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달달 외우며 자랐던 국민교육헌장의 첫머리다. 지금 다시 보니 영락없는 개그 멘트 한 토막이다.
그처럼 '민족'이란 단어가 빠지면 모든 공적 수사가 공허해지던 시절도 있었지만, 글로벌이 대세인 요즘 민족주의는 통 인기가 없다.
그러나 싫건 좋건, 한국은 세계 어느나라보다 민족단위의 현실정치에 여전히 강하게 발목잡혀 있는 나라다.
아래 두 칼럼 중 <앵글로색슨과 일본>은 그 국제정치적 측면을, <통합진보당 탄압과 민주주의의 증발>은 그 국내정치적 측면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필자들의 서로 다른 이념이나 관점에도 불구, 여전히 우리 일상까지 지배하고 있는 '민족'과 관련 함 음미해 볼만한 주장들이다.
앵글로색슨과 일본
저명한 사회학자 찰스 틸리는 “국가는 가장 강력한 조직적 폭력집단”이라고 했다. 이 말을 약간 비틀어 국가 대신 민족이나 인종이란 단어를 집어넣으면 의미가 확장된다.
인류 역사 최강의 폭력집단은 단연 앵글로색슨족이다. 애초 독일 북서부에 살던 종족이었으나, 영국에서 켈트족들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자 용병으로 불려가게 됐다. 그런데 자신을 고용한 켈트족들을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 궁벽한 곳으로 쫓아내더니 나중에는 섬 전체를 먹어버린다. 이후 북미,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건너가 원주민을 학살하며 영역을 무한 확장해 나갔다.
‘가문의 영광’을 지키려는 앵글로색슨의 끈끈함은 유별나다. 스노든의 폭로로 뒤늦게 드러났지만, 2차 대전 이후 앵글로색슨 국가들은 ‘5개의 눈’이라는 무시무시한 동맹체를 결성해 전세계를 감시해왔다. 브래드 핏이 나오는 영화 <가을의 전설>을 봐도 그렇다. 영국이 독일과 전쟁을 벌이자,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른 미국인데도 아들 삼형제가 모두 참전하고 막내는 죽기까지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 앵글로색슨에 두 번 도전했다가 두 번 다 묵사발이 난 게르만인들이 도청 문제로 “앵글로색슨에 포위된 독일 안보가 위태롭다”고 외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아시아의 싸움꾼은 단연 일본의 야마토 민족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때 천하 제패 계획을 밝히는데, 그 배포와 야망이 대단하다. “명나라의 수도 베이징에 천황을 옮겨 수도로 삼고, 나는 상하이 근처 닝보에 살며 천하를 다스리고, 전쟁의 선봉에 선 다이묘들에게는 인도를 나눠주겠다.”
정화가 동아프리카까지 가는 항로를 개척했는데도 안으로 움츠러든 중국이나, 아예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한 우리 민족과는 기질이 다르다. 하지만 야마토족이 야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앵글로색슨족의 도움을 기다려야 했다.
몇 해 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일본의 전함 발전사를 관람한 적이 있다. 10년마다 전함의 덩치를 2배로 키우더니 끝내는 세계 최대급 전함인 야마토 전함을 만들어낸 가공할 속도를 보고 입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게 다 영국이 기술 가르쳐주고 돈 대준 덕이었다.
청일전쟁 때도 끼어들려는 러시아를 영국이 막아줬기에 일본이 맘 놓고 중국을 두들겨 팰 수 있었다. 결정적인 건 러일전쟁 때였다. 영국은 러시아의 발트함대가 쉴 수 있는 항구와 연료인 석탄을 철저히 차단해버렸다. 발트함대가 어쩔 수 없이 220일간 지구 둘레의 4분의 3을 돌아 쓰시마 앞바다까지 왔을 때는 싸워볼 기력조차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사용한 전비의 44%는 영국과 미국이 조달해줬다.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러일전쟁에 이긴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는 걸 앞장서서 인정해주었다.
그 뒤 일본은 자신의 ‘보스’가 누구인지를 망각하고 ‘영미귀축’에 대들었다가 원폭 두 방에 무너지고 말았다.
일본이 분명 배신을 때렸는데, 앵글로색슨족은 여전히 일본을 ‘넘버 투’로 총애했다. 아시아에서 소련이나 중국과 맞짱 뜰 만한 실력은 일본밖에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일본이 100여년 만에 다시 앵글로색슨과의 2차 동맹 구축에 나섰다. 내건 깃발은 집단자위권이다. 미국이 가장 먼저 공개적으로 승인해줬고, 두번째, 세번째 승인국 역시 앵글로색슨 국가인 영국, 호주다. 세월이 흘렀지만 변한 건 없는 셈이다.
