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용승의 평안마을에서
그림 같은 다락논이 있다는 용승의 용배(Long-Ji)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가이드북 소개도 시원찮고 길을 잘 알지도 못해 현지인 가이드를 동행한다.
털털대는 버스로 계림까지 와서 장거리 버스 정류소에서 다시 용승행 버스를 갈아타고 세 시간을 달리니 화평(和平)이란 곳에 도착한다. 먹은 듯 만 듯한 아침, 몇 시간을 버스에 시달렸으니 기아선상이다. 화평 삼거리 허름한 식당에서 달팽이까지 곁들인 점심을 겁나게 먹어치운다. 중국 와서 자꾸 배만 커진다. 여행 나오면 이상하게 배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오죽하면 오래 전 부부동반으로 여행하며 친구 부인에게 생김과 달리 돼지란 소리까지 들었을까. 후배조차 날더러 집 나와야 살찔 체질이라며 놀린다.
갈아탈 버스를 기다리며 우릴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은 닭 개보듯 무심이다. 배부르니 만사 즐겁다. 버스는 원조 비포장길을 내지른다. 사람 반 짐 반을 싣고 털털거리며 잘도 달린다. 짐들 중엔 짐승도 한몫이다. 강원도 골짜기 같은 고갯길을 달리고 달려 검은 기와지붕의 목조건물들이 즐비한 마을에 내린다. 용배제전(龍背梯田) 7km란 팻말이 있다. 개천 너머, 말로만 듣던 용틀임하는 다락논이 장관으로 펼쳐진다.
마을로 들어서니 전통 의상을 입고 타악기 장단에 맞춰 여인들이 춤추고 있다. 지나치며 구경하고 흔들다리를 건너 가파른 오솔길을 오른다. 네팔에 다시 온 듯하다. 다락논 사잇길을 따라 숨차게 한 시간여를 치올라 슬슬 몸이 풀리는데 벌써 목적지다.
평안(平安)마을에는 장족(壯族)이 산다. 못을 쓰지 않고 지은 건물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뒤편 언덕 높이 올라 굽어본다. 한 폭 그림처럼 시원스런 풍경. 네팔의 다락밭과 달리 여기는 모내기철을 맞아 물이 가득 찬 논이다. 거울로 반짝이는 수면 사이사이 푸른 논둑 줄기가 곱게 빗은 머릿결마냥 앙증맞다. 산줄기를 기어오르는 육감적인 꿈틀거림은 자연을 향한 인간의 의지와 노동이 빚어낸 아름다움의 한 전형이다. 굽이치며 솟는 저 역동을 용승(龍勝) 혹은 용배(龍背)라 했던가? 식물의 푸르름과 고여 있는 물의 반짝임에서 느끼는 동물성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밀려드는 어스름 아래 턱 괴고 앉아 하염없이 빠져든다.
계림산수와 이강을 다시 생각한다. 산은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날려버린다. 보란 듯이, 이럴 수도 있다는 듯 과시한다. 산들이 빚어내는 윤곽은 공룡의 이빨처럼 위태롭고 현란하다. 한 치의 원만이나 부드러움도 허용치 않는다.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살아서 돌아 나올 수 없다는 무협 세계의 살진(殺陣)처럼, 계림에 들어서거나 이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순간 우리는 자연에 포위된다. 영원을 품은 신비도 아니며 인간을 받아들이는 넉넉함이나 다정도 아니다. 오로지 완전한 포위! 요새 중의 요새 흥평을 보라. 미로에 갇힌 생령들의 탈주로는 어디에도 없다. 신선의 세계란 환상의 극치요, 상상할 수 있는 극단의 기이함을 모은 곳일 뿐이다. 멀리 안개 속에 잠긴 계림의 산과 강은 산수화보다 더 산수화답다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오직 몽환의 세계다. 그것은 무의식 또는 상상력이 현실과 공유하는 피안의 꿈이며 초현실의 환상으로 펼쳐놓은 별세계의 꿈이기에, 서구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기는 선과 질감이 계림산수의 그것들과 흡사함은 근거 없는 우연인가?
평안마을의 어둠에서 다시 평화를 찾는다. 계곡은 깊고 물은 맑다. 음식도 담백해진다. 무엇보다 해맑은 표정과 자연스런 웃음. 먼 산들과 사람의 길, 산 너머 길... 산은 길을 열고 내어주지만 우리가 길을 누림으로 비로소 산은 열려온다. 여기의 사람과 자연이 만나는 방식을 본다. 이들은 스스로를 자연의 필연적 일부로 여기는 듯하다. 인간은 자연과 처절히 싸우지만 본래의 흐름과 선을 깨뜨리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로는 말살하지 않고 끌어당기며 닮아간다. 곁을 지키면서 함께 머무른다.
