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무인항공기(UAV)인 드론(drone)을 놓고 말들이 많다. 적잖은 군사전문가들이 정밀타격이니 인명피해 축소 같은 걸 내세워 드론을 마치 현대전의 총아인 양 떠들어대는 모양이다. 세상 언론들도 시민들의 깊어지는 걱정과 불안엔 아랑곳없이 그 살인무기를 향해 ‘과학기술의 승리’니 ‘최첨단 미래전’이니 호들갑 떠는 꼴이고.
근데 가만히 들어보면 모조리 옛날부터 해왔던 말들이다. 신무기가 나타나 사람들을 죽일 때마다 늘 그런 말들이 쏟아졌다.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게 과거전이든 현재전이든 미래전이든, 전쟁은 전쟁일 뿐이다. 그 전쟁은 늘 사람 죽이는 걸 목표로 했을 뿐이고.
베트남전에서 재래식 폭탄을 투하하며 융단폭격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B-52 폭격기.
40년 전 캄보디아 폭격은 미국 의회도 모르게 전사에 유례없는 비밀작전으로 이뤄졌다. (위키피디아 화면 갈무리)
1973년 폭격 거부로 체포당한 도널드 도슨
여기, 그 전쟁을 말해주는 두 군인이 있다.
“캄보디아 폭격 명령을 받고 날아갔으나 어디에도 군사적 목표물이 없었다. 결국 그 타격 대상이 결혼식장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더 이상 폭격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1973년 6월19일, 폭격 명령 거부죄로 체포당한 미 공군 B-52 전략폭격기 조종사 도널드 도슨 대위가 군사법정에서 했던 말이다.
1969년 3월부터 1973년 5월 사이, 4년2개월 동안 미군이 중립국 캄보디아를 비밀리에 불법 폭격해 30만~80만명에 이르는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던 베트남전쟁 시절 이야기다. 그 베트남전쟁은 인류사에서 최초로 국가의 이름 아래 정부가 저지른 전쟁을 시민이 반대하는 혁명적 반전운동을 낳았고, 바로 도슨 같은 군인들의 양심적인 저항이 든든한 뒷심이 되었다.
“진짜 전쟁이었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죄 없는 사람도 죽을 수 있었다. 나는 전쟁중이라도 생명을 존중해야 옳다고 여겼다. 더 이상 (폭격)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2013년 5월5일, 미 공군 드론 조종사로 일했던 브랜던 브라이언트가 미국 공영라디오(NPR)에서 했던 말이다.
스물일곱살 먹은 젊은이가 무인폭격기 프레더터(Predator) 조종사로 일하게 된 건 대학 시절 빚진 학자금 탓이었다. 그는 2006년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인근 비밀 트레일러에 앉아 모니터를 통해 처음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했다. 자신이 조종한 무인폭격기에서 발사한 헬파이어 미사일이 어린이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을 피투성이 죽음으로 몰아가는 장면을 모니터로 또렷이 바라본 그는 결국 2010년 군복을 벗었다. 현재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를 받고 있다.
이 두 군인 이야기 사이에는 정확히 40년 시차가 있다. 그사이 두 군인은 국가의 명령 아래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해 사람을 죽였고 또 방법은 서로 달랐지만 그 전쟁의 야만성을 고발했다. 얼핏 두 군인의 경험은 엄청난 차이가 나는 듯 보인다. 40년 전 도슨이 직접 전폭기를 몰고 캄보디아란 타격 지점으로 날아가서 폭격했다면, 40년 뒤 브라이언트는 1만2000㎞ 떨어진 미국 땅에 앉아서 카메라 모니터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했으니. 속살을 들춰보면 40년이 지나는 동안 그저 전쟁 도구가 바뀌었을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전쟁의 본질이 불법이란 건 사람을 죽인 무기의 종류와 무관하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드러난다.
