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성암사 입구 공터(08:25) - 여근곡 갈림(09:26) - 오봉산 정상표지(10:15) - 부산성 묵밭에서 점심 - 낙동정맥 716봉(12:43) - 711봉(13:05) - 성암사(14:50)
기이하고 아름다운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펼쳐지는 무대, 오봉산릉과 부산성. 오랫만에 다시 한바퀴 돌아본다.
새꼬롬하게 찌푸린 하늘에 먼 조망 흐려 산빛 나질 않는다. 봄이나 가을, 산빛 고울때 다시 오리라던 그때의 다짐이 머쓱해진다.
그래도 역시 좋은 코스다. 볼거리 다양한 데다 제법 호젓하기까지 하다. 오는 길에 여근곡 들러 옥문지 거쳐온 약수까지 한잔 마셨으니 구색은 다 갖춘 셈이다.
성암사 앞 들머리 물길 건너며
잠시 숨차게 치올라 능선에 붙으면 한동안 사면따라 여유롭게 이어지는 솔숲길
능선에서 건천톨게이트쪽 굽어보다.
오른쪽은 단석산 북쪽 자락이고 왼쪽은 용림산 남쪽 자락, 가운데 멀리 흐린 건 선도산일 듯.
품산 저수지 너머로 건천읍과 구미 용림산릉. 그런데 넘 흐리다.
산소에서 건너본 복두암 뒷봉우리 571봉
흐리나마 복두암이 분별된다.
가파른 능선 에둘러 오르니... 비교적 선명히 유지된 성축 넘어 484지점.
이제 능선따라 수월히 간다.
천지. 물론 이건 자연못이 아닌 인공못일 듯.
천지 위쪽 산소에서 잠시 휴식하며. 햇살나면 정말 양지바를 텐데...
다시 오봉산정을 향하여
마루금 조금 아래쪽으로 참호처럼 패인 뚜렷한 길을 따라가서 만난 조망바위에서 부산성 고랭지 능선 건너보다.
그런데 이 조망처, 저 건너 능선에서 보면 병풍처럼 드리워진 바위들 있는 곳인데, 이번에 첨 오는 곳인가 했더니 예전에도 왔었다. 기억을 못 했을 뿐...
당겨본 만교사.
예전 지도엔 분명 매교사라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만교사다. 예전 지도가 잘못 표기된 걸까, 이름이 바뀐 걸까.
당겨본 단석산릉. 오봉산 혹은 부산릉은 단석산을 꽤 멋스럽게 보는 곳 중 하나일 듯.
능선 조망바위에서 굽어보다.
용림 구미산(594m) 능선 왼쪽으로 인내산 능선, 뒤로 흐리게 보이는 건 낙동정맥 어림산과 봄꽃으로 유명한 금곡산릉일 듯.
당겨본 여근곡 부근.
저수지 바로 윗쪽이 유학사인데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여근곡에서 흘러내린 물은 저 저수지로 들게 된다.
아래는 비교적 잘 포착된 여근곡 사진.
(원본사진 출처 : 이창우의 내청춘 산에 걸고)
512봉 능선.
저 능선 오른쪽 조망좋을 바위까지도 함 나가볼만 하겠다 싶었는데... 짱이 예전에 다녀왔다고 한다. 근데 기억이 없다.
돌아와 기록 찾아보니...
맞네, 헐!
지나와서 돌아보다
돌아보는 512봉 능선
오봉산 정상석은 실제 정상이 아닌 지점에 놓여 있다.
정상석봉 직전에서 건너본 실제 정상부 모습. 정상표지석 놓인 가짜 정상은 사진 왼쪽 끝지점쯤.
서남쪽으로는 분지처럼 펑퍼짐한 산세로 너른 개간지(부산성 내부)를 담고 있지만, 동북쪽으로 유난히 가파른 산세를 보이는 오봉산릉. 그래서 경부고속도를 달리면서 보면 단연 눈길 사로잡는 형세다. 참고로 부산성(富山城)에 대한 문화재청의 공식 설명을 인용해 본다.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쌓은 신라 산성으로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한다. 주사산·오봉산·오로봉산·닭벼슬산이라고도 불리는 부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세 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성이다.
