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 기사를 읽다가 페미니즘과 관련한 흥미로운 게 보여, 좀 길지만 전부 옮겨보았다.
산질 부지런히 할때는 이런저런 세상사 대충 신경끄고 지냈는데, 산을 못가니 여기저기 한눈 팔 곳도 많이 보이고
지난달 어느 싯점 이후 세상사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버린 잘난 대통령 덕분에 페미니즘 얘기까지 관심이 간다.
나날이 새로운 내용으로 일용할 공부거리 제공해 주시는 박대통령에게 거듭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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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와 관련된 역대 최고 난이도의 문제가 출제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비판하는 그룹 DJ DOC의 시국가요 ‘수취인분명’이다. 페미니즘이 한국 사회를 뒤흔든 뜨거운 담론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여성혐오 논란이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미스 박’으로 호명한 이 노래처럼 찬반이 분분한 경우는 없었다.
메갈리아는 지지하지만 ‘미스 박’ 비판은 수긍할 수 없다는 사람들과 이런 명백한 여성혐오까지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너무 피로하다는 호소가 치열하게 맞선다. 여성들의 의견도 그 어느 때보다 엇갈린다. 특정 권력자를 향한 수취인 분명한 비판을 여성 전체를 향한 혐오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여성들과 이들을 향해 개념녀 프레임에 빠진 명예남성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페미니즘을 시험 과목이라고 한다면, ‘미스 박’은 오답률이 가장 높을 뿐 아니라 출제 오류 논란마저 일고 있는 문항인 셈이다.
양측이 행복한 중간지대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복면기자단이 모였다. 엔터테인먼트팀 기자와 촛불집회 안팎에서 여성주의 활동을 취재해온 기자가 가세했다.
낮술 마신 밤의 여왕(이하 여왕)=욕설 ‘년’의 사용이나 ‘미스 박’이라는 호칭이 여성혐오냐 아니냐를 너무 많이 논의하지는 말자. 전혀 안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정답을 가려 판결을 내겠다고 한다면 순환고리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어떻게 젠더 평등하게 비판대상을 풍자하고 조롱할 수 있는가의 방법론에 집중했으면 좋겠다. 나는 조롱과 욕설 없는 세상은 원치 않는다. 조롱과 욕설을 사랑한다고.
아연한맨(이하 맨)=한국 사회가 구사하는 유머와 풍자에 이미 너무 많은 약자혐오와 비하가 섞여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사회를 살균시키려는 것처럼 거부 반응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혐오에 오염되지 않은 조롱이 없는 게 현실이다.
여왕=그래서 ‘미스박’ 논쟁이 첨예한 것 같다 ‘이 정도가 조롱이냐? 그럼 무균실에 가 살아라’는 것과 ‘한 마리가 있더라도 균은 균이다’는 입장으로 갈린다.
맨=시기도 중요하다. 여성혐오에 대한 대대적 방역작업이 시작된 지금 그런 균 하나쯤 무시하고 가자는 게 맞냐는 거다.
한참 잘 먹을 나이(이하 한나)=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가장 쉬운 욕이 ‘여성성’을 겨냥하는 것이라, 여성성을 뜻하는 욕설을 사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지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맨=‘년’이 조롱에 있어서 효과적인 언어인 건 맞다. ‘DJ를 비난하며 발을 저는 흉내를 내는 게 옳냐’는 지적을 본 적 있다. 아무리 상대를 열 받게 하고 싶어도 그런 흉내만은 내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박 대통령에게 ‘년’을 쓰지 말자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여왕=‘미스 박’이나 ‘년’이 그만큼 혐오적 용어라는 전제 자체가 물음표인 거다. 이게 등가라 할 수 있나?
맨=소수자 호칭이라는 면에서 맞지 않나?
여왕=헬스 트레이너인 윤전추 청와대 행정관에게 미스 윤이라고 했으면 혐오였겠지. 하지만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에게 그런 하대를 했다는 지점에서 오는 전복적 쾌락이 있을 수 있다.
