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여행/지리 설악 제주

지리 목통골에서 도투마리골로 130915

숲길로 2013. 9. 16. 20:15

 

 

코스 : 칠불사 주차장(08:45) - 영지 - 목통골 계류 만남(09:40) - 화개재(12:05 점심) - 삼도봉(13:00) - 불무장등(13:44) - 도투마리골 진입(14:10) - 직전마을(17:15)

 

 

 

 

칠불사에서 화개재 가는 옛길 따라 접어든 목통골, 길지 않은 구간이나마 골치기로 오른다.

많은 비 내린 후 수량 넉넉하여 썩 볼맛이 난다. 허나 거침없이 발 담그고 싶던 한여름의 시원함은 아니다.

여름과 가을 사이, 뒤돌아보면 이미 아득한 시초. 구월 계곡산행은 묘하게 어중간한 느낌이다.

 

한 계절 끝나가고 있다. 짙푸르던 이끼는 조만간 빛을 잃어갈 것이다.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

그럼에도 어떤 은밀한 고양高揚이 구월엔 깃들어 있다. 절정 지난 이후의 깊은 적막이나 긴 떨림처럼..

물길따라 거슬러 오르면 시간마저 거슬러 오르는 착각이 든다. 물이 빚어놓은 흔적,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마찰의 시간을 기억하는 바위들...

그 시간이 빛을 태어나게 했으니, 흰 물보라 이는 오랜 골짜기는 여태도 태어나고 있는 빛의 자궁, 시간의 근원. 

 

삼도봉 벼랑 아래 숨어있을 물길의 시원, 일찌감치 벗어나 가파르게 치오른다.

화개재엔 초가을빛 물씬하다. 바람과 하늘의 오랜 거처.

갓 피어난 억새 연자주 꽃대는 쉼없이 살랑이고, 철만난 꽃들은 하늘낯빛으로 자지러지며 어우러진다.

구월 큰고개, 점심 자리 찾으며 바람 드는 햇살과 그늘 사이에서 잠시 행복한 갈등이다.

 

오백오십계단 하늘 아래 잎들이 단풍든다. 바람에 숨 고르며 느리고 길게 오른다. 유난히 몸 무건 환절의 한낮.

구름 한점 없는 삼도봉 먼빛이 흐리다. 큰줄기 닿는 천왕도 아득하고, 물 건너 백운은 긴가민가 가물거린다.

구절초 벼랑 건너보며 불무장등 내려선다.

푸른 그늘 두텁게 내리는 깊고 울창한 능선, 두런두런 얘기 나누며 간다.

말들은 금세 흩어지며 사라진다. 언어를 삼키며 여미는 푸른 구월숲, 지척의 벼랑과 비탈은 내도록 적막하다.

 

도투마리골, 무슨 뜻일까? 사전 들추어도 뜻 닿지 않는다. 

마른 이끼 붙은 바위들 무리지어 빼곡히 고여있는 곳, 편치않은 무릎 조심스러워 마냥 지루한 너덜길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고 지치는 몸, 골산행 감흥 겉도니 휘적휘적 내려서기 바쁘다.

너덜 지나 암반 계류나 폭포 만나도 좀 시큰둥이다.

시절 탓일까, 몸 탓일까? 청량했던 시작과 달리 끝에 이르러선

오르내림 모두 계곡으로만 이루어진 산행이 퍽 부담스럽게 느껴지던 하루... 

 

 

 

칠불사 일주문.

드는 길 꼬불하고 가팔라 깊이 숨어있는 절이라 싶었는데, 주차장은 드넓다. 

 

칠불사 드는 길. 전혀 기억이 없다.

 

십수년전, 역시 칠불사 거쳐 목통골 단풍 기웃거리고 토끼봉 오른 적 있다.

단풍철임에도 날씨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일찌감치 골 버리고 능선으로 붙었던 기억이다.

무릎 성하여 거침없이 내지르던 팔팔시절,

일행들 중 맨 먼저 토끼봉 올라 안개 자욱한 시야에 실망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영지엔 칠왕자 그림자 대신 산나들이 나온 선남선녀만...

 

칠불사 절집은 들리지 않는다.

절이름 유래한 가락국 수로왕의 칠왕자 얘기와 아자방, 최고의 수도도량 등으로 유명하지만, 아침부터 우르르 절집 난입하는 건 예의 아닌 듯하다.

영지에서 곧장 산길로 접어든다.

 

잠시 가다 만나는 인허당印虛堂 부도.

뉘신지 궁금하지만 기록이 잘 띄지 않는다.

 

예쁜 오솔길 따라 간다.

수많은 발길들, 오래 오래 오르내렸을 길..

 

 

부휴(浮休)선사 부도.

귀에 익은 이름이라 자료 찾아보니... 유명인사다.

 

'조선 중기 청허당과 함께 부용선사(芙蓉)의 법맥을 이었다.

그러면서도 청허당보다 23세의 연하였기 때문에 사명당(四溟堂)과 오히려 활동이 많다...'

시 몇 수가 남아있다.

 

慓渺三山洞 (표묘삼산동)  아슬히 깊은 三山의 골

頹然一夢身 (퇴연일몽신)  비스듬히 누운 꿈속의 한 몸

海天秋欲暮 (해천추욕모)  가을도 저물어가는 바다 하늘

千里見情人 (천리견정인)  천리에서 보이는 정다운 사람

 

썩 맘에 드는 번역 아니지만,  명사로 마무리하는 무뚝뚝한 맛도 나쁘지 않다.

원시에선 속인도 스님도 아닌 거사의 선풍이 느껴지는데, 번역은 스님다운 느낌을 더 살린 듯. 

