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봉산 곰배령에서 가칠봉으로 140531
코스 : 들머리(04:30)- 망대암산(06:53) - 점봉산(07:26) - 작은점봉산(08:05) - 곰배령(08:26) - 가칠봉(10:34) - 진흙동(13:30)
(점봉산 이후의 대체적인 경로는 빨간 실선. 궤적이 아니므로 실제와 다를수 있음)
어지간히 궁금하던 곰배령, 대간팀에 편승하여 기웃거려 본다.
계절이 좀 아쉽다. 초원 가득 들꽃밭 펼쳐지는 한여름이라면 제대로 감동먹을 텐데,
맹렬 유월같은 오월 아침의 곰배령, 잠 덜깬 까막눈엔 그저 그렇고그런 풀밭 고원이다.
그보다는 가칠봉으로 이어지는 울울창창 짙푸른 수림 능선, 멧돼지들 밭갈이하는 크고 깊고 둥근 육산릉이 더 인상적이다.
힘차게 뻗어가는 크고 웅장한 산세가 강원 대간릉 밟으며 느낀 소감이었다면,
산과 나 서로 만나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자연과 인간 서로의 정체를 더욱 뚜렷이 부각시키는 '길'이 대간이었다면,
곰배령 너머 이 산길은 사방팔방 올려다보거나 둘러보아도 흐르는 시간이나 공간의 방향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하늘과 원근산하는 둥글고 푸르게 자주 닫히고, 그때마다 산길 우에 머물거나 오가는 것들이 덩달아 푸르고 모호해진다.
이리보나 저리보나 무던하기 그지없는 육산릉 육봉들, 큰 기복도 없이 거기가 거기같아서
드넓고 짙푸른 숲속에서 길이라도 잃어버리고 싶은 막막함과 함께 정체모를 아늑함이 엄습하는 세상.
제대로 가고 있으면서도 발아래 자취 잠시 흩어지면 홀연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니,
호랑이코빼기, 가칠봉, 유리봉, 진흙동 등등..
주문처럼 굴려보는 별스런 이름들만 까칠하니 혓바닥에 매만져진다.
일행과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는다. 목소리는 숲을 뚫고 저만치 나아갔다가 되돌아와 맴돈다.
큰산 깊은숲의 정적에 삼켜질듯 삼켜지지 않는 목소리...
아니, 온통 구멍인 숲에 너무 삼켜져서, 삼켜진 그 자리가 상처인듯 도드라지는 것일까?
혹은 숲에 삼켜진 말이 육탈한 뼈나 씨앗처럼 동글동글 소리만 남아 깊푸른 허공 굴러다니며 다시금 우리 귓전 낯설게 울리는 걸까?
이토록 생경한 말의 물성物性이라니.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미로를 만들어내는 거울방에 들어와 있는 것일까? 깊고 푸른 거울방의 숲.
목소리는 거울방 푸른벽에 부딪쳐 파문을 일으킨다. 번지는 물무늬를 숲이 삼킨다.
숲의 일부가 되어 푸르게 번성하는 목소리들.
오래오래 푸르러져갈 그것은 더 이상 말이 아닐 것이니
늙은 나무는 저를 지나간 수백년 묵은 목소리들을 몸 곳곳 옹이나 메아리로 감추고 있을 게다.
되돌아온 목소리에 우리가 문득 소스라친다면
그것은 방금 나를 떠나갔다가 되돌아온 소리에 낯선 시간의 메아리나 무늬가 묻어있기 때문.
미처 감추지 못한 눈물처럼 반짝이던 연두 봄날
알지못할 곳으로 숲은 훌쩍 데불고 가버렸으니, 연분홍 철쭉 지고나면
게걸스레 삼키며 번성할 숲의 나날들, 길이 창대할 꽃들의 뒤끝.
남설악 점봉산 남능선, 숲이 물物을 낳고 번식하는 모양을 물끄러미 듣다가 온 하루.
들머리 개구녕 통과 기다리며 동쪽으로 똑딱.
점봉산 입산을 막는 철조망, 번쩍거리는 새 강철문짝 달고 더욱 위세당당해졌다.
그래봤자 개구녕일 뿐, 낡은 문짝 그냥 두지 그딴 거에 세금 쓰는 노릇이 억울하단 생각이다.