맨=하지만 그런 혐오 발언을 실제로 듣는 건 박 대통령이 아니라 집회에 참가하러 나온 여자들이다.
여왕=박 대통령도 못 듣는지는 않는다. 귀 기울이지 않는 거지.
행복하슈렉(이하 슈렉)=권력자에게도 ‘미스 박’이 멸칭으로 들릴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미혼 여성이라는 사실은 어쨌거나 꾸준히 정치적 공격의 빌미였다. 스스로 미혼임을 이용해 지지층을 결집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지만. ‘미스 박’이 불편하다는 이들은 국정농단의 원인을 대통령이 ‘미혼 여성’이라는 데서 찾는 태도가 싫다는 게 아니겠나. 다른 숱한 잘못들이 있는데, 굳이 ‘미혼이니까, 가정 안 꾸렸으니까, 미성숙한 인격체라서, 불완전하고 모자란 미혼자라서, 즉 미스 박이라서’ 라는 식의 논리가 엿보이면 문제제기는 할 수 있다.
여왕=지나친 확대해석 아닐까. 이게 역대급 난이도인 건 노래가사인 것도 한몫 한다. 명시적 기술이나 의견 개진이 아니라 단어를 통한 비유라 해석의 폭이 매우 넓고 제 각각이다. ‘요! 미스 박은 결혼을 안 해 국정을 농단했지, 예!’라고 했으면 이론의 여지가 없는데. DOC가 가사를 너무 착하게 쓴 게 문제다. 화끈하게 내지르지 않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린 DOC가 나쁘네.
브이 포 밴댕이(이하 밴댕이)=두 가진 것 같다. 결혼하기 전엔 미성숙한 존재로서 미스고, 결혼하면 미세스, 아줌마, 즉 배우자로서의 역할에 중점을 둬 부른다. 그래서 ‘아줌마가 무슨’식의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마치 굳이 사회 활동할 필요 없고 남자에게 소속된 존재로서, 사회 활동 제대로 할 수 있냐는 전제가 깔린다. 아줌마만큼, 미스라는 표현도 안 좋게 인식된다. 특히나 박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미혼이니까 성적인 경멸의 의미로서,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편견이 적용된 혐오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지적 해줄 만하다는 생각은 했다.
나대는 엑스(이하 엑스)=실제 ‘다음 대통령 뽑을 때는 결혼하고 애도 있는 정상적 사람을 뽑자’는 말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결혼 여부가 정상성의 문제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나는 멸칭이고 비하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당초 문제를 제기했던 페미당당 측 입장은 미스가 중립적 용어라면 박근혜를 비판하려고 할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아야 하는데, 스스로 ‘미스 ○’라고 불렸던 기억이 환기가 된다는 거다. 과거에 존중의 의미로 올려 불렸더라도 현재 듣는 이들에겐 그런 의미가 퇴색한 상태 같다. 구글 검색창에 한글로 미스라고 치면 헐벗은 여자들의 이미지가 나온다. 직업적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여성을 성적으로 까내리는 데 사용되며 듣는 이들도 성적 의미를 담아서 한껏 멸시하는 의미로 느낀다는 것이다.
여왕=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의미가 다른 것 같다. 한국 사회에서 미스가 (1)여성에게만 결혼 여부를 중요한 정보값으로 매긴 호칭 (2)조직 내에서 하찮은 일을 하는 여성 직원 (3)성 노동자로서의 여성 등으로 통용된다고 정리하면 될까. 난 DOC가 3번의 의미로 사용했다고는 전혀 생각 안 했다. 3번이라면 절대로 하면 안 되지. 하지만 1번 의미로 썼다면, 광장의 무대에 못 오를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공기처럼 스며있는 여성혐오를 폭력과 차별을 자행하기 위한 여성혐오와 등치할 순 없다. 똥물에도 급수가 있다. 사람을 일컫는 ‘man’은 여성혐오적인 언어다. 하지만 man을 쓰는 사람을 여성혐오자라고 하는 데는 찬성 못한다. 1번 의미의 미스도 그렇게만 생각했다.
