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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사이비 - 내가 믿는 게 진짜일까, 선악의 경계에 대한 물음

by 숲길로 2013. 11. 15.

 

 

 

 

 

 

제목 : 사이비 The Fake (2013) 100분

감독 : 연상호

목소리 출연 : 양익준, 오정세, 권해효, 박희본 외 

 

 

연상호 감독은 ‘센 영화만 만든다’는 평가에 대해 “앞으로도 내 취향과 스타일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이야기 서사구조에 변화를 주어 지루함을 줄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신작 <사이비>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떠받드는 목사와 마을의 주정뱅이이자 폭군의 대립을 통해 믿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올댓시네마 제공)

 

 

“어느날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조용하고 세련된 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과 거칠고 투박한 말투지만 상식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의 논쟁을 봤어요. 진실을 얘기하지만 믿기 싫은 사람과 거짓을 얘기하지만 믿고 싶은 사람의 대결. 순간 한가지 의문이 스치더군요.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은 진짜입니까?’”

 

장편 데뷔작 <돼지의 왕>으로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을 비롯해 3관왕을 휩쓰는 등 큰 주목을 받았던 연상호(35) 감독은 13일 인터뷰에서 신작 애니메이션 <사이비>(21일 개봉)가 이런 계기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사이비>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수몰 예정지역인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보상금을 갈취하려는 최경석 장로(목소리 권해효)와 뜻하지 않게 그와 한패가 된 목사 성철우(오정세), 우연히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된 주정뱅이 폭군 김민철(양익준). 영화는 이들의 충돌을 통해 진짜 선악의 경계를 물으며, 한편으로 맹목적인 믿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돼지의 왕>, 단편 <지옥-두개의 삶>과 <창> 등을 통해 ‘어둡고 센 작품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아온 연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살인과 폭력 장면을 다수 등장시킨다. “어렸을 때부터 고어·공포영화를 좋아했어요. 만화도 일본 성인극화의 시초인 다쓰미 요시히로의 작품이나 <퍼펙트 블루> 같은 어두운 심리스릴러를 즐겼고요. 아마 그 영향 때문인 듯해요.”

 

연 감독은 종교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이비>는 종교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믿음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며 “선과 악이 완벽히 구분된다고 믿는 사람들의 ‘관성’에 대해 문제제기하려 했다”고 했다. 기독교 비판 영화로 오해하는 관객도 있다는 지적에는 “굳이 밝히긴 싫지만, 나도 교회에 다닌다”며 “<돼지의 왕>은 학교폭력 영화로 소개돼 학교폭력대책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는데, 모두 오해”라고 웃었다.

 

사회적 계급의 고착화와 착취의 문제를 다룬 전작 <돼지의 왕>은 그 스토리는 물론 투신장면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맞물려 정치적으로 해석됐다. 이번 작품 역시 ‘정치적 함의를 담은 것 아니냐’는 의심(?)에 연 감독은 “점점 견고해져 성역이 돼 가는 보수의 논리와 점점 빈약해져 허물어져 가는 진보의 논리 사이에서 진실을 구분할 수 없게 된 사회·정치 상황, 진보 또는 보수라는 가치를 맹신하는 현상과 치환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어 그는 “보는 이에 따라 믿음의 문제, 정치·사회의 문제, 가치 충돌의 문제 등 다양한 결로 읽히는 영화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연 감독은 시나리오는 물론 작화·편집까지 직접 한다. 그 이유를 그는 “스태프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나의 의중을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적은 예산 탓에 시행착오를 줄여 영화를 빨리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돼지의 왕>은 1억5000만원, <사이비>는 3억8000만원이 든 저예산 영화다. “<돼지의 왕> 이후 제작비가 두 배 이상 뛰었고, 차기작은 예산이 6억원”이라며 아이처럼 싱글벙글이다.

 

왜 애니메이션만 고집할까? 연 감독은 “학창 시절 만화 오타쿠(마니아)였기에 만화가 친숙하다”며 “애니는 극적인 장면에서 주인공의 처절하고 슬픈 표정을 내 의중에 딱 맞게 담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실사에서는 배우가 감독의 뜻을 100% 구현하기 쉽지 않단다. ‘이런 사회고발 영화는 실사가 낫지 않냐’고 묻자 “피터 잭슨한테 ‘애니로 하면 쉬울 <반지의 제왕>을 왜 굳이 실사로 만드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받아친다.

 

<사이비>가 시체스국제영화제 애니메이션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데 이어 8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애니메이션 예비 후보로 선정되면서 후속작에 대한 관심도 높다.

연 감독은 “후속작은 <서울역>(가제)인데, 노숙자와 가출 청소년의 시선으로 서울역에서의 하룻밤을 담은 좀비영화”라며 “방향성이 불분명한, 뭉뚱그려져 폭발하는 대중의 분노를 다룬다”고 했다.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단순하게 표현하기 위해 스토리는 간결하게, 대사도 최소화할 예정이다.

“<돼지의 왕>까지는 내 스타일을 보여줘 빨리 인정받아야 한다는 조바심이 강했는데, 이젠 좀 자유로워졌어요. 데뷔도 늦고 수명도 짧은 직업이 영화감독인데, 앞으로 죽을 때까지 영화를 할 수 있도록 좀 여유로워지려고요.”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 차기작 <서울역>의 다음 작품 시나리오까지 자리잡고 있다.

 

               

                  - 글·사진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