바윗길에서 또 정체
기다리며 돌아보다. 귀청쪽
대청쪽
관모능선 위로 해가 뜨고 있다.
기다리며 또 한컷.
언제 보아도 신비로운 설악 아침빛이지만, 지난번에 워낙 알뜰히 오르내리며 기웃거린 터라 새로운 감흥은 없다.
오늘은 후미에서 길따라 여유롭게 간다.
줄서서 기다리다가..
옆얼굴같은 바위 윤곽이 재미나서 또 한컷.
또 기다리고..
겨울엔 기다리는 게 더 힘들텐데, 이 코스 겨울엔 갠적으로 왔으므로 이런 불편은 없었다.
역시 설악다운..
오늘은 남설악 전경 굽어보이는 조망바위들 오르지 않는다.
계절별로 보았으니 별 궁금치도 않거니와 오늘 시계가 워낙 좋질 않다.
예전 기록에서 옮겨온 사진(11년 5월 24일 기록)
1157봉 전 우회하는 조망바위들에 오르면 저런 광경들이 발아래 펼쳐진다.
한동안 이어지는 키낮은 산죽숲
망대암산 오르며
망대암에서
굽어본 가는고래골
망대암 정상부에서.
오월 하순인데 한여름같은 기온과 날씨, 박무에 시야 퍽 흐리다.
점봉산, 가파른 동사면
완만한 서사면, 귀둔리 용수골쪽
점봉산정 가는 길, 진달래와 철쭉 관목숲의 바다를 헤엄치듯 오르며 돌아본다.
유난히 절기 빠른 해, 이달 중순쯤 다녀갔을 진달래는 자취도 없고 철쭉 또한 벌써 지려 한다.
끝물이지만 꽃 있으니 한결 재미가 낫다. 그렇잖으면 원경 흐려 꽤 단조로웠을 터.
진달래와 철쭉 섞인 군락지, 지난번 진달래철 떠올려 보니 진달래 개체수가 조금 더 많은 듯하다.
비슷비슷, 돌아볼 때마다 똑딱이며 간다.
점봉산 첨 올랐을 땐, 태백산맥 특유의 가파른 동사면이 빚어내는 선형의 역동감에 썩 감탄했었다.
허나 이제 거의 무덤덤해져버렸다. 그래서 망대암과 점봉산정 사이에 숨어있는 조망처조차 기웃거리지 않는다.
잃어버린 감동을 되찾으려면 아마도 꽤 오래 묵혀야 할 터.
점봉산정에서
대간팀과 헤어져 작은점봉산 향해 내려서다.
곰배령 통과가 신경쓰여 오래 머물 마음의 여유가 없기도 하다.
한동안 꽤 싱싱한 철쭉꽃밭이다
작은점봉 이후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
작은점봉 바로 위로 좀 뾰족한 가칠봉, 왼쪽 둥두렷한 곳이 호랑이코빼기.
작은점봉 왼쪽 움푹한 곰배령에서 올라서면 봉긋한 1197봉. 당초엔 1197봉 지나 유리봉 능선따라 조침령 삼거리까지 가볼 생각도 했으나, 한정된 시간에 길고 울창한 능선 완벽하게 독도해갈 자신이 없다. GPS로 무장 후에나 함 고려해 볼 일이다.
시야 좋다면 뚜렷이 드러날 먼산릉, 대간이나 방태산릉은 박무에 잠겨 보이질 않는다.
글구보니..
올 여름엔 오랫만에 방태산릉을 함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
여느 해 유월보다 더 푸른 오월 마지막날.
여름 하늘같은 먼산 바라보며 점봉산 철쭉길 걷는다.
뒤돌아본다
원경 흐리니 오로지 꽃놀이 모드, 나쁘지 않다.
대간릉보다 한결 오솔해진 길
작은점봉 주목군락에서 일디타님, 진흙동 계곡 첫폭포 만날 때까지 동행했던.
작은점봉산에서 돌아본 점봉산릉. 거대한 고대생물의 동체마냥 육중하다.
사태로 날카롭게 패인 용수골 한 지계곡이 눈길 끈다.
작은점봉산정도 펑퍼짐한 꽃밭.
그러니까, 점봉산 내려서는 비탈과 작은점봉산정 일대가 잔달래와 철쭉군락인 셈.