산성이 있는 곳은 대구에서 경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선덕여왕 때 백제군이 이 산을 넘어 옥문곡(일명 여근곡)까지 침입한 일이 있었다. 그 이후에 경주의 서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외곽산성으로 조선시대 전기까지 왜구의 침입에 대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성밖은 4면이 경사가 심하고 험준하여 방어에 적합하다. 성안에는 넓고 평탄한 지형이 많으며 물이 풍부하여 신라의 중요한 군사기지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효소왕 때 화랑 득오(得烏)가 죽지랑(竹旨郞)과의 우정을 그리워하며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지은 곳으로도 유명한 곳으로, 현재는 남문터와 군의 창고터, 군사훈련을 시켰던 연병장터·우물터·못터, 그리고 비밀통로인 암문터 등이 남아 있다.
정상석봉에서 건너본 실제 정상부. 주사암 바로 뒤에 솟은 암봉인 저긴 아직 올라본 적 없다.
정상 서쪽으로 뻗은 암릉지대로 가다
마당바위에서
사룡산 건너보다.
정상부 일대 고만고만한 네 봉우리 있어서 그 이름일까? 그럼 그 서남쪽 구룡산은?
건너보는 부산성 고랭지 능선
신랏적부터 있었을 법한 촛불구멍. 지금도 오봉산은 무속인들에게 인기있다.
신라인의 불국토라 불리는 경주 남산이 보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문화를 구사하던 계림 왕족과 귀족들의 불교성지라면, 건천 오봉산 일대는 애당초 계림의 지배에 호락호락하지 않은 지역세력과 불교 이전 토속신앙의 기반이 강했던 지역 아닌가 싶다. 비교적 너른 건천들판이나 개간이 가능한 구릉지형의 산세들도 분권을 꿈꾸는 지방세력의 물적 기반으로 작용했을 터이고.
삼국유사가 전하는 오봉산 일대에 얽힌 설화들이 그런 흔적을 담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가령, 여근곡과 관련한 선덕여왕 설화는 토속신앙이 즐겨 구사하던 물신숭배와 에로티시즘 요소를 왕권강화 이데올로기로 포섭하여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조금 확대해석해보면 여근곡에 매복한 백제군이 과연 지역세력 (일부)의 협조없이 가능했을까, 그런 절묘한 지형을 누가 가르쳐 주었을까... 따위의 의문이 가능해진다. 추측컨데 이 사건을 계기로 건천 지역민의 애호지 여근곡은 토속신앙이 지닌 신화적 위력을 어느정도 잃거나 그 관리의 일정 지분을 계림 정부에 넘겨주어야 했지 않을까 싶다.
기이하기 짝이없는 주사암 전설은 오봉산 일대에 강성했던 토속(신앙) 세력과 제휴하며 불교에 포섭하는 드라마처럼 보인다. (사금갑射琴匣이란 대목이 있긴 하지만) 왕실권력을 희롱하며 그에 대립하는 신통력 혹은 주술은 신라불교의 전통과는 좀 거리가 있다. 이차돈의 순교로 폭발적인 위력을 보인 신라불교는 전형적인 왕실불교 귀족불교로 발전해나갔지만, 시대배경조차 알수없는 이 오봉산 불교 설화는 왕권과 대립하는 주술과 무력을 적극 긍정하는 점에서 꽤 흥미를 자극한다.
한편으로 이 주사암 설화는, 로마가 북유럽을 정복하고 기독교를 전파되는 과정에서 게르만 토착 신화 전설을 포섭, 기독교 개종설화로 각색해나간 대목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통일신라 효소왕대의 일이라는 '모죽지랑가' 배경설화 역시 탐욕과 처벌, 보복으로 이어지는 선악대립의 구도를 띠지만, 삼국통일의 주동력이자 계림권력의 총화라 할 화랑제도에 대립하는 토속세력의 저항이 느껴지기도 한다. 통일 이후 적을 잃은 화랑제도가 어떤 변질을 겪었을지는 짐작되는 바다. 함부로 추측컨데, '모죽지랑가' 설화엔 득오곡이란 낭도를 유난히 총애한 죽지랑 배후의 계림권력과 부산성 일대를 지배하던 토호의 갈등 내지 권력대립이 숨어있지 않을까 싶다. 허나 비극의 내막은 시간 속에 사라지고 승자들의 아름다운 노래만 길이 남았다.
(위에서 언급한 선덕여왕, 주사암, 모죽지랑가 배경설화 내용은 이전의 오봉산행기(0903..)에 장황하게 옮겨놓았기에 여기선 생략.)
뒤돌아보다. 정상과 정상석봉이 다 보인다.
저기가 마지막 암봉. 이후로는 천촌리 쪽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는데, 밧줄 하나 걸려있다.
천촌리와 비탈논들
다시 마당바위 기웃.. 드라마 촬영지로도 뜬, 워낙 명소라.
