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화방고개(08:00) - 덕구산(08:57) - 응곡산(10:20) - 만대산(11:40 점심) - 741봉(13:00) - 소삼마치(13:52) - 오음산 임도(14:50) - 임도따라 - 오음산 노드통신소 정문 - 동남사면 우회 - 초소 조망처(15:40) - 서남사면 철책따라 - 배너미재 - 오음산(16:10) - 삼마치(17:20)
첫 눈산행 맞이하는 세상은 잠시나마 언어를 알지 못하는 나라.
아침빛 깨치지 않은 침묵의 세계, 먹먹한 가슴으로 흰 들판 바라본다.
길었던 여름과 짧았던 가을, 인디안 써머처럼 반짝였던 11월의 뒷모습이 설원 너머 아득하다.
잘 가라, 사계의 산줄기 따라다니며 자주 가팔랐던 기복의 시절들이여.
돌아보는 12월은 계절에 없는 하늘이니, 비로소 또다른 풍경 찾아 떠도는 북풍의 시간.
홍천 동면 화방고개에서 만대 오음산 거쳐 횡성 홍천의 경계 삼마치까지,
짧지 않은 거리에 오르내림 만만찮은 구간이지만, 첫 눈산행 설레임의 힘으로 지친 몸 끝까지 밀고간다.
구름 드리운 하늘 아래 원근 산릉들, 흰눈 뒤집어쓴 겹겹 어깨동무로 끝없이 너울지며 펼쳐진다.
길 밖으로 떠도는 그 이름들 찾아 하나하나 불러줄 수 있다면,
불현듯 기억 되찾은 순수 질량체들은 저마다 단순완고한 세상의 중심, 에워싼 모든 가장자리들을 끌어당기며 한결 우뚝해지리라.
허나 길은 자주 풍경과 어긋난다. 햇살이 알지 못하는 안개의 미립은 꽁꽁 지평을 감싸 닫는다.
물일까 먼지일까, 분별없는 저 대기 중 용해물질에 굴절되는 오음산릉이 문득 길밖 다른 세상만 같다.
먹방 곁눈질하며 묵방산 건너본다. 한숨 삼키는 지리멸렬 막다른 골목들,
화해할 수 없을 듯한 거리 잇는 임도 남북의 동면 개운리와 좌운리. 햇살 좋아 개운이고, 구름 앉아 좌운일까?
고운 이름들 혀끝에 굴려본다. 꽃골 동막골 아래위 산수골 돌모루 구미말, 끝말 숯가마골 둔지말 청룡말 샘골 구석골...
오음산 가며 돌아본다. 장성마냥 가로뻗는 만대산 너머로 몽롱 어답산이 먼지에 잠겨든다.
헉, 학, 쳇, 퇴, 흥야~... 다섯소리 뱉으며 오르는 오음산정, 꼭꼭 막힌 정상보다 암릉 연이은 군부대 자리가 여러모로 명당이다.
풀린 날씨에 질척이는 눈길이 재미롭지만 않다. 아이젠 아래 낙엽과 눈뭉치 달라붙어 나막신 꼴이다.
잠시 가파른 삼마치 하산길, 줄줄 미끄러지며 간다. 겨울숲 금빛 치장하며 찢듯이 드는 저녁햇살이 곱다.
낙조 아래 마지막 봉 건너본다. 막막 가로닫힌 숲이지만 줄기따라 끝없이 길은 이어진다.
검게 젖은 삼마치 옛길이 고요하다. 저만치서 피어오르는 더운 김 보인다.
알콜과 땀방울, 더불어 증발하며 거칠고 메마른 열정들 비로소 잦아든다.
화방고개에서 바라보다.
높은 구름 아래 흰눈 덮인 벌판, 돌아온 계절의 빛 앞에서 잠시 망연하다.
들머리부터 가파르게 치오른다.
두터운 낙엽위 새 눈이라 줄줄 미끄러진다.
한동안 줄서서 간다.
날등따라 이어지는 솔숲이 눈빛과 대비되어 싱그럽게 느껴진다.
시야 트이는 곳 없어 숲사이로 먼산 건너본다.
가야할 덕구산, 고작 600대 산릉임에도 설경 덕분에 위풍당당이다.
오른쪽 숲 사이로 공작산 보인다. 뭉툭하게 솟은 정상부 때문에 눈에 잘 띈다.
