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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보고 듣기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by 숲길로 2009. 6. 20.

  

한국, 예술, 종합, 학교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질문이다. 요즘에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나, 모르겠다. 그래도 어딘가에 몇 명쯤은 있겠지. 심각한 얼굴로 마주 앉아서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에 예술이란 말이죠’라는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몇 명쯤은 있겠지. 고백하자면, 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저 질문을 자주 던졌던 사람이다. 몇 해 전 젊은 아티스트들을 여럿 인터뷰할 때도 그랬다. 인터뷰 끝날 즈음에 슬쩍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다. 대답을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 오랫동안 고민하는 사람도 있었고, ‘하하, 그런 질문은 개나 물어가라지요’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사람도 있었다. 답을 듣고 싶었다기보다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했다.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냐’라는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그 사람의 예술관을 알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반성한다. 나도 알고 있다. 저런 질문은, 해서는 안 된다. 삶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도, 해서는 안 된다. 누가 나에게 그따위 질문들을 던진다면, 묵비권을 행사할 것이다.

요즘 들어 예술이라는 말이 낯설다. 이른바 ‘한예종 사태’ 때문에 예술이 뭔지 다시 생각해보고 있다. 예술이 뭘까. ‘한국예술종합학교’라는 이름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외래어를 대하는 기분마저 든다. 한예종이 아니라 한국예술종합학교라고 불러야 그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예술이란 뭘까. 종합이란 뭘까. 학교란 뭘까. 한국예술종합학교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 논란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 한국 예술 교육에 대한 종합적인 문제점이 한예종 사태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설립 취지에 맞게 실기 중심 학교로 재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듣고 나는 한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걱정한다는 사람들의 수준이 이 정도라는 데 놀랐다.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이런 건 핑계에 불과할 뿐이며 핵심은 다른 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보려 해도, 나는 이런 발상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술을 이론과 실기로 나누어 생각한다는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생각과 실천을 구분할 수 없다. 내 글쓰기가 이론인지 실기인지 분간할 수 없다.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서 나는 내 감동의 촉발점이 화가의 이론인지 능숙한 기술인지 따지지 않는다. 따질 수 없다. 예술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예술을 배운다는 것은 더 많은 질문을 배우는 것이다. 예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세상에 더 많은 질문이 생기도록 돕는 일이다.


한예종을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용을 따지는 모양이다. 질문 같은 건 소용없고 답이 중요한 모양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답이 없다. 왜 자꾸만 예술을 가지고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자꾸만 물음표를 우그러뜨려서 마침표로 만들려는 것일까. “한국에서는 닌텐도 같은 게임을 못 만드냐”고 말할 정도면 언젠가는 소설가들에게 “한국에서는 해리 포터 같은 소설 못 쓰냐”는 구박을 할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리 고백하자면, 그런 거 못 쓴다.


오랜만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질문을 해보고 싶다.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이 낯뜨거운 이유는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삶이 무엇인지 서로에게 묻지 않아도 모두들 뜨겁게 살고 있듯, 예술이 무엇인지 묻지 않아도 사람들 마음속엔 각자의 질문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바꾸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도대체 예술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김중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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