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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경상권

팔공산(070627) - 없는 공룡릉을 찾아서

by 숲길로 2007. 6. 28.

코스 : 신령 치산리 수도사 - 계곡 따라 - 계류 건너는 지점 지나 왼쪽 지능선 - 길 흐리고 가파른 지능선으로 무작정 - 능선 - 822봉(투구봉?) - 능선따라 - 소위 공룡릉(또는 석화바위) - 주능선 993봉(주릉표지 48번) - 신령재 - 공산폭포 - 수도사(사진 숱하게 찍고 목욕하고 놀아가며 총7시간. 수도사-팔공주릉표지까지 4시간 30분) 

 

애기공룡 혹 바위꽃봉 - 오른쪽은 정상부

 

팔공산 공룡릉 어쩌고 하기에 진작 궁금했으나 하필 이 무더위에 찾게 될 줄이야...

암릉 구간은 워낙 짧아(10여분?) 공룡릉이라기엔 좀 그렇고 아기공룡 둘리 머리뿔 쯤이다. 오히려 푸른 능선에 살짝 들어얹혀진 품은 한 떨기 소담한 바위꽃인데, 한참 보고 있으려니 단양 황정산 옆 석화바위가 떠오른다.

수도사를 기점으로 원점회귀하는 이 코스는 능선 오르며 꽤 진을 빼므로, 여름날에는 계곡으로 올라 능선 따라 내려옴이 한결 수월하겠다.   


어제 비가 온 듯 길은 꼽꼽하고 치산계곡 물소리는 요란하다. 곳곳이 폭포다. 포장길을 두고 더디게 계곡을 따른다. 계곡산행의 욕심이 슬그머니 동한다. 이렇게 동봉 아래까지 가버릴까..? 계류 건너는 곳에서 잠시 망설이다 포장길로 접어든다. 예정대로 가야지... 왼쪽을 살피니 빨간 리본 하나. 그대로 접어든다.

 

 

 계곡 따라가며

 

초입부터 길이 흐리지만 곧장 치오른다. 흩어진 바위들이 길을 막으며 차츰 가팔라진다. 흐린 우회로 더듬으며 시간 뺏기느니 대충 치고 나간다. 고온다습한 날씨에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숲, 팥죽같은 땀 쏟으며 죽을 맛이다.

길이 슬그머니 왼쪽으로 우회한다. 전방은 큰 바위봉인 듯하다. 잠시 우회길 따른다. 그러나 힘들어도 능선을 타는 게 나을 듯하고 조망의 갈증도 도지던 터라, 에라 모르겠다, 냅다 길없는 너덜을 치오른다. 제 무게만 지키며 지내던 바위들이 들떠서 놀거나 미끄러진다. 비켜 왔던 오른쪽 큰 바위는 금방이라도 낙석을 쏟을 듯 불규칙하게 갈라지고 불안해 보인다. 이끼와 담쟁이 무성한 바위로 곧장 오른다. 헐떡이며 매달리듯 기어오르니 거의 탈진 지경...

그러나 솔가지 아래로 빼꼼한 조망을 얻었다. 발끝 아래 멀리 고요히 빛나는 수도사, 시설물 자리잡은 팔공산 정상부 향해 깊이 파고들며 뻗는 치산계곡의 흰 줄기도 보인다.

 

 숲 사이로 굽어보는 수도사 


워낙 가파르게 치오르며 고도 높인 때문인가, 이어지는 길은 한결 부드럽다. 비교적 소나무 많은 숲이라 길이 흐려도 잡목이 크게 애를 먹이지 않는다. 산행 시작 1시간 30분여만에 귀천서원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만난다. 길이 뚜렷하다. 솔숲길이 쾌적하게 이어지고 조폐산악회 리본도 띈다.

숲 사이로 암릉 희끗하던 봉우리를 향해 오른다. 투구봉이 공식 이름인지 모르겠으나 그럴듯하다. 멀리서 보이던 뾰족한 생김만큼이나 바위 틈새 비집고 가는 오름길이 그리 만만치 않다. 정상부에 서니 뿌연 날씨지만 사방 거침없는 조망이다. 팔공산의 북쪽 능선은 첨이라 전혀 새로운 눈맛이다.

 

 

 

투구봉에서 


바윗길이 끝나면 줄곧 고만고만하게 능선을 오르내린다. 한여름만 아니라면 속도감에 취해보며 걷기 편한 길이다. 동쪽으로 갈래지는 지능선으로 한두군데 흐린 길이 보인다. 멀리서 보기엔 지금 걷는 길과 비슷한, 솔숲 좋은 부드러운 능선길일 듯하다. 거조암쪽 지능선길도 지나쳐 간다. 청통 방면 암자 순례를 겸할 수 있을 이 길들은, 먼 산 갈 수 없을 때 한 두코스씩 엮어 봐도 좋겠다.

초반 체력소모가 심하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조망이 약하기도 하여 조금 지치는 듯 슬슬 지루해질 즈음, 예의 그 애기공룡 바위봉과 그 너머 팔공산 주릉이 보이는 전망대에 도달한다.


둥글게 부푼 푸른 숲바다 위 한 점 조각배같은 애기공룡의 원경이 예쁘다. 전방의 풍경에 고무된 몸은 다시 가벼워진다. 곧장 내질러 바윗길에 달라붙어 오른다. 여름날의 암봉이지만 바람마저 시원스럽다. 오래오래 머무른다.

