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올 이즈 로스트(2013) 106분
감독 : J.C. 챈더
출연 : 로버트 레드포드(한 남자 역)
21세기의 시대정신은 ‘생존’인가. <그래비티>에서는 샌드라 불럭이 우주에서 외롭게 헤매다가 겨우 귀환하더니만, <올 이즈 로스트>에서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망망대해에서 홀로 떠다닌다.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우주·자연과 맞서야만 하는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숙연해진다.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깨닫는 동시에 그렇기에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알게 된다. 인간은 먼지이면서 우주 그 자체다.
요트에서 자던 한 남자가 깨어난다. 벽에 구멍이 나서 물이 흘러든다. 갑판으로 나가보니 요트 옆구리가 컨테이너에 찍혔다. 인도양 한가운데에서, 어느 화물선이 흘린 컨테이너와 충돌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는 묵묵히 컨테이너를 떼어내고, 구멍 난 선체를 수리하고, 물이 들어온 선실을 청소한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1936년생이니 일흔일곱이다. 아무리 미남자였고 곱게 늙었어도 육체는 정직하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 둔해진 손놀림으로 요트를 고치는 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통신이 끊긴 망망대해, 폭풍우가 밀려오고…
하지만 하늘도 무심해라. 내비게이터도, 통신수단도, 라디오도 모두 망가진 상태에서 폭풍우를 만난다. 통신만 가능했다면 일기 상태를 알 수 있었고 폭풍우를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멀리서 몰려드는 검은 구름을 보며 대비를 하고, 파도에 휘말려 바다에 빠졌다가 갑판에 겨우 오르는 그를 보고 있으면 가슴이 저린다.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욕도 하지 않고, 변명이나 한탄도 하지 않는다. 구명보트에서, 물조차 마실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았을 때 비로소 한두 마디 욕을 내뱉을 뿐.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에 성실하게 대처한다. 그게 세상을 오래 산 노인의 처세법이다.
< 그래비티>처럼 <올 이즈 로스트>도 오로지 고난에 처한 그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과거 회상도 없다. ‘그 남자’가 누구였는지 알려주는 단서는 하나도 없다. 그나마 <그래비티>는 샌드라 불럭이 아이를 잃은 엄마였고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려준다. <올 이즈 로스트>는 그마저도 없다.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육지에 남겨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법도 하지만 아예 눈도 돌리지 않는다. 영화 내내 그는 무엇인가를 한다. 정말 지독하게 고생을 하고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뭔가를 한다.
< 올 이즈 로스트>를 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가 왜 살아남으려고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냥 생존본능인 것만 같다. 저렇게 힘들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의 늙은 육체를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게 <올 이즈 로스트>의 힘이다. 아무런 대사도 없이, 자신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 남자는 살아남기 위해 자연과 맞선다. 그건 싸움 같은 게 아니다. 자연에 맞서 싸우기에는, 이 남자는 이미 오래 살았다. 싸울 만한 힘이 있어서 맞서는 게 아니라, 그게 인간에게 주어진 유일한 길이기에 살아남으려 하는 것이다. 살아남아야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 올 이즈 로스트>를 만든 J. C. 챈더의 전작은 <마진 콜>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가 벌어지던 날 직전의 24시간 동안 한 금융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금융위기 역시 해일처럼 밀어닥치며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파국으로 몰아갔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성실하게 살아왔던 사람도 예외 없이. <마진 콜>의 다음 영화가 <올 이즈 로스트>라는 사실은 그래서 의미가 더해진다. 우리는 이 비정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김봉석 (영화평론가) ⓒ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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