길옆 바위에서 건너보다.
소학산릉과 그 뒤로 응봉산, 공작현쪽으로 이어지는 줄기. 맨 왼쪽은 화방고개.
남쪽 횡성의 산릉들. 이른 시간이라 비교적 시야 좋은 편이다.
태의산릉과 어답산(나뭇가지 뒤), 멀리 흐릿한 건 치악산릉 쪽인 듯...
덕구산 오르며 뒤돌아보다
숲 사이로 본 공작산
헬기장 공터 올라서며
산불초소 옆에서 건너본 공작산. 당겨본다.
공작이란 작명 유래 궁금했는데 이제 보니 수긍이 간다. 썩 그럴듯하다.
한동안 군부대 철책따라 간다.
녹음철엔 아주 고약할 길이다. 우거진 덤불이 귀찮게 군다.
철책 벗어나니 기분좋은 솔숲길
나무 사이로 당겨본 어답산. 봉긋 비어져나온 뒷봉우리가 귀엽다.
오늘 코스, 만대산권 접어들기 전까지는 솔숲길 좋은 편이다
덕분에 조망 없어도 꽤 즐거이 간다.
갯고개 앞두고 시야 트이는 벌목지에서 돌아보다.
오른쪽 펑퍼짐한 봉우리가 덕구산, 그 왼쪽 뾰족봉이 대학산인 듯. 왼족 멀리로는 소학과 응봉산릉.
저번 구간에서 흐린 시야땜에 내내 감질나던 공작산릉, 아주 시원하게 트인다.
아래 눈덮인 노천리 들판 당겨본다.
삼밭 많이 보인다.
자료 찾아보니, 홍천은 근래 유명해진 인삼산지로 2001년부터 축제행사까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6년근 인삼을 가장 많이 재배하고 최적지로 꼽고 있는 강원도 홍천...
홍천은 타지역의 물이 전혀 유입되지 않고, 오직 홍천지역에서만 발원하여 흘러가 청정 1급수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사양토 및 양토가 밭 토양의 95.8%를 차지해 배수나 통기성이 좋고 재배지 경사가 7-15% 경사도로 물빠짐이 좋아 고품질 인삼 재배를 위한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주,야간 일교차(평균 12.1도)가 인근지역에 비해 크기 때문에 홍천 인삼은 조직이 치밀하여 가공시 수율이 높아 넓고 깊은 인삼의 효능을 가진 고품질 6년근인삼을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 생육 환경이 적합한 청정지역에서 재배되는 홍천 인삼은 도내 6년근 생산량의 33%를 차지하며 6년근 인삼의 주산지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대자연의 신비로 태어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갖춘 물 맑고 공기 좋은 홍천에서 생산되는 신비의 영약인 6년근 인삼은 홍천5대 명품중에 하나로 홍천군민들의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특산물로 자리매김하였다.
(2013. 11.28 스포츠조선 광고성 기사에서 인용)
공작산 서북쪽 산릉.
깃대봉처럼 휘날리는 산세가 인상적인데 가리산 쪽에서 이어져 오는 춘천지맥 줄기 아닐까 싶다.
공작산릉 다시 함 더...
예전 공작산행은 아쉬웠다. 제대로 능선 잇지 못하고 안공작재(왼쪽 잘룩이)에서 하산한 데다, 대기 흐려 조망조차 부실했다.
맘 같아선 공작현에서 수타사까지 쭈욱 함 내쳐봤으면 싶다.
갯고개 내려서며
갯고개에서
조만간 시큰둥해질 풍경이지만, 첫 눈산행의 감흥이니...
코만 있는 코끼리같다. 코가 길어 표정 슬퍼진...
응곡산 지나 먹방 임도 향해 가며 보는 만대산릉
사진 가운데쯤 가장 높이 봉긋한 게 741봉, 그 줄기 맨 오른쪽이 만대산(678봉)
먹방임도 가는 울창숲길
오른쪽으로 보이는 묵방산.
묵방, 먹방, 모두 막다른 골짝이란 뜻으로 통한다.
지금이사 수도권 사람들 교통 빈번한 홍천이지만, 예전엔 이곳이 홍천 동면 중에서도 어지간히 오지였던 게다.
심심풀이삼아 찍어본 딱따구리 구멍.
