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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지리 설악 제주

지리 촛대봉 능선(061030)

by 숲길로 2007. 6. 4.

 

코스 : 거림(11:00) - 세석(13:20) - 촛대봉 - 청학연 찾아 헤맴 - 시루봉(점심) - 북해도교 위 지계곡 합수지점(탐방로 아님 표시) - 거림(18:00)

날씨 : 맑다가 구름 많고 내내 안개 걷히지 않음.

 

거림으로 올라 촛대봉 능선을 따라 하산할 예정으로 나선 길.

오르며 보는 늦가을 거림 단풍은 제법 고우나 워낙 조망이 없어 아쉽다. 이맘때 지리능선에선 남해 물빛이 가물거려야 하는데 바다는 고사하고 삼신봉조차 흐리고 아득하다.  

 

세석은 다시 보아도 과연 너르고 흐름이 부드럽다. 몹시 가문 철임에도 거림골의 최상류부라 할 세석교 아래까지 물소리가 요란하다. 넓게 오래 오래 머금었다가 천천히 내어준다. 물마를 날 없는 세석은 늘 인파로 붐비지만 오늘만큼은 한산하다. 바람도 서늘히 간다.    

 

촛대봉 일대는 아주 황무지인데, 식생복원을 위해 나무를 심기도 했으나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다. 무성의한 식재 관리와 한 점 물기도 머금을 수 없는 메마른 토양 탓인 듯하다.

세석평전 철쭉밭을 헤매며 청학연을 찾았으나 정보 부족으로 포기...

촛대봉에서 다가가며 보는 시루봉은 아주 멋진데 시루봉 조망 역시 빼어나다. 그러나 천왕봉 쪽 주릉은 안개에 덮였고 거침없이 뻗은 남부능선과 삼신봉 방향은 실루엣만 이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다시 오르고 싶은 느낌이다.

 

시루봉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내려선다. 우회로인줄 알았더니 계곡따라 하산이다. 역시 산길 정보 없이 무턱대도 들이댄 결과다. 잠깐 진행 방향의 산비탈을 가로질러 보지만 쉽지 않다. 왔던 길 되돌아갈 여유도 없으니 훗날을 기약하고 그냥 내려선다. 한참만에 거림골 북해도교다. 이 계곡은 고로쇠꾼들이 주로 드나든 흔적인데 등산로는 아니라는 편이 옳겠다. 마른 이끼 덮인 암질은 전형적인 노년기로 윤기라곤 전혀 없이 까칠하고 파삭하다. 이 암질 특성은 능선이나 계곡 할 것 없이 지리 전지역의 바위에 다 해당되는 듯하나 비교적 젖어 있는 기간이 긴 큰 계곡의 바위들은 조금 덜한 편이다.

 

지리는 과연 웅장하고 깊었다. 오늘은 비교적 길지 않은 코스였음에도 긴 오름길과 잘못 든 험한 내림길 탓에 일곱 시간이 걸렸으니 어느 한 곳 만만한 코스가 없다. 한없이 묵묵하고 부드러워 보이지만 워낙 너르고 깊어 한번 잘못 들면 막막해진다. 

지리를 오르거나 능선을 걸으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지리 능선의 아름다움을 특히 돋보이게 하는 것은 늘 푸르고 꼿꼿한 구상나무들이다. 잎 진 활엽의 성긴 가지들과 어울려 하늘금 윤곽을 한층 다채롭고 신비스럽게 만들며, 계절마다 서로 다른 날씨마다 특징있는 기품을 부여한다. 가령 울긋불긋 단풍의 바다에서 더욱 강렬한 푸르름으로 빛나는가 하면, 운해 얹히는 날엔 직립 자세들을 더욱 꼿꼿이 하여 구름바다 가운데 들쭉날쭉 솟으며 단연 이채롭게 떠오른다. 뿐만 아니라 잎 지고 눈 덮이는 겨울을 지키는 그 성성한 자태는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지금은 메마른 계절, 더욱 파삭하게 닿아오던 지리의 거친 속살. 백두산의 아주 먼 훗날, 설악의 훗날 모습도 지리산과 같을까. 청년 백두와 장년 설악, 그리고 노년의 지리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