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충북 청주시 서문대교에 마련한 고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 합동분향소에서 방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 성재기(46) 남성연대 대표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여러 질문을 던진다. 한강으로 뛰어내리는 성 대표와 그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 기자, 그리고 남성연대 관계자 두 사람. 이들 네 사람의 블랙코미디 같은 현장 사진이 트위터에 올라 누리꾼 대다수가 보게 됐다. 한 남자의 무모한 죽음을 직접 보지 않은 우리는 지금, ‘공공의 목격자’가 되었다. 그 남자의 죽음엔 비밀이 없다.
그 남자의 죽음은 기이했다. 서울 마포대교 난간을 두 손으로 붙잡고 선 남자가 손을 놓는 순간. 팔소매를 걷어 올린 흰색 셔츠에 회색 바지, 스프레이를 뿌린 듯 윤이 나게 정돈된 머리의 그 남자는 15m 높이의 마포대교에서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한마디를 남긴 채. 지난달 26일 오후 3시19분께, 마포대교 남단에서 북단 방향 500m 해돋이 전망대로 내리꽂힌 여름 햇살은 눈부시게 따가웠다.
그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다. 카메라를 든 세 사람이 투신을 보고 있었으나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한국방송>(KBS) 기자와 남성연대 회원들이었다. 투신 직전 그를 발견한 소방대원과 경찰관들이 달려왔지만 이미 그 남자는 물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순식간에 남자는 자취를 감췄고, 다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일베 회원들의 ‘지갑 문제’
성재기(46) 남성연대 대표. 남성연대에 대한 관심 촉구와 후원금 1억원을 호소하며 벌인 이 남자의 투신 퍼포먼스는 결국 죽음으로 끝났다. 얼굴색은 푸르게 부패됐지만 표정만큼은 살아 있었다고 한다. 주검을 목격한 성 대표의 지인 강태호(35)씨는 “마지막까지 살려고 발버둥 친 듯 이를 꽉 물고 있는 얼굴이었다”고 전했다. 성 대표의 주검은 실종 사흘 만인 29일 발견됐다. 투신 장소로부터 1.4㎞ 떨어진 서강대교 남단 상류 100m 지점이었다.
투신은 기획, 홍보, 연출, 주연까지 오롯이 이 남자의 작품이었다. 성 대표는 한강에 뛰어내리기 하루 전 자신의 계획을 남성연대 누리집에 공개했고, 투신 당시 모습 또한 트위터에 올릴 것을 회원들에게 부탁했다. 수영에 자신 있는 성 대표는 한강에 뛰어내린 뒤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은 대본대로 되지 않는다. 투신극은 비극적인 현실로 끝났다. 5년간 이른바 ‘남성운동’을 벌이는 동안, 각인되지 못한 그의 이름은 이제 누구나 알 만큼 흥행했다. 그의 투신부터 사망까지 연일 언론에 회자됐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기자는 31일 밤 10시께 성 대표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을 찾아갔다. 페미니스트들을 싫어하고 여성가족부를 혐오하며 이토록 기묘한 ‘퍼포먼스’를 기획한 사람들이 궁금했다. 장례식장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화환 63개가 장례식장 복도를 빼곡히 채웠다. 성 대표의 발언으로 유명해진 ‘더치페이하기 좋은 날씨다’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남성 ○○○’ ‘대한민국 남성 5인 일동’ ‘그저 죄송한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 1인’ 등이 보낸 화환이었다.
보통의 장례식과 다른 점도 있었다. 여자들이 극히 드물었다. 밤이 깊어가며 드문드문 여성 조문객이 오긴 했지만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여성은 기자를 제외하곤 한 명뿐이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남성들뿐인 기묘한 장례식장에서 망자가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음식이라는 육개장 한 사발을 후루룩 입에 넣었다.
“성재기 대표, 사람 좋았어.”
“남자가 말이야~ 여자들은~”
조문객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성 대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또한 남성운동에 대한 격정 토론이라도 벌이는 듯,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기자와 우연히 합석한 간호대 졸업생 ㄱ(27·남)씨는 “온라인 활동만 해온” 남성연대 회원이었다. “성 대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혼자라도 와야 할 것 같아서 조문 왔어요.” 기자가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손을 다쳤다는 ㄱ씨는 술 대신 사이다를 마셨다. 웬만한 여자보다 피부가 더 하얀 ㄱ씨에게 남성운동을 왜 하는지 물었다.