도슨이 B-52 전략폭격기를 몰고 참전했던 40년 전 캄보디아를 보자. 베트남전쟁이 끝물이던 그 시절 미국은 캄보디아 국경을 넘나드는 베트콩을 잡겠다며 B-52를 동원해 비밀리에 캄보디아를 폭격했다. 폭격은 불법투성이였다.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쥐락펴락했던 헨리 키신저 안보고문(뒤에 국무장관)은 군 지휘체계를 무시한 채 직접 타격 지점까지 명령하는 불법을 저질렀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전쟁선포도 하지 않은 채 중립국 캄보디아를 공격했고,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공습경보도 내리지 않았고, 제네바협약(1949년)이 금지한 병원, 탁아소, 학교, 농장 같은 시민 생존의 필수 대상을 무차별 폭격했다. 네이팜을 비롯한 국제법이 금지한 폭탄들도 사용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그 캄보디아 군사작전에 따른 의회 보고 의무라는 국내법까지 무시하는 중범죄를 저질렀다.
지금껏 미국 정부 입장은 1973년 의회에 불려갔던 키신저가 했던 말에서 한치도 바뀐 게 없다.
“캄보디아 공습이 아니었다. 캄보디아에 거점을 차린 베트콩을 공격했을 뿐이다.”
그게 시민 30만~80만명 학살이었다. 미국은 바로 그 수치를 크메르루주에게 모조리 뒤집어씌워 ‘캄보디아 킬링필드 200만명 학살’설로 야비하게 바꿔치기했다.
1.3명 대 1.25명, 민간인 살상률 줄지 않아
그로부터 40년 뒤 브라이언트가 드론으로 폭격한 이 세상을 보자.
미국은 2001년 ‘테러와의 전쟁’을 내걸고부터 드론으로 이라크·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소말리아·예멘·리비아를 무차별 불법 폭격해왔다. 미국 헌법은 전쟁을 하겠다면 의회가 상대국에 전쟁선포를 하도록 명시해두었고, 한편 전쟁선포 없는 상대국 공격은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 행위다. 미국은 지금껏 드론으로 폭격한 그 어느 나라에도 전쟁선포를 한 적이 없다. 전쟁이란 건 국가 간에 무력을 동원하는 가장 극단적인 정치 행위이고 따라서 전쟁선포란 건 반드시 국가라는 대상을 지녀야 성립할 수 있다.
미국은 국가가 아닌 전술일 뿐인 ‘테러리즘’이라는 추상적인 단어에 대고 전쟁을 선포한 뒤 수많은 나라들을 드론으로 폭격해왔다. 유엔은 테러리스트의 범죄 활동을 동결한다는 결의안 두개(1368호/1373호)를 통과시켰을 뿐 미국의 그 테러와의 전쟁도, 또 불법 공격도 추인한 적이 없다. 따라서 드론 폭격은 미국 국내법과 국제법을 원천적으로 짓밟은 불법 범죄 행위다. 이뿐만 아니라 폭격 대상 인접국 영공을 허락 없이 불법으로 넘나드는 드론은 세계 각국의 영토 주권을 치명적으로 침해해왔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지난 5월23일 국방대학 연설에서
“미국은 국내법과 국제법상 알카에다, 탈레반과 연대한 세력들과 정의로운 전쟁중이다. 드론은 심각한 자제와 판단에 따라 사용해왔고, 민간인 사상자를 없애고자 최고 수준에 맞춰…”
라고 늘어놓았다.
그 결과 미국은 드론 폭격으로 2004년부터 어림잡아 4500~4700여명을 살해했고, 그 과정에 어린이 200여명을 포함한 민간인 1000여명이 희생당했다.(미국 컬럼비아대학(CHRC)/영국 탐사보도국(BIJ) 집계) 민간인 살상률이 최대 34%에 이른다는 뜻이다. 드론 폭격의 불법성이 만천하에 드러난 대목이다.
오바마를 비롯한 호전주의자들이 정밀타격과 민간인 살상 최소화라는 두가지 신화를 들이대며 드론을 테러리스트 박멸에 가장 이상적인 무기라고 떠들어왔다. 보자. 얼마나 정밀하고 얼마나 민간에 친절한 무기였는지.
40년 전 도슨이 B-52를 끌고 명중률 25%에 못 미친다는 이른바 ‘멍텅구리 폭격’을 하던 시절 총 출격횟수가 23만회(1965년부터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폭격까지 포함)였으니 1회 출격당 민간인 살상률이 1.3명(30만명 학살로 봤을 때)이었다. 그로부터 40년 뒤 브라이언트가 최첨단 과학무기라는 드론으로 폭격한 오늘날 800여회 출격했으니 1회 출격당 민간인 살상률 1.25명(1000명 학살)을 기록하고 있다.
