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사이 사람 사는 곳, 무한으로 이어지는 적막의 시공간을 채워 세상의 무늬를 빚는 것은 어떤 것들일까?
대숲에 바람 드는 소리, 장독대에 비 듣는 소리, 산사 새벽 풍경 소리 은은히 메아리져 눈 내리는 소리, 구비치는 한 평생을 너머 내리는 아라리 소리...
텅 빈 공간을 채우는 소리들과 소리에 묻혀 가는 사람의 소리, 소리 소리들... 그 소리에 열리는 귀와 눈들, 세상을 빈틈없이 채우고 또 시름 함께 비워 사라져 가는 것들
개나리 봄빛 더미져 쏟아져 내리던 날, 함께 사랑도 가고 기다림도 간다
빛바랜 그림자 향기만 남긴 채 벚꽃 그늘 속으로 그녀는 간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우기지만, 변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며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야 본래 없는 것이라서 정처 이루어 머물면 사랑, 기쁨, 슬픔, 짓고 또 지을 뿐
가 버린 사람은 돌아오지 않고 흐르는 사랑 머물지 않는다
가없는 줄만 알았던 봄날의 햇살처럼 그렇게 간다
깊으면 저무는 법, 그러나 사랑 또한 나의 일이라 홀로 깊어 흘러갈 밖에
무엇 하나 반듯한 게 없는, 누덕으로 지어 올린 남루의 이승, 적막의 시공간을 채우는 것은 끊임없이 소리 내며 흐르는 사물들, 사람의 일 또한 함께 흐른다며
우리 삶은, 또한 사랑은 속도와 시간에 관한 노릇일 뿐이라며 스치듯 속삭이고 간다
이거... 멜로다. 그러나 잘 익어 곱기 그지없다.
극장 나서니 걸음이 느려진다. 더욱 느리게 흐르는 거리의 풍경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높다. 어디선가 바람 불어와 빈 가슴 채우고 사랑 나부끼며 흘러간다.
바람 부는 밀밭에서 소리 듣는 남자를 보며, 갈대숲에 바람 드는 소리는 세상 끝나는 소리라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린다. 그러나 계절 가면 오리니
깊어가는 가을, 사라진 소리 고여 적멸 이루는 산길이나 진종일 걷고 싶다.
뱀다리 : 멜로는 <사월의 이야기> 이후 첨 본 거 같다. 취향이 아니었기에 못 볼 뻔한 영화였지만 놓쳤으면 후회막급이었겠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첨인데 삼십대라는 그의 나이가 의심스럽다. 조숙한 저 달관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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