고즈넉한 절집 주사암 마당에서.
주사암 동쪽 공터에서 이어지는 능선길 따르지 않고 사면 가로질러가다. 지름길인 셈.
옛우물터 다녀오시는..
억새와 잡초밭으로 변한 옛목장터 지나며
주사암 돌아보다.
선악을 넘어서는 요기妖氣와 괴기스러움, 주술과 신통을 넘나들며 나약한 인심을 사로잡으며 왕조권력마저 능멸했던 신앙의 위세를 보여주는 주사암 설화는 이제 까마득한 옛 이야기, 지금은 다만 가라앉은 하늘아래 먼 적막이 아름다운 겨울산사의 뒷모습이다.
고도 조금 높이니 마당바위도 성큼 다 드러난다.
속수무책 잡초밭으로 변해버린 여기, 예전엔 지천의 냉이밭이더라는 일행의 말씀에 다들 아쉬움 삼키며 뭉기적거리다.
목장 있던 당시의 유물, 낡아가는 폐가 건너보다.
세월무상, 억새와 잡초밭 사이로 난 저 길이 신랏적 향가 '모죽지랑가'의 드라마틱한 배경설화가 펼쳐진 무대였을 것이다.
간 봄을 그리워하매
모든 것이 울어서
시름하는구나
아름다움
나타내신
얼굴에 주름살이
지려 하는구나
눈 돌이킬
사이에나마
만나뵙기를
짓고저
죽지랑이여, 그리운
마음에 가는 길에
다북쑥
우거진 마을에 잘 밤이 있으리오
'오랫만에 다시 읽으니 참 아름답다.
화랑으로 인연맺은 부하가 자신을 지극히 위해준 우두머리를 그리는 노래지만, 충성 따위는커녕 비감어린 기묘한 연정마저 감돈다. 멋스런 신라인들이었다.'
라고 예전 산행기에 적었더랬다. 그렇긴 하다. 경직되고 상하위계 강한 조선의 유교 윤리와 전혀 다른, 솔직하고 분방한 감정표현의 시대가 신라였을 것이다.
허나 향가의 지은이 득오곡과 죽지랑의 인연 설화는 시종일관 아름답지만은 않다. 꽤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전개되는 탐욕과 집착의 서사, 종국에는 고대적 잔혹함마저 풍기는 보복극으로 마무리되는, 조금은 기이하고 처절한 이야기다. 역사현실에서 일방적 선악구도는 승자의 관점일 경우가 대부분이니, 이 이야기 또한 계림왕실과 변방토호의 권력다툼에 연루된 재주많고 기구한 운명의 한 사내 모습이 앙상히 투영되어 보인다.
득오곡과 죽지랑의 구체적인 신분계층은 무엇이었을까? 또 이 설화는 효소왕대에 자주 일어났다던 크고작은 반란들과는 관련이 없을까?
향기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노래에 일말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아비의 죄를 뒤집어쓰고 물에 빠져 죽었다던 아이의 글썽이는 눈망울...
화랑은 아니지만... 풍류산천, 구애됨 없는 걸음들...
조망바위에서 돌아보다. 지도엔 바로앞 봉우리가 주사산(566m)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좀 이상타 싶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주사'란 지명은, 검푸른 바위들과 가파른 벼랑 따위가 어우러져 조금은 신비로운 별세상같고 기이한 기운마저 풍기는 저 경관과 지세를 반영하는 것이지, 저런 둔덕같은 동산과 관련된 이름이 아니다. 주사산은 필시 고증없이 멋대로 지어낸 지명같다.
다시 꾸준히 오른다
바람없이 포근한 묵밭에서 점심상 편다.
식후에 일어서 다시 돌아보다
원기보충, 낙동정맥 분기봉(715m) 향해 오르다.
낙동정맥 능선에서. 서문쪽으로 다녀올까 말까...
예전에 두번쯤 지나온 길임에도 서문터가 어땠던지는 별 기억이 없다. 검은 돌무더기 몇 굴러다니는 곳이었던가?
정맥능선따라 진행하며
억새 우거진 능선 걸으면 왠지 기분 좋아지며 마구 똑딱이고 싶어진다.
다시 돌아보다. 신비롭다.
그래서 오봉산은 숱한 전설의 무대였던 듯.
난데없는 비명에 다들 놀라서 돌아보다.
고라니!?
고랭지밭 앞두고 건너보는 단석산릉
저 너머는 백운쯤인가...?
