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명 : 동정없는 세상 (1989)
감독 : 에릭 로샹
나란한 길, 그 중 하나는 길 없는 길. 비켜서 걸어가기 혹은 비켜서서 보기
거칠게 세상을 둘로 나누어 보자
일하는 자와 일하지 않는 자,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 미래를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 기생하는 자와 부양하는 자, 사랑을 원하는 자와 도망치는 자, 그리고 남자와 여자...
일하지 않는 자, 백수는 아름답다.
어둠이 오면 살아나는 것들...
‘불빛이 명멸하는 순간
사뿐히 탑을 오르는 영혼들
하늘로 열린 창문 아래 숨어서 기다리네
칠흑같은 어둠이 파리를 점령하고
에펠탑과 샤크레 성당이 불빛을 감추면
지붕과 테라스에 영혼이 침입해
피뢰침과 안테나를 부여잡고 올랐다가
지붕을 타고 미끄러지고
기둥 사이를 돌아다니다
굴뚝 뒤에서 입을 맞추고
테라스에선 사랑을 나누기도 하네‘
우리에게 사랑은 맨 나중에 남겨진 것일까, 아니면 맨 처음일까?
눈뜨면 가장 먼저 기다리는 것은?
....하루 몫의 노동일까?
사람들은 언제부터 직업을 갖게 되었을까? 왜 일을 하게 되었을까?
왜 일하는 자가 아닌 일하지 않는 자가 이상해 보이는 세상이 되었을까?
매일 매일 자고 일어나 눈뜨면 달라진 게 없어도 세상은 여전히 바쁘고 시간은 흐른다.
'경영자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자본은 이윤을 생산하고(뻥!), 노동자는 점점 더 가난해지는' 세상에서 무슨 새로운 것이 있을까?
가족은 이슬 젖은 매미 껍질 같은 것. 속에는 이미 아무것도 없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비켜선 자와 길 위에 있는 자를 잇는 끈은 무엇일까?
양자를 건너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면 일하지 않는 자의 길은? 선택하지 않는 선택의 길.
'뭐든 다 할 수 있는' 백수는 끊임없이 사랑을 노래하지만 노래는 길 위에 흩어질 뿐 길을 넘지 못한다.
숨바꼭질 속에서 배우는 것. 그러면서 망가지는 것들.
세상은 일하는 자에 의해 나날이 새롭게 망가져간다.
백수는 불구의 세상에 기생한다.
가장 깨끗한 돈은 노름해서 딴 돈이고 정직한 돈쓰기는 노름해서 날리기...
우리는 충분히 '할 만큼 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결핍이 아니라 과잉으로 고통 받는다.
날려 버려야 할 것들. 우리를 막는 것은 '전부'이지만 그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 장면, 사라지는 차 속에서 희미하게 웃던 여자.
사라지지 않은 백수가 그녀의 눈에는 일하는 자들의 세상을 위한 영원한 소품이었을까?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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