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뉴스 보다가 뒤집어졌다. ‘걸릴 놈만 걸린다.’
코로나 태풍 아랑곳없이 반정부 시위 주도하는 전광훈 목사의 말씀이다. (오해된, 그러나) 얼마나 명쾌한 예정설인가. 과연 탁월한 선동가다. 기독교인들 애착하는 예정설은 운명론이지만, 비관이 아닌 강력히 동기부여하는 낙관적 운명론이다. 저 명쾌한 (오해된) 예정설의 낙관이 순교자 노릇 자처하는 선동가 목사의 최강 아이템일 터이니, 다수 기독교인이 저 논리를 공유하며 자기최면에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앞선 장면이 있다. 기독교 한 분파인 신천지 교회.
여러모로 남달랐던 이전 정권과의 내밀한 유대 연상시키는 기묘한 이름의 집단. 명명命名은 곧 해석이니, 근거 있든 없든 모든 루머는 일말의 (역설적) 진실을 담게 마련이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이미지, 은밀한(?) 침투와 신분유지 방식에 이르면, 신천지=새누리가 파생시키는 소박한 상상력들이 가닿는 어떤 불가피한 궁지가 느껴진다. 널리 유포되는 관련 이미지로 보건데 (교리와 별개로) 신천지의 스타일만은 어느 분파보다 한국적(토속적?)인 듯하다. 바로 그 스타일의 예배방식이 문제였다는 것인데, 낮게낮게 옹기종기 꿇어앉은 그들에게 강림하신 건 갈구하던 신이 아니라 역병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였더란 거. 벌린 입 다물어지지 않고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기막힌 배반적 상황. 이후 전개된 현실은 오롯한 신앙 가차없이 짓밟는 일련의 모욕과 박해 뿐이니, 교주 말씀대로 필시 그건 시험이며 마귀의 짓이 아니겠는가. 누가 신의 뜻을 알랴? 그러하니 박해 거치며 신앙은 더욱 단단해진다. 예정설은 의심받기는커녕 한층 위력 발휘하며 가슴깊이 사무쳐든다.
교회 밖으로 나와 돌아본다. 문득 환각한다.
신천지에서 폭발하는 불꽃, 코로나 이미지. 어쩌면 저건 보수의 성지이자 극우의 토양과 숙주 노릇으로 연명하는 대구(청도)의 자기반영적 형상 아닌가?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그 형상은 되묻는다.
‘내게 뭘 원해? 니가 원하는 그것, 그게 나이며 또한 너야’
늘 그랬을 것이다. 그는 나다.
폐쇄와 배타의 공동체에서 불꽃처럼 폭발하여 물밀듯 퍼져나간 통제불가능한 미지의 적 신종코로나. 그것은 전형적인 타자다. 낯선 자, 에일리언이다. 보수와 극우의 기저심리는 타자공포다. 낯선 것을 싫어하고 무서워하고 미워하다가 서서히 혹은 문득 미쳐간다. 공포나 혐오가 중독에 이르면 일종의 미친 정신이 된다. 미친 짐승, 그게 인간이란 주장이 허실을 얻는다. 그런 삶은 강렬하고 뜨겁다.
신천지는 새누리를, 새세상을 꿈꾼다. 중세 내내 은밀히 이어지며 간헐적으로 범람했던 개벽의 꿈이 저기 닿아 있을까? 그런데 저들의 신천지, 그들의 새누리는 두루 열린 세상의 꿈이 전혀 아니었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종교공동체거나 국가시스템을 사적으로 유린하는 이익공동체일 따름이었다. 그들에게 타자는 없다. 물리칠 적만 있을 뿐.
새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비와 코로나 덕에 한가해진 일상.
코로나는 거의 휴면 중이던 동창 단톡방까지 달구어놓는다. 날것으로 유포되는 루머와 음모와 공포의 여러 형상들. 보고 있노라니 코로나의 숙주 노릇 두려워 기꺼이 공포와 증오의 숙주가 되어가는 형국이다. 우한 폐렴, 대구 코로나... 질병의 해석과 명명도 난무한다. 누가 어떻게 부르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누구의 정체성이나 대상과의 맥락이 드러나는 것이니, 모든 해석과 명명은 저마다의 진실은 가리킨다. 그렇듯 수없는 분신 이미지 출현시키는 코로나는, 이 물신의 시대, 단연 우월한 사물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신종코로나는 현재의 지식 한계를 벗어나 진화한 사물이다. 과학이 통제할 수 없는 지점에 있다.
과학의 욕망은 앎(지식)이다. 전문가는 과학 지식의 체계로 사물을 보고 세상을 이해한다. 앎이 곧 통제요 지배지만 앎의 한계가 그 세상의 한계이기 일쑤다. 새로 출현한 사물은 과학의 간곡한 명명을 뿌리치고 미지의 망망대해를 헤엄쳐 달아난다. 앎이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 지평을 개척한다.
앎의 욕망 너머에는 물신화物神化의 충동이 도사리고 있다. 앎의 영역을 벗어나 출현한 신종 코로나는 그러므로 일종의 절대적으로 우월한 사물, 거의 신적 존재, 불가능한 욕망의 대상으로 어른거린다. 그 지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창세적 사건으로 출현하며 세상을 교란한다. 기존의 앎과 삶의 체계를 흔들어 재구성되도록 강제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신전이 건설되고 급조된 교리가 유포된다.) 코로나 빅뱅 이후의 삶과 국가는 더 이상 어제의 그것들이 아니다.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통제불능의 두려움이 과학을 패닉에 빠뜨린다. 전문가의 타자공포는 지식체계의 교란과 함께 오는 것이기에 때로 일반대중의 그것보다 극적이거나 원근법적으로 과장되기도 한다. 공포와 혐오의 숙주들 무리에 과학으로 무장한 전문가 집단까지 가세할 때, 바야흐로 코로나는 진정 숭고한 물신의 지위로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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