드릴로 뚫은 듯 정교하다(촛점이..ㅠㅠ).
먹방 임도 내려서며 건너보는 어답산.
주변에 큰 산 없어 실고도에 비해 높아보인다. 횡성호 바로 북쪽이니 호수 굽어보는 조망 좋을 듯하다.
어답산(御踏山)이란 희귀한 이름은 2000여 년 전 진한(辰韓)의 태기왕(泰岐王)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태기왕이 신라 시조 박혁거세에게 쫓겨 횡성과 평창의 경계를 이룬 태기산을 거쳐 이곳 어답산으로 피해왔는데, 곧 왕이 밟은 산이라 하여 어답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태기왕이 여기에 와 어탑(御榻·왕이 깔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하는 도구)을 놓고 쉬었다고 하여 어탑산이라고도 부른다’고
(한국땅이름사전에서 재인용)
어답이라니, 고작 부족국가 시절 족장에 대한 지나친 공경의 표현 아닌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어답이란 지명엔 패주왕에 대한 일종의 연민이 깃들어 있지 않나 싶다.
신라가 나라꼴 제대로 갖추기도 전인 그 시절, 이 궁벽한 깡촌 사람들 눈에 비친 태기왕이나 혁거세의 모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연민이나 호기심의 대상이었을까, 점점 거대한 형태 갖추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가던 권력의 적나라한 실상이었을까?
좀체 짐작키 어려운 대목이다.
먹방임도. 기맥 북쪽 골짜기 먹방과 남쪽 좌운리를 잇는다.
임도 건너서 돌아본 공작산 방향
저 골을 따라나가면서 먹방 임도는 동면소재지 쪽으로 이어진다.
당겨본 모습
만대산 치올리며
바람없는 만대산 정상에서 여유로운 점심 후...
만대산에서 만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엔 눈이 몰려 제법 두텁다
깊은 곳은 50cm 이상.
까칠한 바위도 나타나고..
달라붙은 눈 얼어 올라서기 조심스럽던 바위구간.
바위 위에서 돌아보는 북서쪽(동면), 개운저수지 보인다.
날 개이면서 시야 많이 흐려졌다.
동남쪽.
주변 높은 산 없으니 어답산이 단연 우뚝하고, 발교산에서 병무 어답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뚜렷하다.
맨 왼쪽 나뭇가지 옆이 대학산, 발교 병무 앞쪽으로는 태의산릉인 듯.
가운데 분지처럼 자리잡은 벌판은 좌운리.
눈산행 삘 제대로 느끼게 하는 비탈 풍경..
741봉 오르며
741봉 직전 능선에서 북서쪽 사면 굽어보다
개운저수지쪽
741봉 직전 가파르게 올라 뒤돌아보다
조망없는 741봉 지나, 몇 걸음 내려서면 시야 툭 트인다.
하늘벽으로 막아선 오음산이 아득하니 딴세상같다. 허나 지금 이어지는 저 능선을 밟아밟아 기어이 가야할 곳.
내려선 741봉 뒤돌아보다
627봉 향해 가다
우회하며 올려다본 627봉, 바위 얹혀 조망 트이는 곳 있을 듯하다.
줄줄 미끄러져가며 급사면 기어오른다. 과연!
삼마치 터널 지난 중앙고속도가 홍천을 향하여 시원스레 뻗어간다.
발아래는 동면 일대, 멀잖은 홍천 읍내지만 터널 지나는 남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조금 왼쪽.
멀리 희끗한 산릉은 삼마치 고개 지나 담구간 첫 봉우리에서 분기하는 줄기의 매화산릉일 듯.
627봉에서 보는 오음산.
왼쪽 봉우리 지나 내려서면 소삼마치, 너머로 이어지는 능선 보고 있으려니 한숨 절로 난다.
지금은 큰길 노릇 다한 옛고개길 소삼마치, 홍천 동면과 횡성 공근면 잇는다.
5번 국도와 중앙고속도 뚫리기 전엔 삼마치와 함께 횡성과 홍천을 잇는 주교통로였을 것이다.
육군1107야공단 장병들의 피땀으로 다듬어진 길임을 알리는 낡은 표석 하나 우두커니 서 있다.
이정표 노릇 다했다 해도 기맥꾼들 자주 동무 해주니 그리 쓸쓸하진 않을 터.
