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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전라 충청권

다시 변산에서 - 꽃을 잃고 길을 얻다 (051126)

by 숲길로 2007. 6. 4.

코스 : 우동리 굴바위입구 - 용각봉 삼거리 - 와룡소 - 가마소 삼거리 - 세봉 - 관음봉 - 내소사

 

 

변산 회양골을 다시 찾는다. 작년 여름, 개인적인 사정으로 오르지 못하고 내소사 수련만 망연히 바라보다 돌아갔던 곳.

변산 가는 길은 멀어도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자욱한 새벽안개가 빚는 추상 풍경은 졸린 눈을 가끔씩 번쩍 뜨게 하고 정읍 I/C 지나서부터 갑오년 피빛 외침을 기억하는 지명들이 낯설지 않다.


등산로 초입에서 멀리 보이는 성계 폭포. 하늘 오르는 한 줄기 구름 사이 희게 걸리던 물줄기는 간 곳 없고 폭포 떠난 자리 지난 철의 흔적만 얼룩으로 묻어있다.

적당한 거리서 보는 맛이 더 좋을 굴바위를 다녀와 고개 하나 넘는다. 소문만 듣던 회양골.

뜬금없이 ‘구름 위의 산책’이란 영화 제목이 왜 떠올랐을까. 계곡 분지라 할 만큼 거의 경사 없이 널찍한 숲 가운데를 흘러가는 길. 발아래 닿는 촉촉한 낙엽, 말없이 오가는 계절을 느끼며 한없이 이어질 듯 오솔길을 밟아가는 몽유 산행이다. 어디서 이런 길을 밟아 보았던가... 거창 어느 산줄기 깊은 계곡에서? 제주 비자림처럼 일부러 만들어 놓은 산책로는 많아도 등산로로는 비교할만한 데가 드물지 않나 싶다.

메말라갈 초겨울 물은 어디로 비켰는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부근 어딘가 실낱같은 물길이 내내 잠류하며 길을 따르고 있을 게다. 아니 길이 물을 따르고 있을까? 혹, 모르긴 해도 회양골의 ‘양’자가 빛이라면 이 고요하고 널럴한 계곡은 빛과 물과 사람의 길이 하나로 흐르는 곳이니,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고향이라 불러도 좋지 않을라나? 과연, 울창 숲길을 혼자 걷고 있어도 무섭거나 적막하지 않고 햇살 아래인 듯 머리 쪽이 따스하다.

헐거운 생각의 꼬리 하나 거꾸로 들어도 좋고, 속삭이듯 낮게 왔다가 돌아가는 바람소리 들으며 무심으로 걸어도 좋은 길. 주변 풍경이 단조롭다 싶으면 가끔 산죽이 시퍼렇게 뜬다. 우람하지 않고 키 낮은 정겨운 넘들이다. 길은 지루하지 않을 만큼 곧아졌다 휘어졌다 하며 흘러간다. 한참 곧은가 싶으면 슬그머니 꼬리 감춘다. 겨울로 가는 산, 잎이 많이 졌지만 숲은 여전히 울창하고 스스로 그늘이다. 혼자 숨찰 바 없이 흐르듯 걷는 걸음은 거의 희열이라 해도 좋았으니, 와룡소까지 회양골 수 킬로미터 숲길이 내겐 이번 산행의 백미였다.


와룡소. 여름에 다녀갔던 이는 물이 줄어 아쉽다고 했지만, 잎 놓고 하늘로 깊어지는 나무 그림자 비치며 고인 듯 흐르는 듯 소리 없이 가는 늦가을 물은 신록 울리며 쿵쿵 가는 여름 물과 또 다른 맛이려니, 여름 이야기는 따로 귀담아 두고 즐기리. 물 준 가을 이끼빛이 궁금하여 조그만 폭포 아래까지 기웃... 그렇게 걸음은 자꾸 느려지고 급기야 맨 꼴찌다. 다들 너무 잘 가네, 오늘은 선수들만 오셨나...?


11월 치고 제법 덥던 날씨, 세봉 향하는 능선쯤 이르러 꽤 바람이 차다. 세봉 오름길은 팍팍하다.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돌아볼 적마다 변산은 자꾸자꾸 높아지고 깊어지며 한눈에 펼쳐져온다. 시야가 좋지 않아 햇살 방향의 멀고 가까운 산들은 함께 어우러져 명암의 실루엣을 엮는다. 크지 않은 변산반도에 첩첩 웬 산이 저리도 많은지... 그 어우러짐은 가히 아름다워 내륙의 조망 좋은 명산에서 바라보는 눈맛 못지않다. 그간 몇 차례 변산을 여행하고 산행하며 곳곳의 풍광과 서정을 눈과 마음에 담아왔지만 여전히 막연했는데, 오늘은 무언가 조금 헤아릴 것도 같다.

