 거울이 그 통로로 상징되는 - 으로부터 태어난다. 말마따나 ‘예술은 자연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자연이란 인간의 가장 깊은 본성이기도 할 것이다.
영혼을 팔아 천재를 얻는 건 낡은 주제지만 이 영화는 그보다는 좀 더 나간다. 기독교적 독선의 빛 혹은 근대적 이성의 빛이 억압하고 왜곡해 온 인간사를 거슬러 고대나 선사 신화의 원형을 살짝 건드려 보는 거 같다.
크리스틴은 거울 너머 그를 본다. ‘유령은 존재한다’ 는 강렬하고 장엄한 주제가를 외치듯이 부르며, 그의 손에 이끌려 거울 문을 통해 아득한 지하 통로를 따라 그의 거처로 가는 장면은 압권이다. 정신적 모험의 장엄하고 어두운 풍경화다. 우리 삶에서 가장 강렬하고 원초적인 신비체험의 꿈, 그러나 아무나 겪을 수 없는 영적 이미지이다. 그녀는 피할 수 없는 유혹, 음악의 천사와 대면한다는 환상으로 자신의 가장 깊은 바닥에 다다른다. 그 곳은 언어로 말해질 수 없는 존재의 거처이며, 그 베일을 벗기는 자는 눈이 멀고 말리라는 고대의 신탁이 걸린 동굴 입구이다. 거기서 신부차림을 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기절해 쓰러진다.
유령은 존재의 궁극과 만나는 우리 자신의 깊은 내면이다. ‘나는 곧 너’이며 ‘네 마음속에 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에겐 불릴 이름조차 없다. 일그러진 얼굴은 존재의 신비가 지닌 공포를 상징하며 그가 부여하고 이끄는 천재란 그것이 드러나는 경이를 뜻한다. 만인이 찬탄하는 천재의 경이와 감추어진 얼굴이 주는 공포는 동전의 양면이다. 고대 신화에서 흔히 보는 하나의 중심으로 꼬인 두 마리 뱀이며 죽음을 통한 재생의 진실이란 이미지이다.
그의 가면도 우리가 발견하는 자신의 다양한 얼굴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삶은 그 자체로 우리 자신의 심연을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인 동시에 존재의 신비가 스스로를 드러내 오는 장엄한 가면놀이가 아닌가? 그녀는 그의 가면이며 그 자신 또한 가면의 얼굴로 세상에 나타난다. 붉은 옷의 유령은 노래한다. ‘자신을 버리고 이 장엄에 참여하라!’ 고... 유령이 요구하는 사랑이란 새롭게 발견한 낯설고 어둔 너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유령에게 치명적인 본성(마치 악인 양)을 부여하고 그녀가 사랑하는 또다른 남자 라울을 빛으로 설정한다. 빛과 어둠의 명쾌한 이원론? 라울이 유령을 이기고 그녀를 얻는다는 것 역시 상투와 통속의 범벅이다.
어쨌건... 그녀는 어떤 방식으로 빛을 선택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입맞춤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근거를 모호하게 되돌아보는 걸까? 아니면 보다 강경하게 어둠을 거부하는 걸까? 이단 숭배의 과거를 불사르는 기독교적 개종의 냄새도 나고, 자신의 탄생을 도왔던 자들을 가차없이 배반한 근대 유산계급의 위선도 겹쳐진다. 그녀는 빛나는 현세를 얻었을 테지만 그 근원으로부터 예술을 잃어버렸다. 그 날 이후 극장은 문을 닫고 무덤같은 폐허로 변했다. 그의 추방은 또한 상실이었던 것이다. 남은 자들은 그의 흔적을 부여잡고 추억에 잠긴다.
마지막 장면, 그는 거울을 깨뜨리며 그 속으로 사라진다. 무모한 욕망의 손길에 잠시 드러났던 가면 너머 얼굴은 다시 스스로를 감추어 버렸다. 그가 있던 자리엔 얼굴 없는 흰 가면만 뒹군다.
유령은 죽지 않았다. 애초 그는 우리의 일부임에도 우리에게 억압되고 추방되었다. 일그러지고 추악한 얼굴은 억압된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이며 잊어버리고 싶은 이웃의 얼굴이 아니던가? 그는 영원히 죽고 다시 태어나는 불멸의 존재를 섬기던 고대의 무녀나 여사제를 연상시키는 여인에 이끌려 세상에서 가장 현란한 곳의 그늘에서 살아남았다. 짓눌린 내면은 강렬한 힘으로 되돌아와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의 고통과 천재는 억압된 영혼의 복수이기도 했다.
또다시 버림받은 그는 자신을 불러줄 누군가의 눈길을 기다리며 흔적을 남긴다. 죽음의 장소 - 또한 필연적으로 부활의 장소여야 할 - 를 가끔 배회한다. 태양 아래 빛나는 모든 필멸의 것들을 비웃듯 검은 리본으로 묶은 불멸의 장미 한 송이를 들고서...
유령을 제외하곤 주연들은 좀 불만스럽다. 크리스틴은 노래와 연기 둘 다 그럭저럭인 거 같다. 유령은 특히 그 어둔 질감의 목소리가 좋고 장중한 고뇌가 실리는 연기도 일품이다. 조연들은 훌륭하다. 유령을 이끌어 보살펴 준 여인의 신비감이나 꽥꽥대는 소프라노(카를로타)의 튀는 맛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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