“요즘 ‘여초’ 사회잖아요. 간호대, 초등학교 교사, 패션계 이런 데는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많고 발언권도 훨씬 세요. 그런 데서는 역차별을 당하고. 분위기가 여자 중심이니까 소외감도 느끼고요. 학과 교수님께 이야기해도 참으라고만 하고. 찍힐까 봐 더 적극적으로는 이야기하지 못했어요. 인터넷에서 성재기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걸 접하고 가슴이 다 후련했어요.”
기자는 한국 사회의 여성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유리천장’에 대해 되물었다. “간호사는 그렇더라도 대다수 직업군에선 아직 남자가 더 많아요. 육아 부담을 지는 여성들은 승진과 진급에서 피해를 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도 높죠. 그런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ㄱ씨는 “아직 사회에 나가보지 않아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ㄱ씨는 일베 회원이기도 했는데, 그의 예의 바른 모습은 기자의 선입견을 깨기도 했다.
30여분이 지나 두 남성이 합석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ㄴ(24·대학생)씨와 ㄷ(24·대학원생)씨는 남성연대 회원은 아니지만 ‘남성운동’을 지지한다. 이들은 군가산점을 부활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ㄷ씨는 남성의 ‘지갑 문제’를 토로했다.
“작년에 소개팅을 열 번쯤 했는데, 여자들이 돈 내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돈 안 내는 것까지는 괜찮다고 해도, 그런데 제가 소개팅에서 돈을 많이 안 썼다고, 소개팅녀가 뒤에서 제 험담을 했어요. 이건 진짜 아니지 않나요?”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도 남성운동을 지지하게 된 계기로 보였다.
이야기가 길어지자 옆 탁자에 미디어워치 대표 변희재(39)씨가 자리를 잡았다. 기자 곁에 앉아 있던 ㄱ·ㄴ·ㄷ씨는 변씨를 힐긋 쳐다봤다. 존경의 눈빛으로 보였다. 빈소에는 유독 ㄱ·ㄴ·ㄷ씨 같은 20대가 많았다. 남성연대 회원이거나 남성운동 지지자들로 여성 우대 정책 때문에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다.
생전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성 대표의 장례식엔 양 진영으로 분류되는 인사들도 다수 조문을 다녀갔다. <제이티비시>(JTBC)의 프로그램 ‘썰전’을 진행하는 강용석 변호사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개그맨 남희석씨,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등이다.
“영남대 재학시절 교련반대 운동”
성 대표는 투신 10여분 전까지 <인터넷 뉴스 신문고>와 인터뷰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투신 계획에 자신만만했던 건 아니다. 성 대표는 당시 인터뷰에서 “후회한다. 하지만 이미 공언한 내용이기에 실행에 옮기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경찰관과 소방대원이 자신을 향해 뛰어오자 황급히 물속으로 뛰어내렸는데, 이 또한 공개적으로 밝힌 투신 계획이 실패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단히 무모하고 어리석기까지 한 일이지. 자살도 아니고, 자살이 아닌 것도 아니야. 결정적 순간에는 사나이다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던 것 같아. 이걸 두고 잘했다, 잘 못했다를 떠나서 구시대적으로 말하면 ‘남아일언중천금’을 한 거지.” 장례식에 참석한 민족신문 대표 김기백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남성 또한 약자일 수 있다는 성 대표의 평소 발언과 달리, 강인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렸던 것은 아닐까.
빈소에선 ‘돈키호테’ 같은 죽음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환상과 현실이 뒤죽박죽되어 기상천외한 사건을 일으켰던 돈키호테와 성 대표가 닮았다는 것이다. 사실 성 대표의 남성운동은 보수에서도 진보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가 여러 차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접촉했지만 거절당했다고, 그의 여러 지인들은 입을 모았다. 대신 극우 성향의 ‘일베’에서 추앙받는 정도였다.