오월 중순에 귀둔 기점으로 점봉산과 가칠봉을 이어본다면, 연두 산빛과 진달래, 곰배령 봄꽃을 함께 누릴 수 있을 듯.
뒤돌아본 점봉산
가야할 능선 앞두고 귀둔쪽 시야 트이는 곳에서 서성이다.
이쯤서 단체사진도 찍었던가..
드디어 곰배령 초원이 보인다.
조심스레 곰배령 초원 들어서다
봄날과 한여름, 다른 빛깔의 곰배령 초원을 상상하며 간다.
깊은맛 떨어뜨리는, 재미없는 데크길이다. 허나
많은 이들 오르내리는 워낙 유명하고 중요한 보호구역이라니 감수해야 할 노릇.
동북쪽. 흰꽃 무리가 지평을 이루고..
서남쪽, 노란꽃 무리가 한가득이다.
한여름에 비해 화려함 덜하겠지만 꽤 여러 꽃들이 피어있다.
다시 숲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정식 탐방 허가 받고 오른 게 아니니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총총 지나와 뒤돌아보다.
울창숲 들어서다.
뒤돌아보다. 왼쪽으로는 귀둔
점봉과 작은점봉
여태 걸어본 숲길 중 가장 울창하고 깊은맛 나는 능선, 기대 이상이다.
박새가 유난히 많이 보이는 능선길,
멧돼지가 여기저기 밭갈듯 헤집어놓아 길흔적조차 사라져버린 곳이 많다.
울창숲 속이니 사방 시야 트이지 않고, 워낙 펑퍼짐한 능선이라 가야할 길 어림하는 날선 방향조차 쉽사리 분별되지 않는다.
나침반 꺼내 목에 걸고 간다.
수림 짙은 능선길, 단촐한 일행이라 호젓하게 걷는 맛은 가히 최고다.
푸른 숲그늘 속에서 다들 싱글벙글..
비슷비슷한 풍경, 걷는 맛에 취해 사진조차 찍지 않고 내처 간다.
주등로 파헤쳐져 사라지고 귀둔쪽 길만 뚜렷한 챗목갈림길에서 잠시 헷갈리기도 하며.
일행과 얘기 나누며 걷는다.
두런두런 울려퍼지는 말들, 푸르름에 잠겨 삼켜졌다 슬그머니 되돌아오는 듯한 목소리...
묘한 느낌이다.
허나 숲을 거쳐 푸르게 되돌아오는 소리는 종내 내 것이 아니었으니,
그건 필시 사람의 언어를 씻어내고 푸르름으로 갈무리했다가 다시 건네주는 숲의 말이었을까?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에 번성했던 '변신'의 모티브들은 다름 아닌 숲의 이야기, 숲이 건네오는 매혹과 불멸의 말들.
아니 그건 말이라기보다 출렁이고 꿈틀이는 물物에 더 가까운 무엇일까?
알수 없지만 아름답기 그지없고, 아름다운 만큼 치명적인.
애기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도착한 가칠봉.
너덜거리는 낡은 코팅표지 하나 붙어 있고 사방 조망은 없다.
진행방향(서쪽)으로는 길 뚜렷하다. 아마 상치전이나 귀둔 쪽으로 이어질 것아다.
워낙 시야 좋지 않으니, 굳이 다른 방향으로 더 나가보지 않는다.
하산릉 지점으로 되돌아와 뒷일행 기다리며 30분여 휴식.
당초엔 두무터 방향 남능선 따르며 좀 어수선할 성 싶은 최상류부 지나 진흙동 계곡 내려설까 했는데(지도에 표기된 경로)
뒷일행은 첨부터 골로 내려서겠단다. 우리도 그렇게 하기로 한다.
한참 휴식한 안부에서
계곡 접어들며.
워낙 기름진 육산릉, 가시덤불같은 게 전혀 없어 진행이 수월하다.
산초나 약재 구하는 이들에겐 아마 보물섬같은 곳.
눈밝은 저쪽 산야초팀은 버섯을 발견, 채취 중이다.
나물이든 약초든 버섯이든,
보아도 모르고 줘도 먹을 줄 모르는 우리는 그저 이 짙푸른 신록, 울창산길이 희희낙낙 즐거울 따름.
물길 시작되는 지점 지나 조금 내려오니...
