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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보고 듣기

대운하 반대 칼럼

by 숲길로 2008. 4. 19.

희망은 절망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존재 의미를 잃지 않는 것. 절망적 상황에서도 가고자 하는 길의 목적지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희망입니다. 나는 지구 생명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수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생명의 강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만약 이명박 정부에서 한반도 대운하 공사를 강행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생명체가 죽음을 당하는 대규모 자연파괴 행위가 벌어지는데도 이를 보고만 있다면, 그것은 수행자로서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희망은 의무를 동반합니다. ‘한반도 대운하 백지화’라는 희망을 품는 순간, 희망은 나에게 행동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요구가 아니라 희망 그 자체에 내장된 필연적 의무였습니다. 가령 부부가 한 아이의 부모가 되기를 희망했다면 그 속에 이미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돌볼 의무가 잉태돼 있듯이 말입니다.


지금 나는 운하에 위협받는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한 순례단의 일원으로 영산강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경부운하 구간에 이어 63일째 호남운하 예정지를 걷고 있습니다. 길을 나설 때부터 우리는 단순히 대운하를 반대하기 위한 순례가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수행의 길로 삼기를 희망했습니다. 생명의 강에 비추어 본 우리네 삶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문화·교육·정치·경제 등 사회 모든 부문의 지배 질서는 탐욕과 이기였습니다. 대운하는 그것의 상징이었습니다. 대운하가 몰고 올 재앙은 환경 파괴만이 아닙니다. 더 심각한 것은 공동체의 붕괴와 인간다운 삶의 실종입니다.


대운하에 대한 여론은 반대가 압도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대운하의 문제점이 ‘찬반’ 논의 차원에 머물러 있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이 ‘하느냐, 마느냐’를 넘어선 곳에 존재한다는 사회적 성찰이 부족한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로 그것이 위기의 본질입니다. 순례를 하면서 그것에 대해 느낀 바는 이렇습니다.


첫째, 대운하는 전도된 사회적 가치관의 반영입니다. 대운하는 설사 막대한 경제적 이득이 예상된다 하더라도 논의 자체가 돼서는 안 될 일입니다. 모든 생명의 어머니인 국토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국토는 사람뿐 아니라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의 요람이자 역사와 문화의 모태입니다. 아직도 대운하 논란이 찬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자식이 어머니의 가슴을 헤집어 잇속을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천만금의 이익이 생긴다 해도 그것으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둘째, 만약 대운하를 강행한다면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모든 권력은 국민한테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 정치는 어떻습니까. ‘주권재민’이라는 말은 선거 기간에만 유령처럼 떠돌 뿐입니다.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정치판에서처럼 오용되는 사례도 없을 것입니다. 민심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그 순간에만 ‘천심’입니다. 대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이 압도적인데도 그것을 ‘천심’으로 여기기 않고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는 것으로 증명이 됩니다. 아직도 국민을 조종 대상의 우민으로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셋째, 대운하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만약 이명박 정부에서 국회의 과반을 차지한 여당의 힘으로 ‘특별법’을 만들 경우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행동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반대하는 국민의 다수가 침묵한다 하더라도 시민단체는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대운하 정책 입안자들이 이 말을 가지고 분열을 선동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국가의 잘못된 행위를 묵인하는 시민단체는 그 순간 정당성을 잃습니다.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는 행위는 시민단체로서 존재 이유의 확인이자 도덕적 의무이고 이타적 본능의 발현입니다.


넷째, 대운하는 자연 생태계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재앙을 초래할 것입니다. 기술만능주의는 미신보다 더 위험합니다. 어떤 과학기술로도 한반도 대운하처럼 대규모로 파괴된 자연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식수 오염, 대규모 준설에 따른 주변 지하수위 저하, 홍수시 범람, 홍수 후 유입된 토사 처리에 따른 2차적 오염과 비용, 배후 개발지의 부동산값 앙등, 빈부 양극화 심화에 따른 계층 갈등 등 부작용은 상식 수준에서도 예측 가능합니다.


다섯째, 국가의 안위가 위태로워질지도 모릅니다. 경제·안보·교육·부동산·노사·빈부 양극화 등 중대한 국가적 사안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에서 마치 국민을 정적으로 여기듯 대운하에 집착할 경우 국민 모두가 불행해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 모두가 고통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대운하는 결코 경제적 시각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될 사안입니다.


숨이 찹니다. 출가 수행자라는 사람이 어쩌다가 고준한 청담이 아니라 이런 메마른 얘기까지 늘어놓게 되었는지, 시절 인연이 한탄스럽기조차 합니다. 지난 총선 때 한반도 대운하 전도사를 자처했던 이재오씨가 낙선한 뒤에는 은근히 그것을 바란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수행자로서 한참 모자란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언론을 통해 이재오씨를 비판한 적이 있던 터여서 더욱 그랬습니다. 진심으로 부덕을 참회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경우든 인간을 미워하는 일은 없기를. 우리의 순례와 반대하는 다수의 민심이 맑고 평화로운 기운으로 이 땅의 평화를 이끌기를.


비구의 출가 의미는 세속과의 절연이 아닙니다. 혈연이라는 세속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중생, 즉 온 생명이라는 큰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데 있습니다. 출가 수행자에게는 하는 일 모두가 불공이고, 처하는 곳곳이 불국토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선사인 남전 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오늘의 학인들은 다분히 출가만 하고 입가를 기꺼워하지 않으며, 좋은 곳만 알고 나쁜 곳은 모른다.” 남전 스님의 말씀에 지금 저의 심정을 실어 봅니다.


수경 스님                        


 

 

 2008-04-18 
한겨레 (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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