성 대표의 발언은 논리적으로도 그리 치밀하지 못했고, 이념적으로도 보수 또는 진보로 규정하기에 애매하다. 영남대 재학 시절 ‘교련 반대 운동’을 벌인 그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 중엔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 있다. 남성연대 사무실 문에는 ‘프롤레타리아의 심장과 부르주아의 이성으로’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2009년부터 그를 알았다는 ㄹ(23)씨는 성 대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남성운동을 하기 전 대구의 양대 나이트클럽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한 유흥업소를 했다고 들었다. 거기 게이들이 자주 찾아왔는데 동정심을 느꼈다고 하더라. 남성 우월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회원을 혼내기도 했다. 남성연대에 형편 어려운 분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무직 남성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려고 노력했고 ‘싱글 대디’에게 도시락을 배달하기도 했다. 허황된 발언을 하기는 했지만 그에게 진심은 있었다.”
성 대표의 죽음은 그가 존경하는 일본 극우인사 미시마 유키오(1925~70, 할복자살한 일본의 극우 작가)와도 묘하게 닮아 있다.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11월25일 자신의 사병대인 ‘방패의 모임’을 이끌고 일본 자위대 옥상을 점거했다. 평화헌법 반대와 천황제 회귀를 주장했고, 1000여명의 자위대 대원들은 미시마의 연설을 비웃었다. 그는 사무라이식 할복으로 마흔다섯의 삶을 마감했다.
성 대표가 소설가 이문열씨에게 쓴 편지에서도 미시마에 대한 존경이 드러난다. 2010년 4월30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이문열의 소설 <불멸> 낭독회’에서 성 대표는 이씨에게 A4 4쪽 분량의 편지를 전달했다. 이 편지에서 성 대표는 남성운동을 하는 자신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이씨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당시 ㄹ씨가 이 편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으로 죽을 수 있다는 각오 또한 분명합니다. 혈기대로라면 1970년의 ‘미시마 유키오’를 동경합니다. (…) 존경하옵는 이문열 선생님. 소인, 아무런 재주도 내세울 만한 이력도 없습니다만 반드시 해내고 만다는 실행력과 제 의지와 명분을 위해서라면 한 목숨 던져서 불 지필 수 있는 근성은 있사옵니다. 소인의 그릇이 작고 지식 또한 일천하여 돌격 앞으로 하는 전열의 최선봉에 서서 앞서 싸우는 일개 무장의 역할은 가능하나, 리더라고 저만 바라보는 적지 않은 젊은이들, 동지들의 이론적 수혈을 감당하고 정신적 방향타 역할을 할 만한 인물이 결코 못 됩니다.”
지난달 26일 마포대교에서 투신하기 10여분 전 <인터넷 뉴스 신문고>와 마지막 인터뷰를 하던 성재기 대표의 모습. 인터넷 뉴스 신문고 제공
“평소 그는 극단적 발언 자주 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 남성연대는 보도자료를 내어 “절대 자살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ㄹ씨는 “단순히 퍼포먼스라고 보기 어려운 미스터리”라는 의견이다. 평소에도 성 대표가 조국과 남성운동에 몸을 바치겠다는 극단적인 발언을 자주 했다는 것이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트위터에 그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어쩌면 성재기씨가 죽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죽음을 가장한 죽음. (그를 찍던) 카메라는 모든 것을 게걸스럽게 삼켜 버린 괴물이었다.”
성 대표가 이끈 남성연대는 반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조국, 가족, 균형’을 중시한다. 여성가족부 폐지, 군가산점 제도의 부활, 여성도서관 폐지 등을 주장했다. 일베 회원들이 그의 남성운동을 주로 지지한다는 점에서 이념적으로는 극우와 맞닿아 있다. 아직은 인권운동이라기보다는 극우의 하위문화로 자리잡은 정도다.
진중권 교수는 트위터에 “남성연대에 일부 정당한 문제의식이 있고, 이를 위해 남녀 편 갈라 싸우는 정서를 벗어야 한다”면서도 “남성 대 남성의 경쟁에서 구조적으로 밀려난 이들이 문제 근원은 보지 못하고 원인을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탓으로 심리적 보상을 받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남성운동이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미국에선 남성은 강해야 한다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성해방운동’이 일어났다. 경제적 책임이 무거운 남성 역시 사는 것이 버겁고, 남성다워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처지를 토로하기조차 힘들다는 문제의식의 발현이었다.
남성연대 회원에 20~30대 젊은층이 많은 것도 눈길을 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하지 않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 있는 장년층에게는 남성운동이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 차별이 심하긴 하지만 과거처럼 남자와 여자를 강자 대 약자로 딱 규정하는 시기는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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