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산릉에서 보는 가야산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성주를 지나 수도산 가는 길은 대가천의 절경을 따라가는 환상의 코스다. 무흘계곡의 바위절벽과 불붙는 듯한 단풍은 한 폭으로 어우러져 그대로 산수화다. 반짝이는 성주호의 잔물결. 가을은 키 낮춘 햇살이 있어 더욱 좋다.
수도산 기슭 청암사(淸巖寺) 드는 길. 낙엽 마르는 냄새에 섞인 솔향이 코를 찌른다. 비구니들도 가을을 타는가. 살짝 풀린 표정으로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곁을 지나, 높다랗게 걸린 입산금지 현수막도 못 본 체하고 산길을 접어들었다. 가을 치고 유난히 비가 잦았던 탓인지 물소리가 청량하다. 어우러져 오는 바람 소리, 새소리...
얼마를 걷자니 숨이 턱에 찬다. 동행한 아내가 비아냥거린다.
"아저씨도 이제 한물 갔구먼~?"
질세라 대거리한다.
"아지매, 사돈 넘 말하네~"
아닌 게 아니라 몸이 영 아니다.
오늘따라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두어 시간을 걸어도 우리뿐이다. 장중하긴 해도 아기자기한 맛이 없고 단풍이 유명한 산이 아니라서인가 보다. 그럭저럭 김밥 한 통 죽이고 휘적휘적 다리품 팔아 정상에 섰다.
수도산은 전망이 일품이다. 삼남에서도 손꼽을 만한 눈맛이다.
앞쪽으로는 수도산을 따라내려 단지봉을 거쳐 신비롭게 솟는 가야산 상봉까지 이르는 능선이 장쾌하기 그지없고, 뒤로는 덕유에서 남덕유에 이르는 검푸른 대간이 지친 눈을 시원케 한다. 그 뿐인가,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금원, 기백, 백운 등과 삼도봉, 민주지산까지의 첩첩 산줄기들,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듯 가장 먼 너머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지리의 흐릿한 연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한 시절 숱한 목숨들을 거두어 품었던 반도의 심장부가 말없이 눈앞에 있다. 가슴은 저려오건만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맑다.
사람의 하루에 더 무얼 바랄까...? 그래도 언제나 아쉬움은 남는 법. 예서 가야산에 이르는, 하루 꼬박이면 걸을 듯한 저 능선을 언젠가 한번 종주하리란 꿈만 다지고 총총히 산을 내려선다. 어둠 머금는 물소리 바람소리 등지고 도시로 돌아온다. 눈 덮인 가야와 덕유의 연봉을 꿈꾸며 오늘은 깊은 잠을 잘 수 있겠다.
'산과 여행 > 경상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왕산 - 주왕의 정글에서 푸르게 헤매다 (040807) (0) | 2007.06.04 |
---|---|
경주 남산 (0) | 2007.06.04 |
가야산(......) (0) | 2007.06.04 |
거제 망산(040613) (0) | 2007.06.04 |
팔공산(......) (0) | 2007.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