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덕천교 - 태자굴능선 - 계곡 따라 - 광대봉 - 나옹암 - 비룡대 - 지릉따라 - 금당사 - 남부주차장
황량한 겨울산 능선들 너머로 솟아오르는 마이산은 흐린 대기로 강렬한 자장을 뿜으며 방전의 순간을 기다리는 음과 양의 거대한 두 극 같았습니다. 말의 귀가 아니라 번개를 준비하는 두 눈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우주적 에로티시즘으로 충만한 원형물이었지요. 무심하면서도 섬뜩하게 와 닿는 창세의 꿈 한 자락이 아직도 저기 숨어있으리라 여긴다면 망상일까요? 부화를 기다리는 거대한 알들 위로 곤두선 음과 양의 암봉... 혹은 극에 이른 역동성을 그대로 지닌 채 한 순간 광물질로 훌쩍 거슬러 굳어버린 동물의 모습. 세상에 저보다 더 육감적인 바윗덩이가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였던가요, 능선과 계곡 오르내리며 느리게 다가서는 걸음걸음은 성적 은유로 넘쳐나는 공간을 숨바꼭질하는 양, 이 세계를 생겨나게 한 원초적 성에 관한 지형학적 탐사 중인 양 숨가쁨도 잊고 그곳에만 시선 박은 채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있었던 게지요.
고드름이 거꾸로 열린다는 탑절에 관한 얘기가 저 풍경 앞에선 전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산길을 걷고 있던 동안만은 내 몸 역시 저 음양의 양극이 형성하는 자장에 공명하여 알지 못할 어떤 아득한 근원을 향해 전율하며 다가가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광대봉 파노라마
광대봉은 능선상에서 최고의 조망대다. 조금 먼 듯한 마이산과 원근 배경의 첩첩 산하, 너른 하늘이 이루는 안정된 조화와 균형미가 빼어나다. 가라앉지도 들뜨지도 않는, 스스로의 고결한 정적 속에서 졸고 있는 듯한 풍경이다. 또 사방 거침없이 시원스런 시야도 훌륭한데, 멀리 덕유 주릉은 마이산 정상부를 지나 뻗어가고, 서쪽으로 운장 연석의 봉우리들이 눈길을 끈다. 동남으로는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정맥 줄기가 천m급 이상 고도로 웅장하게 뻗어나간다.
마이산 암릉만의 역동적인 자태는 태자굴 능선과 합미산성 능선이 만나는 삼거리를 지나 고래등같은 바위가 시야에서 비켜나는 지점이 더 나은 듯하다. 거의 심란한 현기증을 느낄만치 극에 달한 육감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비룡대에서
비룡대는 지나온 능선의 눈발 성성한 북사면을 돌아보는 맛이 일품이다. 뾰족하고 까칠하게 파도치는 솔숲 날망들의 실루엣은 비탈면의 희끗한 눈발과 대비되어 매우 강렬했고 문경, 괴산 일대의 겨울산을 생각나게 한다. 이제 마이산과 삿갓봉등의 주변 능선들은 그저 암릉미 뛰어난 현실의 산처럼 보인다. 근경의 박진을 얻은 대신 원경의 신비로움을 잃은 셈이다.
능선길 대신 계곡까지 에두르며 여유롭게 어정거리다 보니 시간이 모자라 비룡대 지나 조용한 지능선 따라 하산. 오히려 잘 된 일이다. 꽃 피는 시절 다시 오를 핑계를 남겨 두었으니...
오르며 보는 풍경들 - 멀리 운장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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