엑스=이번 이슈가 불거지고 충격이었던 게 일각에선 ‘왜 이 가사에 발끈하는지 모르겠다, 왜 검열하려고 하냐’는 반응이었다. ‘아, 이거까지 설명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 ‘미스 ○’은 사어다. 일상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적잖은 여성들에게는 바로 연상 되는 게 3번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왜 문제냐’는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맨=박 대통령이든 누구든 특히 여자라면 제3자가 그 사람을 판단하는 제1 정보가 성별이 되는 것 같다. 대통령이기 전에 여자, 나는 기자이기 전에 여자. 박 대통령이 성적 스캔들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며 어떤 할아버지가 “마치 초등학교 때 몰래 사모하던 선생님이 화장실에 다녀오는 모습을 본 기분”이라고 하더라. 지지했던 마음도 거두는 마음도 어떠 어떠한 여자이기 때문인가 싶었다.
여왕=그건 그냥 그 분이 너무 이상한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의 제1 정보가 여성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데 동의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이 물론 있고, 그들에게 절대 반대다. 하지만 여성은 박 대통령의 제9 정보도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에도 반대다.
슈렉=전체 가사를 읽으면 그런 기운이 더 온다는 반응도 있는데, 도마에 오른 다른 가사가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 빽차 뽑았다 널 데리러가 (빵빵)’ 부분이다. 여성이 ‘오빠 차’로 대변되는 남성의 재력에만 매달린다는 ‘된장녀’ ‘김치녀’ 담론을 떠올릴 수 있겠다 싶었다.
맨=무리는 아니다. 그것도 낡디 낡은 된장녀 담론을 게으르게 차용했다.
밴댕이=세뇨리땅도 사회적으로 미혼여성이 능력 없다는 선입견을 바탕으로 하고.
여왕= 남성형 세뇨르땅으로 DOC가 바꿔줬으면 좋겠다. 내가 가수라면 새누리당을 비꼬는 데 이런 라임은 포기 못할 것 같은데.
밴댕이=그건 음악적 센스지만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센스는 없다는 거다. 없으면 없다고 인정해주고 넘어가냐 안 넘어가냐 차이다. 아까 멸균실 얘기가 나왔는데, 음식의 경우 웬만하면 어느 정도 위생적으로 먹고 싶어 하지만 어떨 땐 비위생적으로 먹을 수밖에 없는 때도 있다. 하지만 광장에서 뭔가를 할 때는 적잖은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평가하면 주최측 입장에선 받아들일 만하다는 것이다.
여왕=하지만 DOC가 ‘수취인분명’을 빼고 무대에 서겠다고 했는데도 출연이 어렵다고 통보했다는 게 주최측 공연 실무진의 설명이다. 이미 다 섭외해 놓은 뮤지션에게 그건 부당한 처사다.
엑스=주최측 공식 홍보 담당자는 “DOC 측 입장도 있어 일절 대응을 안 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할 수 있는 설명은 “계속적인 문제제기가 들어와 주최측에서 이를 확인했고, 논의를 거쳐서 DOC 측에 이런 논란 속에서 무대에 오르는 게 더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요청을 했다. 그걸 DOC가 받아 들여 공연이 취소됐다” 정도다.
슈렉=창작자가 원하는 표현을 골랐는데, 그에 대해 누군가 “문제 있다”고 반응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다. 물론 “그래서 세상에 나올 순 없다”거나 “무대에 서면 집회 자체를 보이콧 하겠다”고 했다면 다른 차원의 논의겠지만.