계림 산수가 비현실이 주는 충격과 경이라면, 이곳은 자연을 통한 시원으로의 회귀를 꿈꾸게 한다. 전깃불 없는 어둠 속에서 촛불 아래 밥을 먹고 구름 덥힌 하늘 별빛도 내리지 않는 온전한 어둠 속에서 가장 편한 잠을 잔다.
용승
간밤에 비가 내렸다. 구름은 저 아래 산 중턱 논 가운데 걸려 있다. 농사짓는 이들은 벌써 들일이 바쁘다. 모내기철이다. 불과 이삼 미터 폭만 되어도 소를 써서 논을 갈지만 더 좁은 곳은 인력으로 모든 일을 한다. 논들은 자꾸 하늘로 오른다. 첨에는 밭이었다가 대나무 파이프를 이용한 관개시설이 갖추어지면 논이 된다. 이들은 못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만 이층집을 짓는다. 나무들이 가로 세로로 엇갈리고 만나면서 이루는 선과 면과 공간은 단정한 목조 고건물 못잖은 아름다움이다.
몸살이 나 쉬려는 동행을 뒤로하고 가이드와 함께 龍背(롱지)마을까지 걷는다. 평안마을과 롱지마을 사이는 고도차가 심하지 않아 산책하긴 그만이다. 층층 구비 돌며 솟아오르듯 흐르는 논들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들 장족이 여기서 다락논을 일구며 살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元대부터라 한다. 그로부터 700년. 중국에서 가장 부지런한 종족이란 말이 당연할 만큼 이들은 하루 종일 논에서 일하는 걸 자연스럽게 여긴다. 왜 평지를 두고 이 험한 산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을까? 네팔의 계단식 밭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나라는 평지가 흔치 않은 나라였다. 그러나 중국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이들이 여기서 사는 것은 어떤 불가피한 이유 때문이라기보다 의도적인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은 명백하고 단순한 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난 내가 추측하는 답도 거기서 많이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노인만 남은 우리 농촌과 달리 일하는 사람들 중엔 젊은이도 꽤 보인다. 가이드에게 그 얘길 하니 중국도 농촌 젊은이 중 절반은 도시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덧붙여 불평스럽게 내뱉는다.
“계림 시내 고급 가라오케나 술집 가면 예쁜 여자들 정말 많아요...”
세계화의 깃발 아래 단 하나의 삶의 방식만을 강요하는 자본의 힘은 명색 사회주의 국가 오지까지 위력을 발휘한다. 나만의 개성과 특질까지 사고파는 무차별하고 평등한 상품 시장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 모습의 전부일까?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비슷하지 않겠냐던 내 쓸쓸한 대꾸가 불행히도 이곳에서도 진실이 되어 가는 듯하다.
고산마을을 내려와 돌아갈 버스 기다리며, 춤추는 요족(瑤族) 여인들을 본다. 이들은 유난히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르는데 틀어 올린 머리채를 풀어 내리면 거의 무릎을 덮는다. 채색 전통의상을 입고 흑단 같은 머리채를 풀어 내린 요족 처녀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요기(妖氣) 은은한 고혹적인 자태다.
춤 구경에 넋 놓고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팔찌를 내보인다. 조잡하게 은도금한 싸구려지만 기념품으로는 적당하겠다 싶어 관심을 보였더니, 에구머니나....이 무슨 해괴망칙이람? 갑자기 춤추다 말고 열 명도 넘는 여자들이 한꺼번에 달려와 나를 에워싸고 갖가지 장신구를 하나씩 들고 흔들어댄다. 정말 황당하다. 열 살 남짓한 소녀부터 육십 넘은 할머니까지, 물건 팔기보다 당황하는 이방인을 놀리며 즐거운 듯 킬킬거리기에 더 바쁘다. 그러나 평생 그렇게 많은 여자들에 둘러싸여 볼 기회가 다시 있을까? 진땀은 났지만 황홀(?)하기 그지없는 순간이었다.
계림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비가 내린다. 비안개에 젖는 이국의 산하. 털털대는 차창 밖으로 울창한 대숲이 이어지고 말 없는 엉덩이의 고생은 끝이 없다.
계림에서 상해까지
계림에서 식사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식당은 역시 손님 많은 집이 미덥다. 이들은 주로 겨울에 먹는다는 개고기 전골과 돼지갈비 탕수육. 결국 탕수육은 배가 불러 두어 점밖에 먹질 못했다. 원통한 거...