눈앞에는 막 피어나려는 바위 빛깔 꽃소식, 돌아보면 지나온 봉우리들과 뻗어 나간 산줄기들이 희뿌연 대기 속으로 긴 꼬리 끌며 사라진다. 건너보는 주능선 993봉 북쪽 비탈엔 가까이라면 제법 볼만할 수직 단애가 서려 있다. 우뚝한 동봉과 철탑 시설물 빼곡한 비로봉 능선의 하늘금도 얼마만인가, 시야의 방향이 달라지니 새삼 멋스런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울창 신록과 습도 높은 대기가 어우러져 나름 독특한 그림을 그려 내는데, 거기엔 흐린 조망의 아쉬움과 나름대로의 자족, 첫 대면의 낯설음이 한데 뒤섞여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내친 김에 덧붙이면, 이 바위봉은 코끼리바위란 이름도 있는 듯한데 어떤 모습이 코끼리를 닮았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저 바위에서 동물이(공룡도 코끼리도) 아닌 꽃을 본다. 멀리서 보면 규모에서, 산빛과 대비되는 바위빛깔에서 가벼움이 느껴진다. 산만하지 않고 단정하기에 제법 복잡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드센 역동보다는 고요한 상승감이 있다. 물론 다가가 바로 앞에서 본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바위에선 동물의 역동성보다는 정물성, 부동의 영원성 따위를 더 쉽게 느낀다. 내면의 어둠에 표정을 묻고 굳은 등짝만을 드러내고 있는 바위에서 자기모순적인 역동을 본다는 것은 흥미롭지만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러려면 형태의 획득을 넘어 어떤 적극적인 관념의 투사와 반영이 필요하다.

동물 이름의 바위는 어딜 가나 아주 흔한데, 개인적 욕심으로, 형태의 비슷함을 넘어 성격적 측면까지 고려했으면 싶다. 이름을 따르는 사물(동물이건 뭐건)의 본성이라 부를만한 어떤 관념이 환기될 수 있었으면 싶은 것이다. 코끼리의 신중한 의젓함, 매의 날렵하고도 사나운 응시 따위로... 그럴 수 있을 때 가장 무겁던 바위는 스스로 깨어나 움직이는 무엇이 되어 진정 다시 태어날 것이다.

 

너른 치산계곡을 굽어본다. 비로봉에서 북으로 뻗는 능선과 동서 주릉, 993봉에서 북으로 뻗는 능선이 둘러싼 골짜기다. 팔공산 역시 많은 다른 산들처럼 남면은 암벽의 정상부에서 꽤 가파르게 쏟아지지만 북면은 완만하게 흘러내리는 숲바다를 이룬다. 당연히 자락면적과 골도 북면이 남면보다 훨씬 넓고 깊은데 그중 치산계곡은 풍부한 수량과 암반계류로 으뜸의 계곡미를 뽐낸다.

유달리 후텁한 여름이면 팔공산은 분지도시 대구에게 기묘한 애증의 대상이다. 북쪽성벽 구실을 하여 대구를 강수량 적고 무더운 분지도시로 만드는 제일 요인인 동시에, 더위 피해 파고드는 수많은 이들을 넓고 푸른 자락으로 품어주기도 한다. 

 

 

뾰족봉이 투구봉 

 

 

 

 예의 그 바위봉 풍경과 조망


주능선 가는 도중에 길 살짝 벗어난 조망바위들이 있다. 거기 오르면 사라졌던 꽃은 멀리서 다시 피어난다. 볼 적마다 총총 피어나는 꽃을 돌아보며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주릉에 오르니 산에 들어 첨으로 사람도 만난다.

신령재 가는 길에 남으로 트인 전망바위에 잠시 올라본다. 분지도시 대구는 희뿌연 대기에 잠겨 아득히 사라지고 없다. 팔공산 오를 적마다 발아래 도회 풍경은 늘 경계였다. 그 순간 내가 들어있는 산(山) 세상의 가장자리 경계이고 거기 푸르게 떠도는 내 마음의 경계였다. 늘 보이던 것이 보이지 않으니 산은 더욱 깊고 커진다.

동봉이 유난히 우뚝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꽤 자주 드나들었으면서도 팔공산릉의 윤곽을 그다지 주의깊게 살핀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가까운 것들에 대한 소홀함. 올해 팔공산은 첨이다. 다시 가까이 바라보니 낯설고 멀다. 가까운 것을 멀리 보기... 팔공산이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진다.

 

주릉에서 보는 정상부

 

동봉 아래 능선들 

주릉에서 보는 시내쪽

 

신령재에서 공산폭 쪽으로 든다. 바쁠 일 없이 천천히 내려선다. 이름 모를 꽃들이 많이 피어 있다. 곧 물소리 들리더니 가는 길 내내 끊이지 않는다. 마침내 합쳐진 골골의 물들은 우렁찬 3단 폭포를 이루어 거침없이 쏟아져 내린다. 장쾌한 광경이다.

하산 계곡에서

 

진불암행 구름다리에서

 

 

공산폭포 


근 십년 만에 와보니 공산 폭포 부근이 엄청 달라졌다. 넓어지고 잘 정비된 길과 못 보던 구름다리까지... 계곡에는 피서객이 가끔 보인다.

수도사를 둘러본다. 스님 한분이 혼자 낫질을 하다 홀연 사라진다. 오후 햇살 식지 않은 너른 마당이 적막하다. 가파르게 치올랐던 능선을 부신 눈으로 올려다본다. 잠시 들었던 기억마저 지워지며 저기 가파른 절벽같은 산만이 홀로 깊푸르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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