흐미, 까막눈인 나도 알아볼 xx밭이다.
골에 구르는 바가지같은 다용도 그릇?
한시절 여기를 지나갔던 살림의 흔적이겠다. 아닌게 아니라..
900고도 부근에 한때 집터였던 듯한 흔적이 보인다.
산야초꾼 한철 움막터라기엔 규모가 좀 크다. 화전민이나 산에 살던 이의 집터였을까?
이 골짜기 상류는 썩 완만하고 너르다. 계곡 좌우 몇군데, 인위적인 건지 자연적인 건지 모르겠으나, 펑퍼짐한 테라스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집터를 연상시키는 거기엔 아마 한때의 살림 흔적이 흩어져 있을 것도 같다.
한동안 이어지는 속새군락. 흔히 보는 식물 아니니 숲의 이채를 더한다.
세월 지나면 여기는 지나가기에 좀 곤란할 구간이 될 듯하다.
볕 좋은 초지임에도 가시덤불이 섞여 자라고 있다.
속새 사잇길
속새 군락이 꽤 길게 이어진다.
골이 좀 더 패이고 수량 많아지면, 길은 계곡 오른쪽(서남쪽) 사면을 따라 이어진다.
굽어보는 계곡 경관이 아직은 썩 좋진 않다.
한동안 이어지는 짐승길같은 사면길, 땀께나 나며 좀 덥게 느껴질 즈음..
꽤 멋스런 와폭이 나타난다. 망설임없이 내려선다.
시원하게 발 담근다. 무릎 아래 진작부터 따끔거리던 곳에 붙어있던 진드기도 한 마리 떼어낸다.
내려와서 올려다본 와폭.
상당한 규모인데 사진은 영 아니다..ㅠㅠ
자세히 보면 윗쪽에 사람이 있다.
물을 건너 북동쪽 사면을 따라 내려온다.
최상류부터 골을 따라서 그런지 계곡이 좀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나저나 이 골의 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다. 벌막골이라기도 하고 진흙동 계곡이라 부르기도 하는 듯.
최상류에서 조금 내려서면 흐린 길이 나타나는데, (아마 지도에 그려진 대로) 능선에서 이어져오는 듯하다.
흐린 길은 한동안 (지도와 달리) 계곡 동쪽사면을 따르다가, 유리봉 능선쪽 주계곡 만나기 한참 전에 물을 건넌다.
주계곡 만나면 주로 서쪽사면을 따라 길 이어지다가, 하류에 이르러 썩 좋은 길이 되어 진흙동에 닿는다.
역시 멋진 폭포인데 영..ㅠㅠ
시간 여유롭다면 계곡치기로 함 내려와보아도 좋을 듯..
주계곡 합수지점(상류)
주계곡 합수지점 하류쪽
제법 예쁜 암반도 보인다.
씻을만한 곳 찾아 기웃거린..
진흙동 내려서니 설악산 국립공원 점봉산 분소가 있다. 뜨악..
물론 공원구역은 가칠봉까지이니 신경쓸 필요는 없다.
진흙동은 좀 어수선하다. 알고보니 계곡 날머리 막고 선 건물들이 동홍천-양양간 고속도로 인제터널 현장사무실과 터널홍보관이다.
인제 기린면 진동리와 양양 서면 서림리를 잇는 인제터널은 길이10.965km로 준공되면 단연 국내최장이다. 더 놀라운 건, 점봉 방태산군을 수직 우회(?)하고 대간릉마저 깊숙히 관통하는 터널이 지금 우리 서 있는 진흙동 수백m 발아래를 지나간다는 사실.
실로 현대 토목기술의 결정체라 할만한 이 거대구조물은, 수도권과 강원 동해안을 최단으로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명물로 떠오를 게 분명하다. 동시에 강원 동해안을 수도권의 일일생활권으로 편입시켜며 강원도의 지역성 파괴에 일조하는 괴물이 되리란 점도 분명해 보인다.
햇살 따가운 조침령로에 서서 지나가는 차를 세워본다.
네댓대쯤 허탕친 후...
강릉 사신다는 연세 지긋하신 분의 배려로 조침령까지 수월하게 이동하여 대간팀 합류.
두부김치 안주에 시원한 막걸리 하산주, 후식으로 수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