소삼마치 바로 위, 흥미로운 표석 있다.
군사독재시절 가투 시위자들 훈련장도 아니었을 텐데^^,
'화염병제조 투척훈련장'이라 적혀 있다.
예전엔 군에서 저런 것도 가르친 모양인데, 80년대초 군생활한 나로서도 금시초문.
6.25때 북한 탱크에 호되게 당했던 경험을 반영한 전술인 듯.
숲 사이로 돌아보는 만대산릉.
678만대 741만대 634만대, 무려 세 만대로 이어지는 장성처럼 뻗은 산릉이다.
산자락에 만채의 집터 삼을만한 너른 곳 있다 하여 만대萬垈라 한다는데 별로 미덥지 않다.
지형도상 그런 곳 보이지도 않거니와,
차라리 길게 가로뻗은 산세의 묘를 살려 끝없이 이어진 띠란 뜻으로 萬帶라 적거나
봉봉마다 만채의 집이 앉을만큼 길게 뻗는 산줄기라 해석하는 쪽에 더 구미 당긴다.
소삼마치 지나 한동안 부드러웠던 능선 끝나고 한 봉우리 숨차게 올라섰다 내려서니,
오음산 노드통신소 가는 포장임도.
능선으로 갈까 했으나 우리 일행 선답 흔적이 없다. 잘 됐네~~
그냥 좋은 길 따른다.
길옆에 웬 굴이?
임도에서 보는 오음산.
정상 봉우리는 군부대 앉은 봉우리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오음산 남릉에서 갈라진 줄기의 감투봉 능선
꾸준한 오르막, 임도 걷기도 어지간히 숨차다.
경사 누그러지는 지점부터 비포장 눈길. 걷기 좀 수월하다.
응달이라 눈이 잘 녹지 않고 있다.
멀리 두 만대산 보인다.
시야 확 트이는 지점에서 건너보다.
동으로 가파르게 패인 골짜기 너머로 만대산릉 장하게 뻗어가고, 오른쪽 멀리 흐릿한 어답산.
노드 통신소 정문 지나, 동남사면 우회하는 산길 접어드니 제법 심설산행 삘~이다.
남릉으로 이어지는 저 안부에서 급우회전 서사면 철조망길 타고 오른다.
그러니까, 통신소 봉우리 가운데 두고 시계방향으로 반바퀴쯤 도는 셈.
초소 조망처에 올라 돌아본다.
만대산 줄기가 참으로 장하다. 실제론 별 재미 없겠지만 함 밟아보고 싶은 충동 느끼게 하는 모습이다.
뒤돌아본 오음산 남릉.
안부 거쳐 우회해 왔기에 더 관심있게 돌아보는 줄기.
가야할 오음산정
철조망 매달려 가야 하는 지랄같은 길, 팔공산 생각난다.
녹음철엔 정말 한심하겠다.
철조망에, 와이어에, 쇠고챙이에...
장애물도 참 가지가지다.
철조망 구간 벗어나 숨 돌리며 보는 오음산정
눈덮인 공터에서 뒤돌아본 오음산 노드 통신소 봉우리. 암릉 암봉으로 연이어지는 당당한 위세다.
벼랑에 바짝 붙어 철조망 쳐져 있으니 저 북서사면을 따라선 도저히 진행 불가겠다.
만약 통신소가 없다면,
높이를 떠나서 저 봉우리를 오음산 주봉삼고, 929.6봉은 오음 서봉이라 부르는 게 낫겠다.
오음산(五音山). 유래와 무관하게 '다섯 소리'란 운치있는 뜻을 가진 산이름이
바람처럼 흐르는 소리를 전하거나 포착하는 통신소 자리로 잘 어울린다 싶다.
세상의 모든 빛깔을 오채五彩라 한다면 오음五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
그러므로 오음산은 소리의 우주, 그 중심. 빛의 속도로 달리는 소리들의 메카.
<바람의 소리 風聲>란 중국영화가 있었다. 특유의 상투적인 애국주의에도 불구,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수많은 주파수를 타고 흐르는 바람결같은 소리들을 걸러내는(무선통신 감청) 대목들이 흥미로웠다.
이빙빙이란 여배우의 연기도 꽤 인상적이었고.
(오음산 세부지도)
다시 올려다보는 오음산(五音山).