엑스=처음 이런 목소리들이 나온 계기는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광장에서도 여성의 목소리를 내겠다는 취지였다. 처음에 나온 이야기가 광장에 나갔다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이다. 실제 가해자가 경찰에 입건된 사건도 있었다. 이를 두고 단체들이 모여 발언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안전 담당 스태프를 파견하기도 했다. 그걸 보며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더라. 난 일종의 이중전선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박 대통령에 대한 전선, 하나는 그 전선 안에서 벌어지는 여성 혐오에 대한 전선. 이걸 유시민의 표현대로 “해일 몰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고 본다면 언젠간 부딪힐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DOC 가사로 제일 크게 터진 셈이다.
여왕=박 대통령에게 ○년이라고 하는 것과, 다른 남성 정치인에게 내시○○라고 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혐오적인가. 난 후자라고 생각한다. 전자는 단순 욕설이지만, 후자는 여성을 상급자, 지휘자로 절대로 모실 수 없다는 차별이다. 그런데 내시는 별 말 없고, ‘년’만 논란이 된다. 나는 내시 발언을 규탄하고 싶다.
밴댕이=한국사회가 성적 소수자에 대한 민감도가 기본적으로 낮지 않나. 뭣도 없는 놈처럼 행동한다는 비난, 즉 후자 자체가 남근중심적인 사고 방식이다. 이 말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결국 여자가 저렇게 잘못하고 있는데 남자가 뭣도 없이 돕고 있냐는 말로, 서로 같은 얘기다.
여왕= 어떻게 하면 혐오가 전혀 없이 조롱과 비하를 구사할 수 있을까? “상상력이 그렇게 없냐” “여성혐오 안 하면 가사 못쓰냐”라고 하는데, 말이 쉽지. 우리가 뭐 상상력이 그렇게 뛰어나진 않으니까. ‘년’을 못 쓰니 그럼 ‘놈’을 써야 하나? 그건 인간을 다 ‘맨’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지 않나. 우리에겐 정말 새로운 욕이 필요하다.
맨=아니, 왜 꼭 욕에 성별이 있어야 하나?
여왕=존재에 성별이 있으니까.
밴댕이=성적 차별 요소가 있으면 피해야 하는 것 아니냐.
여왕=차별 요소 지우기에만 골몰하다 보면 어느새 존재도 지워질 수 있으니까. 멜라니 트럼프를 한 톨의 여성혐오 없이 비판하려면 말을 안 하는 수밖에 없고, 그건 퍼스트 레이디라는 공적 지위를 삭제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여성을 혐오해도 된다는 게 아니라 여성혐오가 한 톨도 없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가능하다. 아예 언급을 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여성 자체를 호명하지 않는 상황을 나는 원치 않는다. 존재는 지우지 않으면서 차별만 지우기 위한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다 같이 즐겁게 ‘년’을 많이 써서 그 의미를 재미있고 경쾌하게 만드는 언어의 전복을 꾀해보면 어떨까.
맨=그래서 맨날 나한테 이년 저년 한 건가.
한나=실패한 전례가 있다. 한 커뮤니티에서 ‘김 여사’가 비하적이라 대신 ‘김 아재’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아무리 해도 유통이 안됐다고 하더라.
슈렉=이미 사회적으로 비하의미를 획득한 단어를 아무리 열심히 많이 쓴다고 한들 100년 넘게 구축된 사회적 약속, 의미, 어감이 쉽게 바뀔 것 같진 않다. 오늘부터 년을 가볍게 많이 쓰자? 10년 뒤 상사가 “야 이년아!” 할 때 과연 경쾌할까.
맨=된장녀, 김치녀라는 단어는 그런 전복이 이뤄졌다. “내가 이 구역의 된장녀다”라는 용례만 봐도. 그런데 년은 확실히 다르다. 왜 년은 안 될까.
밴댕이=원래 욕 아니냐. 욕이 중화가 되기는 힘들다. 된장, 김치 등은 바뀔 수 있는 속성이 있지 않나.
엑스=영화 ‘아수라’만 봐도 남성끼리 놈보다 더 하대하고 강도 높은 욕이 필요할 때 년을 동원하니까.