이강 유람선에서 밥 굶게 한 여자를 추궁하려 찾아갔으나, 젖먹이를 뉘여 놓고 한껏 지친 표정을 짓고 있다. 맘이 약해져 돌아선다. 또다시 계림의 밤거리를 활보한다. 두 시간 넘게 쏘다니며 싸구려 모자도 하나 사고 그저께의 설욕으로 야바위도 재도전한다.... 또 하루가 간다.
비 내리는 계림공항의 바깥 풍경이 수다한 대기실과 달리 차분하다. 잠시 후면 상해로 날아간다. 기차를 타고 곤명(昆明)을 향해 마냥 달리고 싶지만 맘뿐이다.
상해에 도착해 황산행 비행기 예약하고 일정 맞춰 서울행 비행기도 컨펌하려는데 일이 꼬인다. 상해공항은 대기실에서 수속 카운터로 가는데도 공항료를 요구한다. 호객꾼을 방지하려 함인지 어수룩한 여행자 벗겨먹자는 건지 모르겠다. 동방항공 오픈티켓을 가진 우린 황산행 창구에서 서울행 시간 예약을 함께 부탁했는데 국제선 쪽으로 가란다. 멀지 않은 국제선 대기실의 컨펌 창구에서 내 티켓을 보더니 (이유는 모르지만) 안쪽의 항공사 창구로 가라 한다. 슬슬 짜증이 난다.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통로를 막아선 공안(경찰)이 제지하며 공항료 영수증을 보잔다. 말이 아예 안 통하므로 난 짧은 영어를 지껄이며 티켓을 흔들었고 그는 중국말을 떠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결국 둘 중 혼자만 다녀오라며 들여보낸다. 해당 창구로 갔더니,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건지, 다시 삼층 항공사 사무실로 가란다. 그곳으로 통하는 계단은 하나뿐인데 staff only다. 둘러봐도 다른 통로가 없다. 씩씩하게 올라가는데 공안이 길을 막는다. 역시 티켓을 흔들며 항공사 마크를 가리키니 순순히 비켜준다. 3층에 올라 사무실이 있을 법한 복도로 들어가려는데 또 공안이 길을 막는다. 기어이 뚜껑이 열린다. 녀석은 공항료 영수증을 보여 달라며 중국말로 우기고 나는 녀석의 말을 못 알아듣는 척 소리를 지르며 막무가내로 항공사 마크를 가리키며 티켓을 흔들며 우리말로 소리를 질러댔다. '새꺄, 미쳤다고 컨펌하면서 90원이나 되는 공항료를 내냐'. 마지막 관문이었던 녀석과는 십분 이상 실랑이를 했지만 결국 이겼다. 말도 안 통하는 데다 대책이 안 서는 악질이라 싶었던지 급기야 포기하는 표정을 짓고 들어가란 시늉을 한다.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해도 정떨어졌다는 표정으로 외면한다. 정말 질리는 상해공항과 그 넘의 공안들....
터무니없이 시간을 끌고 나니 황산행 출발까지 채 세 시간이 남지 않는다. 무얼 할까? 지도를 보고 궁리하다가 루신공원까지 벼락치기로 다녀오기로 한다. 말이 전혀 안 통하는 택시기사와 완벽하게 의논을 끝내자 택시는 상향등을 켜고 고가도로를 질주한다. 당초 장담하던 사십분보다 십분 단축하여 공원에 도착했다.
짐을 실은 채 택시를 세워두고 한가로이 데이트하는 남녀 사이를 뚫고 잰걸음으로 윤봉길 의사의 흔적을 찾는다. 현장은 커다란 돌에 우리말과 중국어로 새긴 글이 적혀 있다. 별다른 감회가 밀려온다. 뒤쪽 매정(梅亭)까지 돌아 나오며, 격동하던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간 영원한 근대인 루신(盧迅)의 동상 앞에 선다.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느낌을 가져보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다시 공항으로 질주한다. 기사와 인사 나누니, 한 시간의 여유와 필담 하느라 휘갈겨 쓴 손바닥의 무수한 한자들만 남았다...
황산가는 길
황산(黃山)가는 길목도시인 툰시(屯溪) 공항에 내리니 여덟시 반. 가로등 하나 없이 깜깜하다. 보슬비 내리는 어둠 속 낯선 얼굴들 위로 커다란 눈만 검게 번뜩인다. 함께 내렸던 사람들은 그새 보이질 않는다. 암담해진다. 주위를 살펴보니 택시 두어 대 미니버스 두어 대가 희끄무레하다.