이번엔 중국마저 150년 동안 외세에 당했던 굴욕을 되갚아주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싸움판이 더 커져버렸다. 무능한 조선은 앓는 소리 한번 못하고 당했다. 과거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말 그대로 민족의 지혜와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할 때이다.
- 김의겸 논설위원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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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탄압과 민주주의의 증발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를 명기해 두어야 한다. 나는 의회 활동에 중점을 두는 정당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며,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한국 진보정당들의 의회주의적 경향에 대해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집권 극우파는 ‘민중’과 같은 단어를 문제 삼아 통합진보당을 ‘사회주의’로 몰고 있지만, 내가 본 통합진보당은 ‘한국 특색의 온건 사민주의 정당’에 가깝다. 요즘 논란이 된 통합진보당의 강령이라도 한 번 정독해보라. 통합진보당은 자본주의 그 자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하려고 한다고 거기에 명기돼 있다.
그렇다면 폐해가 없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또 거기에서 통합진보당이 노동자·농민과 함께 중소상공인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나오는데, 중소상공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아무 언급도 없다. 비정규직들에게 한달에 100여만원을 주는 여느 재벌 하청공장의 주인도 중소상공인이라면 그와, 그가 착취하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정말 동시에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의 기준으로는 통합진보당이 좌파라면 한참 온건해 빠진, 현존의 사회와 거의 제대로 대립의 각을 세우지 못하는 좌파다.
그렇다면 이석기 의원의 체포부터 시작해서 이번의 전례 없는 정당해산심판 청구까지, 왜 하필이면 이 온순하기 짝이 없는, 거의 우파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형 사민주의자들이 극우정권 공안몰이의 첫 희생물이 됐는가?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돈밖에 아무것도 없는 요즘 세상에 우습게 들리지만, 박근혜 정권과 통합진보당 사이에 엄연히 이념갈등은 존재한다. 박근혜는 극단적인 대북대립을 피하는 등 전 정권의 실패를 교훈 삼아 처신하려 하는 듯하지만, 다소 타협적인 대북접근이라 해도 이는 박근혜 정권 차원에서는 철저하게 적대적 타자에 대한 접근일 뿐이다. 곧, 현실 국제정치를 어떻게 한다 해도, 박정희의 파시즘을 계승한 현 지배자들에게 북한은 이념 차원에서는 근원적으로는 언젠가 ‘우리’에게 흡수당해야 할 적일 뿐이다.
이 적과 대결해서 결국 적을 이겨야 하는 것은 ‘우리 국민’이라는, 배타적 충성을 요구하는 집단인데, 이 집단의 경계선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관리는 파쇼적이라고 할 만큼 철저하다. 적에 대해서 약간이라도 ‘대다수와 다른 생각’을 한다면 벌써 ‘적과의 내통자’, 곧 배제·탄압 대상인 비국민이다. 통합진보당 이외의 진보정당들은 대체로 ‘우리 국민’ 집단 안에서의 계급갈등만을 문제 삼는 것이고, 일단 ‘국민’이라는 집단의 경계선을 대놓고 전복하려 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민족주의적인 사민주의 정당인 통합진보당은 ‘같은 민족’인 북한을 적이 아닌 통일의 한 주체로 보고 북-미 갈등 구조에서 북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친화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만큼 ‘국민’의 경계선을 가장 크게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만큼 배타적 이념으로 무장된 지배집단의 정치보복을 당한다.
둘째 이유는 현실 정치에 있는 듯하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겠지만, 지난 19대 총선 때 통합진보당이 발표한 당원 수는 7만5000명 정도였다. 다수의 유령당원 등이 있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는 나머지 모든 진보정당보다 두 배 이상의 숫자다.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보인 득표율은 10.3%였는데, 이 정도라면 비교적 덜 알려진 나머지 진보정당들과 달리 마이너이긴 하지만 ‘주요 정치세력’의 반열에까지 오를 수 있다. 참고로, 동아시아의 가장 유서 깊은 진보정당인 일본 공산당의 경우에도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의 득표율은 10% 정도였다. 최근의 주류 언론 비방 캠페인 등으로 잠재 득표율이 떨어졌다 해도 5~10%의 유권자를 동원할 수 있는 정당이라면 예컨대 야권연대 건설 등에서는 꽤나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으며 정권에 대한 상당한 압박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박근혜 정권의 입장에서는 통합진보당만 제대로 제거한다면 나머지 진보정당들은 그저 게토화되어서 이렇다 할 정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보일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몰락할 경우에는 진보정치 섹터 그 자체는 일부 이념형 사회주의자나 노동운동가만의, 대중성이 결여된 게토가 될 것이며, 정권에 대한 상당한 잠재적 위협이 제거되는 셈이다. 이승만 시절의 진보당 간첩조작·박살내기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진보당의 강제된 몰락과 조봉암의 법살은 한국 진보정치의 발전을 거의 40년 동안 정지시켜 놓았다. 그 뒤에도 몇 군데의 군소 혁신정당들은 명맥을 유지했으며 그중 하나인 사회당 출신의 이재문과 김병권은 1970년대 후반에 남민전을 조직해 유신정권에 대한 가장 치열한 지하투쟁을 전개했지만, 대중적인 혁신정치는 2000년에 이르러서야 민주노동당의 결성과 함께 복구된 것이다. 40여년 만에 말이다.
