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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보고 듣기

어떤 죽음...

by 숲길로 2009. 5. 27.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라는 마지막 말 한 대목.
긴 울림으로 오래오래 머금어도 좋겠다 싶은 날...

 

 
가장 늦은 봄꽃 연분홍 철쭉마저 지는 시절, 이른 새벽 산에 올라 그는 투신했다. 아득한 상승의 고도와 까마득한 추락의 절벽이 산에는 함께 있다. 드라마틱하기 그지없던 그 삶의 역정이 찰나로 멈춰버린 모습처럼. 
허공에 기대던 그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한다. 살아생전 세상 향해 부릅뜬 눈 한 순간도 감지 못했을 듯한 그 사람. 그 순간 그는 눈을 감았을까?
유서를 썼다는 그 새벽의 24분 동안 그를 지나갔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재임시절 많은 이들이 그를 극도로 미워했고, 퇴임 후 정적들은 그를 모욕하고자 했다. 성급한 판단일지 모르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목표를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어리석었거나 또다시 실패한 듯하다.
이제 그는 없다. 그런데 그는 더 크게, 더 많이 존재하고 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기를 소멸시킴으로써 블랙홀처럼 생겨난 존재의 진공을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추도의 물결... 부재의 무한한 크기 바로 그만큼 불멸의 존재감도 커지는 현상을 우리는 부활이라 부른다. 그는 지금 죽음의 무(無)에서 부활하고 있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은 빈 말이 아니었다. 지금 어느 누가 그를 모욕하거나 이기려고 나설 수 있을까?

그를 일러 타고난 승부사라 했다. 다시 한 번 동의한다. 위기 때마다 그는 벼랑에 기대어 상황을 반전시켜 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는 허공이라는 벼랑에 영원히 기대어 버렸다. 그 허공은 하늘이었다...

 

시종일관 완강한 그러나 때로 서툴고 성급했던 민주주의자. 그게 노무현이었다.
몸은 자연에서 왔으니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저 만연한 슬픔 거느린 그 삶과 죽음이 시종일관 가리키는 건 오직 하나다. 고단했던 몸 이제 허공 깊이 기댄 남자, 그 필생의 가치는 오로지 민주주의였다. 성공과 실패가 뒤섞인, 권력과 탈권력을 향한 그의 사유와 다양한 노력들 역시 그 한마디로 요약된다. 인류는 아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체제를 발명해내지 못했고 충분한 민주주의에 다다르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가장 맹렬한 민주주의자, 그게 그의 존재 이유였고 그 스스로 선택한 운명이었던 듯하다. 

 

어떤 이는 입빠르게 후폭풍을 얘기하지만 금방 왔다 사라질 폭풍은 바라지 않는다. 그 슬픔과 분노, 일시에 풍선처럼 부풀었다 터지기보다는 더욱 단단하게 응축하기를 바란다. 오히려 그 죽음, 그를 정치적 죽음으로 몰아쳤고 지금 실제의 죽음조차 비웃고 모욕하는 무례한 현실 속에서 오래오래 내연(內燃)하길 바란다. 단 하나의 죽음이 아니라 저마다의 마음 속 수천만의 죽음으로, 더 이상 다른 빛깔에 물들 수 없는 새까만 씨앗으로 오래오래 여물어 가기 바란다.

 

 

바람 잘 날 없던 생애였지만 이제는 산처럼 바다처럼 고요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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