볼에 칼자국이 있는 인상 험한 사내가 다가와 택시를 권한다. 황산까지 직행하면 200원에 70분 걸린단다. 당장 황산까지 가면 내일 일정이 여유롭다. 후배에게 물으니 겁먹은 표정으로 “밤인데 멀리 가지 맙시다.” 한다. 나 역시 그 비용으로는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공항답지 않게 턱없이 음침하고 괴괴한 분위기도 영 기분 나쁘다.
머뭇거리는 사이 가격은 자꾸 내려가지만 결국 시내까지만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탔다. 막상 운전자는 다른 사람이다. 깜깜한 택시의 룸미러에 비친 그의 눈매는 선량해 보인다. 비 내리는 밤 가로등 하나 없는 도로를 한참 달려가니 큰 호텔이 하나 보인다. 느닷없이 차를 세운다. 아니, 시내로 가자고, 버스 터미널 쪽으로 가자고 재촉한다. 못마땅한 표정이다. 다시 택시는 달려 불빛이 제법 비치는 시내의 버스터미널 앞에 선다. 그는 연신 “메이요우 호텔”을 외친다. 부근엔 호텔이 없다는 거다. 상관없다, 이 정도만 밝으면 걸어 다니며 숙소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비 맞으며 오래 돌아다니기도 벅차 시원찮은 산장에 그리 싸지 않은 비용으로 묵게 됐다.
아침에 일어나니 제법 빗줄기가 굵다. 애초 계획은 황산의 서쪽 등산로로 정상에 올라 이박쯤 하며 천하일품이라는 운해와 일출 일몰까지 보고 동쪽 케이블카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놈으 비 때문에 처음부터 꼬인다. 게다가 후배는 감기 몸살이고 나도 그리 좋지 않다. 등산은 취소다. 온천지구에서 쉬며 몸을 푼 후 내일 느긋이 케이블카로 올라 일박하며 볼 거 보고 다시 케이블카로 내려오기로 했다. 몸 사리자는 거지....
노점에서 아침 때우고 '황산, 황산!'을 외치는 호객꾼을 뿌리치고 버스터미널까지 가서 촛불 켜놓고 영업하는 매표구에 품위 있는(?) 필체로 '황산 이인'이라 적어 보인다. 매표원은 귀찮다는 듯 바깥을 가리킨다. 여긴 장거리 버스만을 매표하는 모양이다. 밖에 나와 어슬렁거리는 사내에게 물으니 툰시-황산-태평이라 적힌 버스를 가리킨다. 요금을 묻고 버스에 오르니 아무도 없다. 한참 후에 차가 출발하는데 바로 그 사내가 기사다.
가이드북에는 황산까지 2~3시간 걸린다고 되어 있다. 애매하게 2~3시간이 뭐냐고 불평했는데 곧 얼마나 정확한 표현인지 깨닫는다.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역전 로터리에 이르러 차장인듯한 아줌마를 내려놓고 달린다. 의아해하지만 시간이 답이다. 이놈의 버스가 로터리를 중심으로 기존 승객을 태운 채 ‘다같이 돌자~ 동네 열두 바퀴’를 시작한다. 터미널에서 우리뿐이던 승객은 무려 30분 이상이나 같은 길을 서너 바퀴 맴돌며 호객한 끝에 십수명으로 는다. 호객꾼은 아줌마 차장, 운전기사, 차장인지 손님인지 모를 오십대 아저씨와 총각까지 넷인데 각기 창으로 머리를 내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가족이 매달려 운영한다는 사설버스가 바로 이거구나. 암데서나 기다리면 모셔 가는데 터미널까지 가 차를 탄 우리만 바보가 되었다.
얼추 채웠다 싶은지 버스는 도로로 접어들자 빗길을 겁나게 질주한다. 금연 스티커가 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우리도 뒷자리 앉아 창문 여닫아가며 담배를 핀다. 얘네들 하는 대로만 하믄 되지. 엔진 기름 냄새가 지독해 담배를 피우고, 연기 나가라고 창을 열면 비가 들이치고.... 길옆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이고 밭에는 곡식을 추수하느라 가랑비 맞으며 일손이 바쁘다. 보리나 밀도 아닌데 무슨 작물일까?
황산입구에 도착하니 정확히 두시간 사십분 걸렸다. 달린 시간이 두시간, 호객 하느라 골목골목 누빈 시간이 사십분이니 가이드북은 정확했다.
탕구(湯口)에서 내려 20원이면 인근 어디나 간다는 봉고 택시를 탔다. 젊은 남녀가 기사와 차장이다. 호리호리하고 예쁘장한 아가씬지 아줌마가 무릎을 바짝 붙이고 앉아 맨살을 부딪쳐가며 뭐라고 끝도 없이 지껄인다. 무신 말인지 도통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흔들리는 차에서 또 필담이 시작된다.
