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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전라 충청권

남덕유산 - 하늘의 저 푸른 빛(021201)

by 숲길로 2007. 6. 4.

 덕유 주릉

 

할미봉 

 

남덕유 - 할미봉에서

 

월봉산 능선

 

 

남덕유! 이름의 기억만으로 눈(雪)을 그렸다.

왜 아니랴, 작년 이맘때 남덕유를 향해 육십령을 올라서면서부터 풍성하게 눈을 밟았다. 지난 시월 하순 지리산 단풍 따라 갔다가 난데없는 눈발 속으로 사라지는 천왕봉을 먼빛으로 겨워하며 올 겨울 넉넉한 눈 꿈에 부풀기도 했다.


12월의 첫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바람은 맵지 않다. 무거운 겨울 채비를 벗어부친다. 산행 기점 영각사 쪽에서 보는 남덕유는 정상을 살짝 숨긴 채 눈은커녕 흙빛 바탕을 드러내며 거침없이 능선을 펼쳐놓는다.

길은 메마른 계곡을 따라 시작한다.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더니 곧 주봉과 1363봉 사이를 향해 곧바로 치오른다. 잠이 모자란 탓인가, 몸이 쉬 풀리질 않는다. 한참 헉헉대다 숨 가누며 물 한 모금, 빤히 올려 보이는 능선위로 푸른 하늘이 무심히 걸려 있다. 이삼십분쯤이면 될까? 남덕유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이지만 우회 없이 단박에 천이삼백 능선을 오르기란 만만치 않다. 일도양단, 바로 끝장을 보려는 성미에는 제격이렷다.

그럭저럭 능선이다. 차마 바라던 눈은 없었지만 발아래 펼쳐지는 산과 들, 그리고 하늘의 저 푸른 빛...

오른쪽은 남령재 방향, 왼쪽이 정상 가는 길이다. 능선 타면 좀 수월하려니 한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진다. 계속 철계단과 바위길이다. 정상까지 900m란 표지를 본 듯한데, 오르락내리락 가쁜 호흡에 거리감이 흐리다. 마지막 바위덩이 하나, 우회로를 두고 앞사람을 따라 위태하게 올라붙으니 정상이다.


남덕유의 조망은 압권이다. 바람도 거의 없다. 예가 과연 12월 남덕유냐? 오늘처럼 맑다면 상고대나 눈꽃, 雪분분 수묵의 적막조차 부럽지 않다. 능선에서부터 진작 지리산을 더듬어 왔다. 덕유 능선에서 보는 지리는 각별하다. 언제 어느 계절이었던가, 아내와 함께 한 일요산행, 동엽령을 거쳐 삿갓골재로 하산하던 길이었다. 유난히 포근했던 오후 삿갓골재 대피소 뚝담에 앉아, 얻어 마신 한 잔 소주에 취해 나른히 바라보던 지리의 산빛은 평생 잊지 못할 아득한 그림이었다.

오늘 남덕유의 지리는 더 가깝다. 인적 머금은 산맥의 뿌리가 치솟아 간신히 그려내는 좌천왕 우반야의 실루엣은 한 지평 이루며 흰 빛의 이내 속으로 느리게 잠기고 있었다. 저 빛, 몇 시간 후 할미봉쯤 이르러 지리는 마침내 저 빛과 더불어 하늘일 것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덕유 주릉이다. 헛된 이름 전하는 법 없으니, 향적에서 중봉, 눈바람 매섭던 덕유평전 너머 초여름이면 원추리 만발하는 동엽령과 무룡산 기슭까지, 시야 가득 펼쳐지는 산맥은 자못 넉넉하고 풍요롭다.

붐비기 쉬운 정상, 사방 아쉬운 눈길 던지며 서봉으로 향한다. 이어지는 길은 능선 북쪽을 에두른다. 비로소 눈을 밟는다. 가파른 북사면은 제법 겨울 풍경이다. 잎 진 나무들 앙상한 줄기와 희끗한 비탈, 사철 성성한 구상나무는 사이사이 더욱 곧고 빛난다. 한겨울 덕유의 진풍경에서 바람소리만 없을 따름이다.    