소리가 들어가는 독특한 산이름임에도 불구, 그 유래는 진악이나 동악처럼 음율을 고르는 게 아니라
꽤 기이하고 처연한 전설을 품고 있다.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과 동면,횡성군 공근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3개면의 분기봉이다.
전해지는 풍수설에 의하면 오음산에서 다섯 장수가 나올 것을 마을 주민들은 굳게 믿고 있는었데, 다섯 장수가 나면 재앙을 입는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장수가 나지 못하게 오음산 골짜기 바위굴에 구리를 녹여 붓고 쇠창을 꽂자 검붉은 피가 솟구쳐 오르며 다섯 개의 괴상한 울음소리가 사흘 밤낮에 이르더니, 주인 잃은 백마 세마리가 고개를 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여 그 뒤부터 산 이름을 오음산이라고 했다고 한다.
또다른 유래는 다섯가지 소리를 내는 짐승, 즉 여우 까마귀 살괭이 산돼지 꿩이 각각 한 골짜기를 점령하여 자신들의 골짜기를 벗어나지 않고 살았다 한다. 그래서 다섯가지 울음을 가진 산이라 하여 오음산이라고 한다.
(우듬지 산악회 한소절님 산행기에서 발췌)
장수가 나면 고장이 흥하는 게 아니라 망한다는 얘기, 슬프고도 흔한 이 땅 변방의 전설이며, 전형적인 구세주(메시아, 미륵) 신화의 틀이다.
오기로 한 장수는 억압받는 이들의 열망을 한몸에 담고 있지만 끝내 오지 못한다. 기다렸던 이들 스스로 패배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으로 장수의 탄생을 질식시켜 버린 것이다.
오음五音은 그러므로 질식된 탄생의 울음소리이자 배반의 비명이다. 허나 배반자들은 질식된 희망, 오음五音을 산이름으로 삼았다. 배반의 죄의식을 낙인처럼 그 땅에 새겨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기억하고 장수의 죽음을 영원히 기리고자 함이었을까.
이 땅의 수많은 전설이 저처럼 원망과 속죄가 역설적으로 결합한 구조를 지니지만, 오음산 유래는 이야기 골격과 소리의 빛깔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특히 처절한 피날레로 형상화되는 소리의 스펙트럼, 그 상상력이 자못 애틋하고 놀랍다.
또 백마 세마리란 대목은 자연스레 삼마치 고개를 연상시키며 또다른 시공간을 품어들이는 확장력을 과시한다.
오늘 코스의 종점인 삼마치(三馬峙 460m)는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과 횡성군 공근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5번 국도가 지난다.
예전에 고개가 하도 험하여 말 세마리를 갈아타야만 넘을 수 있는 고개라 삼마치라 불렀는데, 지금은 그 아래로 4차선 터널이 뚫려 있어서 잊혀져 가는 고개가 되었다.
홍천읍에서 가장 높은 이 고개에는, 임진왜란때 다섯마리 용마중 세마리가 왜군이 쏟아부은 구리에 묻혀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전래의 오음산 장수 전설이 임진왜란을 거치며 은근슬쩍 변조된 듯하다. 주인(장수)을 잃고 고개를 넘어 어디론가 달아났다던 백마 세 마리는 (용마로 둔갑하여) 결국 삼마치에서 왜군에 의해 구리에 묻혀 죽는다. 오음산 전설에서 달아난 말은 유예된 한 점 희망의 상징일 수도 있었다. 그것이 전쟁의 참화를 겪으며 영영 사라진다.
한편 세마리 말이 왜군에 의해 죽은 점이 부각됨으로써, 다섯 장수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이 얼마간 엷어지고 살해의 죄가 은근슬쩍 왜군에 전가되는 효과를 낳는다. 늘 그렇듯, 전과는 묻어야 하고 산자는 살아야 하는 법이니.
월운리와 창봉리 하산로 있는 배넘이재에서
오음산 정상표지
정면으로 드는 저녁햇살 받으며 하산이다.
한동안 가파르다.
밧줄 구간 내려선 이후부턴 산길 부드럽다.
뒤돌아본 오음산릉 갈림봉
660봉 너머로 해가 진다.
서향 능선, 마지막 한줌 햇살까지 탕진하며 간다.
삼마치 터널 위 옛길 내려서서 고개쪽 뒤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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