‘오늘은 비, 산 아래 놀고 내일은 등산(今日雨 山下游, 來日登山)’ 라고 멋대로 써 보인다. 그 엉터리를 용케 알아차렸는지 생긋 웃더니 비취곡인지 뭔지 안내도를 꺼내 열심히 설명한다. 들리지도 않는 말에 시달리기 귀찮아 웃었더니 그리 가겠다는 걸로 알아들었는지 잠시 후 도착한 곳이 비취곡이다. 당초 우리가 가자고 한 온천지구와는 반대쪽이라 다시 돌아가자며 지도상의 지점까지 정확히 짚어준다. 근데 이 차가 또 목적지를 지나 케이블카 입구까지 와 버렸다. 돌아버리겠네. 모, 이런 여자가 다 있나? 벌컥 성질을 내며 요금을 던져주고 내려버렸다. 한동안 뒤따라오는 듯해 일부러 도망치듯 걷는다. 내친 김에 케이블카로 정상까지 가 버릴까? 그러나 비는 점차 거세지고 산은 온통 구름에 잠겨 있다. 무얼 보려고 오늘 산을 오르나? 포기하고 돌아서 도로가 아닌 계단 길을 걸어내려 온천지구까지 왔는데 누가 아는 체를 하며 앞을 막아선다. 앗, 그 여자다! 물귀신도 저 정도면 고수다. 그러나 화장실이 궁금하던 차라 어디냐고 물으니 친절하게 팔을 잡아끌며 안내를 한다. 도망이라도 갈까봐 그러는지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에 꼼짝 앉고 서 있다. 미치것네... 나오던 오줌이 도로 들어갈 지경이다.
우리는 다시 그녀의 포로가 되었다. 잠은 어디서 잘 거냐, 식사는 어떡할 거냐....? 중국말로 '날 좀 그냥 내비둬' 가 뭔지 알았다면 아마 열 번은 했을 게다. 그러나 말이 안 통하니 손사래를 치며 싫은 표정이 전부다. 그러면서도 궁금하던 산 위 호텔의 숙박비 따위를 물어본다. 기다렸다는 듯 묵을 곳을 안내한다며 우체국 초대소의 숙박료가 30원이라며 거기까지 그냥 태워준단다. 또 당했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의 손아귀에서 놓여나려던 우린 마구 손사래를 치며 제발 좀 가달라는 표정을 짓는다. 마침내 못내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러나 길은 외길이다. 한참을 걷다 뒤통수가 따가워 뒤돌아보니, 악!! 그녀가 차를 타고 천천히 우릴 따라오다가 눈이 마주치자 생긋 웃는다. 정말, 쥐겨버리고 싶다!! 스토킹이란 말만 들었는데 중국까지 와서 왜 우리가 스토킹을 당해야 하지?? 아니, 좋게 생각하자. 생김도 예쁘고 말하는 품도 나긋나긋, 달리 만났다면 전혀 질릴 이유가 없는데, 오히려 내 쪽에서 매달릴 판인데...
어쨌든 오늘은 저 여자 때문에 끝장난 하루다. 계림서 산 모자를 잃어버려 다시 하나 사려는데 무려 28원이란다. 이 사람들이 돌았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는데 모자를 들고 오십 미터는 족히 따라온다. 안 그래도 잔뜩 틀린 심사에 골탕 좀 먹으란 생각에 무시하고 그냥 걷는다. 10원까지 외치다 지쳐 그냥 돌아간다.
그 날 두 번 더 그녀와 마주쳤다. 매번 그녀는 생긋 웃음을 날렸고 우린 한여름에 돋는 소름을 느끼며 진저리를 쳐야 했다. 그녀 덕에 또 한 사람의 꼬리(우체국초대소 호객꾼)를 단 우리는 홧김에 무려 삼백 원짜리 온천 호텔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호텔 식당에서는 돈 아끼느라 정말 썰렁한 밥을 먹어야 했다. 거금 60원짜리였음에도, 딱 두 접시의 반찬이 삼십분 간격으로 나오는 바람에 먹다 말고 담배까지 피워야 했다. 잠만은 잘 잤다. 역시 고급호텔이 좋긴 좋다. 주변은 조용하기 그지없고, 첨으로 침대 스프링이 만져지지 않고 쿠션이 그만이다.
