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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전라 충청권

월출산 - 늦여름의 염천 산행(070825)

by 숲길로 2007. 8. 26.

코스 : 천황사 - 바람폭포 - 광암터 - 천황봉 - 바람재 - 미왕재 - 도갑사(여유롭게 6시간30분)

 

 

어쩌다가 여름 월출산 오를 생각을 했을까...?

오래 가 보지 않아서란 건 답이 아닐 테고, 손쉽게 어디로든 다녀오고 싶은데 떠오른 핑계가 여름꽃이랑 이제 막 꽃대 뽑아올리고 있을 미왕재 억새 따위였다. 무엇보다 올 여름 내내 비교적 시원한 곳으로만 다녔고 어저께 백악산에서는 갈바람도 느꼈던 터라 거기도 한더위는 가셨을 거란 섣부른 지레짐작이었다.


남도의 월출은 아직 한여름이다. 초입부터 숨이 턱턱 막힌다. 구름다리 대신 안 가본 계곡 그늘길로 접어든다. 아무렴, 바람골인데 능선보단 시원할 게야... 그러나 바람골 숲에는 바람이 없고 일말의 기대로 다가선 바람폭포에는 물도 바람도 없다. 노인네 오줌줄기만큼 흘러내리는 폭포수(?) 아래 더위에 지친 한 여인이 옷 입은 채 몸을 적시고 있다. 시원스럽기보다 안쓰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염천 산행이 어디 한두 해 경험이던가. 강렬한 햇살에 반짝이는 짙푸른 녹음 사이로 거침없이 치솟는 암봉의 시원스런 눈맛을 바람 삼고 물소리 삼아 터벅터벅 치오른다. 꽃을 찾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한다. 건조한 암산답게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둔 눈에 띈 거라곤 며느리밥풀꽃과 짚신나물 몇몇...


바람골 마루에서 굽어본다. 바람골은 거대한 외계생명체의 해부도를 보는 듯 장엄하고 섬뜩하다. 저 살아있는 바위의 늑골들이 부르는 호흡은 얼마나 깊고 큰 바람일 것인가. 계곡 숲과 달리 골마루에는 사시사철 바람이 있다. 거대한 산짐승의 세찬 숨결이 한여름에도 골마루를 향해 불어온다. 

오르면 오를수록 새로워지는 게 산이다. 그간 십여 년 사이에 겨우 두 번 올라 화려한 암릉미에 감탄했고 바람재와 미왕재의 부드러움 정도에만 주목했었다. 오늘 다시 보는 월출은 수많은 지능선과 암릉들로 저마다 개성 넘치고 다채롭다. 수석 능선들의 선과 빛깔은 작렬하는 여름 하늘과 흰구름 아래 더욱 날카롭고 맹렬하다. 그런가 하면 유아독존 암봉들의 위세도 아랑곳없이 한없이 부드럽게만 흐르는 푸른 능선의 고요가 있고 가파른 바위 비탈에 뿌리박은 소나무들의 칼날같은 긴장도 있다.

정상 넘어 바람재로 향하니 바람은 거침이 없다. 그 바람에 의지하여 땡볕 쏟아지는 마당바위에 점심상을 차린다. 이열치열, 한 시간 반 가까이 뭉그적거린 탓에 전망제일 구정봉은 다른 계절을 위해 비켜간다.    


미왕재는 마무리 조망대다. 원근의 검푸른 산릉들 사이로 주지봉은 의외로 밋밋하고 멀리 뾰족하게 눈길을 끄는 별매산과 가학 흑석 능선은 산행만큼 눈맛도 좋은 편이다.

억새는 조금 이르다. 푸른 초원 곳곳에 분홍빛 가시지 않은 연자주 꽃대가 바람에 일렁인다. 쉼 없는 바람이 숨은 꽃대를 유혹하면 산은 자꾸 먼 곳으로 불려간다. 

바다를 목전에 두고 영암호로 드는 흰 물줄기가 보인다. 정상에서 본 강진 바다가 그러했듯 산에서 굽어보는 물길의 느낌은 각별하다. 대상없는 기다림이며 높이 다다른 모든 발길을 끌어당기는 부름이다. 보이지 않는 기원(起源)의 이름으로 다시금 어디론가 데려간다. 풍경은 늘 다른 곳에 있다.

  

 바람골

 

구름이 바위 모습을 흉내내고... 

 사자봉

산성대 능선 - 바윗길 재미가 나름 쏠쏠한 코스

 사자봉 능선 - 길이 있다면 꼭 가보고 싶은 코스

정상 지나 주릉에서 

 

 

 

 

 

가을은 멀지 않은데... 

 

 

 

 미왕재가 보이고

 오른쪽 주지봉 너머 영암호 물빛

 월각산과 별매 가학 흑석 능선

 미왕재에서 돌아본 향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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