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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여행/경상권

황매산 080507

by 숲길로 2008. 5. 9.

코스 : 덕만 주차장 - 삼봉 - 하봉 - 중봉 - 황매산 - 모산 - 순결바위 능선 - 덕만 주차장 (소풍 모드로 6시간 반 남짓)

 

 

 

멀리서 보면 하늘로 드리운 봄 대지의 그림자. 꽃밭은 중력을 거부한다.

다가가면 저것들은 허공을 매만지고 핥아대는 수천수만의 붉은 손길 혹은 날름대는 혓바닥, 불불 기어오르며 지피는 불의 무간지옥. 하릴없이 몸 뜨거워지는 걸 보니 나 아직 멀었겠다.  

꽃의 내부는 수백 나날, 수백 겹의 하늘로 채워져 있을 터이므로, 꽃을 떨어뜨리는 힘은 비바람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무너지는 하늘의 무게일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스스로 무너진다. 그 누구도 꽃으로부터 꽃을 빼앗지 못한다. 내부를 키워가는 힘이 마침내 꽃의 공동(空洞)을 만들어 스스로 함몰하게 한다. 더 이상 내부가 없어졌을 때, 펼쳐낼 그 무엇도 없을 때 무너진 내부는 씨앗으로 온다. 씨앗은 이미 꽃의 내세(來世)다.

불가능한 바깥을 향하면서 내부를 낳는 꽃은 상처의 과정이며 전모다.

꽃은 낯선 얼굴이다. 두근거리며 태어나는 하늘, 새롭게 그리는 붉은 하늘금.

     

산행은 풍경에 대한 끊임없는 재정의다.

봄빛이 새롭다, 꿈꾸는 계절...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깊이 더해가는 푸르름은 꿈꾸기를 서서히 멈춘다. 오래오래 되새길 따름이다.


붉고 푸르게 출렁이며 길로 넘쳐나는 산빛 꽃빛...

내딛는 걸음걸음이 오늘도 무익하게 되풀이되는 질문이라면, 오감으로 흘러드는 저것들은 답 아닌 답으로 메아리쳐 오는 태초 이래의 수수께끼다.

불모의 집착인 내 산행을 비웃듯 자연은 매 순간 스스로의 역사를 새롭게 다시 쓴다. 자연사와 인간사, 그 가운데 걸리는 무지개처럼 풍경이 온다. 보고 느낄 수 있지만 잡을 수 없는 것. 머물지 않고 달아나는 것들을 사로잡으려는 형형색색의 몸부림들.

허나 우린 사라지는 것들을 그저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니, 저 날 것들 앞에 내미는 것은 어쩌면 죽음을 감춘 욕망의 손길이 아닐까...? 사로잡힌 풍경은 이미 물신(物神)에 지나지 않는데, 죽은 기억을 어루만지는 손길, 손길들...

욕정이라 해도 좋으리라, 한없이 산으로만 들뜨는 내 마음의 자리는 꽃빛 핏빛처럼 붉고 비리다.

 

봄날은 간다...  
돌아보면,

지나온 숲이 어둡고도 환하다. 

 

 

황매산은 철쭉철마다 자주 오른 산이지만 박등을 거쳐 삼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초행이다. 좀 덜 붐비지 않을까 싶어 골랐는데 아주 좋은 코스다. 박등(바가지 모양의 바위봉이란 뜻?) 조망이 일품이고, 신록의 푸른 그늘에 어리는 선홍의 철쭉빛은 호젓한 숲길 분위기를 자못 신비롭게 물들인다. 공주는 마법의 숲에 들어온 듯하다며 연신 싱글벙글 꺅 깍...!

 

등로는 최근에 새로 정비하여 우거진 관목을 베어낸 톱자국이 선연한데 조금 지나치다 싶은 곳도 있다. 중봉과 모산 부근 바위 능선엔 무슨 구조물을 설치하려는 듯 자재를 부려 놓았다. 비록 축제 열리는 철쭉 명소라지만 주능선은 손을 좀 덜 댔으면 싶은 바램이다. 손쉬운 관광 코스는 그렇다 쳐도 등산로만은 자연상태를 최대한 살려 두는 게 좋지 않을까.

황매평원에 있던 목장 건물은 완전히 철거되고 소들도 보이지 않는다. 기존 비포장길도 새로이 아스팔트 포장 중이다. 차 오르내리며 먼지 날리지 않으니 잘 된 일이기도 하고 복원이 불가능하게 되었으니 못 된 일이기도 하다.

 

순결바우 능선을 내려서 국사당 터를 지나 포장매점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통상 등산 지도에는 표기 없음) 덕만 주차장이 가깝다. 개울 건너 주차장 비탈을 적당히 치오르면 된다.     

 

등로에 들기 전 올려다본 박등(668.2봉)

 

박등에서

 

모산(재)을 건너다 보다

 

삼봉 가는 철쭉길은 호젓하고 운치가 있다.

 

주릉을 바라보다

 

평전도 한 눈에 들고...

 

꽃 만발한 계곡 건너 합천호도 보이고...

 

 

주릉의 연두와 꽃빛도 일품이다.

 

합천호 너머 오도산과 가야산도 가물거리고...  

 

중봉 오르며

 

 

(지금은 철거된) 목장 축사를 거쳐 중봉 오르는 능선.

오래 전 맨 첨 황매산을 저 길로 올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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