장수덕유로도 불리는 서봉은 남덕유(동봉)보다 오히려 3m 높지만 높이만으로 이름을 다투랴. 육십령 가는 길에서 보면 확연하듯 주봉보다 무게감이 처진다. 물론 그 무게는 장장 사십여 리를 굽이치며 무룡산과 삿갓봉을 일으키고도 아쉬움 남아 다시 남덕유를 치솟게 한 주릉의 넉넉한 힘이다. 그 힘이 주춤 방향을 틀면 깊은 파문으로 서봉이 솟구쳐 좌우 날개가 펼쳐진다. 급경사의 원호를 긋는 단호함, 우아에 이르는 날렵이 어우러져 남덕유의 박력 넘치는 자태는 완성된다.

정상 바위에 걸터앉는다. 간식거리를 꺼내 권커니 나누거니 먼산바라기 한다. 저기 동쪽, 불꽃처럼 치솟는 검푸른 것이 가야산인가. 이어지는 검은 그림자들은 가조 방향으로 당차게 달리며 줄줄이 솟는 산 무리들이겠다. 멀리 서쪽으로 유독 눈에 띄는 바윗뎅이가 있다. 저리 터무니없이 생겨먹은 산은 흔치 않다. 마이산이렷다. 암수 둘 중 누가 뒤로 숨었는지 한 덩이 바위로만 눈에 든다.


발아래 희고 곧게 달려가는 빛의 줄기,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다. 최근에 만들어진 도로답게 좌우 아래위 흔들림 없이 참 곧기도 하다. 덕분에 육십령 고개는 한적한 옛길이 되었다. 고속도로를 바라보다가 문득 오늘 걷는 길이 백두대간임을 떠올린다. 산에 오르면 누구나 느끼듯 산과 물의 본래 존재양식은 ‘흐름’이다. 대간은 자연을 흐름으로 이해한다. 옛적에 길과 산과 물은 나름의 흐름으로 공존했다. 산은 길을 막지 못했고 길은 산을 끊지 않았다. 산과 물의 존재양식이 삶의 모습을 규정하던 시대는 가 버렸다. 사람의 더미인 도시와 그걸 부양하는 자원의 끊임없는 흐름이 되어버린 도로가 삶을 틀짓는다. 빛의 형상으로 달리는 저 고속도로와, 이미지를 나르는 빛 자체를 우리는 4차원 시공간으로 누린다. 현대인은 더 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닌 도로와 도시에서, 아니 그 자신이 도로와 도시의 일부인 양 살아간다. 신작로가 자연의 흐름을 끊던 때를 지나 요즘은 산과 물의 흐름 자체가 무시된다. 아예 아무것도 없다는 듯 관통하고 날아간다. 공존에서 제압으로, 마침내 무시의 단계에 이르렀다. ‘없음’의 선언, 그건 존재에 대한 최고의 폭력이 아닌가.       

가파르게 서봉을 내려선다. 길은 한가롭다. 심심찮을 만치 오르내리며 할미봉을 향해 걷는다. 헬기장이 나타나고 곧 교육원과 육십령 방면 갈림길이다. 출출하다. 열두시가 넘었다. 갈림길 조금 지난 솔 숲, 적당히 그늘 섞인 햇살 아래 앉아 점심 요기를 한다. 커피에 빵을 적셔 우적대는데 버너 피워 푸짐한 오뎅찌개를 준비하시던 분이 소주까지 곁들여 권하신다. 황송한 별미다. 금세 나른하다. 일렁이는 솔그늘, 굵은 줄기에 기대 잠시 졸아본다. 늦가을 낙엽산행 왔더냐...


넉넉히 쉬었으니 다시 갈 길을 가야지. 든든한 배가 무겁다. 오르막 한 번 치고 나서야 몸이 풀린다.

돌아보는 남덕유 능선, 짙푸름 더해 가는 하늘빛이 새롭다. 소설 <남부군> 아니면 <태백산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기나긴 덕유산맥을 병풍 치듯 가로막는 남덕유를 넘어 육십령으로 향하는 빨치산들의 행군을 ‘쏟아져 내린다’고 표현했다. 당시 나는 남덕유를 보지 못했다. 오늘, 돌아보며 내려서는 남덕유의 장대한 벽은 정녕 절실하게 와 닿는 ‘쏟아져 내림’이다. 그러나 바로 저기서, 하염없이 쏟아지던 그들의 여정은 눈사태처럼 몰아치는 승리의 기세가 아니라, 모진 신념의 고달픈 패주 행로가 아니었을까. 묵묵히 먼 반도의 심장, 지리의 품에 들어서야 비로소 통한으로 묻어야 했던 고난의 기나긴 여정이 아니었을까. 극한에 내몰리며 최후의 가능성에 자신을 던져 펼쳐낸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갔던 자들. 역사의 시간은 덧없이 흘러가는 현재나 과거가 아니라 스스로를 던져 넣음으로써 피어나 다가오는 미래에서 비롯된다던 말처럼, 그들은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일까.

