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율치 - 원등산 - 학동산 - 대부산 - 수만리
대부산
참으로 좋았던 산행!
뿌연 사진이 답답하여 재미삼아 장난친 기이한 이미지가 오히려 맘에 든다. 가끔은 꿈을 더듬어 산을 불러와 꿈산을 다시 짓는 것도 쏠쏠한 재미.
흐린 하늘 아래 캄캄한 겨울 짐승들. 훤히 드러난 등때기엔 희끗이 눈발 내리고... 멀리서 보노라면 성긴 잔털 같은 나무들과 흰 눈은 자꾸 매서운 바람을 불러와 산은 한층 더 웅크릴 것만 같다. 한없이 시릴 듯한 그 등을 밟으며 오르내린 낙엽과 눈의 오솔 산길, 꽤나 미끄럽던 그 길은 의외로 포근했다.
먼 운장 연석 능선은 서로 몸 비틀어 맞댄 커다란 세 마리 짐승처럼 웅크렸고, 거침없이 흘러내리는 대부산 바위벽은 잘못 뛰쳐나와 멀뚱한 선사적 덩치 큰 짐승의 뱃가죽 같다. 그러나 하나같이 그 겨울 짐승들, 저 첩첩 능선 물들이는 노을 바라볼 눈은 어디로 나 있는지 찾을 길 없다.
살아있지 않은 것이 살아있는 것을 닮은 모습, 눈 없는 짐승들의 슬픔을 잠그고 있는 침묵. 그 침묵이 어딘가 흘러가며 남긴 흔적들인 양 골골마다 사람의 마을은 아득하여 닮은 듯 서로 다른 무늬들로 세상을 얼룩지게 한다.
어쩌면 지금 걷는 이 산길은 저 캄캄하게 웅크린 것들, 넓고도 가파른 등짝의 몸뚱이로만 남은 저것들의 슬픔이 세상으로 흘러드는 길... 우리는 늘 마을에서 산으로 가지만, 산은 산을 떠나 마을로 돌아가는 우리 발걸음에 물끄러미 귀 기울이고 있을 것이니.
저녁으로 가는 대부산 능선을 떠나기 싫어 곱은 손 비비며 하염없이 뭉기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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