변산은 주봉을 중심으로 하나의 능선으로 이어진 지리나 팔공같은 산이 아니다. 변산은 세봉 오르며 돌아볼 적마다 자꾸 솟아나던 그토록 많은 산과 골들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며, 한반도의 서쪽 가장자리 반도로 다시 붙은, 척박하다면 척박한 생계의 터전을 일컫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서 변산의 아름다움은 의상봉이니 깃대봉이니 중계니 봉래곡이니 하는 봉봉 골골의 나누어진 이름을 살피는 것만이 아니다. 비슷한 높낮이를 가진 하나의 장대한 미분(未分)의 산덩어리, 검은 뻘로 바다를 밀어내며 기슭에 깃든 생사의 절벽까지 아우르는 땅덩어리로 서서히 떠오르며 형태와 빛깔을 달리해가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는 느낌, 바로 그것이 변산의 미학이 아닌가 싶다.

동해나 남해와는 달리 뻘밭 없는 서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가장 인간의 바다가 서해이다. 시커먼 뻘로 아득한 서해를 삼면으로 두르고 그 뻘을 잘라 소금을 말려 캐기도 하는, 삶이 없는 자연을 생각할 수 없는 땅 변산. 편의상 내변산 외변산으로 나누지만 가장자리에 안팎이 따로 있을까. 이름 그대로 내외 없는 가장자리 산이며 땅이기에 서로에게는 더 이상 가장자리가 아닌, 반도 전체가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고단한 넉넉함으로 하나의 껴안음이 되는 땅. 세봉 오름길이나 관음봉 가는 길에 본 변산은 비슷하게 다른 것들이 어우러지며 변해가는 산(變山)이었고, 산과 산, 봉과 봉이 따뜻하게 서로 껴안는 자태였으며, 그렇게 변산의 아름다움은 극에 이르고 있었다. 그래서 변산의 모든 산자락은 마침내 시커먼 뻘밭에도 순순히 묻힌다.

변산의 산이 뾰족하고 가팔라도 바다로 들고 말듯이, 느리게 걷는 걸음 아래서 길은 둥글어진다. 둥근 길을 걷다보면 또다시 산에서 만난다. 두 계절을 건너 다시 만난 사람과 일 년 만에 우연히 마주친 이. 덧없는 산과 바람의 길이 빚어내는 무궁무진... 저 산과 들, 뻘과 바다조차 피할 길 없는 인연으로 서로에게 출렁이는데 입과 눈 매단 우리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잎 지고 앙상해진 나무들 사이로 바람 찬 능선을 걷는다. 그 바람 속에서 몸과 마음이 익어가고 또한 흘러가며 천파만파 물결을 풀어놓는다. 그 물결 중의 하나로 내가 있고 네가 온다면...

갇히고 풀려나는 물결, 다시 오지 않을 것들... 어느 산줄기에서 다시 있을 그들과 그들의 또 그들을 생각한다. 불현듯 그 쪽이 따듯해진다. 보이지 않아도 더욱 따듯해지는 쪽이 있으니 어떤 그리움이 거기 앉아 있어 돌아보지 않아도 자꾸 더워지려는 마음이 향하는 것일까.

 

 

 

 

 

내소사 들렀으나 수련 연못은 말라버렸고 중장비 굉음이 거슬려 연못 너머 부도밭만 일별하고 돌아서 전나무 숲길을 느리게 걷는다.

이번 산행은 꽃과 물을 잃고 새로운 산길 하나를 얻었다고 해야 할까...? 지난 여름 술빛에 물들던 염염 그 꽃빛은 사라졌으니, 아니 서해 낙조에 잠긴 풍경으로 건너갔으니 시간의 길 위에서 굳어가는 수련의 찬 불꽃은 이제 눈감아도 좋겠다. 만남의 끝 또한 만남이므로 환멸이란 가혹하게 스스로 깨지는 환상인 것.

유난히 붉기로 유명하다는 변산 석양을 기다리지만 금빛 흐린 저녁 햇살만으로도 넉넉하다. 풍경을 사로잡으려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 풍경에 사로잡혔거나 이미 풍경에 든 이들. 그들을 다시 풍경 속에서 본다. 늦은 오후의 산과 뻘바다와 사람... 가장 서해다운 아름다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