밴댕이=남성들이 서로 년이라는 말 붙이는 건 더 화내야 할 때, 격분했을 때다. 확실히 놈보다 년을 낮추는 말로 쓰긴 한다.
엑스=그래서 여혐 없는 욕 콘테스트를 하잔 얘기도 나온다.
밴댕이=일본어만 해도 성별을 구별하지 않는 중간자적 욕이 대표적이지 않나. ‘축생’.
여왕=난 이게 중요하다 생각해서 몇 년 전부터 ‘병신’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등신’과 ‘빙충이’로 대체했다. 집회를 하더라도, 박 대통령을 비난하더라도 “년이라고는 하지 말아주세요” 이런 태도가 너무 수세적이다. 비유 자체를 금지함으로써 욕 먹을 짓을 해도 아예 욕을 하지 말라는 얘기 같다. 미러링 하던 패기와 호연지기를 되살리면 안 될까.
슈렉=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지적하는 게 왜 잘못인가. 특히 상대가 대중적으로 큰 발언권을 쥔 경우라면 “제 생각은 다릅니다만, 자꾸 그런 태도를 유포하는 건 문제입니다만”이라고 하는 거고.
여왕=정중한 언어가 교환되는 장이 있고, 풍자와 조롱이 넘쳐나는 카니발의 장이 있다. 욕설이나 풍자의 화용론이 꼭 필요한 순간도 있다. “박근혜는 하야하라! 시집이나 가라”고 한 할머니에게 혐오발언이라고 면박 주는 게 오히려 엘리트의 권위 같고 무안하더라는 반응도 나왔다.
슈렉=기술적 문제 같다. 사회자가 “우리 발언자께서 무척 화가 많이 나셨네요. 다들 분노하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특정한 성별을 겨냥한 표현이 불편하시다는 분들도 있으니 같이 이점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정도로 말하는 것도 과했을까. 자꾸 의견을 내야 옳고 그름 논쟁도 가능한데.
여왕= 그거 좋다. 슈렉을 사회자로!
엑스=박하여행(박근혜 하야를 만드는 여성주의자 행동) 등 단체가 과거 한 집회에서 남성 발언자의 무대를 보는데 “무슨 년 무슨 년” 발언이 줄줄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걸 보며 안절부절 못하며 불편해 하는 사람들은 여성이고 적잖은 남성들이 즐거워 하더라며 “내가 이러려고 집회 나오고 시위 하나”하는 배제감을 느꼈다고 한다. 근데 올해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 불편한 사람이 광장의 절반은 됐다고 한다면, 젠더 감수성이 작년 역치, 올해의 역치가 다른 게 아니겠나.
슈렉=아예 “발언권을 줄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면 불편함을 지적은 할 수 있지 않나.
맨=근데 지금 그에 대한 일각의 반응은 지적이 가능하다가 아니라 “너희들의 결벽 때문에 광장에서 DOC 노래 들을 자유를 뺏겼다”의 피해자 포지셔닝이다. “이 꼴페미들이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이런 정서가 없지 않다.
밴댕이=가장 문제가 되는 혐오 발언을 놓고 보면, 보통 인종혐오적 발언이다. 예들 들어 유럽 구장에서 선수나 관중이 박지성 등에게 “노란 원숭이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했다간 바로 추방 등 패널티를 받는다.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구단도 패널티를 받는다. 표현의 자유 영역을 넘어갔다는 거다. 건전한 사회 유지하는 데 있어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 입힐 수 있다고 판단하면 규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패널티의 경계가 과연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당연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거다. 다만 이런 합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앞서 문제제기도 당연히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겠나. 이번에 이렇게 됐다고 해서 DOC는 다신 노래를 할 수 없다는 것도 아니지 않나. 우리는 그만큼 엄격하지도 못하다. 오히려 더 자유롭게 하는 나라다.