저녁 먹고 온천이나 하려고 ‘溫泉’이라 불 밝힌 곳으로 가니, 이게 모야? 욕조 하나 달랑 놓인 골방들이다. 소위 개인 온천이라는 거구나. 아니다 싶어 손짓으로 큰 욕탕이 있는 곳을 물으니 옆으로 가란다. 이건 또 뭐야? 안내하는 남자가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어 보여 주는데 산동네에 느닷없이 웬 수영장? 별 희한한 온천 동네 다 보겠네... 백두산 아래 그 물 좋던 온천을 기대했던 희망은 깨지고, 비싼 숙박료에 물이나 실컷 쓰자 싶어 둘이 번갈아 철철 물 넘겨가며 개인온천(?)을 했다.
황산...
계단길 가파르게 올라 옥병루(玉屛樓)로 향하는 스위스제 4인승 케이블카에 몸을 싣는다. 숫제 구름 속의 비행이다. 보이는 건 천지간에 가득한 구름 뿐...
바위틈 비집고 다니며 지겹도록 계단만 타다가 정상인 연화봉에 올랐어도 자욱한 안개 휘젓는 바람 몇 줌만이 우릴 반긴다. 다만 오르는 길 지척에 언뜻언뜻 드러나던 잘 생긴 바위들과 어디 있어도 한 인물 족할 소나무들이 산수화 그대로다. 어릴 적 장난삼아 많이 그렸던, 늠름하게 수평으로 뻗은 가지와 끝에 매달린 무성한 잎들...
산에서 묵으려는 계획도 망가져간다. 오리무중의 구름과 그보다 더 막막한 인파를 헤치며 차츰 피로하다. 연화봉에서 북해를 잇는 능선은 아예 유원지다. 황산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렇게 많은 중국인이 몰려드는 걸까? 미니스커트 아가씨, 정장한 넥타이 아자씨... 어떤 할아버지 할머니는 대나무 가마에 올라 앉아 적당히 거만한 표정 지으며 머리 높이로 다리를 흔들며 지나간다. 20세기 초의 시대극 영화 속에 들어온 착각이 든다. 황산의 진면목은 안개 속, 아니 장하다 못해 넘쳐버린 운해로 숨어버리고 잠영하듯 뜬구름만 잡는다. 이쯤 되면 동서남북해 어디랄 것 없이 구름의 바다가 아니라 해일이요 홍수다. 더해지는 사람의 홍수... 산도 몸살을 앓는다.
안개만 없다면 전망이 일품이라는 광명정 너럭바위에 앉아 담배라도 한 대 필까 하다 그만 주눅이 들어버린다. 바로 건너편, 부인과 나란히 앉은 한 아저씨가 담배를 피는데, 갑자기 앳된 얼굴의 공안이 다가가더니 삿대질을 하며 무참하게 꾸짖는다. 아저씨는 겁먹은 표정으로 황급히 담배를 끄고 갑채 휴지통에 버린다. 라이터까지 던져 넣고 애원하는 표정이다. 벌금을 물리겠다고 한 모양이다. 도무지 불날 일이라곤 없는 가랑비 내리는 날씨, 터무니없는 관료주의적 경직이 야박을 넘어 난폭과 모욕에 이른다. 도무지 뭐가 뭐를, 누가 누굴 위해 있는 건지...
날씨 탓에 일박을 포기하고 동쪽 백아령(白鵝嶺) 케이블카로 향한다. 북해와의 갈림길에 이르러 비가 그치고 구름이 잠시 밀려난다. 간사한 마음이 또 흔들린다. 일단 북해까지 가 볼까? 이른 시간이니 거기서 판단해도 되겠지.
북해(北海) 쪽은 대단하다. 호텔을 비롯 조그만 산장들과 은행에 경찰서까지, 숫제 북해 마을이다. 역시 엄청난 인파, 산 속의 인산인해다. 경찰서 앞에선 소대 규모 공안이 제식훈련을 한다.
세 방향으로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오름길 전부 돌계단으로 덮고 친절(?)하게 군데군데 흉물스런 쓰레기통까지 두고 적잖은 공안요원이 배치된 황산은 발끝부터 꼭대기까지 통째로 관광촌이다. 이들에겐 자연은 철저한 이용과 수탈의 대상인 듯하다. 만리장성을 쌓던 진시황 후예답게 오직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대한 완고한 확신이 낳은, 철저하지만 천박하다고 해도 좋을 실용주의가 도처에 번뜩인다.
시원스레 걷혔으면 좋으련만 구름은 여전히 게으르고 비까지 뿌린다. 하산을 결심하고 백아령으로 향한다. 케이블카 매표를 해놓고도 아쉬움이 남아 잠시 어슬렁댄다. 그러는 중, 문득 순식간에 구름이 밀려 오르며 경탄마저 앗아버릴 절경이 펼쳐진다. 바로 저것! 황산운해를 염불하며 오르게 하는....
