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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전라 충청권

동악산 가는 길에(0106...)

by 숲길로 2007. 6. 4.
 

지독한 가뭄에 멈춰버린 물길들, 작심한 땅은 무방비로 노출한다. 흐르지 못하는 물은 하늘의 기억을 잊어버렸다. 참담히 웅크린 채 자꾸 흐려지는 눈시울로 바닥만 들여다본다. 들녘에는 오후 햇살 반짝이는 물빛 대신 황톳빛 배우는 여린 푸르름들이 파르르 떨고 있다. 죽는 날까지 그들은 자신의 죽음을 모른다.

 

나무들과 대궁 긴 하얀 들꽃들. 모든 식물은 저마다 세계의 중심이다. 실패란 없다. 한번도 선택하지 않았던 삶에는 역사도 없다. 기억 층층 쌓아두는 법도, 하늘 향해 한숨 한번 쉬었던 적도 없다. 제 얼굴에 비치는 허공이 그대로 하늘이었을 뿐. 보라, 타는 유월의 산들. 저마다 가진 중심의 거리를 향해 뻗어 내리는 핏줄, 한 치 반성도 없는 존재의 열망들.

 

눈부신 밤꽃들의 반역, 텅 빈 허공에 대고 흠뻑 불을 지른다. 밤꽃의 빛깔을 아는가, 바람에 흔들리는 미혹(迷惑)같은 대기의 색을. 유월의 푸르름 벗기며 마른 공기 속으로 혼곤히 젖어드는 젖빛 연두의 내음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