여왕=‘노란 원숭이’ 등에 등치할 만한 여성혐오 발언으로 ‘미스 박’은 미달인 것 같은데. 농도가 다르다.
슈렉=농도가 다르다는 건 주관적이다.
여왕=합의 가능한 선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대기 오염 농도를 측정하는데도 얼마 이하는 호흡에 무방하다는 기준이 있지 않나. 오염물질이 있느냐 없느냐만 따지는 건 너무 소모적이다.
밴댕이=20대 초반까지는 식당에서도 ‘아가씨’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여기요’ ‘저기요’ ‘이모’로 다 바뀌었다. 아가씨라고 하면 다 싫어하더라고.
슈렉=그게 핵심 아닌가. 식당에서도 듣는 사람이 싫어하는 호칭은 잘 쓰지 않는다. 상대가 어려운 사람이면 더하다. 싫다는데, 불편하다는데 “이거, 그런 뜻 아닌데”라며 계속 쓰겠다는 자체가 상대방을 약자로 놓고, 그렇게 취급해도 문제가 없다는 정서를 은연 중에 드러낸다는 사실, 이게 문제라는 것 아닐까.
밴댕이=남성으로서 같은 남성을 더 하대할 때 “년”을 쓰는 건 맞다. “년”이 훨씬 강도 높다는 것은 언어적 합의가 어느 정도 있는 내용이다.
캣츠걸=한 남자 작가는 여자 문인을 “나와는 다르고, 나와 경쟁이 되지 않는 이”로 묘사할 때 꼭 ‘아가씨’라는 표현을 쓰더라. 뿌리깊게 여성을 낮춰보는 단어다.
밴댕이=아가씨 이모 사이 고민했던 게 뭐냐면, 같이 식당을 갔는데 지인이 이모라고 부르더라. 아가씨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는 느낌? 미군들이 ‘색시’라는 단어 영화에서 쓰는데, 그때 ‘색시’는 이쁜 아가씨라는 표현인 거다.
맨=그럼 여성을 부르는 모든 단어가 오염돼 있는 건가? 하나만 주면 안되나.
여왕=그럼 호명을 할 수 없는 건가?
엑스=박근혜가 여성으로서 호명되는 자체가 문제시되는 거다.
한나=오염된 아가씨의 언어를 돌려주고 싶었다고 박찬욱이 그랬다.
엑스=그래, 구글에서 아가씨 치면 김태리, 김민희 나온다.
여왕=나도 성별이 중요한 정보라 생각 안 하지만 그 정보가 없다고 칠 수는 없다.
맨=하지만 많은 경우 여자라는 정보 외에는 접수 하려고 하지 않는다.
밴댕이=2013년 말 2014년 초 “역시 여자라서 안 되는구나” 하는 식의 발언이 나왔다. 농도와 계기는 다르겠지만 박근혜 물론 여러 문제 있기는 하지. 근데 여자니까 이런 식으로 언급되는 건 부당한 선입견이 있다는 거다.
캣츠걸=박근혜 리더십을 여성 리더십으로 오해하는 것 자체가 문제지.
맨=생식기만 가지고 여성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여왕=그건 피해 의식 같은데.
맨=여성으로 태어나 평생 결혼도 안 하고 자궁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럴 경우 스스로의 성별을 인식할 일이 많지 않은데도 왜 여자라는 정보만 읽느냐는 거다. 한국사회가 특히 심하다.
캣츠걸=그건 내가 여성성을 드러내고 아니고가 아니고 외부에서 작동하는 거다.
