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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전라 충청권

영광 구수산 081203

by 숲길로 2008. 12. 4.

코스 : 영춘교 - 옥녀봉 - 구수산 - 불북재 - 봉화령 - 봉우재 - 가자산 - 뱀골산 - 덕산(여유롭게 5시간) 

 

 

 

 

 

잿빛 바다.

저무는 12월에는 늘 서쪽 바다가 궁금해진다.

저무는 해를 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지금 이전의 나, 그 수억 겁 이전의 또 다른 나의 고향 혹은 태어나기 이전의 모든 것들이 한 통속으로 우글거리며 빛을 찾아 더듬거렸던 그 때 그 시절 같은 곳. 저 기이하게 빛나는 듯 캄캄한 갯벌이라면 한 세월의 막막함을 부려 놓아도 아무런 죄밑이 들지 않을 성 싶기 때문이리라.


이곳 지명들이 짓궂게 특이하다. 야동이 있는 백수의 고향, 오늘 원지 여러 백수들께서 납시어 동네 뒷산보다 낮은 구수산 여남은 봉우리를 넘고 넘는다. 법성포로 드는 와탄천 푸른 물빛에 열린 눈, 조망없는 정상과 가파른 능선 숲길에서 잠시 풀리나 싶더니 봉화령 넘어 굽어보는 아득한 뻘빛에 다시금 열린다.    

이어지는 쾌적 산책로 따라 걷다보니 어느 새 가자산 오름 바윗길. 하 조망이 좋아 한없이 뭉기적거리노라면 성급한 동행이 가자, 가자며 보챈다고 그 이름 아닐까 싶은 곳이다.


마루 바위에 앉아 굽어본다.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든다는 백수 해안도로와 바닷물 잡아놓은 소금밭, 해는 아직 중천인데 낙조빛 길게 드리운 뻘바다의 흐린 수평까지...

기억 속의 내 바다들은 서로 다른 빛깔이었다. 동해는 늘 짙푸른 심청의 겨울이었고, 남해는 젖빛 감도는 연두였는데, 아마 유채밭 너머 바라본 봄빛이었을 터. 서해는 늘 무채의 잿빛이었다. 김제만경 광활 벌판 뒤덮은 눈밭 가로질러 달려가 만난 서해도 그러했고 겨울잠 덜 깬 이른 봄물빛 또한 그러했다.

갯벌에 잠긴 역사는 곧잘 신화를 낳는 법이니, 천축의 전법승 마라난타가 상륙했고 이 나라 근대의 종교개혁가 소태산 박중빈이 태어나 도를 깨친 곳. 그 시절 그들이 눈부시게 돌아보았을 은빛 조기떼 가득한 칠산 바다가 발아래 있다. 지금 나도 그 바다를 보고 있지만 구름 낮고 흐리니 올망졸망 칠산도 인근 섬들은 자취도 없다. 한 하늘과 바다일 따름.


청명한 겨울이나 가을날은 또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며 느린 솔숲길 걸어내려 하산지점에 도착한다.

일행 마저 내려오기 기다리는 잠깐의 여유 시간, 흐린 바다 쪽을 기웃거린다. 부시지 않아 더 먹먹한 겨울 해를 바라보고 있으니 송년산행 온 듯 착각이 든다.

잠시 행복한 고민이다. 올 송년산행은 어디로 갈까... 눈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좋으리라.  저 무겁게 빛나는 몸 고요히 내리는 서해 잿빛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만 있다면...

다만, 오늘보다 조금 더 맑은 해였으면 싶다.

 

들머리 도로가 해당화가 곱게 단풍 들었다

   

옥녀봉 오르며 돌아본 모습.  오른쪽 숲 있는 곳이 원불교 성지

 

산책로 있는 습지 그림이 보기 좋아서리...

  

와탄천과 겨울 들판

  

옥녀봉 오르며 보니 오른편에 암릉이 그럴듯하다. 저리로도 오를수 있겠다.

  

 

 돌아본 옥녀봉

 

 법성포쪽.

저 벌판은 와탄천 하구에 조절수문을 설치하고 뻘을 메워 만든 간척지일 것이다.

가운데 봉긋한 두 봉우리는 원래 섬이었다. 이름도 예쁜, 소드랑섬과 작은 소드랑섬.

 

 가장 높은 줄기가 갓봉과 수리봉 능선일 듯하다. 당겨본다(아래)

 

 군서면쪽. 산악회 버스가 지나온 길이기도 하다.

 

 능선 조망바위에서

 

 돌아본 능선. 옥녀봉은 맨 뒤에 숨어 끝만 살짝 보인다.

 

오늘 구수산 코스, 5만지형도로 대충 꼽아보니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 올망졸망 봉우리가 열댓개도 넘는다. 물론 최고도가 봉화령 373.8m이니 힘들다 할 건 없다.

원불교와 관련, 명성 높은 구수산은 등산로로는 별로다. 조망없는 평범한 육봉인데다 전후 한참동안 조망이라곤 없다. 녹음철엔 덤불도 제법이겠다.

그래서 구수산 정상을 제외하고 실속 위주로 등로를 재구성한다면,

 봉화령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잇거나(이 경우 줄곧 서해 조망이 가능할 듯), 불북재에서 북으로 뻗은 능선을 이어 아래 사진에 있는 암릉 구간을 넣는 것이 나을 듯하다.

때로 이름이란 누군가의 주관적인 의미일 뿐, 관점 달리하는 이에겐 무의미한 기호일때가 많다.       

  

지니온 능선. 오른쪽이 구수산정이다.

가운데 멀리 암릉이 보이는데 불북재 우회로에서 이어지는 길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지역 산꾼이라면 한 번 답사해 보고픈 호기심 불러일으키는 우람한 암릉이다(아래는 당겨본 모습). 

앞줄기는 암봉 위에 솔숲이 빽빽하나 뒷줄기는 제법 맨바위가 드러난다. 구미 당기는 모습이다. 

 

 봉화령에서 갈길 바라보며.

짱 너머로 보이는 능선이 가자산 능선.

주로 안부(잘록이)에 해당되는 재와 달리 령은 큰 고개를 뜻한다. 봉화령은 코스 중 가장 높은 지점인 듯한데, 봉우리라기보다 능선 가운데 조금 돋은 지점이다. 짱이 바라보는 봉우리가 봉화령보다 더 높은데 저곳은 오르지 않는다.

 

봉화령에 서면 드디어 서해 잿빛 바다가 발 아래 펼쳐진다.

뻘밭을 소금밭으로 일군 모습은 서해에만 가능한 인상적이 풍경이었다.

 

갓봉 능선. 저 능선을 이으면 원불교 성지로 원점회귀도 가능하겠지만, 서해 조망이 오래 가능한 방향으로 코스를 구성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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