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해군사를 다시 쓸 것인가?
정의길 [한겨레신문] 오피니언넷부문 편집장Egil@hani.co.kr
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충격을 느꼈다. 살펴보니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평소 골다공증으로 인해 제풀에 그런 건지, 다리를 접질린 것인지, 걷다가 외부 물체와 부딪힌 것인지, 아니면 외부 타격인지 통 오리무중이다.
이런 상황을 전하면, 듣는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맨정신의 멀쩡한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다리가 부러졌는데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전체가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천안함 사건을 두고 하는 얘기다.
천안함이 갑자기 두 동강 난 때는 합동군사훈련 기간이었다. 주변에 세계 최첨단의 이지스함이 두 대나 있는 등 중무장한 군함들도 있었다 한다. 군사훈련 기간이라 전시에 준하는 경계상태여서 하늘에도 온갖 첩보위성이 작동하고, 스파이 정찰기들이 가동했을 것이다. 천안함 자체도 새우잡이 멍텅구리배가 아니다. ‘초계’라는 말이 뜻하는 것처럼 주변의 경계와 적대 물체를 무력화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군함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군함이 두 동강 났다. 처음에는 모르겠다고 하다가, 이제는 외부 타격인 것 같다고 안팎에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길을 가다가 다리가 부러진 사람의 경우를 빌리면, 특정인이 번개처럼 다가와 가격을 해 다리를 부러뜨린 뒤 신출귀몰하게 사라진 것 같다는 거다.
천안함 사건을 두고, 정부 당국은 ‘한반도 안보환경을 바꿀 중대한 사건이다’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북한이 관여했으면 관여한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이 사건은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꿀 사건이다.
먼저, 북한이 관여했다면, 즉 지금 퍼지는 주장대로 북한의 잠수정 등 해군력이 다가와 타격을 가한 뒤 유유히 사라진 사건이라면, 미군을 포함한 전세계의 무기·방어체계는 근본적인 검토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근접했던 북한의 해군력을 탐지하지 못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공격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 자체에 더 충격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한 차례 세게 맞았는데도, 맞았는지도 모르고 지금 내가 왜 이렇게 아프지 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기름이 없어 군사훈련도 제대로 못한다는 북한의 전술력 앞에 동아시아 주변의 무기·방어체계가 총체적으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북한의 관여가 밝혀지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먼저 심증과 정황은 있는데 확증은 없다고 할 경우다. 이 상황도 본질적으로 북한의 관여가 증명된 경우와 마찬가지다. 오히려 공격의 흔적을 완전히 남기지 않은 경우가 되기 때문에, 남쪽이 받아야 할 안보충격은 더 커져야 한다.
북한의 관여가 없었다고 입증될 경우이다. 오락가락한 대응태세,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군의 허점은 심각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부풀려진 한반도 긴장의 여파는 남북관계의 회복 열쇠를 더욱 오리무중으로 만들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경우의 공통분모는 한반도 주변의 군비증강으로 귀결될 것이다. 벌써부터 군 전력증강 사업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단순히 군함이나 비행기 증강이 아니라, 무기·방어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 할 것이다. 천문학적인 예산은 물론이고, 이런 움직임이 중국 등 주변국에 미칠 파장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제 벌써 주사위는 굴러가고 있다. 그 주사위를 굴린 원인은 시원하게 밝혀지지 않을 것인데, 그 주사위의 모든 면은 한 가지 수를 담고 있다는 것이 이번 천안함 사건의 본질이자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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