지금 박근혜 정권이 바라는 대로 통합진보당이 탄압을 버티지 못해 죽어버리면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파멸적일 듯하다. 그렇다면 왜 나머지 진보진영은, 아무리 통진당과 이런저런 실천과 이념 차원의 모순이나 갈등 등이 있다 하더라도, 탄압받는 동지들에게 연대의 손을 제대로 내주지 못하고 있는가? 나는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고 추측한다.
하나는 ‘통합진보당만이 희생되면 우리야 무사하겠지’라든가 ‘인기 없는 북한 편들기에 민심을 잃을 수밖에 없는 통합진보당을 옹호해봐야 득 될 게 없고, 차라리 통합진보당이 없어지면 그 틈새를 우리가 장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와 같은 약삭빠른 계산이다. 그러나 이 계산에는 진보정치의 영혼이라고 할 도덕성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정확한 예측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역사 속의 전례로 봐서는 통합진보당의 몰락은 진보정치 자체의 대중성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고 사회의 전체적 우경화에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런 타산보다 더 자세히 다루어봐야 할 것은 둘째 이유, 곧 이념적 이유다.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를 ‘주사파’로 파악하는 일부 좌파들은 ‘북한 민중을 억압하는 북한 지배자들의 어용 사상에 동조하는 정당’에 대한 동류의식 자체를 아예 갖고 있지도 않다. ‘주사파’의 민족주의는, 모든 민족주의들이 다 그렇듯이, 그 본질상 위험하다는 경계의식도 여기에 같이 깃들어 있다.
나는 통합진보당의 당원도 지지자도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만큼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통합진보당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그 탄압 속에서 진보의 가능성들이 죽고 민주주의가 증발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야 그 위험성을 백번 이야기해도 부족할 정도지만, 모든 이데올로기가 다 그렇듯이 민족주의의 함의도 상황적이다.
같은 민족주의라 하더라도 이라크 침략에서의 참전을 ‘애국’으로 보는 미국 백인 지배자의 헤게모니적 민족주의와, 미 침략군에 목숨을 걸고 맞섰던 이라크 애국자들의 민족주의를 과연 같은 선상에서 논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이라크보다 강한 북한의 군사력부터 후견국가로서의 중국의 존재까지) 때문에 같은 ‘악의 축’ 국가들 중에서 이라크는 미국의 침략을 이미 당했고 북한은 아직도 당하지 않았지만, 미 제국주의를 국제주의적 입장에서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그 침략을 언제 당할지 모를 북한의 민족주의 속에서 반제적이고 저항적인 요소들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한 요소들을 발견하고 긍정해야 결국 우리가 북한과 동등한 대화를 나누고,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평등하고 민중 본위의 통일로 갈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삼성 경영권의 3대 세습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바로 그만큼 북한의 3대 세습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삼성 사내의 이병철가 숭배 분위기를 역겹게 여기듯이 주체사상의 수령론에 반대한다.
그러나 국내에서 주체사상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북한 지배자들과 달리 권력자들이 아닌 무력하고 가난한 아웃사이더들이며 그들의 ‘주사’ 지향은 결국 남한 지배계급과 그 사대주의적 풍토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과 북한 지배자들을 동일시하는 것도, 소수의 주체사상 애호가와 통합진보당 전체를 동일시하는 것도 아주 위험한 일이다. 통합진보당을 찍은 유권자들이 다 ‘주사파’인가?
나는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달리 ‘자본주의 폐해’도 아닌 자본주의 자체의 극복을 바란다. 그러나 서로간에 차이가 있어도, 오히려 그만큼 탄압으로부터 통합진보당을 지켜야 한다. 그 탄압 속에서는 진보의 가능성들이 죽고 민주주의가 증발하기 때문이다.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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