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특리 한방단지(11:20) - 필봉(12:45) - 왕산(13:20) - 점심 - 전 구형왕릉 - 주차장(16:00)
발아래 가득 펼쳐진 안개, 어쩌면 풍경의 파국이 아닐까?
그 파국의 원소는 무한개의 소실점들로 이루어진다. 여태 평행하게 살아온 너와 내가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지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거나 산산이 부서졌다 비로소 재구성되는 것들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겨울 풍경은 다시 태어나는 것. 뼈로 시작하는 계절 겨울은 최초의 계절이다.
고요하다.
나무들, 비로소 제 몸을 들여다본다. 최초로 얻은 몸.
눈 돌리는 곳곳 소실점 묻어둔 수평조차 저리 아득하지만 비로 내릴 수도 없으니, 안개는 산과 나무들이 피워낸 한 철 고독의 무형 성채이거나 죽은 모든 나무들의 하늘에 비친 흰 그늘.
없는 이를 그리워하기에 좋은 날씨다.
여윈 솔 숲 사이로 성긴 바람이 든다. 푸른 잎이 무겁다.
수년째 끝없는 삽질 이어지는 한방단지. 굽어본 계곡물빛은 계절 아랑곳 없이 희뿌옇다.
계곡 건너 겨울숲 비탈길로 든다.
능선에 서서 웅석봉 바라보지만...
막막하다.
필봉 뒷쪽 왕산릉
온통 안개 속, 볼 거도 없는데 몰 그리 살피시나~~
지나온 길 돌아본다
필봉 지척 아래서
새봉은 겨우 보이지만 천왕봉은 보이지 않는다.
필봉 아래 암릉에서
왕산 가는 길
돌아본 필봉
다시 솔숲 지나서...
왕산 턱 밑에서 또 돌아보다
왕등재로 이어지는 능선 너머, 흐린 지리...
늦은 억새 돌아보며 가는 왕산릉
인상적인 소나무들 듬성한 능선, 필봉 보이는 곳에서 점심상 펴 놓고...
당겨본 필봉
필봉에서 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오늘의 근경 중 그나마 가장 볼만하다
다시 돌아보다
무얼 그리 단장하고 싶은지, 너무 매끈하게 꾸며져 오히려 생경한 유의태 약수터 지나...
비운의 구형왕이 몇 년 머물렀다는 수정궁터.
한 때 절이 있었던 흔적인지 아담한 부도 몇 기 보이는데, 똑같은 모양의 지붕돌을 새로 맞춰 얹었다.
세월의 빛깔을 덧칠한 꼴인데 도무지 우스꽝스러울 따름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짓을 할까?
임도 벗어나 구형왕릉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솔숲이 좋다.
전 구형왕릉. 즉 고증은 되지 않으나 구형왕릉이라 전해지는 곳이다.
그 앞 석물들은 아마 종친회에서 세웠을 터인데, 예전에 못 보던 거라 싶어 오래 전 답사 기록을 찾아보니 그 때도 버젓하다. 절묘한 기억의 간계, 그 때 역시 저 석물들이 못마땅했다는 뜻일 게다.
피라밋을 연상시키는 형태에다 묵은 돌의 빛깔이 어우러져 풍기는 신비감은 대단하다. 그 앞에 놓인 비석과 석등, 석인상들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저 돌무덤은 시간과 역사를 초월하여 우주적 교감 속에 놓여 있는데, 그 앞 석물들은 후대인의 시대착오적인 고집만 풍기고 있다.
돌아본 모습.
그 자체로는 흉하지 않은 건물들과 조경이지만, 역시 돌무덤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해친다.
저 돌무덤을 끈질긴 종족의 연과 부적절한 경배의 사슬로부터 활짝 해방시켜 차라리 역사의 바깥, 원초적 자유의 장으로 돌려 놓을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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