40년 전 재래식 B-52나 요즘 최첨단 드론이나 시민 학살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이게 드론의 정체다.
지금까지 드론으로 살해한 민간인을 빼고 나머지 희생자 전체를 알카에다라고 인정해주더라도 정밀타격이란 건 새빨간 거짓임이 드러났다. 실제로 그동안 미국은 온갖 최첨단 과학전을 자랑해왔지만 민간인 살상 수치가 오히려 폭발적으로 높아진 사실에 침묵해왔다. 미국은 1991년 제1차 이라크침공에서 군인 10만명을 죽이는 동안 같은 수의 민간인 10만명을 살해했다. 이어 미국이 주도한 1999년 코소보전쟁에서 유고 군인 2000여명을 죽이면서 민간인 1만여명을 죽여 최악의 전쟁기록을 세웠다. 2001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민간인 2만여명, 2003년 제2차 이라크침공에서 지금까지 민간인 13만4000여명을 살해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드론에 광분하는가.
군사전문가들은 드론의 비밀작전 효용성과 아군 피해 최소화를 들고 있다. 별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건 전쟁을 이기기 위한 전통적인 개념일 뿐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도슨이 B-52로 출격했던 40년 전 그 캄보디아 폭격도 전사에 유례없는 비밀작전 ‘효용성’을 발휘했다. 키신저 손에 놀아났던 그 폭격은 당시 사이공(당시 남베트남 수도, 현 호찌민)의 미국 군사지원사령부(MACV)에서 직접 명령을 내림으로써 심지어 B-52를 관할했던 전략공군사령부(SAC)조차 캄보디아 폭격을 눈치 채지 못했고, 4년이 지난 뒤에야 미국 의회가 그 비밀폭격을 알아채고는 난리를 피웠을 정도였다.
그 무렵 전략공군사령부 지휘부뿐만 아니라 폭격에 동원되었던 조종사들마저 자신들이 “남부 베트남을 공습했던 것으로 여겼다”고 증언할 만큼 철저한 비밀이 통했던 작전이었다. 그 4년2개월 캄보디아 폭격에서 단 한대의 B-52도 격추된 바 없고 단 한명의 조종사도 전사한 기록이 없다. 비밀작전이니 아군 피해 최소화 같은 군사적인 말만으로는 드론 투입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드론은 바로 우리를 향할 수도 있다
전쟁이 극단적인 정치의 산물이듯이, 그 전쟁에 쓰는 무기도 마땅히 정치의 산물이다. 오바마를 비롯한 전쟁 지휘부가 드론을 공격수로 몰고 나온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대테러 작전 관련 모든 이들에게 사실상 ‘살인면허증’을 끊어주었고, 특히 테러 용의자들의 관타나모 수용소 불법 감금이 미국 안팎으로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치자 ‘체포 대신 사살’(kill-don’t-capture)을 공공연한 정책으로 들고나오면서부터 드론에 눈길이 꽂히기 시작했다. 전임 대통령 조지 부시 시절 50회를 밑돌았던 드론 투입이 관타나모 형무소 폐쇄를 공약으로 들고나왔던 오바마의 첫 임기 4년 동안 400회가 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이미 상시전쟁(permanent war) 체제에 들어선 미국의 시민사회 안에서는 반전 기운이 돋아나고 있다. 공공의 눈길과 비판을 피해갈 수 있는 은폐성을 지닌 무기, 바로 드론이었고 오바마의 선택이었다.
전쟁을 숨기고, 전쟁을 책임지지 않고, 전쟁을 일상화하겠다는 정치로부터 태어난 괴물이 드론인 셈이다.
40년 전 도슨과 오늘날 브라이언트 사이엔 여전히 변함없는 ‘불법’ ‘비밀’ ‘시민학살’을 바탕에 깐 전쟁이 판치고 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40년 전 캄보디아 시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밤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민들이 느닷없이 날아들 괴물을 걱정하며 잠을 설치고 있다. 그게 내일은 바로 우리일 수도 있는 날카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모두를 위해서 전쟁을 반대해야 하는 까닭이다. 미국 정부 하나를 위해서 온 세상 평화를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이다.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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