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동학사쪽 주차장 - 천장골 - 큰배재- 삼불봉 - 자연성릉 - 문필봉 - 연천봉 - 은선폭포 - 주차장
자연성릉을 향해 오른다. 천장골 물소리는 바람보다 시원하다. 그러고 보니 계룡산에서 계곡물 소리를 듣긴 첨이다. 늘 잎진 계절이었다. 낯설기는 물소리만 아니라 산빛 또한 마찬가지다. 묵은 인상이 낯설어질 때 산 오르는 즐거움이 어디에 있는지 몸은 무의식적으로 깨닫는다. 무거운 구름 속, 가쁜 몸은 바야흐로 제철 만난 녹음으로 스며든다...
삼불봉 너머 바위 능선. 장마철의 바윗길은 산정에 일렁이는 구름과 한 통속이 될까 말까 땀 흘려가며 갈등 중이다. 조금 미끄럽다. 자칫 안개로 부푸는 산길의 서정을 경계한다.
수백길 단애 굽어보며 암벽에 매달리는 이들을 생각한다. 아마도 바윗길만 탐하는 의식, 그것은 충전되고 고양된 감각 자체이며, 나아가 그 고양감을 삶의 양식으로 삼아버린 이들의 것이리라.
그 끝은 어디일까...? 어저께 본 <디센트 the descent> 란 영화가 떠오른다. 현대적 생활양식에 머물며 극한 스포츠란 이름으로 뛰어드는 미지의 세계로의 탐험. 그 세계에서 그들 문명인이 만난 것은 가장 어둡고 가공할 자신들(또한 우리 모두)의 바닥, 흔히 우리가 야만으로 부르는 원시적 본능이었다. 폭력은 그 일부다. 세련된 문명인이 더 인간다워지고자 추구한 행위의 결과가 어째서 가장 비인간적이고 섬뜩한 자아와의 대면일까...? 우리가 불가피하게 ‘너는 누구냐?’ 는 질문과 마주치는 바로 그 자리, 그걸 ‘끝’이라 부르는 걸까? 그러나 끝은 또한 시작일 것이다. 영화의 끝 또한 어떤 시작, 선택을 향해 열리며 질문의 화살을 관객에게 향한다.
낮게 내려온 구름, 반투명의 흰 빛알갱이들이 푸른 산을 더 짙게 물들인다. 그들이 앗아간 원경은 계룡산에 대한 여태까지의 인상을 깡그리 삭제하며 다시 올 봄가을, 그리고 겨울에 대한 기대로 부풀게 한다.
관음봉 너머 능선길은 막아놓았지만 계속 가 본다. 서너 개의 봉으로 이루어진 문필봉릉을 오르내리며 연천봉 다가가는 길은 30여분이면 되리라 여겼지만 그리 간단치 않다. 바위도 젖고 문필봉 내려서는 밧줄 하나 외엔 시설물도 없어 제법 조심스러우면서 재미있는 코스다.
연천봉 가는 동안 천황봉은 한 번도 자태를 드러내지 않는다. 돌아보는 관음봉은 그래서 더 우뚝하고 아름답다. 그다지 길지 않음에도 구름에 묻힌 쌀개릉은 무언가 한없이 이어지는 길을 감추고 있는 듯하다. 아직 못 가 본 곳이라 더 그런 걸까?
하산길에 보는 은선(隱仙)폭포. 장마철 수량이라 제법 우아하고 당당한 풍모다. 풍경의 핵심을 꿰뚫는 ‘숨은 신선’이란 뜻도 절묘하지만, 멀리서 보는 물줄기 빛깔의 이미지(은銀)가 겹쳐지는 어감도 좋다.
산책하는 발걸음들만 한가로운 늦은 오후 동학사길, 잡념의 끄트머리 하나 잡고 느리게 걷는다. 요즘 어딜 가나 나날이 심해진다는 느낌 지울 수 없는 국립공원 시설물들...
미행과 잠입, 어떤 관점에선 산과의 만남은 그런 한에서만 가능한 것일 게다. 산길은 인적 끊어지면 쉬 산으로, 숲으로 되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 불가피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금속과 나무구조물을 설치하고 돌포장하면 산과 길의 일시적 틈은 영구적으로 찢어진다. 산은 부정되고 길만 남는다. 산길은 길이기도 하지만 또한 산이기를 나는 바란다.
삼불봉 부근
암릉의 성벽을 굽어보며
삼불봉 오름
관음봉 - 문필봉 가며
쌀개봉
문필봉과 연천봉
연천봉에서
황적릉
은선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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