아직 그리고 영원히 역사일 그들에 대한 상념이 육십령 향하는 걸음을 어지럽힌다. 지금 이 길의 아래쪽, 제공선을 피해 그들은 걸었으리라. 그들도 보았을까, 저 푸른 빛을? 그들에겐 저 빛은 죽음의 깊고 푸른 빛이었을까... ‘쏟아져 내림’의 가슴 서늘하던 기억으로 자꾸만 돌아보던 남덕유에서 육십령까지, 돌아볼 적마다 하늘은 절벽의 동서봉을 깊이 깊이 길어 올려 거칠 것 없는 하늘 가운데 깊숙이 걸어 놓는다. 물기 없는 청정함, 바야흐로 겨울산을 준비하는 하늘이 왜 그리 쓸쓸하고 서럽도록 짙어만 가야 했던지...


오백미터쯤 앞, 들쭉날쭉 솟은 바위 한 더미를 옆에 끼고 숭숭 털이 난 듯한 봉우리가 보인다. 털갈이하는(?) 코끼리 대가리 같기도 하고 이빨 빠진 할미가 심술궂게 웃는 모습 같기도 하다. 할미봉이라니, 기막힌 이름이다. 괴팍한 멋이 살아있다. 로프 매달린 바위벽을 힘들게 올라야 하는 것도 톡톡히 한 심술이다. 정상은 육십령에서 남덕유 사이 최고의 전망대다. 지나온 길 바라보며 느긋이 숨 가눈다.

할미봉 쪽으로 올수록 멀어지는 서봉에 비해 남덕유 주봉은 위용을 더한다. 서봉으로부터 깊게 출렁이며 가라앉다가 묵직하게 치솟으며 다가온다. 주봉이 서봉보다 가깝기도 하지만, 매달린 능선이 없어 넓게 펼쳐진 계곡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며 곧장 시야로 육박한다. 가로 뻗는 힘도 만만치 않다. 1363봉을 올린 탄력으로 남령재를 넘고 총총 바위봉을 뿌리며 월봉산을 오른다. 거기서 한 갈래는 거망을 지나며 차츰 날을 세워 날카로운 황석 암릉을 벼리고, 또 다른 갈래는 무게 더하여 위풍당당 기백, 금원의 주릉을 일군다.


할미봉 내려서면 마음은 벌써 육십령이지만, 뒤돌아보는 또 다른 맛이 있다. 할미봉 암릉은 길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아름다움이다. 남덕유에서 육십령에 이르는 육산의 구비 가운데서 쭉쭉 빵빵 상승감을 다투며 단연 이채롭다. 곧 솔숲 사이 오솔길이 나타난다. 오른쪽 아래 꼬불 돌아 육십령 오르는 도로도 보인다. 이런 산책길을 걸어 하루 산행을 마무리하는 맛은 거의 달콤함이리라.


초가을만 같았던 날씨, 시원한 캔맥주 한잔이 제격이다. 평소 한적하기 그지없었을 휴게소는 모처럼 들이닥친 손님 맞으며 즐거운 비명이다.

대구로 돌아오는 버스는 예정에서 일분 오차도 없이 출발한다. 친구와 한참 주절대다 깜빡 잠들었다 깨니 어스름 내리는 거창 휴게소다. 또다시 눈길 빨려 들어가는 저 하늘빛. 먼 어느 산, 뾰족한 삼각의 어둠 위로 차마 말 못할 빛깔의 노을이 걸린다. 쪽빛 위에 연보라, 아니 연분홍의 스펙트럼이 어찌 저리 심란한가. 오늘 하루의 하늘, 줄곧 하늘 사진만 찍는다는 이의 심정을 이해할 듯도 하다. 그러나 속없는 화인더가 무슨 부질없는 노릇이랴, 시시각각 낯빛 변하는 하늘을 오래오래 눈에 담는다. 남덕유 그 서늘한 원호의 능선에 수수께끼처럼 걸리던 푸른빛의 기억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