 

또 이런 시도 보인다.

 

단풍철이나 봄날에 다시 함 걸어보고 싶은 운치있는 오솔길 이어간다.

다른 계절이라면 도중에 물길 탐하지 않고 끝까지 이 길 따라 올라도 좋겠다. 

 

청굴.

놓인 바가지로 보아 샘 있을 듯하나 물맛은 보지 않았다.

 

 

불무장등과 삼도봉 슬쩍 보이는 고개에서

 

한 때 집터였을까?

 

 

 

다들 부지런히 걷는다. 잠시 멈추면 적막 밀려드는 길..

 

또 축대 보인다.

흔적들, 달아나는 시간들, 현재도 진행 중인 사라짐..

사라지는 집터는, 모든 폐허는 신비롭다.

없기 때문에, 고증이 아닌 다만 짐작하여 헤아려야 하는 흔적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사라진 것들 옆으로 돌아오는 자연.

사라진 것들과 천연덕스럽게 돌아오는 것들 사이로 길은 흐른다. 길의 운명이 그렇다. 

끝 보이지 않는 시공의 무한. 그 속으로 길은 태어나고 사라진다.

 

계곡 내려서서.

주등로는 물 건너 이어지지만, 여기서부터 길 버리고 물길따라 오른다.

칠불사에서 목통골 들면 많이 수월하지만 하류의 연동협곡을 놓친다.

발 적시며 바로 치오르는 협곡은 사진으로 보기에도 장관이었다.  

 

비온 직후라 한여름처럼 수량 많다. 제법 볼만하다.

 

 

 

 

 

 

 

 

 

 

계곡 단체 산행은 좀체 적응하기 힘든 어떤 어색함 있다.

요란한 물소리에 맞서는 건 산의 적막이 아니라 행렬의 소란스러움.

어쩔 수 없이 앞서가거나 뒤쳐져야 한다. 물론 늘 후자다.

 

 

 

 

 

 

 

 

 

계곡 사진 보는 느낌은 일종의 모순같은 양가감정이 든다.

사람이 전혀 없으면 규모나 물길의 위세가 잘 가늠되지 않는다.

산행 도중엔 그 반대다. 동행이 없을수록 산을 더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목통골 이끼는 역시 북쪽 계곡만은 못한데

여기가 그 중 나아보이는 곳이다.

 

 

조만간 저 잎들 발갛게 물들어 갈 터...

 

 

 

볼만한 모습 한동안 이어진다

 

 

 

 

 

 

 

 

 

 

 

 

 

지리산 어느 골짝이나 저 넘의 고로쇠 파이프가 흉물이다.

 

 

 

 

 

 

 

 

 

 

 

 

 

 

 

 

 

 

 

 

 

 

 

 

 

 

 

 

 

 

 

 

 

 

 

이 소폭까지 보고 오른쪽 주등로로 올라붙는다.

 

주 등로에서 잠시 내려와 기웃거린 와폭

 

물길 버리고 잠시 가파르게 치오른다.

능선길 산죽길, 투구꽃 만발한 사면길따라...

 

 

화개재에서

 

맑디맑던 새벽하늘에 비해 많이 뿌옇다. 낮기온 훌쩍 높아져버린 탓일 게다.

 

 

 

머리맡의 잎들 물들어오고...

 

거북등같은 불무장등.

한자로 적어 놓으면 꽤나 현학적으로 읽히는 불무장등, 하지만 원래 순우리말에서 유래한 이름같은데 통 짐작되는 바가 없다.

물론 그만큼 독특한 이름이기도 하다. 

 

삼도에서 돌아보는 천왕봉쪽

 

 

 

가야할 불무장등.

수년전 늦가을에 함 걸었던 이래 참 오랫만이다. 조망 유난히 즐기던 당시엔 보기보담 재미없더라.. 여겼던 기억.    

 

 

불무장등 능선 내려서며

 

돌아보다

 

산오이풀은 끝물, 들국은 아직 한창.

촛대봉 남사면과 연하봉 일대가 궁금하다. 

올해 들꽃이 유난히 좋다는데 별로 보질 못했다. 종주 산행에 매인 탓이다.

집착은 놓을 수 있는 게 아니니, 또다른 집착으로 대신할 따름. 

 

 

 

 

 

조망바위에서 돌아보는 반야와 삼도

 

삼도 토끼 그리고 명선

 

남부릉과 천왕

 

조망처 많지 않은 대신 숲이 일품이다.

 

 

 

 

 

 

 

 

 

 

 

 

키낮은 산죽숲 가로질러 도투마리골 내려선다

 

꽤 조심스럽고 어수선한 너덜 한동안 이어진다

 

 

 

마른 이끼 붙은 바위 딛고 가파르게 내려선다.

에구~~ 무릎이야~~

 

 

 

 

 

 

 

 

 

 

 

 

 

경사는 죽었지만 여전히 너덜.

햇살 많이 받는 남쪽 계곡이라 이끼 그리 풍성하진 않다.

목통골도 그랬지만, 썩 그윽한 맛은 없단 얘기. 

 

누리폭포?

꽤 볼만한 수미터급 규모인데 사진은 영... 애개개~다.

 

 

 

 

 

 

 

오나가나 저넘의 파이프...

지리산의 자연미를 가장 치명적으로 해치는 끔찍한 인공물. 이골엔 특히 심하다. 거미줄 수준이다.

증오심이 지나쳐 언젠가 기어이 사고 함 치고 말거 같으다.

 

 

 

 

 

 

 

금류폭포

 

 

 

직전마을 내려서며