여왕=나는 오늘 처음 배웠다. 미스의 (3)번 의미가 그렇게 크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없었다면 ‘영자의 전성시대’에나 나오는 사어인 줄로만 생각했을 거다. 짜증날 텐데 설명해 줘서 고맙다.(웃음) 열린 마음으로 서로 견해에 귀를 기울이면 설득은 아니더라도 이해의 교집합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발언이 여혐 농도 0.5g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300g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논쟁해 정답을 낼 순 없다. 견해의 편차가 큰 사안이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건설적이다. 나는 미스 박이 박 대통령을 호명하는 데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말이 괴롭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DOC가 그 말을 빼고 가사를 수정했으면 좋겠다. 팬으로서 요청한다. 내가 공기처럼 여혐을 들이마시고 있고 너무 둔감한 것 아닌가, 늘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여혐에 치를 떠는 내가 과도하게 예민한 것 아닌가도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아몰랑’도 여성혐오니 쓰지 말라는 데서 정말 무릎이 꺾였다. 문제라면 문제만 지적하자. 과거 ‘미아리 복스’ 논쟁까지 끌어들이며 “DOC는 회개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과하다.
밴댕이=개안을 해서 세상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수도 있는데, 소위 ‘사회적 전과’를 가지고 규탄하는 것도 또 다른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로 비판을 할지언정 과거의 행적으로 비판하기는 무리가 있지 않나. 그런 차원이라면 양희은, 전인권도 과거 이력으로 비판할 수 있다.
슈렉=소모적이라곤 안 본다.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최후까지 옹호하겠다”라는 식의 정신이 필요하지 않나. 사실 관계는 따져야겠지만 “이 가사는 다소 문제적입니다”라는 항의도, “누군가 그리 느낀다면 검토하겠습니다”라는 주최측도, “그렇다면 무대에는 서지 못하겠군요”라는 DOC의 대응도 모두 충분히 있을 법했다고 본다. 각각 반박이 나올 순 있겠지만.
밴댕이=시간이 갈수록 호불호에 대한 비율이 달라지기는 할 거다.
맨=민주주의는 원래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진보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지 않나. 난 그 말이 맞다고 본다.
슈렉=여기저기서 와글와글하고 끊임없이 논쟁하고 서로 억제하지 않는 것 자체가 건강한 것 같은데. 동의가 되든 안되든 그 논의 자체가 합의점을 찾기 위한 하나의 진행태니까.
여왕=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감수성, 이를테면 젠더 감수성을 그물코에 비유한다면 그 그물코의 사이즈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그물코로는 괜찮았는데, 너의 그물코에는 이게 문제적이라고 걸려들 수도 있다. 크든 작든 그동안은 모두 그물코였다. 그런데 이번 ‘미스 박’ 논쟁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아니 ‘저것까지 문제라면 그 기준은 더 이상 그물이 아니라 비닐 방수포 같다’고 느낀다.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이런 지적에 귀를 기울이는 게 무의미하지 않다고 본다. ‘대인배 페미니즘’을 추구한달까. 누가 “이년아” 하면 “왜 이 썅놈아”라고 받아치는 페미니스트계의 우병우 같은 삶을 내가 살아왔기 때문일 거다. 거시 페미니즘에 더 관심이 많은 기성세대로서 미시 페미니즘이 너무 교착상태라 답답할 때가 있다. 그물코의 크기를 매우 줄여야 하는 사회다. 하지만 어디까지? 이걸 논의하면 좋겠다.
맨=이러 논의 때문에 큰 제도를 바꿀 동력을 결코 잃진 않잖아. 정책 입안자들이 이런 것에서부터 눈치를 봐야 큰 게 바뀌지.
엑스=새로 떠오르는 운동 조직이나, 자생적으로 현장 뛰는 이들은 대학생 연구그룹 등에서 출발한다. 당장 매번 부딪히는 문제에 힘겹게 전투를 치르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거시적인 전략을 구성하는 식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고, 그런 가능성에 목말라 있다.
슈렉=미시, 거시가 필요한 시점이 따로 있을까. 당연히 누군가는 큰 그림을 그려야 마땅하고, 작아 보이는 주장도 와글와글하는 게 건강해 보인다. 내용에 동의 못하면 서로 반박하고 궁리하면 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기도 하다. 각자 자기자리에서 다하는 작은 최선이 모여 큰 동력도 만드는 것 같다.
출처 : 한국일보(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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