오늘이사 조망 흐리지만, 예서 보는 단석에서 고헌까지 정맥 줄기는 참 아름다웠다.
아 참나무는 병일까? 관절마다 혹이 달렸다.
낙동 711봉과 오른쪽 만봉산.
낙동줄기 760봉에서 정맥과 헤어지고 달래고개 지나 둥글게 치솟는 만봉산, 예전에 장육산 사룡산과 이어 걸었는데 조망이 무척 좋았던 기억이다. 일대에선 고도 제법이라 좀 두드러져 보이기도 하는 편.
겨울 고랭지밭, 얼었다 녹은 흙이 엄청 질척인다.
배추인지 양배추인지... 그대로 묵혀버린 모습이 안쓰럽다. 누군가의 억장이 무너져갔을 현장.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임도에서.
한참 쉬며, 우습고 잼난 얘기에 배 잡기도 하며...
복두암 가는 길은 막아놓았다.
그런데 1000일 결사정진 무문관이라니, 대단한 작심이다. 첩첩 울타리는 그 방증이렷다. 복두암길 조망이 탐나지만 발길 돌린다.
종교의 사회적 순기능이나 그 본질의 발휘가 어지간히 의심스러운 이 시대에 저런 고전적 수행방식이 과연 무슨 뜻일까 자문하지만,
속편한 자리 꿰차고 앉아 얄팍한 힐링 따위나 썰푸면서 유명세 누리는 것보담, 저렇듯 세상 등지고 묵묵 정진하는 수행방법이 훨씬 더 와닿는 무엇이 있다.
정진하시는 이들, 저마다 부디 한 깨달음 얻으시기를...
이번에 못가본 복두암길이므로 예전 기록 몇...
복두암 가는 길에 당겨본, 오전에 오른 능선 사면의 병풍같은 바위
벼랑에서 굽어본 암릉. 총총 칼날들이 무척 인상적이던..
묘한 분위기 감돌던 예전 복두암. 물론 지금은 철벽의 정진도량이겠지만.
지금은 역시 철통같이 막힌 성암사쪽 울타리
동행의 흥미진진 청춘편력에 귀 기울이며 하산하는 길에
성암사
차량으로 이동하여 여근곡 둘러본다.
들머리 솔숲, 오랫만에 만난 전형적인 신라송이다.
뒤돌아본 용림 구미산릉. 하늘 많이 맑아졌다.
유학사
단청없어 단정하고 고풍스런 대웅전, 썩 맘에 든다.
당우 편액과 주련만 금박이라 더욱 두드러진다. 주련 내용은 울나라 절에서 가장 흔히 보이는 찬불게인데 낯익은 글씨체다. 3자나 쓰인 '없을 무無'자를 서로 다르게 썼음이 흥미롭다. 불자라면 다 아는 거지만 참고로 옮겨보면
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무여불)
천상천하에 부처님 같은 분 없나니
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역무비)
시방세계에도 비할 데 없네
世間所有我盡見 (세간소유아진견)
세상천지 내 다 보아도
一切無有如佛者 (일체무유여불자)
부처님같은 분 없도다
또 유학사는 바닷가 절도 아닌데 산신각 외에 용왕당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근곡에서 나는 물을 지키는 곳이라서일까?
신화적 상상력에서 물은 만물을 낳는 근원적 모성(여성성)과 통한다. 통상 절집의 산신은 남신 할배다. 여근곡을 품은 여기 오봉산신은 여성일까? 지리산신 마고할매처럼?
그게 아니라면, 혹시 용왕당에 선덕여왕이라도 용왕님 곁에 모셔져 있을라나? ㅎㅎㅎ
유학사에서 잠시 올라가면 만나는 옥문지.
초라한 규모나 평범한 생김에 다들 '애개개~' 한다. 왼쪽에 파이프가 보이는데, 유학사 약수터의 물이 바로 여기서 내려가는 것임을 입증하는 셈.
유학사로 되돌아오니 약수터엔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물을 뜨고 계신다.
물맛 참 좋다며, 한잔 마시고 가라시는데...
(사실은 입맛 무디기 짝이 없지만) 이산저산 댕기며 맛있는 약수께나 마셔보았노라 자처하는 입으로 품평하자면,
유학사에서 마신 옥문지 약수는
맛이 나쁜 건 아니나 딱히 맛있는 물이라기도 힘든 편인데, 뭐랄까... 아주 시원하지는 않고 살짝 미지근한 듯하면서 좀 들큰하게 감기는 것이...
딱 오봉산 여근곡 음수 그 맛이더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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