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 대관령(11:40) - 제왕산(13:30) - 다음 봉우리 - 대관령(15:40) 대관령에서 여유롭게 왕복
심연이었다.
햇살 부셔 더욱 심연이었다. 희고 깊고 거대한...
아이들, 부서지는 햇살의 파편처럼 깔깔대며 빛났고
우리들, 꽃이름 연호하며 종종걸음치거나 자주 희빈덕거렸지만
가지를 삼키고 나무를 삼키고 숲을 삼키고 바위를 삼킨 하늘. 툭 떨어지듯 쏟아져내렸을 검고도 흰 하늘,
무겁고도 무섭다.
천산 만산 엎고 덮어버린 빛의 길 밟으며 헤엄치듯 간다. 빛나는 땅은 뒤집어진 하늘 혹은 내려선 천국이지만, 오롯한 길 벗어나면 벼랑 혹은 심연.
가끔 그 바닥 못 견디게 궁금해지면 짐짓 먼산을 본다. 기묘한 구름 휘젓고 가는 파란 하늘 아래 검푸른 산 또한 막막한 세상 저편.
제왕산 이름 유래를 모른다. 정상 부근 어디쯤 표지 본 듯도 하지만 짐짓 외면이다.
무량강설無量降雪이 지어올린 침묵과 만형용의 왕국, 오늘의 내 산길엔 낡은 의미 닿을 틈조차 없으니.
눈이 빚어낸 뭇 형상들을 본다. 산에서 보고 더욱 단순해진 사진들에서 또다시 본다.
자연현상의 무의미하고 일시적인 결과들이지만, 어쩌면...
최초의 생명 또한 그렇지 않았을까.
최초의 생명, 그것은 분명 누구의 어떠한 의지의 표현도 아니었을 것이다.
회오리치는 우주, 그 자체로는 전혀 무의미한 운동의 우연한 결과로 생명은 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 생명이게 된 그 순간 이후, 의지 자체인 생명은 주위세계를 의지와 의미로 물들이고 충만케 한다.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 안팎으로 섬기고 모시며 부릴 신神과 짐승에 이르기까지...
돌아봄 없이 나아간다.
눈 뒤집어쓴 나무 혹은 바위얼굴들, 누가 저 형상에 훅~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순 없을까?
태초에 생명은 번개치는 바다, 문득 그렇게 생겨나 우주 최초의 호흡을 뱉았을 것이다.
먼먼 진화의 끝, 여태도 길 하나 터득치 못해 기진맥진 가쁜 숨 몰아쉬며 윤회하던 짐승의 눈망울이 아직 선하다.
감기몸살 끝자락, 나 또한 숨이 가쁘다.
저마다의 윤회, 아직 이어지고 있는 시작과 끝 사이, 멈출 수 없는 일상의 호흡 거칠게 내뱉으면서...
낭자한 웃음과 환호는 바람이 앗아가니, 더디게 개이며 무겁던 서쪽 하늘이 아직 위세다.
돌아본다.
하늘이 그저 내려앉은 듯... 희디흰 무거움에 사로잡힌 세상.
숲으로 접어드니 문득 고요하다. 숨 돌리며 하늘을 본다.
꽃이라 불러 마땅하지만...
오늘따라 나무들은 밀어내는 안간힘으로 더욱 파래지는 듯...
돌아본다.
구름 밀려나는 곳, 새봉인가?
제왕산 능선과 오봉산.
습도 높아 시야가 썩 깨끗하진 않다.
숲의 침묵 혹은 절규. 굴복의 자세로 수그린...
비상의 기세 꺽이고 흐물흐물 녹아내릴 듯, 중력과 한 몸 되어 차마 무정형의 광물질로 돌아가 버리고 싶은 나무들.
나무들의 묘지.
머시기라 적어놓은 비석 하나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전혀 뜽금없이, 십자가와 묘지석의 맥락으로 엮인다.
힘겹게 휘어지는 터널, 허리 꺽이는 아우성을 관통하며 즐거워하는 우리 인간이란 족속, 필시 사악하고 변태적인 종자러니...
능경봉 돌아보니, 형광등 100만개는 켜 놓은 듯한 아우라.
숲 빼꼼 열리는 틈으로 내다보다가....
감질나서리,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헤치고 몇 걸음 내려가 본다.
멀리 석병산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능선 조망대에서 건너보다.
제왕산은 산세 볼품 없어도 곳곳 조망 포인트는 많다.
진행방향 제왕산 정상부와 오봉산
다시 남쪽들...
역광으로 능경봉을 보다
나무들, 사라지니 홀가분할까? 윤곽 둥글둥글해졌다. 억지춘향...
선자령 곤신봉까지
새봉에서 곤신봉까지
앞으로는 잘 생긴 솔들 보이고
석병, 만덕, 칠성대 능선이 시원스럽다.
지나온 능선과 능경봉
가운데 대관령
사면 가로지르는 터널도 보이고...
지나온 방향 당겨본다
대관령길엔 차량 오종종한 곳이 있다. 혹 옛길 만나는 지점?
당겨본 터널
흐미, 저 귀신... 푸대자루 뒤집어쓴 사오정같네...
광물들, 무생물들 모습에 살아있는 형상을 부여하는 건 생명체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공감력인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괜한 뻘짓인가?
돌아보다
제왕산 정상부 다가가면서 꽤 고도감 느껴지고 조망 시원스럽다
팔 휘저으며 비명 지르는 듯.
큰 욕 보시니더~~
공감력 없는 짐승은 아랑곳없이 뚝딱대고...
저기가 정상부
솟대바위래던가, 머시라던가... 지금은 그냥 울상의 괴물 혹은..
긴 포옹.
흐미, 이 넘은 문어대가리구마는...
능경봉 돌아보고
당겨보고
정상부 솔들
심연을 느낀 건 저런 모습들이었다. 산 숲을 삼키려는 흰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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