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운동삼아 앞산만 기웃거리며 먼 산질 게으름께나 피다가
이달 하순쯤부터 꽃소식 풍겨오는 남도나 좀 열심히 댕겨볼까나, 했더니
어느날 문득 내 사는 동네가 역병 코로나의 폭심, 글로벌 악의 축이 되어 있다. 헐, 신천지라니! (조선시대도 아닌데 먼 이름이 그러노? 누구 생각나게시리). 종종 그 앞 지나댕겨도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몰랐는데... 덕분에 그간 안쓰고 버티던 마스크 뒤로 짐짓 쫄며 숨어든다.
무심히 오갔던 앞산길이 문득 적막해진다.
모처럼 쾌청한 일욜, 좀 넉넉히 걸어보려 물 지고 나선다. 숨죽여 지냈을 며칠이 갑갑했던 걸까? 의외로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사태가 만든 풍경 중 하나가 한결 수월해진 교행이다. 좁은 등로 독차지하며 알아서 비키란 듯 다가오던 이들이 사라졌다. 외면하며 교행하거나 옆으로 비켜선다. 가끔 보던 인사하는 모습도 사라졌다. 다들 묵묵 제 갈길만 간다.
난 마스크 끼고 산길을 걷지 못하는지라(다들 잘도 그러더라만) 만나는 이 불안감 주기 싫어 주등로 피해 샛길로만 잇는다. 발길 흔적 흐리고 낙엽 수북한 길, 한시간 이상 사람 구경 못할만큼 호젓한 샛길들 거쳐 전망대 오른다. 휴일이지만 코로나 충격 탓에 나이든 이는 몇 없고 대부분 겁없는 젊은이들. 햇살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코로나시티 등지고 호호깔깔 인증샷까지... 흐뭇한 풍경이다. 능선따라 가지 않고 돌탑 내려섰다가 왕굴 옆 샛길 거쳐 정상 오른다. 역시 수북한 낙엽, 가파르고 호젓하다. 첨보는 기도굴까지.
케이블카 능선에서 본 대구. 도시는 평화로워 보였다.
앞산 정상에 선다. 작년에 개방된 이래 남녀노소 발길 잦은 곳이다. 박무 사라진 하늘, 모처럼 조망 일품이다. 북으로 길게 벽을 치는 팔공산릉 선명하고 좌우로 유학산과 보현산, 북서쪽 금오산 옆으로는 아득히 하늘금 긋는 민주지 능선, 동남으로 운문 가지산 이어가는 낙동정맥 줄기, 서쪽 낙동강 줄기 너머엔 유아독존 가야산과 가조 일대 명산릉들, 그 왼쪽 서남향으로는 황매 너머 지리산까지 가물가물... 사람들도 많다. 산악회들 다 멈춘 탓일까, 제법 각잡은 배낭진 이들 꽤 보인다. 전망대엔 주로 젊은이들, 정상엔 평소 산 좀 댕길법한 꾼들. 코로나가 바꾸어놓은, 평소답지 않은 풍경들이다.
청룡 너머 비슬까지, 지맥 줄기 좌우로 겹쳐지고 어긋나며 흘러내리는 줄기들, 늘 보아도 질리지 않는 멋진 그리메 바라기하며 능선길 잇는다. 산성산 공터에 이르니 역시 사람들 많다. MTB 몇 대까지 가세하여 사뭇 웅성인다. 비교적 호젓할 성 싶은 가창능선 접어든다. 조망바위 서서 상원산, 선의산릉 너머 영알 산군 찬탄하는데 등뒤에서 남녀 웃음소리 들려온다. 돌아보니 아까 본 그 MTB, 성큼 가까워지더니 깔깔 비명 흩날리며 휑하니 내달려 사라진다. 용두골로 내려 다시 치올랐다가...자락길 거쳐 출발지점 돌아온다. 막바지 산책로에선 주머니에 쑤셔두었던 마스크 다시 꺼낸다. (아닌 척이지만) 어쩔 수없이 민폐노인 눈총이 무서운 게다...ㅠㅠ
주차장 가며 건너본 축구장엔 초딩들 몇몇 공차고 있다. 마스크 한놈 안한 놈... 필시 저놈들, 말리는 엄마에게 애들은 코로나 잘 안걸린다며 받아치고 뛰쳐나왔을 성 싶다. 집으로 오는 길, 신천 굽어보니 며칠 전에 한그루 피었던 매화가 그새 몇 더 피었다. 멀어 향은 맡을 수 없지만, 부시게 만발한 꽃빛 화사함이 물건너 길건너 코로나 건너 물밀듯 온다. 역병 아무리 창궐해도 그래, 봄은, 오는 거다. 머잖아 저 신천 뚝방따라 개나리 총총 흐드러지고 개불알풀꽃 무리무리 둔치를 수놓으리니.
코로나 물리치며 막무가내 쳐들어오고 있을, 비정한 칼날같은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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