한두 번 겨우 카메라로 잡아내고 나니 다시 오리무중이다. 바위와 소나무, 흐르는 구름이 빚는 찰나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니? 다시 혼란스럽다. 저 속도로 구름이 밀려나면 황산의 수려 웅장한 자태를 엿보는 것은 시간문제 아닐까. 그게 아니라도 내일 아침은 날이 갤 수 있잖아...? 자갈 구르는 소리가 난다. 세시반이다. 막차는 네 시다. 갈등을 거듭하다 결국 하산한다. 내려오는 케이블카에서 본 황산은 막 구름을 벗고 자태를 드러낸다. 두고 온 산이라 더욱 수려한 것일까? 감질나던 일순의 기억에 사로잡혀 헤어나질 못한다.
툰시에서
황산 여정이 단축되는 바람에 남은 시간, 한가로이 툰시 시내를 배회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인데 의외로 분위기가 좋다. 명말청초의 거상이 대물려 살았다는 정씨 삼가(程氏三家). 남도의 어느 양반 고가를 찾아드는 느낌으로 느릿하게 거닐며 이 구석 저 구석 아래위로 살핀다. 후손인 듯한 남자가 드물게 찾아든 관광객에게 자청해서 안내를 하며 장사꾼의 핏줄답게 나름 개성을 살린 기념품까지 권한다.
노가(老街)는 느린 걸음으로 어슬렁거리며 구경하는 맛이 일품인 거리다. 청대 이래 현재까지 백 수십 호의 상가가 형성되어 있는데, 지필묵 등 문방구와 장신구 그림 공예품 따위가 풍성하다. 연륜 배인 돌길과 수많은 가게 하나하나에 붙은 고풍스런 간판과 누각이 좌우로 늘어선 거리를 천천히 걷노라면, 은연 <홍루몽>의 세계로 빠져든다. 머리를 땋은 채색 옷의 소녀가 금방이라도 이층창문 너머 빨갛게 상기된 볼을 내밀고 들뜬 음성으로 무어라 소리쳐 올 것만 같다... 그러나 한 시절의 영화(榮華)는 가고 이름만큼 나이 들고 지친 거리는 뜨내기 관광객을 상대로 쉽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는 모습은 지난 세월이 안기고 간 풍상이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노가를 걸으며 중국이 떠안고 씨름하는 근대화란 화두를 떠올린다. 문득 전율로 다가오는 12억 인구를 품은 대륙의 달음질. 도처에 보이는 '희망' '증산' 따위의 구호들은 뒤돌아볼 여지없이 앞을 향한 열망에 찬 대륙의 몸부림으로 비치지만, 그 내용이 주로 산업적 근대화에 치우쳐 있음을 감지하기란 어렵지 않다. 먹는 일을 떠나 인간을 논하지 말라는 주장에서부터, 양으로 환원될 수 없는 12억 개개 삶의 어떤 본질에까지 이르면 나그네의 상상력은 힘에 부친다. 그러나 무책임한 이방인의 눈에는 빛바랜 붉은 글씨의 ‘희망’이 한 시절을 기만했던 아메리칸 드림만큼 황량하고 쓸쓸해 보인다.
불멸로 남은 진시황의 장성 쌓기와 분서갱유(焚書坑儒), 이천여 년을 격한 금세기 문혁(文革)과 두 차례의 천안문 사건. 장강 홍수 때 도시 하나를 구하기 위해 농촌 몇 개를 희생시키고 군대를 동원하여 인간제방을 쌓던 이들. 저 거대한 물결의 흐름, 집단적 인간 중심의 편의와 실용의 목소리에 묻히고 짓눌려 사라지는 또 다른 희망의 싹들은 없을까...?
돌이킬 수 없는 길, 그 길로 나아감이 얻는 만큼 많은 것을 잃는다 해도 이들 12억의 삶은 육중한 걸음걸이로 지상의 역사를 굵직하게 그려 나간다. 워낙 넓은 땅과 많은 인구, 암담함이라면 그만한 무게의 암담함이고 희망이라면 그만한 크기의 희망이다. 어디에나 넘쳐나는 사람들, 사람이 있는 곳 어디에나 알 수 없는 활기는 넘쳐난다. 그것은 중국의 현재를 끌어가는 신비스런 동력인 듯 느껴진다. 그래서 그들의 행렬은 인간이 지상에 쌓는 또 하나의 장성을 이루어 간다.
점차 느끼해지는 중국음식을 한 끼쯤 거르고 시장에 들러 빵 두 근 토마토 두어 근을 사서 강변 벤치에 앉아 우적우적 씹는다. 이들은 토마토를 날로 먹지 않는다. 씻지도 않고 대충 닦아 먹은 토마토는 정말 찰지고 맛있다. 이 맛있는 걸 왜 꼭 익혀 먹을까? 재배방법이나 토질, 아니면 문화적인 무슨 이유일까?... 등등 말도 안 되는 소릴 시시덕거리며 점심 한 끼 깔끔히 해결한다.
다시 상해
조계(租界)로 표상되는 오욕의 근대사 한 장을 감추고, 홍콩 반환 이전까지 중국 최대를 자랑하던 국제 도시. 빛바랜 역사의 갈피에서 애써 우리의 흔적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도시, 상하이.
벤치마다 부둥켜안은 남녀들로 붐비는 인민광장을 뒤로하고 홍콩 밤거리를 연상시키는 남경로를 따라 쉼없이 걸어 황포공원에 이르렀다. 바람 부는 황포강변에 앉아 양 기슭을 번갈아 본다. 마치 상해가 끌어안고 있는 대륙의 과거와 미래인 듯, 양 기슭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착잡하게 흔든다. 조계 시절의 유산인 외탄(外灘)에 즐비하게 늘어선 장려한 서양식 석조 건물과, 그것을 마주보며 휘황하게 조명 밝힌 포동지구의 사이버풍 타워와 첨단 디자인의 초현대식 건물들. 이들은 백 층이 넘는 고층건물과 타워를 내외 여행객의 발길이 가장 빈번한 황포강 기슭에 세워놓고 끊임없이 중국의 꿈을 일깨우려는 걸까? 한 때 우리의 남산타워나 63빌딩처럼, 가상현실 같은 미래 감각의 첨탑에 투사될 꿈과 희망들. 그 꿈은 바람 속에 명멸하다 정확히 열시가 되면 일제히 꺼지는 불빛들만큼이나 공허한 환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여자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서 예쁘장한 아가씨 둘이 생긋 웃으며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을 건넨다. 친구 하자고? 그래, 홍콩 밤거리보다 한결 운치 있는 황포강변을 예쁜 아가씨와 나란히 거니는 맛이 좀 좋을까만, (목하 영업 중인 듯한데) 여행 막바지라 체력도 달리고 돈도 다 떨어졌으니, 호의는 고맙지만 다른 친구나 찾아보시구려... 걸음을 옮겨 십육포 부두에서 숙소 찾아드니 밤거리 헤맨 지도 훌쩍 세 시간이 넘었다.
이른 아침 다시 황포강변을 오른다. 거대한 도시는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지만 건너 포동 쪽은 아직 흐린 안개에 잠겨 있다. 엷게 흐린 하늘, 동녘이 차츰 붉어온다. 상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한 번쯤 보고 싶었다. 그 해를 보며 대륙이 꿈꾸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었다. 소련이 사라진 지금 지구상의 몇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의 하나로 남은 중국의 미래. 사회주의를 금세기 인류가 시도했던 실패한 실험쯤으로, 변질된 국가자본주의 체제쯤으로 치부하더라도 그것이 곧 인류의 현실이고 역사임을 인정치 않을 수 없는 거대한 나라.
그러나 역사는 기억이 아니라 질문이며 독백이 아니라 대화다. 서로를 느끼고 서로를 통해 나를 물을 수 없다면, 더 이상 역사도 무엇도 아니다. 루신공원에서 길 물었던 젊은이들 중 윤의사의 매정(梅亭)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듯 이제 상해는 과거 속에 있지도 역사를 묻지도 않는다. 엊저녁 가로등 불빛 아래 상해의 외탄과 대안의 포동은 가슴 벅찬 희망 또는 환상이었다. 뭇 여행객의 가슴을 뒤흔들며 불빛 어른거리는 황포강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기억 아득한 저편으로 밀어버리기에 넉넉한 것이었다. 불빛들은 소리치고 있었다. 오직 중국의 미래만이 있을 뿐이라고...
그것은 기만일까, 희망일까? 현실의 중국을 보면 그 희망은 때로 착잡한 것이 된다. 공항으로 향하는 고가도를 달리며 본 차창 밖 풍경은 서구적 대도시다. ‘희망’과 ‘문명’을 외치며 육중한 대륙이 달려가고자 하는 곳이 바로 저기일까?
그러나 중국의 또 다른 희망은 페인트로 쓴 벽구호나 불빛 명멸하는 첨탑이 아니라 알 수 없는 활기로 빛나던 뭇 인민들의 발걸음과 의욕에 찬 표정과 손짓 하나하나에 생생히 담겨 있지 않을까. 사람 사는 곳 어디서나 늘 그래 왔듯, 희망은 바로 그 사람들 속에 있어야 하기에...
이른 아침의 상해공항, 거침없이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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